일주일 전쯤에는 뜻밖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였다.
처음에는 그녀와 그녀의 다른 참모,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앉아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가 돌연 자리를 박차듯 나가버리고 난 뒤 나와 그녀 둘만 남게 되었다. 그
녀는 그 참모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혹감과 불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어디 갔어요?"
무슨 시튜에이션인지 감을 잡은 나는 너스레를 떨면서 말하였다.
"그 사람도 나름 노력했을 거예요. 다 상대적이지요. 그러는 누님은 그 동안 뭐하셨어요 그래?!...
속 푸시고..."
"그런가요?!...."
"ㅎㅎㅎㅎㅎㅎㅎ"
어쨌든 서로 웃으면서 마음을 풀었다.
꿈이지만, 이렇게 마음을 풀고 나니 기분이 괜찮다.
근데 뭐야 이건? 웬 박근혜 대통령? 누님이라고? 헐!!
물론 내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꿈의 파격적 은유일 것이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박근혜 캐릭터로 나타난 것이고, 그 참모 또한 마찬가지.
지금 내가 어떤 일로 당혹해하고 기분이 상해있는데 그게 내 의식의 판단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인 바,
내 의식이 보지 못하는 다른 측면을 보지 않고 일을 처리해버릴 때 생길 수 있는 위기를 감지한
내 무의식이 화급하게 의식을 향해서 보낸 급전메시지로 읽혀진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내 마음의 경직은 많이 풀어졌다.
당연히 그 일, 그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도 훨씬 너그러워졌고. 요즘 읽어나가는 창세기 말씀,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창 31:24)는 구절도 이 비슷한 얘기 아닐까 생각해본다.
만약 꿈의 중재 없이 예민한 내 의식의 표층에서 일어나는 판단으로만 일을 처리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상 밖의 꿈 때문에 예상 밖으로 일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으례히 참 다행스러웠지 싶다.
어디 꿈뿐일까? 기도하는 중에 일어나는 변화가 다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제는 동일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짐으로 인해서 결국에는 문제가
뜻밖의 방식으로 해결되는...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