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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열린 마음 닫힌 마음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4-12-02 (화) 16:49 9년전 3711  
열린 마음, 닫친 마음입니다.
50:15-21,2:1-13 2014.11.16. 박용래 목사
 
본문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하여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요셉이고 다른 하나는 요셉의 형제들입니다.
요셉은 열린 마음을 가졌고, 그의 형들은 닫친 마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하나님 앞에 깨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처럼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이뤄지지 아니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동생 요셉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여 죽이려고 까지 함으로 점점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고 마음이 닫혀 있던 요셉의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징조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대하여도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당장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몰두했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꿈을 이어가야 할 책임과 사명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닫친 마음으로 인하여 그런 약속을 바라보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그런 꿈을 가진 자기의 동생인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아무리 위대한 큰 꿈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가 만약 그의 형들과 함께 그냥 살았더라면 그의 꿈은 한낱 꿈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형들의 꿈이나 해몽해 주는 한낱 점쟁이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급에 팔려가게 하신 것은, 당시에 애급은 열린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바로를 욕하지만 요셉시대의 바로는 사실상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요셉은 타민족이며 종신수로 옥에 갇힌 사람이었는데, 그가 아무리 자기의 꿈을 잘 해몽했다 할지라도 상급이나 주어서 보내면 족할 터인데 바로는 대뜸 요셉을 총리대신에 앉혔습니다. 이런 일은 개방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이 닫친 사회에서는 그가 아무리 위대한 정치적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타민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절대로 그를 총리대신에 앉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차별하고 왕따 시키지 아니하면 다행일 것입니다.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우리 집안, 우리 지역, 우리 교회만 생각하는
닫친 마음에서는 하나님의 꿈을 담들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하나님의 꿈을 담아 드릴수가 없고, 새로운 역사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닫힌 마음의 소유자들과 열린 마음의 소유자인
요셉을 통하여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1) 닫친 마음, 닫친 세계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닫히면 넓게 열린 세계를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은 닫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넓은 세계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왜 요셉의 형제들은 마음이 닫힌 삶을 살게 되었는가?
하나님과 막힌 담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가졌기에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과 불통된 형제들은 닫힌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늘 깨어 있는 신앙생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와 찬송으로 늘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형제를 미워했기에 마음이 닫혔습니다.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마음 문이 닫혔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모함하면 마음에 불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 문이 닫힌 성도들은 행여나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모함하고 이런 것들로 인하여 심령의 문이 닫힌 상태로 답답하고 불행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회개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수있기를 축원합니다.
 
죄를 지었기에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동생을 죽이고자 깊은 웅덩이에 빠트리기도 했고 동생을 팔아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이웃과 막힌 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막힌 담이 있어 마음의 문이 닫히어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꿈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함으로 닫혀 있는 마음의 문들이 열려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소낙비가 쏘다지고 강물속에 잠긴다 하더라도 뚜겅이 밀봉된 그릇에는 물이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은혜의 강물 속에 빠진다해도 마음의 문이 심령의 문이 닫힌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나 성정이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닫친 마음, 닫친 세계는 발전하지 못하며, 새로운 역사를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주일 예배에도 닫혀진 마음을 가지고 예배드리면 평생 예배드려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별로 쓸모없이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마음을 열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어야 축복을 담을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변화와 성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어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마음을 열지 못하면 평생 난쟁이 신자로 살다가 끝나는 것입니다. 50, 60년 난쟁이로 끝내는 불쌍한 신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굳어진 마음
 
코끼리는 다 자라면 키가 3~4m에 이릅니다. 코에서 꼬리까지의 길이는 7m 정도며, 몸무게는 5톤이 넘는 다고 합니다. 이런 코끼리가 한 번에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자그마치 500kg이나 됩니다. 그래서 야생에서의 코끼리는 웬만한 작은 나무 정도는 땅에서 뿌리째 뽑을 수 있습니다.
 
런데 참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태국을 방문하면 코끼리 쇼를 보여줍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뭔가 이상합니다. 커다란 코끼리가 작은 말뚝에 묶여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뽑아버릴 수 있는데, 작고 약한 말뚝에 묶여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여기에 묘미가 있습니다
 
코끼리를 아주 어린 코키리 때부터 말뚝에 묶어두면 처음에는 줄을 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아주 어린 시기인지라 말뚝은 너무 튼튼해서 어린 아기 코끼리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린 코끼리는 큰 좌절을 겪게 된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코끼리는 아예 말뚝을 뽑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커서도 작은 말뚝에 항상 맥없이 매어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코끼리가 어릴 때는 말뚝에 묶어두었지만, 커서는 마음을 묶어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큰 코끼리가 그 작은 말뚝에 매어있는 것은 몸이 묶여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묶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코끼리에게아무리 자유를 선포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런 힘을 쓰지도 못한 채 힘없는 놀이개가 된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무능한 자로 살게 됩니다.
떤 성도들은 자기의 마음을 잘못된 습관에 묶어 둬서 쓸모없게 살아갑니다.
참 좋은 재능과 성품을 가지고서도 잘못된 습관 잘못된 지식으로 마음이 닫혀지고 마음이 굳어져서 아무런 쓸모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작은 말뚝에 코가 낀 코끼리처럼 자기의 재능과 은사를 땅에 묻고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길 가처럼 굳어진 마음을 갈아 엎어야합니다.
 
오늘아침 우리는 닫혀진 마음, 돌같이 굳어진 마음을 회개함으로 길가와 같이 돌 짝밭과 같이 굳어지고, 강 팍한 마음을 갈아엎어서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변화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서 하나님의 은헤와 축복받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2) 열린 마음, 열린 세계입니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열린 세계 넓은 세계를 바라 볼 수가 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소통이 이뤄지도록 좀더 기도와 찬양과 은혜를 받는데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하고 죄를 멀리하는 성도들이 될 때에 닫힌 마음문이 열리고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담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성경 본문에 나오는 요셉에게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마음이 열려 있었음을 뜻합니다. 좁은 세계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렸을 때 그는 큰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미래에 관한 새로운 정보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린 사람은 언제나 그 시대를 가장 앞서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예언자 혹은 시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 까닭도 바로 이런 열린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 자신도 바로 그런 큰 꿈을 꾸면서 많은 역경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꿈을 꿀뿐만 아니라 남의 꿈까지 해몽해 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꿈을 다른 역술 자들이나 박사들이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였고,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이루실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중요한 문제는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마음대로 열 수 없는 문이 있습니다.
천국의 문입니다. 기도의 문입니다. 축복의 문입니다.
천국의 문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하고 시인하는 사람들에게 열어주십니다. 기도의 문은 사모하고 힘쓰는 자에게 성령께서 열어주십니다.
축복의 문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열어주십니다.
 
또 하나의 문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문 앞에 서 계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성도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면서 열라고 하십니다.
3:20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볼 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닫힌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가시지 않습니다. 닫힌 마음에는 이웃이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폐쇠적이 되면 언제나 자기입장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원하지도 못합니다. 시기와 질투로 분열과 갈등만 일으킵니다. 다른 사람을 따듯하게 배려하지 못하는 옹졸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닫힌 마음에는 성령님도 계실 수가 없습니다. 닫힌 마음에는 아무런 하나님의 능력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의 문이 열려지기를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장 근원적인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고 마음 문이 닫혀 있으면 아무런 일들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됩니다.
 
상도들에게 마음이 열리면 어떻게 됩니까?
말씀이 들립니다.
들린다는 것은 귀로 들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들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영적인 귀가 열려져야 합니다.
영적인 귀가 열려지면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 영적인 건강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지 아니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병든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 병은 점점 마음이 굳어지도록 사탄은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들,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에게 말씀은 들어오지 못하는데 사탄은 들어와 자리를 잡기를 좋아 하는 것입니다.
사탄에 종노릇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신령한 귀가 열려져야 합니다.
닫혀진 마음의 문이 열려지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순종합니다.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했습니다.
따른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받는 것으로 족하지 말고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치 아니하면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주님은 산상설교를 마치시고 결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이 듣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헌신하게 됩니다.
루디아는 마음이 열려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바울을 자기 집에로 강권하여 영접합니다. 온 가족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강권하여 바울이 빌립보에 머무는 동안 자기 집에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루디아의 집은 자연스럽게 성도들이 모이는 예배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가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이 빌립보 교회는 유럽전도의 전초기조로 삼게 되는 중요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루디아는 참 훌륭한 바울의 동역자로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루디아와 같이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교의 현장에서 쓰임 받을 헌신된 일군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소통함과 동시에 이웃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소통해야 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닫힌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꿈을 담을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로 막는 불행한 자들로 살다 인생을 끝냈습니다.
요셉은 열린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꿈을 담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는 묶은 땅을 갈아 업고 새로운 요셉들이 나아와 합니다.
닫혀진 마음 페쇠적인 마음이 열려져서 새로운 요셉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닫혀진 마음, 길가처럼 굳어진 마음과 열려진 마음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닫힌 마음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은 하나님께 은혜받고, 축복받고, 성숙해집니다.
열린 마음 열린 성도, 열린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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