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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김승환 (강원노회,생명,목사) 2014-12-16 (화) 16:12 9년전 3024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41:1-16)

 

대립절 세 번째 주일,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기다림이 있다는 것, 기다릴 것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건 소망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금방 얻을 수 있다면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조급한 계산을 내려놓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믿음을 키우고 사랑을 키워야 합니다.

 

뜨레스 디아에 가니 맨 처음 하는 게 시계와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데 시계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얼마나 시간에 노예가 되었는지 하나님마저 시간에 묶어 놓으려 합니다. 몇 시에 예배가 끝나나, 조금만 늦어도 안절부절하고, 말이 주일이지 주일이 아닙니다. 시간 시간 쪼개서 무슨 게획들을 그렇게 많이 세워놓는지요? 시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얘기도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해시계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한 일이 있지요. 무슨 얘기예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이예요. 시간이든 물질이든 사는 데 다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가 되면 그건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때와 시기는 아버지게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7-8) 하셨지요? 예나 지금이나 너무 조급하고, 너무 계산하는 게 문제예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의 계산을 내려놓는 것, 그래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시피노자의 말처럼, 묵묵히 자기 한 일을 감당하는 걸 배워야 할 줄 압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책의 한 토막을 다시 상기하고자 합니다. 이용규 선교사갸 몽골에서 선교할 때의 일입니다.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호 지역의 에배 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몇 달 전 기도를 통해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였습니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때 이용규 선교사는 하나님께 그녀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안 되면 자신의 실패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다가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자마다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과연 무엇이 주인지를 보여주는 예화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님이십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요셉이 한 말에 나오는 구절처럼,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주님이시니,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하나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꽤나 당혹스러우셨겠지만, 제가 집에서 교회로 출발하기 전에 몸에 막 진동이 오고 성령께서 이리저리 막 구르게 하시는데 그걸 멈추고 교회로 올 것인가, 아니면 성령께서 하시는 대로 기다릴 것인가 고민하다 그냥 성령께서 제 몸을 움직이시는 대로 맡겼습니다. 그것이 145분까지 계속되어, 에배 시간에 10분이나 늦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도착하여 강대상에서 기도하는데 다시 진동이 시작되고 어찌나 강권적으로 저를 지배하시는지 제가 거부하고 멈추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는 중 여러분은 당혹스러웠을 거고, 여러분끼리 예배를 드리고 갔다가, 제가 나중에 일어나 다시 오라고 하니 또 이렇게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이래저래 오늘은 참 특별한 주일이네요. 저도 이런 일을 처음 겪습니다만, 제 생각에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뜨레스 디아나 이용규선교사의 내려놓음얘기도 했거니와 우리는 이미 우리의 절대적 규범이 되어 버린 시간에 대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사람이 정한 관행을 얼마든지 유보할 수 있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경험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 무엇도 주님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만이 주님이시라는 걸 골수에 박히도록 배우는 장소가 바로 광야였습니다. 문명화의 방향은 시간의 효율적 관리와 통제를 의미한다고 할 만큼 우리는 시간관념에 철저한데, 그러나 그 부작용은 없습니까? 그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주일인데, 오늘 우리는 그 훈련을 한 셈입니다. 적어도 주일 만큼은 시간의 주님이 하나님이신 걸 알고 다른 복잡한 계획 이것저것 많이 세우지 말고 오롯이 주님 안에서 쉬고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복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그라고 왜 이런저런 계산을 안 했겠습니까만, 그는 고난 속에서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자신의 계산을 내려놓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다림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뭐 하나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도 그랬잖아요. 그러면서 많이 기도했을 거예요. 그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진실어린 고백이 오늘 본문 말씀이거니와, 요셉은 뭐라고 하였지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41:16) 꿈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 겁니다. 요셉이야말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유일하신 주님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내려놓았던 사람이요, 존귀하신 하나님의 위상에 어울리는 최고 최선의 성실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이해해도 될 만한 분이었지요.

 

이런 분을 하나님께서 어찌 모른 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와 함께 하시고, 범사에 그를 형통하게 하셨지요.(39:2-3, 21-23) 시편 91:14에 있는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6:31)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8:1)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5:36) 이 대림절 기간에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자, 기다리되 위대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믿음으로 등잔에 채울 기름을 준비한 채 기다렸던 다섯 처녀처럼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잔치자리에 참여하는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 저는 다른 어떤 해보다도 더 많은 글을 썼거니와, 특별히 얼마 전에는 창세기 12장부터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정말 그러셨나 봅니다. 새벽에 교회에 와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한 편 한 편 쓰다보니까 어느덧 70편을 넘게 되었습니다. 에세이와 시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습니다. 글을 써서 페이스북과 총회게시판과 우리 교회 카페에 올려 제법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지요. 이 산골짜기에 있는 작디 작은 교회의 목사가 뭐 그리 할 말이 많다고 그렇게 많은 글을? 그러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믿고 이 골짜기에 저를 생명교회의 목사로 세워주셨는데,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위해 그 동안 기도하고 헌금을 보내주신 분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글을 쓰면서 이상하게 힘이 붙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신 앞에 새벽마나 나와 부르짖는 저의 기도를 기뻐하셨고, 단 한 번도 그냥 허전하게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매일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 중에 최근에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화요일(128), 강단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중 몸에 진동이 오기 시작하더니 제 몸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상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릎꿇은 제 허벅지와 허리쪽을 제 손이 차례로 돌아가며 안마를 해주더니, 점점 제 목이 무릎쪽으로 굽혀지다가 이번에는 제 머리를 제단(성경상) 밑으로 박게 되고 엉덩이를 들게 되니, 언뜻 보면 원산폭격 받는 모양새와도 비슷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더니 어떤 힘이 저를 옆으로 스윽 쓰러지게 해서 눕게 하였는데, 눈을 떠보니까 제단 아닙니까? 그 위에 성경 밖에 있는 게 없었으니, 성경 아래 누워 성경을 바라보게 하신 셈이어서, 하나님 말씀에 절대 복종하라는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셈인데, 그때부터 오늘까지 엿새 동안 시도 때도 없이 24시간 내내 제 몸 안에서 에너지의 파동을 느낍니다. 때로는 진동으로, 때로는 뭐에 취한 사람 같은 흔들림으로, 때로는 춤으로, 때로는 별별 희한한 동작이 다 나오는데, 얼마 지난 후부터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지요. 무엇보다도 제 몸을 새롭게 만드시는 성령님의 어루만지심이었습니다. 어루만짐 정도가 아닙니다. 얼마나 놀랍게 제 몸을 치유하고 또 강하게 다듬으시는지, 제 평생 이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1시간, 12시간씩 쉬지 않고 기도가 터지고 제 몸에서 나쁜 기운을 빼내시고 새롭게 몸을 만드시는데, 야구감독 김성근인들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시킬까 싶어요. 저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호흡까지 안벽하게 제 몸을 장악하신 채 진동, 흔들림, , 스트레칭, 온갖 신기한 요가 같은 동작 등을 쉬지 않게 시키시는데,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셔서 재미있지만 워낙 쉬지 않고 고강도훈련을 계속하니까 나중에는 정말 힘이 듭니다. ~, 하나님은 정말 지독하세요. “이제 그만요!” 그러다가도 쉬지 않고 저를 섬기시는 하나님의 정성과 열심이 고마워 저도 죽을 힘을 다해 순중하는데 나중에는 정말 힘들더라구요. 생각해보세요. 저녁 8시부터 시작된 게 새벽 4시까지 계속되고, 오후 2시에 시작된 게 새벽 2시까지 계속되니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거예요.

 

저는 이 일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이 올 한 해 나름 비장한 각오로 성경말씀 대로 살아보려고 기도하면서 몸부림쳤는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눈여겨보셨으며, 저를 무척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런 징표로 보여주시는 거 아닌가 싶어 너무도 감사합니다. 저를 무엇에 쓰시려고 그렇게 쉬지 않고 제 몸을 강하게 만드시는지, 며칠 동안에 몸이 놀랍게 좋아졌습니다. 이 무슨 은총일까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제 생애 최고의 해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다는 것이고, 앞으로 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믿음으로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하며 전진하려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여러분 나름의 의미있는 성장과 변화가 있는 줄 알기에 또한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우리에게는 놀라운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미래를 믿음으로 받으십시다. 모두 일어나, 한 걸음 더, 소망의 주로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갑시다. 할렐루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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