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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평안이 오는 길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5-06-22 (월) 11:59 8년전 2189  

행복의 뿌리 롬4:1-9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는 형태를 보면 행복의 조건을 가지고도 불행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또 불행한 조건 속에서도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있어서 철학자는 인생이 무엇인가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조건이다. 라고 말했고 자본주의 경제 학자들은 많이 가지고 지배하며 사는 자가 행복 하다고 했으며

사회주의 세계에서는 공동의 분배를 잘하는 것이 행복 하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마음속에 행복이란 것이 없다면 물리적인 요소를 가진 한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의 자본가인 카아네기는 사람은 자기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 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행복에 대해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까?

1, 본문3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시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믿으면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마음에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비교 할 수 없이 큽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사에 보면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주기철 목사님은 내가 죽기 전에 어머니에게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오게 해 달라고 하니 허락을 받고 집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기도 할 때 어머니는 하나님께 내 아들 주 목사님의 이름이 더럽혀 지지 않게 하시고 세속의 가치에 오염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기도 했답니다.

또 카토릭 역사에 길이 존경 받는 김대건 신부는 처형을 당할 때 망나니에게 내 목숨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목을 치기에 쉽겠느냐? “하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면 확실한 믿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평화는 마음에 그리스도가 좌정하고 계시면 행복 합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영접 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는데 영접 했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에 주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평화의 왕이요 만왕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현재 나의 삶을 지배하는 왕이시오. 나는 그 분의 인도를 받는 것을 의미 합니다.

3:20절에서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고백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는 것을 말하고 그 분의 절대 주권 하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 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니라. 저는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였기에 그는 들 리 움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아 중심에 같 혀 있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에 쌓이게 마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하려고 하니 즉 믿음이 없으니 불평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뒤에는 바로의 군사가 추격해 옴으로 앞으로 가면 물에 빠져 죽고 뒤로 돌아가면 애굽 군사의 칼에 죽는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 합니다.

출애굽기 14:13에 모세를 통하여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 하십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이 오기 전에 이미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홍해를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미리 갈라지게 해놓고 백성을 건너가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 앞에 어려움을 제거해 놓고 나를 건너가게 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홍해가 가로 놓여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죽이려고 따라 오는 어려움이 있어야 내 안에 있는 불신앙의 모습 죄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것을 광야에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기 위함임을 깨닫고 믿고 나 가면 하나님은 환경도 열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움 없는 사람이 장림 이듯이 주님이 보이고 세상 것이 보이지 않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2. 내 마음에 기쁨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행복은 임하게 됩니다.

본문 “4

지난주 신문을 보니 지방에서 메르스 가정이 생겼는데 논에 물을 자청해서 대주고 재활용을 하던 할머니를 위해 자청해서 재활용을 모아 용돈을 드렸다는 기사를 읽고 그래도 아직 까지 이런 인심이 살아 있구나 하는 안심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심이 사라지지 않고 불일 듯 일으켜야 합니다.

신명기 10:13절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규례와 명령을 지킬 것이 아니냐. 는 말씀이 있습니다.

억지로 신앙생활 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받고 말씀을 받아서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며 사는 자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고 기쁨으로 자기 사명을 다하는 자는 하늘의 위로가 따릅니다.

사도행전 2723;절에 보면 바울이 로마로 끌려갈 때 유라굴로 라는 광풍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위로해 주시면서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언제인가 마음이 괴로와 힘이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데 잠24:10절의 네가 만일 환란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 이라는 말씀 이었습니다. 아 내 미약함을 보이지 말아야 되겠구나 하고 용기를 가지고 나갔을 때 하나님이 역사 하 시는 것을 체험 했습니다.

시편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3, 마음속에 남으로 부터 인정받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8절에 주께서 그의 죄를 인정치 않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자 입니까?

이 행복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의 행복입니다.

여기 이 행복은 돈을 벌고 출세를 해서 얻어지는 행복이 아니라 의로 얻어지는 행복입니다. 우리가 쉽게 쓰는 말로 죄 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얻으므로 그로 인해 얻는 행복을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죄를 깨닫고 자백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 하면 저가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 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자백 했으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55:7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널리 용서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함 받은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 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의 복도 주시고 건강의 복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게 살고 의를 행했기에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죄인이요 전혀 의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인정받고 있게 되었다는 사실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조건이 의로움인데 의를 내 행위 내 선 행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으로 거저 은혜를 입은 것이란 것입니다.

비록 죄가 많고 과거는 허물되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나를 아들 이라고 부르면 나는 아들 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체면도 잊고 좋은 옷을 입은 채 잔치 자리에 않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믿음 하면서 믿음을 말하고 있는데 과연 그 믿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믿음입니까?

여기 이 믿음은 기도를 했으니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이들 시험쳐 놓고 합격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참 믿음이란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이에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그 의를 의로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떠나라 하는 명령 앞에 갈 바를 모르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4:18-19말씀을 상고해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 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을 봅니다.

체격도 좋고 인품도 좋고 모든 사람으로 부터 인정을 받아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나

그는 악신에 사로 잡혀 점점 나쁜 짓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신명기 33:29절에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자가 누구냐고 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다시 말해서 하나님앞에서 새로운 지위와 신분을 얻는 자는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유지한 자입니다.

그 화평은 영혼에 만족을 주는 화평입니다.

주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14“;27)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러한 평안은 세상의 평안과는 다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평화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게속되 며 죽음조차도 그것을 방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그 누구도 송사 할 수 없습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성도를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 는 하나님이시라. 고 하셨습니다.

의롭다고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송사 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혹 마귀 사탄이가 송사 한다 해도 하나님이 허락 하시는 범위 안에서 만 가능 합니다.

한나라의 통수권자가 특별히 사면을 한자가 다시 송사 할 수 없듯이 세상의 주권자시요 통수권자 이신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성도를 어느 누구도 송사 할 수 없으니 성도된 자녀들은 마음 평화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 받을 후사가 되었으니 평안을 누리 게 됩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데 무슨 염려 걱정이 있단 말입니까?.

어떤 임금이 백성들의 정직성을 시험하기 위해 씨앗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삶은 씨앗입니다. 잘 가꾸어서 꽃을 피워오라고 당부를 합니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싹이 나 올 리가 없습니다. 다 자기가 기른 아름다운 꽃을 심어 가지고 임금 앞에 가지고 왔지만

한 여인만이 빈 화분을 가지고 왔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물을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씨앗에게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안식 의 축복을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영원한 기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편안을 얻었더라고 하는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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