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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림으로 나아가야 삽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5-07-09 (목) 07:19 8년전 3345  

엘림으로 나아가야 삽니다.

출애굽기 15:22-27                                   2015.07.05. 박용래 목사

우리 몸에 물(수분)이 부족할 때에는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운동을 많이 하거나, 무더운 여름에 힘든 일을 하다가 땀을 많이 흘렸을 때에는 우리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땀으로 빠져나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비행기를 오래 탔을 때와 같이 건조한 공기 속에 오래 노출되었을 때에도 건조한 공기 속으로 수분이 증발되어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물과 소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 우리 몸은 수분을 공급해 달라는 의미에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갈증을 느끼면 물을 마심으로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껴야 하고, 갈증을 느끼면 물을 공급해줌으로써 갈증을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만 갈증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영적인 갈증이 있고, 우리 마음에도 마음의 갈증이 있습니다. 분명 영적인 존재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 인간은 영적인 수분이 공급되지 못할 때에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쓴 물이 단물로 변한 사건을 체험한 후 풍부한 물과 쉼터가 있는 엘림 까지 이르는 가나안 여정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큰 교훈이 있습니다.   

1) 광야 길에서 마라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는 더위와 갈증, 뱀과 전갈의 위험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길에도 때로는 예기치 않은 고통이 찾아옵니다. 바로 마라와 같은 쓴 물을 마셔야 하는 인생의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했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인류는 쓴물 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철을 따라 좋은 열매로 기뻐하며 살아가는 세상에는 땀 흘리며 수고하여도 엉겅퀴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상에 엉겅퀴가 생겨났습니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엉겅퀴는 인간에게 괴로움,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평화가 깨어진 세상, 하나님의 축복이 단절된 세상에는 마라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쓴물을 마셔야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쓴물 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쓴물 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한 자는 부한 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쓴물 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쓴물 나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난후에 세상은 쓴물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게 되었습니다. 마라의 연속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라 없는 인생길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마라 없는 세상은 없고 마라 없는 인생길은 없습니다.

좋은 직장에도 마라는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도 마라는 존재합니다. 좋은 집에서 넉넉한 살림을 하면 마라는 없을까요? 아닙니다마라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날마다 신문과 TV뉴스에는 온갖 목마른 소식과 쓴물로 나타나는 불행한 소식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 1위 국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자살도 큰 충격을 주었지만 지난날 언젠가 신문 기사를 보니 생계를 비관한 30대 젊은 부인이 3명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함으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엄마, 살고 싶어요! ” 소리치는 어린 자녀들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떠밀어 추락해서 죽게 만들고 자신도 함께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자녀와 함께 투신자살한 30대 젊은 부인은 생활고로 나타난 쓴물을 더 이상 마실 수 없다고 목숨을 던져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생활고로 인한 분노와 고통의 쓴물이 자신의 마음에서 솟아나고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쓴물은 자신만 아니라 이웃의 생명까지 해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편안 하게 죽는 방법을 알려달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죽는 방법은 회개하고 예수 믿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요즘 현대 사회는 사람들에게 쓴물이 파도처럼 넘실거


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


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무런 죄 없이도 큰 불행한


일을 만나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밤거리를 거닐기가 무섭고 짐승이 무서운 세


상이 아니라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1분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쓴물이 세상에는 넘실거리고 있는데도 1분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축복받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은 쓴물 나는 세상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이 쓴물은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의 생명까지 불행하게 만들고 고통과 상처와 피해를 입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광야 인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에 인생의 마라를 만나서 괴롬과 아픔과 고통을 당하지 모르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막과 같은 세상에는 사람들의 인성이 많이도 악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2)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 애굽하여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홍해를 건넜습니다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수르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목이 말라 아우성을 치던 백성들이 기진맥진하여 마라에 이르렀을 때 한 샘을 발견했지만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을마라라고 불렀습니다 

그 마라의 쓴 물 앞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원망과 불평을 쏟아 냈습니다.

마라의 쓴 물 앞에서 지난날의 받은 바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원망과 불평은 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과 상처로부터 나옵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난 마라에서 좌절과 불평과 원망은 점점 더욱 거세지고 커지게 만들었지만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더욱 쓴 물속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 것은 결국에는

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은혜를 가로막고, 말씀을 가로막고, 기도를 가로막게 됩니다.

그럼으로 인생의 마라를 만났을 때 원망과 불평은 문제해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온 백성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고 더욱 깊은 고통에 빠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좌절과 불평과 원망은 점점 더욱 거세지고 커지고만 있

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25~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무를 던지니 쓴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쓴물이 단물로 바꾸어 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데 사용된 이 나무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떤 인생의 마라의 쓴 물도 단물로 변화시키어 주실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통의 쓴 물을 만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면 죄악의 쓴 물이 단물로 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53: 5~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가난과 저주의 쓴 물이 부요와 축복의 단물로(고후 8:9), 사망의 쓴 물이 생명의 단물로 변화 됩니다(11:25).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인생의 마라와 같은 쓴 물도 단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는 연약함이 강함으로,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실패가 성공으로, 고통이 기쁨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형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난 마라에서 두 가지 사람들의 반응가운데 하나는 원망과 불평을 키워 나가는 자들 하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 여러분은 원망과 불평을 선택하며 사시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시렵니까?

모세는 백성들의 쓴물 보따리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마라의 쓴물 보따리를 끌어안고 하나님께로 나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에 하나님께서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하는 백성들에게 바꾸어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모세를 통하여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인생의 마라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인생의 쓴물 보따리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좌절하지 말고 쓴물 보따리를 가지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로 모이면 됩니다. 주님과 상관없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에 순종할 때 쓴물은 단물로 바꾸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라의 쓴 물은 인생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광야에서 서식하는 독한 것들을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앞에도 마라의 쓴 물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마라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원망과 불평에 편승하지 아니하고 기도와 말씀에 순종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서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고 간증하고 살아가시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엘림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를 극복한 뒤에 거기서 머뭇거리며 안주하지 아니했습니다. 엘림 까지 전진해 갔습니다.

엘림에 이르니 열두 샘이 있었고 칠십 주의 종려나무가 있어서 거기에 장막을 치고 안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라를 극복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엘림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엘림은 사막을 헤매는 백성들에겐 축복의 안식처가 되는 곳입니다. 

인생의 마라를 극복한 백성들에게 엘림의 축복의 땅까지 인도 되었습니다.

엘림에는 풍부한 물이 있었고 그늘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었습니다. 참된 안식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지금 어떤 마라를 만나 이런저런 쓴물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성도가 계십니까? 쓴물 보따리를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문제를 풀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사막과 같은 인생길에서 쓴 물을 마셔야 하는 독을 품은 마라를 만난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마라에서만 불평불만으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가 피차 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마라에서 모세에게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애굽의 복귀운동만 일으키는 백성들만 있었다면 그들은 비참하게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마라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만 머물르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이젠 자리를 들고 일어나서 마라를 떠나 엘림으로 나아갔습니다엘림으로 나아가는 길이 그들이 사는 길입니다. 생명을 누리고 평화를 누리고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마라에서만 물고 뜯고 싸우면 망하는 것입니다엘림은 오아시스로 넉넉한 물이 있었습니다. 은혜의 강이었습니다. 은혜로 살고 축복으로 살고 사랑과 평강이 넘치는 엘림으로 나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광야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막과 같은 인생길에서  사막에 서식하는 것들 독사나 전갈이나 독을 품어내는 사건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마라에서만 맴 돌기를 원하십니까?

인생에 마라에서만 머뭇거리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축복의 땅, 엘림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집부리고 마라에서만 안주하려 하면 거기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이웃에게도 불행한 일입니다. 마라에는 쓴물이 넘실거리고 쓴 뿌리가 사람의 마음을 독하게 만들고 악하게 만들어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과 이웃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망할 세상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일어나서 함께 엘림으로 나아가시기를 마음에 작정하시고 복음성가를 부르시겠습니다. (탕자처럼 방황할때도)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살아가시는 엘림까지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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