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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십니까?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5-07-24 (금) 07:08 8년전 3410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십니까?

1:1-6                          2015.07.12.  박용래 목사       한 소년이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부모를 따라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청년기에 교회를 떠나 세상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작가가 돼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대신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했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196172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칭송받던 바로 그 작가는 자신의 몸을 엽총으로 쏴 자살했습니다.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방전된 건전지와 같은 존재다. 전원을 찾지 못한 고장 난 코드다. 인생의 공허와 고독을 달랠 길이 없구나.유서 한 장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이 주인공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세상에 너무나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의 비극적인 마지막 모습입니다. 헤밍웨이가 마지막에 자살로 그의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세상의 부와 명예 그리고 노벨 문학상까지 걸머진 당대 최고의 복을 누린 자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의 가정에서 성장하던 사람인데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성공한 인물입니다. 어디를 들여다보아도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고 말았을까요? 성공이 행복은 아닙니다. 

과연 성경이 말하는 복이란 무엇일까요? 정말 그리스도인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오늘 이대로 세상에 종말이 온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하시겠습니까?

오늘 아침 본문 시편 1편은 복 있는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복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는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크] 라는 단어인데 구약에만 415번 정도 쓰였습니다.

[바라크]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축복하시거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줄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 단어는 사람들의 선행, 즉 착하고 복되게 살든 말든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인해 일방적으로 주시는 복입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과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 [아시와르] 구약성경에만 44번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시편에 26, 잠언에 8, 그리고 욥기와 전도서에 각각 1번씩 나옵니다.

[아시와르]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가진 삶의 자세와 태도로 인해 복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복(바라크)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의 태도에 따라서 얻을 수도 혹은 얻지 못할 수도 있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복, [아시와르]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 참 복이 많아 보이십니다.” “참 복이 많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복이 많다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합니까 

대개는 연세 많고 건강하여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복이 많다고 합니다.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자녀가 잘 되거나 또는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잘 되어 자금사정이 좋은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말합니다. 혹은 높은 지위에 앉게 되거나, 미모가 뛰어나거나 몸매가 예쁜 분,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얻은 사람에게도 복이 많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요즈음은 많이 먹어도 살이 안찌는 사람들을 보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환경이 언제나 행복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주어진 좋은 조건 때문에 불행과 파멸로 끝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좋은 환경이 오히려 자식들에게 독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한 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복의 조건들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잘못된 유전자를 받아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불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불행한 조건을 가지고서도 더 복되고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복이나 행복의 기준도 환경과 조건만이 아니라 인생을 어떤 존재로,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오늘 성경에서 복 있는 인생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가?

(1) 복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삶의 자세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삶의 자세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쫒서다앉다입니다.

사람은 3가지 자세를 바르게 하면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쫒서다앉다3가지 자세를 바르게 하면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반대로 3가지 자세를 바르게 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악한 것에 빠져들어 복 있는 인생이 아니라 파멸로 끝나는 불행한 자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은 “쫒서다앉다3가지 자세를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것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찾아와서 처음에는 단순히 따르기만 하라고 유혹합니다. 타락의 시작은 악인의 꾀쫒기 시작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어떤 것을 쫒아가느냐 하는 것은 이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악인이란 말은 정도를 벗어 난자, 그래서 목적을 흐리게 만드는 자를 의미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이탈해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꾀를 부리는 자를 말합니다. 신앙인이 가야하는 길을 벗어나서 신앙인이 바르게 가는 길을 이탈하게 만들도록 꾀를 부리는 자를 시인은 악인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어지럽게 하는 자, 소란케 하는 자, 위반케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악인이 있는 자리는 음모를 꾸미고 어지럽게 하고, 소란케 하고, 분열을 조장하여 정로에서 탈선하여 위반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악인의 꾀를 쫒아가면 결국은 이탈하고 파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인의 꾀를 따라가면 결국에는 파멸로 끝이 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한 삶의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하는데

첫째가 쫒아가는 것 따라가는 것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쫒아가면 악인의 꾀에 속아 따라가면 결국에는 파멸이라는 불행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권면합니다. 악인의 꾀에 속아 따라가면 결국에는 신앙생활도 실패하고 불행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이단종교가 행하는 방법들이 교회안에서도 똑 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단 종교들이 교회안에 들어오면 실제로 행함도 없으면서 잘 믿는 척, 은혜 받은 척하면서 교인들에게 전화를 자주 합니다. 처음에는 칭찬해주고 관심가져 줍니다. 그다음에는 자기 자랑합니다. 기도생활 많이 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은혜받은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제목을 묻습니다. 기도해 준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교회에 부정적인 말을 심어 놓고 교회의 파벌을 만들고 분란을 일으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전화는 어떤 직분자라고 기본이 안된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위임한 일이 아니면 목회자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지 목회자도 모르게 자기가 기도의 대변자 말씀의 대변자 목회자처럼 처신하는 것은 기본이 안 된 사람입니다.  교인들이 서로 전화로 돌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도 목회자는 아닙니다.

교인들의 기도의 사정을 알았으면 목회자에게 보고해서 목회자에게 영적인 돌봄을 받도록 해야 옳은 일이지 교회가 위임도 하지 아니 했는데 목회자도 모르게 교인들에게 여기 저기 전화질해서 기도해 준다고 접근하면 장로라도 이것은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나의 목장도 아닌데 나의 기관의 기관장도 아닌데 전화를 자주 걸어온다. 만나서 식사를 하자 반드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교회를 비난하고 파벌을 만들고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단종교가 하는 수법입니다.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를 쫒아가지 아니하려면 분별력을 가지고 권사나 장로의 전화라도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단 종교의 수법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케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에 속아 끌려가고 따라가지 아니함으로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복 있는 삶의 자세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것. 설자리를 바르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인의 꾀를 쫓아가고 죄인의 길에 서다보면 결국에는 파멸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죄인의 길이란 푯대에 어긋나게 아가는 길을 말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푯대를 잃어버리고 목표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난 삶을 사는 자는 죄인입니다.

결국에는 파멸로 끝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쫓아가고 죄인의 자리에 서는 것은 결국에는 천국도 빼앗기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참패자입니다.

그럼으로 악인에 꾀를 쫓아가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도록 삶의 자세를 바르게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른 신앙의 자세를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사람은 앉을 자리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오만한 자란 자기보다 못하면조롱하고 비웃는 자를 의미합니다. 아주 교만하고 거만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주의 종도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말씀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도 외면하면서 행동을 가지는 교만하고 교활한 사람, 이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게 되면 하나님의 벌을 면치 못한다고 하십니다.

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복 있는 성도들은 앉고 서는 것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앉는다는 말은 아주 생활습관이 완고함으로 굳어져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는 다는 말은 교만하고 거만한 것으로 굳어져 있는 사람, 아주 습관이 되어 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에는 파멸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런 오만한 자들의 꾀임에 빠져서 오만한 자리에 앉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은 자의 삶의 태도가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쫒아가지 말라. 잘못된 것을 쫒아가고 따르지 말라.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목표를 잃어버리지 말라.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주의 종도 업신여기고 하나님도 거역하는 데 습관화 되어 있고 그렇게 굳어져 있는 사람들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인의 꾀에 속아 따라가지 말라.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자기만이 똑똑하고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이런 오만한 자들에게 앉지 말라. 는 말씀입니다. 그 길은 결국에는 파멸과 불행으로 끝나게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에는 천국도 빼앗기고 잃어버리게 만든 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자세를 바르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복 있는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정말 복 있는 인생으로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이러한 인생에 물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1)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여기 묵상하는 자로다.”는 말이 나옵니다. 히브리어의 하가라는 단어는 단순히 조용히 마음에 되새긴다는 뜻이 아니라 힘을 다해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을 말하는데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묵상은 마치 되새김질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옛날 시골에서 자랄 때 저녁때가 되면 소를 몰고 풀을 뜯게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소를 풀을 뜯어 먹게 하면 먹고 나서 그늘에 앉아 소는 되새김질을 시작합니다.

먹은 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잘근잘근 되샘길질을 시작합니다. 되새김질을 해서 두 번째 위에다가 착착 채우고 두 번째 위가 가득 차면, 세 번째 위에 채우고 세 번째 위가 가득 차면, 네 번째 위까지 가득 채웁니다.

그러면 소의 침과 풀이 잘 섞여 위를 통해 흡수되고, 그 흡수 된 영양분이 피를 통해 온몸에 공급됩니다. 되새김질을 잘하니까 소는 풀만 먹고 자라도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건강해진 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말씀의 되새김질을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되새김질하듯 곰곰이 묵상하며 되새기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으로 영혼을 가득 채워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영혼의 혈관을 통해 공급되면 영적 피곤이 싹 가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서 새 힘이 솟는 것을 우리 모두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면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지 못하면 악인의 꾀에 속아 쫓아가기가 쉽고 죄인의 자리에 서서 방황하기 쉽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안주하여 파멸에 빠지고 신앙생활에 실패와 천국을 빼앗기는 불행한 자들이 되기가 쉽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에는 감사가 없어지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늘 무언가 쫓기는 자처럼 불안해하고 짜증을 자주 냅니다.    그리고 매사에 불평과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용서할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살면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졌다 해도 정말 행복한 인생입니까?

얼 마 나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바로 이런 자리에서 돌아서고 일어서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신앙생활에 바른 태도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멀리 하지 말고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을 통하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신앙생활에 성공 자가 되심으로 복 있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사는 사람일까?

(1) 받은 축복의 열매를 베풀며 사는 태도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시냇가의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하실것이다

여기서 시내라는 단어는 저절로 형성된 시내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를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마른 땅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그 수로에 물을 흘려보내는 시내입니다.

인생 속에 복 받을 요소가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 있는 삶의 태도로 살아갈 때에는 당신께서 메마른 광야 같은 인생을 뚫고 파셔서 생수를 흘려보내시고 아름다운 열매로 풍성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불행을 불행으로 마치도록 두지 않으시고 불행의 자리에 새로운 소망의 열매들을 맺게 하십니다.

나무라는 단어도 그저 잡목을 뜻하는 것이 아닌 목적과 의미를 두고 구한 나무를 가져다가 그 곳에 심은 것을 말합니다.

별 볼일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복 있는 삶의 태도로 살아갈 때에, 바로 그 삶을 들어 의미 있고 가치 있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곳에 예수님께서 피로 값을 지불하시고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교회 안에 마르지 않는 시냇가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복의 근원이 되는 이 교회 안에 심어놓으셨습니다. 아멘

바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 안에서 묘목이 아닌 흔들림이 없는 거목으로 자라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거목으로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며, 번영과 축복을 말합니다.

- 잎사귀는 열매를 맺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요즘 젖은 낙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글픈 말입니다. 젖은 낙엽을 보셨죠?

낙엽은 줄기에 붙어 있으면, 싱싱한 생명이지만, 떨어진 낙엽, 그래도 젖지 않았다면 태우는 연료라도 쓸 수 있겠지만, 젖은 낙엽은 아무데도 쓸데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쓸어버리려고 해도 빗자루에 딱붙어서 귀찮게 하고 처치 곤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퇴직하거나 은퇴한 남자를 일컬어 젖은 낙엽이라고 한답니다신앙생활도 젖은 낙엽처럼 비굴하고 어리석게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잎사귀는 줄기에서 떨어지면 끝입니다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은 자양분을 마음껏 받아들여 성장을 지속시킨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사람들은 젖은 낙엽처럼 말라지고 떨어지고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들로 전락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복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복 있는 인생을 살아가면 반드시 축복이 있고 형통한 삶의 열매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든 일이 있다할 찌라도 또 상처가 있을 찌라도, 그러나 어떤 자리에서도 그것을 전화위복으로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기만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빨리 지나갑니다.

이제 남아있는 짧은 인생을 악인들의 꾀에 빠져서 쫒 아가고 따라다니고 어울려 다니다가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리의 앉아서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인생으로 끌려 다니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천국도 빼앗기는 파멸되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인생이며 불행한 인생입니까?

이런 불행한 성도들이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부터 더욱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시절을 쫒아 열매를 맺으며, 나와 이웃과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성가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 있으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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