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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생명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5-09-18 (금) 05:48 8년전 3236  

생명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10:25-37                                                        2015.09.13. 박용래 목사

 

 

영국의 교육가이며 철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거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꼭 없어야 될 사람입니다. 거미는 언제든지 음침하게 숨어있습니다.

거미줄을 쳐놓고 약한 곤충들이 걸리기를 기다립니다. 언제나 약한 곤충을 해치며 삽니다. 거미 같은 사람은 강한 자에게는 복종하고 약한 자에게는 굴림을 하는 고약한 사람입니다. 약육강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개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개미는 참 부지런합니다. 그러나 그 부지런함이 자기를 위한 부지런함입니다. 개미 같은 사람은 남에게 큰 해를 끼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도 주지를 못합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개미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꿀벌 같은 사람입니다.

꼭 있어야 될 사람 꿀벌 같은 사람입니다.

꿀벌은 부지런히 일을 해서 꿀을 모아서 꿀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을 합니다. 꿀벌 같은 사람은 자기 유익도 구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 해서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에 비유해서 세 종류의 사람을 등장시키셨습니다.

 

1) 거미와 같은 사람 강도입니다.

오늘 우리말씀 중에서 강도는 거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사람, 이 세상에 없어야 될 사람입니다.

주님은 가롯 유다를 보고 "유다야! 너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강도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주 위험한 곳에 숨어 있다가 큰 군대가 지나갈 때는 꼼짝도 못하고 약한 사람들이 지나갈 때 그 사람들의 보따리를 털고 사람을 때리고 위협하고 피 흘리게 하고 심지어 죽게까지 만드는 아주 악하고 나쁜 사람들입니다. 거미같이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는 강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될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사기 치고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거미 같은 사람들은 없어져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깡패를 너무 미화시키고 조직 폭력배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기를 끌었던 영화가 쉬리라는 영화하고 JSA 모래시계 깡패를 얼마나 멋있게 만들어 놨습니까? 그리고 '친구'라는 영화, 최근에는 '신라의 달밤'라는 이런 영화들이 의리만 강조를 해서 야! 멋있다. 싸나이 답다. 이렇게 표현을 해서 가치관을 혼동하게 만들고 깡패를 미화시키는 잘못된 표현을 해준다는 겁니다. 영화가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큽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깡패를 미화하고 낭만적으로 표현하고 동경하느냐! 깡패한테 한 번도 흉악한 일을 당해보지를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깡패가 얼마나 더럽고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모르니까 깡패를 미화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는 생명을 해치는 거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깡패와 강도와 도독질보다 더욱 나쁜 거미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인신 매매범, 마약판매책, 환경을 망가뜨리는 사람들, 음식물 가지고 나쁜 짓 하여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사람들은 깡패보다 더 나쁜 거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런데 물질적인 육적인 피해를 입히는 악한 사람들보다 더욱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격과 평화를 해치고 망가트리는 거미같은 사람들입니다.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공동체와 사회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거미같은 사람들입니다.

은밀하게 돌아다니면서 서로 의심하게 만들고 이간질 시켜서 평화를 깨트리고 평화로운 좋은 끈을 끊어 놓는 그래서 서로 원망과 불평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깡패보다도 더욱 추하고 악하고 나쁜 사람들입니다.

 

은밀하게 다른 사람의 인격을 해치고 허무는 사람들은 깡패나 마약사범보다도 더욱 간교하고 악하고 나쁜 짓을 하는 거미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 하나인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는 아주 나쁜 사람인데 오셀로의 부관입니다. 오셀로는 흑인인데 장군입니다.

오셀로에게 예쁜 부인 데스데모나가 있습니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너무 행복한 것이 시기가 나서 부관 이아고가 오세로와 데스데모나에게 서로 이간질을 시켜서 미워하게 만드고 적개심을 품게 만들어 행복한 가정을 허무는 이야기입니다.

 

이아고가 손수건을 가지고 데스데모나가 큰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 오셀로 마음가운에 질투를 일으키게 만들어 결국에는 자기의 사랑하는 부인을 목졸라 죽이게 만드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이 납니다.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가지고 연기처럼 살살 풍겨서 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켜서 행복한 가정을 파멸하게 만드는 이아고는 참 악한사람입니다.

 

 

이런 이아고 같은 악령들, 거미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했으면 좋았던 사람들이 오늘날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밀하게 접근해서 사람들 마음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적개심을 일으키고 누구를 미워하게 만들고 온갖 거짓말로 사람을 불신하게 만드는

아주 간교한 마귀처럼 살아가는 거미와 같은 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모세에게 대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너만 하나님의 종이냐! 나도 하나님의 종이다. 덤벼드는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범죄는 살인도 아니고 간음도 아니라 바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죄가 더욱 악하고 큰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는 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가로 막는 죄였습니다. 가나안으로 전진이 아니라 애굽으로 복귀하게 만드는 죄가 무서운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다시 광야로 내몰아 40년씩이나 고생하며 훈련받게 만들었던 것은 그들의 원망 때문에 불평의 죄 때문에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쁘게 보시는 것은 감사할 줄도 모르고 원망과 불평에 빠지는 죄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게 만들어 버리기에 하나님을 최고로 슬프게 만드는 악한 죄입니다.

 

살인이나 강도질보다 더욱 악하고 나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병균처럼 원망과 불평을 심어 놓는 것 그래서 연기처럼 타오르게 만드는 악한 짓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병들게 만드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나쁜 것 악한 것으로 다스리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공동체를 허물고 죽이고 망하게 만드는 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에 빠졌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받은바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사악한 마귀의 종노릇 할 수가 없습니다.

받은바 은혜를 망각해 버리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강팍해 지고 완악해 졌기 때문에 거미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없었으면 좋을 사람들이 많이 언급이 됩니다. 첫째는 이단입니다.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성경은 이단에 대해서는 단호했습니다. 이단은 집에 들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평화를 깨트리는 일에는 이단이 틈을 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사도 바울은 디오드레베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 되기만 좋아하고 악한 말로 사도를 욕하고 비방하고 바울의 목회를 힘들게 했습니다.

요삼 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또한 디모데에게 바울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사도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해를 많이 끼치었으니 너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딤후 4: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4: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의 사역에 깊은 상처를 주고 나쁜 말을 하면서 바울을 괴롭혔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잊어버리지 않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 ? 물어 봐야 합니다.

떤 사람은 들어가기만 하면 평화를 만들고 부흥을 시키는데 본을 남기는 가 하면 어떤 사람은 들어가기만 하면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고 시끄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꼭 필요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 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없어야 될 사람, 태어나지 말아야 될 사람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 입니다.

거미와 같은 사람, 생명을 파멸시키는 사람 이것은 여러분과는 상관없는 자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있으나 마나한 개미같은 사람들입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제사장과 같은 사람, 레위인과 같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 제사장과 레위인을 등장시킴으로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종교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예수님이 설정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연극에서는 정말 꼭 필요한 자리에서 아무 것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변명할 수 있습니다. 제사 드리기 위해서 바쁘게 가는 길이기 때문에 시간이 없기에 피 흘리고 죽은 자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변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설정해 놓으신 안경으로 볼 때는 개미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사람들이 비슷한 사람들인데 바리새파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성실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으로부터는 '화 있을 진져 바리새인아!' 그렇게 저주를 받는 것은 그들의 가슴이 차가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날카롭기만 하고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알지만 사랑의 실천과는 거리가 먼 종교인들. 자기는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나 주님이 보실 때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개미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법과 옛날 전통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법 이전에 죽어 가는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내 손을 내밀라손 마른 자를 펼쳐주고,“지금 양이 웅덩이에 빠져 죽어 가는데 안식일 법에 위반된다고 죽어 가는 양을 그냥 두겠느냐?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면 아주 쉬워집니다.

차가운 가슴으로 모든 것을 보면 백년을 믿어도 예수님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해가 안 됩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불공평하다든지, 예수님은 법을 지키지 아니 하신다 던지 시비를 걸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의 연조가 오래 될수록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개미와 같이 내 신앙만 잘 지키면 되지 하면서 있으나 마나한 자로 전락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개미와 같은 신자로 만족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생명을 살려내는 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살려내는 일에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꼭 있어야 될 꿀벌 같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인을 등장시켰습니다. 종교적인 전통이 유대인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옛날에 '예루살렘성을 같이 쌓겠다.' '안 된다 너희들은 잡종이니까 우리랑 같이 못한다.' 또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도 '나도 가서 좀 짓겠다' '안 된다 너희들은 안 된다' 쫓아 버렸습니다.

사마리아인 되고 싶어서 됐을까요? 아닙니다. 약소국이기 때문에 강대국 앗수르가 사마리아 사람들,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곳곳으로 끌어가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섞어서 혼혈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놓치지 아니하고 믿어보겠다고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붙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사마리아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전도 지었습니다.

자기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보려고 하는데 유대사람들이 '너희들은 아니야' 구박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 라고 부릅니다.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그냥 지나간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간다고 해서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원수가 죽어 가는데 누가 뭐라고 합니까! 사마리아 사람이 비난받을 이유 없습니다.

 

예수님이 수 가성 물가에 갔을 때 사마리아 여인이 '당신은 유대 남자로써 어찌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이 말에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이 상종을 안 했다는 겁니다.

본문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가슴은 과거의 원한도 지금까지 무시 받았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한 사람이 죽어 가는 삶의 현장에서 그 사람을 살려야 되겠다는 이 생각만 먼저 들었다는 것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 피 흘리고 신음하는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술로 상처를 씻어주고 기름을 발라서 치료해 주고 자기의 짐승에 태워서 여관까지 가서 여관 주인에게 부탁을 하고 '앞으로 들어가는 돈도 내가 돌아 올 때 또 물어 주겠다'고 까지 합니다. 꿀벌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의 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은 바로 사마리아인과 같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누가 이웃입니까?"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꼭 필요한 사람 여러 번 언급이 됩니다. 갈렙과 같은 사람입니다.

갈렙은 꼭 필요한 사람 이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을 했지만 우물쭈물 하고 있을 때 85세 노인이 여호수아 앞에 나와서 '이 땅을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늙었지만 선봉장가 되겠습니다. 올라가서 땅을 차지하겠습니다. 모세가 나에게 준 땅 아닙니까? 차지하겠습니다.'

적극적인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요한3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목회를 마무리 하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바울의 목회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사도바울의 목회를 생각하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나에게 아픔도 이다음의 후배 목사들에게 약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도 하면서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누구입니까? 정말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오늘 이 시대에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교회에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거미와 개미와 꿀벌 어떠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제 앞으로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꼭 없어야 될 사람, 거미같은 인생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시렵니까?

있으나 마나한 사람 개미같은 인생으로 주님앞에 부끄럼을 당하시렵니까?

꼭 있어야 할 사람. 꿀벌 같은 인생으로 가정을 살려내고 교회를 살려내고 세상을 살려내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된 삶을 살아가시렵니까?

이제 더 이상의 우유부단함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오늘 아침 결단하시는 시간이 되심으로 남은 생애는 꿀벌 같은 인생으로 생명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나라에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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