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박용래

든든하게 세워진 교회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6-02-06 (토) 14:38 8년전 1987  

든든하게 세워진 교회입니다.

살전1:2-10                                          2016.01.24. 박용래 목사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 받는 교회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려운 환난 속에서도 칭찬 받는 교회가 되었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고 좋은 소문을 내는 든든하게 세워 나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아의 수도로서 그 지역의 정치, 문화,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로마와 동방 제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실라가 2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한 것은 겨우 3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경건한 귀부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있는 곳에는 항상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듯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시작되면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본 유대인들이 시기함으로 바울을 모함하고 핍박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기와 모함과 핍박으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3주동안 아주 짧은 기간에 복음을 받아들인 야손과 아리스다고와 세군은 바울의 훌륭한 동역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하루는 야손 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바울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은 깡패 갇은 자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잡아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자 야손에게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를 끌어들였다고 하여 반역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당시의 반역죄는 황제인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는 엄청난 죄를 말합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 반드시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이렇게 무서운 박해와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잔인하고 악해졌습니다.

이런 핍박으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베뢰아로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좇아와서 집단적으로 소동을 벌리며 바울을 핍박을 했습니다. 할 수없이 바울은 다시 고린도로 피신하게 되었고 실라와 디모데만 데살로니가 교회에 머물러 목회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바울은 고린도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3주 만에 교회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이 늘 궁굼 했습니다. 늘 걱정되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데살로니가 교회에 머물러 있던 디모데가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참으로 놀라왔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본문 7-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if !supportEmptyParas]-->   <!--[endif]-->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져있다는 것입니다.

유럽, 마게도냐 땅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에 걸쳐 데살로니가 교회의 좋은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의 소식을 들은 바울은 너무 기뻤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데살로니가교회가 믿는 자의 본이 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 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섬겼던 모든 신들을 버려야 합니다.

잘못된 것들을 청산하고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을 가졌기에 믿는 자의 본이 되는 든든한 신자로 교회로 성숙해 갈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아니하고는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바울 당시에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으나 21세기를 살아 가는 오늘 현대인들은 물질과 명예와 쾌락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과 세상 것들을 더욱 사랑함으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신앙생활은 자꾸 뒷전에 밀리고 말았습니다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보니 자기중심, 자기만족에 우선순위를 두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든든한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자기중심적인 신앙인이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인이 될 때에 먼저 자신의 유익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고 자신의 만족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고 교회에 피해를 입히고 교회에 민페를 끼치고 교회를 허물면서 예배에 참석을 하고 아멘을 한다는 것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회칠한 무덤과 같은 아주 뻔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렸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것을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부끄러운 사람이 하나님 중심적인 성도로 거듭났다는 말씀입니다.

교만하고 오만하던 사람이 겸손과 섬김의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말씀 입니다. 든든한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먼저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잘못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던 것처럼 오늘 우리 성도들도 잘못된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추한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고 새해를 출발함으로 든든히 세워나가는 교회를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말씀을 진지하게 받았습니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축복이 됩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은혜를 받고 바울과 주를 본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영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노후를 대비하기에 적금을 붓거나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것은 대비하면서 영적인 것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 합니다 

24장에 보면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육체적인 쾌락과 탐욕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예비하면서 그들에게 경고하였지만 우습게 여기다가 졸지에 모두가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하나님을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 멋대로 살면 하나님은 그들을 마귀의 수중에 그냥 내버려두십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 마지막에는 재앙과 심판으로 끝이 납니다.

베드로는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 3:11,12) 권면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오늘도 든든히 세워나가는 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그날을 맞이할 준비를 깨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인간의 때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항상 깨닫고 준비해야 합니다. 악하고 못된 것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경건한 신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하여 퍼진 믿음의 소문은 바울을 기쁘게 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데살로니가 교회는 3가지 좋은 소문을 전해 주었습

.

(1) 믿음의 역사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이 각처에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앙생활의 출발점은 바로 믿음입니다. 신앙은 지식이나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세상의 믿음은 자기주장이나 확신을 가지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로 보는 것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다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보면 살고, 바라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믿음은 단순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며 쳐다보지 않습니다. "아니 뱀에 물렸으면 약을 주어야지 막대기에 매달린 가짜 뱀을 본다고 살아나나, 상식적으로 맞는 말을 해야 믿지" 이런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자기 경험과 지식과 머리를 의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말씀하시면 순종하면 되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처방이라면 틀림없어" 믿고 바라본 사람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이 하시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을 차지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다윗은 비록 물맷돌을 가졌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승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들을 고치실 때 항상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새해에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크기만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야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

역사가 일어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지식으로, 힘으로, 권력으로, 재물로가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사람이 육신이 병 들면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만사를 제쳐두고 매달립니다. 아무리 바빠도 의사가 입원하라면 입원해야 합니다. 치료받아야 삽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영혼의 진찰을 받아야 하고 믿음의 진찰을 받으셔야

할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빨리 믿음의 병원에 입원해야 할때도 있습니다.

육신의 병도 치료시기를 놓치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믿음의 병, 영혼의 질병은 더욱 치명적입니다. 육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죽음으로 영원한 천국까지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우리의 믿음을 치료할 수 있는 천국병원이 바로 교회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날쎈 검과 같아서 우리의 병든 심령을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잘라야 할 것은 잘라내고, 찢어진 곳은 꿰매고, 상처난 것은 감싸는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병들어 악하고 추하고 더러워진 심령이 말씀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온전히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큰 역사가 일어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사랑의 수고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사랑이란 4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스테르고의 사랑

이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으로 끊을 수 없는 관계적인 사랑이다. 혈육간의 사랑입니다.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필리아의 사랑

이것은 친구간의 사랑이다. 우정을 말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에로스의 사랑

이것은 이성간의 사랑을 말한다.

아가페의 사랑

이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해주신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 서로를 감싸주고, 믿음 가운데 서로 돌보아주고 격려하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오늘 우리는 사랑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랑의 노래도 많고, 드라마도 많고, 가슴 찡한 사랑의 시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에로스의 사랑 스톨게의 사랑이 아닌 아가페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희생적 사랑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수고해야 합니.

수고가 없는 사랑, 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새해에는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수고가 있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사랑의 수고가 있는 성도들이 되시어 좋은 소문을 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소망의 인내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소망으로 인내했습니다. 참고 견뎠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는 끊임없는 영적싸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면서 인내하는 농부는 추수의 기쁨을 가집니다. 인내가 없이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우리교회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하신 어른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경찰공무원으로 평생을 계시면서 교회의 사건, 교인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보면서 장로 권사라는 사람들이 욕심과 시기심으로 가득차서 경찰에 까지 와서 다투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저럴수 있는가? 분노를 느끼셨답니다. 교회 안에서 별것도 아닌 문제를 스스로 해결도 못하고 경찰에 까지 가지고 와서 다투면서 바쁜 경찰들에까지 괴로움을 주는 것을 보면 저것들이 무슨 교인이고 저것들이 무슨 장로 권사들인가? 미친것들이라고 환멸을 느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싫어 졌답니다.

민폐만 끼치는 신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가 돼서 세상으로부터 비난이나 받고 조롱 받을 일들이나 만들고 그것이 마치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인생을 미친 듯이 살아 간다면 자신도 천국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천국가지 못하게 가로 막는 어리석은 자로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불행한 자가 되고 말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일생은 믿지 아니하는 이웃들에게 사랑과 봉사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좋은 소문을 각처에 퍼져나가게 만드는 세상에 꿈을 줄 수 있는 든든하게 세워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앞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성도들께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복의 근원이 되는 대전장로교회를 만드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