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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내 인생의 이력서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6-02-13 (토) 07:46 8년전 3257  

내 인생의 이력서입니다.

47:7-12                                                     2016.02.14. 박용래 목사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시간관이 있습니다.

첫째, 윤회적인 시간관입니다.

이것은 불교나 힌두교에서 볼 수 있는 시간관입니다. 시간이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윤회적인 시간관은 돌고 돌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둘째, 변증법적 시간관입니다.

이것은 정이 있으면 반이 있고 정과 반이 만나는 합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 , 합의 삼각형의 관계로 이루어져 간다는 유물론적 사관의 시간관입니다.

셋째, 직선적 시간관 혹은 종말론적 시간관입니다.

기독교의 시간관은 직선적입니다.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습니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지만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태양이 아닙니다.

봄은 왔지만 그 봄은 내년에 다시 오지 않습니다. 내년에 오는 봄은 그해에 맞이하는 봄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전무후무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사용하느냐가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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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본문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의 왕에게 소개하는 짧은 내용입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는 야곱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8~ 네 나이가 얼마냐 왜 바로는 처음 만난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을까요?

이름이 무엇이냐? 어디서 왔느냐? 여기까지 오기에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많은 질문이 많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왕은 야곱을 보자마자 대뜸 네 나이가 얼마냐?”라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야곱의 모습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어온 거 치른 자국이 외모에 나타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네 나이가 얼마냐?” 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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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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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설 명절을 보내시고 떡국 한 그릇을 드신 것은 모두가 나이가 한 살씩 더 먹게 되셨습니다. 우리도 옆 사람에게 물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이는 몇이나 되십니까?” “당신의 나이는 얼마입니까?” 이 질문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생 이력서를 보여주는 질문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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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들의 인생의 이력서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는 어떤 인생의 계획과 뜻을 품고 있을까? 한 번쯤 우리 모두가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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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아침 네 나이는 몇입니까? 하는 이 질문에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어떤 인생의 이력서를 펼쳐 보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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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과거의 인생 이력을 묻는 질문입니다.

야곱의 과거의 인생 이력서는 참으로 파란만장합니다.

성경의 인물가운데 야곱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처럼 야곱은 지금까지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샀습니다. 어머니와 결탁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 권 까지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야곱은 엄청난 고난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형 에서로부터 미움과 살인적인 공포를 느껴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치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그는 노숙을 하면서 밧단 아람에 있는 삼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일했지만 삼촌의 계략에 속고 맙니다. 삼촌이 딸을 바꿔서 잠자리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다시 7년을 일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얻기 위해 무려 14년이나 일합니다.

그리고 삼촌은 열 번 씩이나 품삯 주는 것을 바꾸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야곱은 부모를 속이기에 능한 사람이었지만 삼촌 라반에 번번이 속아서 피해를 입었습니다. 20여년이 흘러 야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픈 맘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형 에서가 아직도 살기등등하여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야곱은 형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예물을 보내고, 환심을 사려고 애를 씁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은 생사를 건 천사와의 씨름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사기꾼에서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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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야곱은 천사가 환도뼈를 쳐서 다리를 절어야 하는 장애인이 됩니다.

또한 야곱은 숙곳이란 곳에서 사랑하는 외동딸 디나가 세겜 추장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34:2)

그것을 본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죽이는 살인극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방 땅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말은 야곱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습니다.

이것도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흉년을 만나게 되고,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지금 야곱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애굽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온 상황입니다.

그의 인생 이력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파란만장합니다. 험한 세월이었습니다.

험한 세월을이라고 표현한 것은 순탄하지 않은 생애를 살았다는 뜻입니다.

왜 야곱은 험한 세월을 보내왔을까?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이후에 세상은 악해졌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덩굴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세상은 약육강식의 살벌한 싸움터로 변했습니다.

물로 심판을 받았던 노아의 시대처럼 불로 심판을 받았던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세상은 악해졌습니다. 험악한 세상에 살아온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됩니다(1:28).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온 다음에 죄는 무섭게 퍼져나갔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돌로 처 죽이는 살인죄로 시작하여 끝없는 전쟁을 일으키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서 사람들은 악해졌습니다.

오늘날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모와 자식도 믿을 수 세상으로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악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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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연약성 때문입니다.

야곱의 생애가 험악한 세월을 보낸 이유는 세상이 악해졌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악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연약성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자신에게 있었던 악함 때문에 험한 세월을 보냈다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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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야곱도 심은 대로 거두는 인생이었습니다. 악한 것을 심어 놓고 선한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선한 것, 좋은 것, 하나님께 자 자손들이 복을 받을 만한 선한 것을 많이 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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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험난한 야곱의 인생길에서도 잊지 못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히 부족하고 연약하고 부끄러운 야곱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인생이요 지나온 과거의 인생 이력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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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의 이력서를 보면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백을 합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오늘 우리들도 찬송가 301장을 부를때면 야곱과 같은 고백을 하게됩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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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이가 얼마냐?”이 질문은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설을 보내면서 야곱처럼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가? 지금까지 자신의 생애를 한번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우리들도 야곱처럼 험악한 세상에서 험악한 사람들을 만나며 연약한 모습으로 여기까지 살아 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직까지도 은혜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은혜를 갚지도 못하면서 살고아직도 나이 값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시며 순종과 충성을 다짐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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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

어떤 서점에 어느 날, 내일은 책을 무료로 드린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서점으로 갔더니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욕심껏 책을 가지고 즐거운 표정으로 서점을 나오는데, 그런데 계산대에서는 여전히 책 값을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따졌습니다.

책을 무료로 준다고 해 놓고서는 왜 돈을 받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때 주인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현수막을 다시 보시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내일 무료로 드린다고 했지, 오늘 무료로 드린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돈을 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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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자랑할 것이 많이 있다 해도 미래의 꿈을 가졌다 하더라도 오늘 현재에 부끄러운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요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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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요, 내일은 나에게 주어질 시간인지 모르기에

오늘이라는 현재의 삶에 충실한 것이 지혜로운 삶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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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아낀다.”는 말은 건져 올리다, 시간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사고 무엇을 건져 올리고 있는가?

낚시를 해 보면 고기는 안 잡히고, 엉뚱한 해초나 나뭇가지 등이 걸릴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 낚시터에서 헛된 것을 잡는데 인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급한 일 보다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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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사명을 맡기신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의미가 있고 삶의 가치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합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을 말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썩어질 것만 위하여 인생을 살아왔다면 허무한 인생으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에 보화를 쌓아 두는 삶,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가장 가치 있는 삶이요 보람있는 삶이요 성공적인 삶이 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언제나 오늘이 아니라 내일 하면 된다고 내일하라고 속삭여 오고 있습니다. 결코 속지 말아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하여 날마다 성도 여러분의 인생 이력서를 아름답게 채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일년 지나면 영원히 보지 못할 얼굴들도 있을 것입니다. 천국 문에 가까이 다다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제 할 일은 남은 인생의 이력서를 신앙으로 아름답게 채워 가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이 아니라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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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네 나이가 얼마뇨?” 하나님은 나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나이가 없습니다.

천국의 성도들에게는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나이를 묻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반드시 끝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인생의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도우리의 인생이 신속히 날아간다고 인생이 무상함을 노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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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담스 대통령이 늙어 지팡이를 짚고 언덕길을 오르다가 숨이 차서 지팡이를 허리에 대고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각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자네가 보다시피 나는 안녕치 못하네. 내 장막집이 무너지려고 해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네.”

그러자 각하, 어디로 이사 가시려고 합니까?”

내 집이 너무 낡아 지붕도 헐고, 기둥도 흔들리고 있고, 들보도 굽었다네.” 각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청년이 묻습니다.

내 지붕은 머리인데 다 벗겨져서 듬성듬성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남아 있고, 창은 눈인데 흐려서 보이지 않고, 기둥은 두 다리인데 힘이 없어서 좌우로 비틀거리고, 들보는 허리인데 쇠하여 구부러졌기에 지팡이로 지금 내가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도 곧 무너지게 되어 나는 지금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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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땅에서는 아무 것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지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건강하다고 하나 그 건강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청춘이라고 하나 청춘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하나 소유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권력과 재력과 재능이 많고 힘이 있다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끝나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 없습니다. 한줌의 재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날이 성큼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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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갈수록 인생의 끝나는 날이 가까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 하였나이다.”(90:9) 다윗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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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인생이력서를 한번 작성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력서에는 과연 무엇들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까?

험한 세월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오면서도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까?

살리는 일입니까? 죽이는 일입니까? 세우는 일입니까? 허무는 일입니까?

이제 얼마가 남았던지 간에 우리의 남은 생애는 무엇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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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두 번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재수할 수 없습니다.

생방송으로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한번 주어진 인생, 한번 걸어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야곱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속고 속이는 인생, 헛된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제 설날을 지냈습니다. 나이가 또 한 살 먹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솔직하게 질문해 보십시오.

 

 

내 나이는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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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 이력서를 아름답게

 

 

채워나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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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여러분의 남은 인생 이력서를 알곡으로 채워 가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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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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