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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6-03-03 (목) 10:16 8년전 3074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4:8-16                                                              2016.02.28. 박용래 목사.

하나님께서 최초로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셨던 내용은?

 

 

3:9,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4:9,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가인을 향한 질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을 때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고 하나님의 물음에 피해가려 했습니다.

끝내 아담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핑계와 변명만 하다가 저주와 벌을 받고 행복한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최초로 인간에게 두 번째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질문하신 말씀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9) 가인의 대답은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9~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의 대답은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소름끼치게 만드는 참 뻔뻔한 모습입니다.

내가 알지 못합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거짓말합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하나님께 반항합니다.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가인은 하나님께내가 동생을 지키는 목자입니까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로 인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인과 아벨 두 사람의 직업은 서로 달랐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제사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도 있지만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도 있지만 하나님이 거절하시는 예배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계적으로 예배만 드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신 것은 사람을 차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 어떤 예배는 받으시고, 어떤 예배는 안 받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기쁨으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1.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제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만 받지 아니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 사람도 받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배만 거절이 아니라 사람도 거절당하는 것니다. 

 

하나님은 제사의 제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인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인은 땅의 소산을 여호와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땅의 소산이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땅의 소산보다는 양 새끼를 더 좋아하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인의 제사는 땅의 소산으로 의례적으로 기계적으로 드리는 제사에 불과 했음으로 그 마음중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 중에 가장 좋은 것 선한 것으로 선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벨의 마음에는 하나님 중심적인 제사였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모셨습니다. 가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이어서 의례적인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아벨과 그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가인은 엄청난 악한 짓을 저 지르게 되었습니다.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살인을 합니다. 하나님께 거짓말을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예배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아니면 얼마나 잘못되고 악한 짓을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예배생활이 자기중심 세속중심으로 되어지면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가인처럼 얼마나 못된 짓을 하고 악한 짓을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배도 마음대로 좌 지 우지 하려고 합니다. 제물도 마음대로 하려 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없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사를 드리는 가인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방법대로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왜 분을 내고 안색이 변했습니까?

왜 동생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내 것은 받지 않으셨느냐?”비교의식,

동생에 대한 열등감, 시기심 등 때문입니다.

가인의 제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을 때, 분을 내고 안색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문제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내어 놓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뭐가 문제입니까? 제가 드린 제물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랬더라면 하나님은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의 마음이 문제이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고자 하는 정성이 없다.

그러면 자기의 잘못을 고치고 하나님께 맞추었다면 가인에게는 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분을 내고 안색이 변하였다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드리려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이라는 것입니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하나님은 지금 가인이 선을 행하지 못했다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처 죽이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책임은 동생에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책임은 가인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동생을 시기하다가 결국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삶이되어지면 얼마나 빗나가고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사건입니다.

예배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 인간중심으로 착각하면 얼마나 못된 짓을 사람들이 저지르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안들고 자기의 기분에 맞지 아니하면 예배를 방해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좌지 우지하려하기도 하고 해서는 안되는 못된 짓을 많이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인의 교만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안색이 변하는 것, 이것은 애초부터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리려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솔한 예배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에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배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신 것은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불신자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드리는 예배라도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십니다. 믿음도 없는 사람이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배자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전문 합창단이 와서 찬양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에 시기와 질투와 증오와 독한 마음을 숨기고 입술로만 찬양하는 것은 노래는 될 수 있어도 하나님께 찬양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예배 자들의 마음중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정성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1: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왜 하나님이 헛된 제물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 되고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없고 정성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함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것임으로 하나님께서 견디지 못하겠노라 고 책망하셨습니다.

 

1: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하나님께 제사에 나오기는 하지만 하나님 없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제사로 자기만족을 채우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만홀히 여겨 멀리 물러갔다고 탄식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이미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인데도 치료받지 못한 채 더 매 맞을 짓만 하고 있다고 애통해 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 드리는 예배자와 예물은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였기에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생활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되고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배는 희생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4:3~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4~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결과는 하나님께서 가인과 제물은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과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제물은 그냥 땅의 소산이라고 했지만, 아벨의 제물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이라고 했습니다. 가인의 제물은 자기의 소유중 그냥 제물로 드렸지만 아벨은 첫 새끼 가장 좋은 것으로 선별해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기뻐하십니다.

 

Cassuto라는 성서 주석학자는, 가인은 다만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지만

아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런 제사정신은 나중에 발전이 되어 율법(13:2,12, 22:17-25)은 예배 자가 자기 것 가운데서 흠이 없고 가장 살찌고 건강하고 좋은 것을 드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마음에 정성과 희생이 따라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2:22~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 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가지고 옵니다.

이런 제사는 기계적으로 드리지만 하나님은 관심이 없으십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후배들에게 진정한 논쟁거리를 던져주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고 가르치면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회개란 무엇인가?

행함이 없는 믿음, 열매가 없는 믿음도 천국갈 수 있는 것인가?

 

정말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가지면서 예배생활 신앙생활 멋대로 편집하며 신앙생활해도 천국을 갈 수 있는가?

60평 아파트에서 살면서도 당신이 신앙을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탄절 부활절에도 예물도 없고, 한해를 살아온 감사절에도 예물도 없고, 나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십일조의 예물도 없이 직분만 있으면 원로만 되면 장로 권사만 되면 그래도 구원과 영생이 있는가? 그래도 천국갈 수 있는가? 라는 논쟁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은 쓰다 남은 찌꺼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헌물 속에 하나님께 대한 그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 새끼를 드렸다는 것은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배가 고파서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서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의 신앙생활과 예배생활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 벌과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정성껏 드려서 하나님이 열납 하셨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인에게 돌로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죽었습니다.

가인은 이긴 자입니까? 성공자입니까? 아벨은 실패자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아벨의 죽음을 죽음으로 끝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죽음은 또 다시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원한 삶과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과 영원을 이어가는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참된 승리입니다.

그러나 가해자인 가인은 세상에서도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과의 삶에서도 저주를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가 아니라 그와 자손들까지도 하나님께 벌을 받고 저주를 받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 어슬프게 하다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천국을 알기는 했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제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질문하신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가인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있습니까?

너로 인하여 상처받고 피해입고 죽은 동생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지은 죄를 회개하고 아벨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잖으면 아벨의 핏 소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고 변명하거나 핑계 대지 말고 방황 하지 말고 속히 회개 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의 몸 안에는 가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형제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상처 입히고 해치고자 하는 가인의 무서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상처를 입고 피해 입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최초로 두 가지 질문하신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3:9,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4:9,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첫 번째 질문은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의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교회는 예배시작을 알리는 종을 징으로 울리고 있습니다.

사실은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예배의 시작을 징으로 사용을 했습니다.

징 울림을 들을 때마다 두 가지를 기억하면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상태로 예배를 드린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이웃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이웃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상태로 예배를 드린다면 먼저 회개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 5:23~24~에서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 앞에 예배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화목한 관계를 맺을 때에 그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10~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끝내 회개가 없던 가인은 결국에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버림을 받고 방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가인의 후손은 저주 받은 후손이 되었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진정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진정한 예배는 무엇입니까? 자기중심적이고 인위적인 예배가 예배라고 생각하십니까? 속에는 칼을 품고 겉으로는 악수하며 드리는 예배가 예배입니까?

 

주님은 십자가에서 화평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 된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기회는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징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한 관계로 예배를 드림으로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자손만대가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교회는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최초로 인간에게 질문하셨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사순절 기간에 서 먹 서먹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서먹해지고 막힌 담이 있었던 이웃과의 관계를 정상으로 회복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이어가시는 복된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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