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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자유를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6-03-06 (일) 23:16 8년전 2080  

                     자유를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5:13-18                                                2016.03.06. 박용래 목사

❤   자랑할 일이 많으면 행복합니다.

주 안에서 자랑할 일이 많아지는 한해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목회자는 교회를 자랑하고 교회는 목회자를 자랑하고 이것이 복있는 교회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자랑하고 성도들은 목회자를 자랑하는 교회가 은혜 있는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는 우리 민족 앞에서 자랑스러운 역사가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한국교회가 주축이 되어 일어났던 삼일운동입니다.

우리는 지난주간에 97주년 삼일절을 맞이했습니다.

1919.3.1. 그 당시 인구 2,000만에 천도교 200만 유교 불교는 300만을 넘어서는 교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기독교의 교세는 35만 명 곧 인구에 1.2%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16인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자유를 위해, 만세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자가 기독교인이 2,039 천도교인 1,063명 유교인55명 불교인 41명으로서 기독교인이 60%이상을 차지했던 것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볼 때 당시 교회는 비록 교세는 보잘 것 없이 작았으나 민족의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초대교회 모습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의 말이 옳습니다.

경찰서 10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훨신 낫다 그래서 교회가 이 시대의 소망입니다. 교회가 이 시대의 등불입니다

이제 97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소망이어야 합니다.아멘

우리 교회는 반드시 복의 근원이 되는 교회를 이루어 대전과 한국과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우리사회에 소망이 되는 교회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그렇게 사용하실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민족과 이 사회에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97주년 삼일절을 맞이하면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자유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저 합니다.

 

1) 자유를 위하여 부름 받았습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너희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란 우리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투쟁해서 얻어진 자유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오로지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심으로누리게 된 자유란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손을 내밀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자유란 말씀입니다.

죄와 허물로 이미 죽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와 심판과 저주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참된 자유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 모두는 해방되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우리에게 힘과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힘은 그리스도인들이 썩어져갈 세상만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본문은 이제 우리가 그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유가 왜 주어졌는지를 또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교훈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2)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물고기는 물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물 밖으로 나오면 곧 바로 죽는 것입니다. 자유를 남용하면 우리의 인생도 가정도 깨어지고 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자유는 동물적 자유입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가지고 싶은 대로 가지고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자유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자유는 동물적인 자유입니다.

이 동물적인 자유는 육체적 소욕을 따라 살기가 쉽습니다. 자유를 육체적 기회로 삼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자유는 기회이지만 변질되면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면 동물보다도 못하게 됩니다. 추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삼손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유를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나실 인이라는 영적자유를 버렸습니다. 그럼으로 힘을 잃고 두 눈이 뽑혔습니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구소련의 유명한 작가 솔제니친은 소련 당국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고 국에서 망명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유 없는 공산주의 사회에 살다가 완전히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에 와서 살게 되었던 솔제니친은, 예상과는 전혀 달리 서구 사회에 대하여 큰 실망을 맛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그 자유 안에서 방종하고 무분별한 이 서구 사회의 젊은이들을 볼 때 오히려 자유 없이 살고 있는 자기 민족을 생각할 때보다 더욱 큰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던 것입니다.

미국에 계속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은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솔제니친은 그처럼 좋은 자유이지만 그것이 남용되거나 오용될 때에는 방종과 무질서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험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은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남용하면 타락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8:34)

성도의 자유는죄로부터의 자유이지 결코죄를 향해 갈 수 있는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자유란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닙니다.”

도로상에서 운전하는 운전자는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통법규 안에서 자유인 것입니다. 그 자유가 자기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규정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안전이고 생명이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자기 육체를 위한 기회로 남용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늘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옛날 로마인들이 향락을 일삼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고 나서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서 토한 다음에 다시 먹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잘 먹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육체적 소욕을 따라 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추하고 더러운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혼자만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고 자기만을 위해 잘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웃에게는 아무런 관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만 좋으면 좋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동물적인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성도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혼자 잘난 맛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안 되면 불평합니다. 오르지 자기만을 위해 살고 이웃에게는 관심 없는 사람입니다. 동물적 자유에 매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자기 육체의 탐욕의 노예로 살지 말라. 는 말씀입니다.

 

3.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자유입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시기 질투 미움으로 가득찬 사람은 자유인이 아닙니다.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나의 자유만 주장하다보면 이렇게 짐승처럼 서로 물고 뜯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같이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추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자유는 무질서입니다. 내 자유를 가지고 남을 마구 밟아도 된다는 생각은 큰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자유는 결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남용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절대로 자신만을 위한 자유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틴루터가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은 가장 위대한 자유인입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은 가장 충성된 노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사랑의 노예가 되심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들은 세상에서 사랑의 노예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자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 종노릇하는 자유, 스스로 노예가 되는 자유입니다.

구약에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팔고 사고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빛을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식년이 되는 제 7년에는 다 놓아주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7년이 되어도, 이 노예가 자유의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집에 머물러 살기를 원하면 자유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송곳으로 귓바퀴를 뚫어서 자유의 노예가 되었음을 표시합니다.

자유의 노예는 그 집에 영원한 노예로 있지만 언제든지 그 집에서 나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들을 자유의 노예라고 합니다. 형식상으로는 노예이지만 그 내용과 인격에서는 완전한 자유인입니다.

자유를 가진 노예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자유인이면서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종으로 섬기는 자유를 가진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자유인이면서도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집사님은 결혼 한지 3일 만에 신랑이 군에 입대했다가 6.25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부인에게는 임신이 되어 남편 없이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인생이 구만리 같은 데....아들도 아닌 딸..고아원에 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라... 그 많은 권유와 유혹에도 불구하고,, 유복자인 딸을 위해...어머니는 자신의 생애를 포기했습니다. 오직 딸아이 하나를 위해서 혼자, 살았습니다.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딸아이 하나를 키웠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힘들지 않느냐? 얼마나 외롭고 힘드냐고? 왜 힘들지 않겠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딸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천국에 먼저 가 있는 남편을 만나볼 날이 가까이 와서 기쁘다고 남들은 애석하게 볼지라도 어머니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딸 아이 하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래도 기쁩니다.

딸아이를 위해 어미는 스스로 사랑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사랑의 자유입니다. 사랑을 위한 헌신의 자유입니다. 사랑의 노예가 되는 자유입니다

사랑의 노예가 되는 자유--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자유입니다.

사랑의 노예가 되는 자유....이 길이 예수님께서 걸었던 자유의 길입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자유인들에게는 소망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소망의 자유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유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인간의 절대명제는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죽음이 두렵습니다.

왜 인간이 죽어야 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 때문에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죽음에 매여 삽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공포에 매여 사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지금 대학병원 중환자실에게 죽음의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고 있는 사람에게

돈이 많으면 뭘 하고 명예가 높으면 뭘 합니까? 그에게 자유가 있습니까?

지성도 능력도 정치적 권세도 부유함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5:32~ 예수님께서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5:44~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적어도 성도들은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적어도 성도들은 의인의 회중에 들어 천국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모함하고 괴롭히고 핍박하고 상처를 입히면서도 아브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는 뻔번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책망했습니다.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영생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말하고, 행동하고,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가족들 사이에, 교인들 사이에, 이웃들 사이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그 모든 자유를 예수님의 정신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이 모든 자유는 교회를 상처 입히고 교회를 허무는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의 자유는 사랑의 종노릇하는 자유,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로 이웃에게 은혜를 끼치고 교회를 유익하게 만드는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예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는 자유이며, 서로에게 종노릇 하며 섬기는 자유가 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과 복이 이뤄집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만드는 자유가 되고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영원한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테반 집사가 순교를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면서도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원수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스테반은 하늘나라를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앞에 서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천국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래를 보았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에서 자유 했습니다. 죽음을 소망으로 맞이합니다.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미래에 대한 보장과 약속이 없이는 자유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오늘 여러분은 고백할 수 있습니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제는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해라 하는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까? 확실합니까?

 

진정한 자유는 미래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소망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자유, 새 하늘과 새 땅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사랑의 종노릇하는 자유, 죽음에 대한 자유, 미래에 대한 자유는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할 때 가능하고 오직 성령 안에서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16~ 성령을 좇아 행하라.

고후3:17~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 함이 있느니라.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진정한 사랑의 자유가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에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형제가 되었습니다. 나의 자녀처럼 학생들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성령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자유, 사랑의 노예가 되는 감격과 기쁨입니다.

 

3.1절에 성도들이 그렇게 담대하게 자유를 외칠 수 있었던 비결도 1907년에 일어난 성령대부흥운동의 결과였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니 자유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사경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 때는 교회에서 성경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교회에서 모여 집회를 가졌습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 민족의 아픔과 소망을 함께 읽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의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을 가졌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같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성도가 투옥되고 순교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자유를 외쳤습니다. 성령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자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이 어려워도 변해도, 세상 사람들이 그릇되게 간다고 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자유의 길, 사랑의 노예가 되는 자유의 길을 가야 합니다.

좁은 길이지만 때때로 손해가 되는 길이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진리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것이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자유, 내가 먹고 싶은 것만을 혼자 먹고 사는 자유는 동물적인 자유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기 쉽습니다. 동물처럼 살기가 쉽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자유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자유입니다. 사랑의 노예가 되는 자유입니다. 소망의 자유입니다. 죽음에 두려움이 없는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자유입니다

성령을 따라,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진정한 자유인, 세상에 빛을 발하는 자유인 서로 칭찬하고 칭찬받는 영원한 천국을 소망으로 삼는 자유인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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