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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화목과 평화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6-07-17 (일) 16:44 7년전 1565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의견이 다르고 논쟁이 일어나며 갈등과 불화를 이루며 싸운다. 인류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되어진 전쟁사이다. 이런 것들이 나라 기리라면 전쟁이 발생한다. 우리 민족 역시 2차 대전 이후 미소의 냉전 체제 하 이지만 민족 전쟁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70 여 년의 분단을 지속하며, 이 분단을 남북이 서로 악용하여 서로의 정권유지 내지는 민중 착취의 수단으로 이요하고 있다. 이럴 때에 인간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맹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성선설을,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고 이 둘은 전자는 사회환경의 악함을 통하여, 후자는 인간 자체의 악을 순화 하기 위하여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세게는 이해관계로, 이념으로 문화와 철학 가치의 다름으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결과로, 고도의 과학과 기술, 정보의 홍수를 이루지만 여전히 이러한 악의 굴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서는 창세기르 통해서 인간의 타락상을 들려준다. 타락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이다.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고 스스로 신처럼 되고자 하는 바벨탑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학연과 지연, 혈현을 넘어서지 못한다. 공사도 분별치 못한고 구별하자 못한다. 아니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정의를 짓밟고 진실을 느폐하거나 묻어 두려한다.

지식과 정보는 권력이다. 그것들이 자본을 생산하고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한다. 지배자들은 지식과 정보의 소유자들을 회유하고 당근과 채찍을 통해서 적당히 대우해 주고 지배의 수단과 도구로 사용한다. 지식인들과 정보 소유자들은 모른 채 하고 탐욕의 자본과 더럽고 추악한 권력과 결탁하여 부귀를 누리며 공생하고 기생한다.

"민중은 개 돼지이고 먹을 것만 주면 된다"라는 상위 1% 내지는 5-20 %들은 나머지를 개와 돼지처럼 생각하고 서로가 결탁 야합하여 지배의 꿀맛을 살려는 의식을 갖고 산다. 그들은 저 출산, 양극화, 고화의 문제들은 각자 자신 개인들의 능력 여하의 것들로 치부하고 사회적 공동체의 책임의식을 회피하려 한다.

역사와 서건들을 보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것들은 궁중사가나 민중사가가 다르고 기득권자들과 변두리의 사람들이 질적으로 다르다. 상위 자본가들과 권력층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유물들을 지키려 한다. 그래서 이미 흘러가버린 냉전 쓰래기들의 이데올로기를 부활 시켜서라도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본가와 권력자, 소위 기득권 유지자들이 보는 세계관과 가치 삶의 목적과  방법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종교적 교권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쇠외 되어 사는 민중들과는 그 시각괴 이해와 해석들이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남북의 분단과 통일의 문제, 지금 전 국민을 불화 하게 하고 갈등을 의도적으로 조작 재생산 시키는 지배자들의 계획적 현상들은 민중들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강해 하겠다는 의도이다. 성주건 어디든 사드건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자기들의 권력과 자본의 유지와 지탱을 위하는 것이라면 핵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의도이다.

한반도의 수도권에서의 핵폭발의 시물레이션을 보라! 우리의 미래가 어떤 처지에 놓일 것인지를 한치 앞도 예측키 어렵다. 한미일, 한둥, 한 러 등 세계와의 관계를 보는 시각도지배자들과 민중의 시갃이 다르다. 우리는 알고 모르면서 한꺼 번에 우리의 최후를 맞이 할 수도 있다. 

세계의 지배자들과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삶과 유익을 위해서는 지구 인구의 반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무리들은 다수의 민중들을 다 쓸어 버리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것을 예사로 안다. 그들 자신이 세계와 우주를 좌지 우지 하는 신들로  착각을 하며 산다.  종교가들도 신의 이름을 앞세워 그 악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공생과 기생을 마다 하지 않는다.

예수가 온것은 살리려 오셨고, 오늘 상경도 맛있는 고기가 가득한 집에소보다 가나난한 빵 한조각이지만 화목과 평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질적인 삶을 살 수 있다라고 한다. 1950 년대 미 국회의원인 조셉 멕카시( Joseph McCarthhy)에 으해서 미국 사회는 소위 레드 컴플랙스(Red complex)의 갈등과 불화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정죄 되고 국회의원직을 박탈 당했으며, 이른 나이에 죽었다.

이러한 냉전 이데올로기와 죽은 쓰래기 같은 레드 컴플랙스로 민죽과 국민을 협박하며, 거짓 정권은 더러운 자본과 결탁하여 정권을 유지 하고 자신들의 거깆과 불의, 부패와 비리를 덮으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들에게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고 평화 통일이 아니라 흡수통일, 전쟁을 불사 하고 민중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한 통일 인 것이다.

바울과 어거스틴 루터와 캘빈, 그리고 칼 바르트까지 인간의 본질은 전적 타락이다. 물론 이와 달리 인간의 하나님의 창조성(Imago Dei)의 미련을 주창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간의 "전적타락"을 주장하는 가운데는 지배자들의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이떼올로기화 하는 함정이 늘 도사려 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배자들의 행태나 인간 모두에게 이러한 전적타락의 교리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칼 바르트가 말하는 "인간의 잉태부터의 악의 씨앗"의 문제는 조심성이 있긴 하지만 인간의 악의 역사적 측면만 본다면 타당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물질의 소유 여부, 권력의 소유여부, 계급이나 계층 간의 여부를 모두 떠난 본질의 문제에서 그렇다. 오늘날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악의 수정(modify)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있다. 오히려 지배자들과 자본가들의 수중에서 악용 당할 뿐이다.

우리는 불화나 갈등 보다 화목을 원한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정의와 사랑 이다" 정직과 진실의 바탕 위에서 정의를 세우고 사랑을 실천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 인간은 거짓 되고 탐욕적이다. 인간의 소욕을 모두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 접목 될 때만 비로소 사랑은 말해 지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사랑과 정의, 신의 이름을 앞 세워 자기 탐욕을 소유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득실 거린다. 한신과 기장 공동체에도 예외가 아니다. 주님이 말씀 하신다. 갈등과 불화를 넘어서고 정의와 사랑을 실천 하며 화목하기를 바라신다. 비록 기름진 고기는 없고 대궐 같은 집에 거주 하지는 못할 지라고 들풀고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응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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