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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산책(1) - 히브리 산파의 믿음(출 1:15-22)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6-10-18 (화) 06:56 7년전 7618  

출애굽기 산책(1)

히브리산파의 믿음(1:15-22)

 

출애굽 사건과 부활 사건은 성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복음 선포와 삶 때문이었으니, 복음이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공부한 이후, 출애굽기를 공부하는 것은 성서의 두 기둥을 다루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야곱의 가족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도움으로 애굽 땅에 머무르게 됩니다. 야곱과 요셉이 죽고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죽고(1:6),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으니(1:8),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이지요. 그 오랜 시간은 40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여(1:7)졌습니다. 이에 혹시 반란이라도 일으킬까 불안함을 느낀 애굽의 새 왕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방법으로 위협을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들을 학대하는 방법은 그들을 건축공사에 강제로 동원하여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이스라엘은 더욱 번성하여 퍼져 나갔다(1:12)고 합니다. 더욱더 괴롭혀도 번성해가는 이스라엘에 위협을 느낀 바로 왕은 히브리 산파를 불러 명령합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어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애굽 왕 바로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줍니다. 십브라는 아름다움, 맑음이라는 뜻을 부아화려, 호화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히브리(합비루)’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오는 곳입니다. 구약에서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린 최초의 사람은 아브람(14:3)입니다. 히브리인(합비루)는 달제노역에 동원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고대 근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단어로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지역이 토착민보다 더 낮은 계층에 속하는 떠돌이를 지칭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의 하나님떠돌이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유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겼다”(1:17)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바로 왕은 곧 신의 대리자요, 그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이었을 뿐 아니라 삼족이 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바로 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진노한 바로 왕은 산파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아이들을 살렸느냐?” 그러나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들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왕의 명령을 통해서는 당시의 인권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의 말 한마디면 무고한 생명이 가차 없이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절대권력은 강제노역을 당연히 여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제노역에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 농사일들을 더욱 힘들게 시킵니다. 흙을 이겨 벽돌을 굽는 일이나 농사일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물들은 일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벽돌 한 장, 씨앗 하나 뿌리지 않았던 이들이 자신들의 것인 양 가로챕니다. 노예들의 수고로 먹고살면서 그들에게 감사하기는커녕 그들을 학대합니다. 그들의 대를 이어줄 아들은 죽이라 명령하고, 딸들은 그들의 노리개로 삼을 생각에 살려두라고 합니다. 이런 암흑의 시대를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이상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역사개입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과 아우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역사에 개입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들의 역사에는 새로운 변혁의 씨앗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에 그들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의 언약을 잊지 않으신 것입니다. 침묵하시는 분 같았고, 그들의 역사와 무관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여러분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선한 계획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 사건은 거대한 제국이 지배하는 억압적인 상황을 깨뜨리고 생명의 새싹이 움터오는 서막입니다. 애굽과 바로로 상징되는 세상의 모든 억압을 하나님은 어떻게 바라보시며, 그 가운데에서 신음하는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이끌어주시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 출애굽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을 창세 전에계획을 갖고 지으셨으며(6),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에 나를 가지시고 세우셨습니다(잠언 8:22-23). 그런 하나님의 창조계획 가운데 있는 귀한 존재인 인간이 또 다른 피조물이 신인 양 그들을 억압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시고, 억압당하는 이들의 부르짖음과 아우성을 들으시고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특별히 여성들을 택하셔서 장엄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2. 여성을 들어 쓰신 이유

 

하나님은 출애굽의 역사를 열어가시면서 먼저 여성을 들어 쓰십니다. 그들은 바로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였습니다. 체제유지에 불안을 느낀 애굽 왕은 인종 말살계획을 수립합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이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이요,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임을 생각할 때 이런 왕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왕의 법과 하나님의 법, 그 사이에 히브리 산파는 서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히브리 산파는 애굽 왕의 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붙잡았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1: 16)’에서 그렇게 하였다고 전합니다. 이 두 여인 십브라와 부아는 인간성에 반하는 죄악을 거절한 것입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이 여인들을 가리켜 세계 최초의 시민불복종운동가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지구상의 절반의 사람, 그것은 바로 여성이요, 남성입니다. 창세기에서 여성과 남성은 서로 돕는 관계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고, 그런 가부장적인 사회는 지금껏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는 그 남성을 조종한 것은 또한 여성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은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닙니다.

 

출애굽기에는 히브리산파 십브라와 부아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살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모세의 누이, 파라오의 딸, 모세의 어머니, 모세를 죽음으로부터 살린 아내 십보라가 등장합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치포라)와 히브리 산파 십브라(시프라)-발음에 주의-는 개역성경에서는 거의 비슷해서 혼동을 하기도 합니다만, 성경에는 모세의 아내는 치포라, 히브리 산파는 시프라로 번역해서 덜 혼동됩니다. 번역상의 문제가 아닌 발음상의 문제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개역성경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본래의 발음에 가까운 것이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발음해야 중요한 것이냐가 아니라, 출애굽 역사의 서막을 열어가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여성을 들어서 쓰셨을까요?

12절 말씀에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지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학대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출애굽기 223절에 보면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게다가 애굽의 왕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하기를 남자 아이는 죽이고 여자 아이는 살려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성들의 두 가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왜 여자 아이는 살려두라고 했을까요? 여성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가사 일에 부려먹고 성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다가 또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정도로 취급되던 시절이었으니 그 당시의 여성은 가장 낮은, 가장 밑바닥이 삶을 강요 당하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남성들에게조차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는, 버림받은 존재들에게 버림받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삶을 강요당하던 이들이 여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에 있던 여성을 들어 출애굽의 서막을 열어가시면서, 여성을 당당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온전한 인격으로, 역사의 주체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역사는 여성해방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낮은 떠돌이 중에서도 남성들에 의해 더 낮은 곳에 처한 여성들을 통해 출애굽의 서막을 여셨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에 마구간 말구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비천한 삶까지라도 온전히 이해하시고 품는 삶을 살아가셨으며,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들까지도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3.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히브리 산파의 이야기에서 강조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지혜 문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말합니다. 잠언 166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이 용기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왔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출애굽기 121절에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케 하신지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 모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흥왕케하시는 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한남교회에서는 2016년 10월 19일부터 출애굽기로 성경공부를 이어갑니다. 지난 주까지는 '산상수훈'을 30회 산책했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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