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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배

병산교회 원로장로 추대식 및 신임장로 임직식 설교문(2011월 12월 4일)

유정성 (익산노회,이리제일교회,목사) 2011-12-07 (수) 07:06 12년전 3744  
            

임무교대-섬김의 작정

고린도전서 16장 15~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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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질문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여러분들 앞에 오셔서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과 ‘매일 나를 따라오라’는 말 중에서 어떤 명령이 더 쉬운가요? 말씀해 보시죠? 일단 정답을 뒤에서 확인해 보고 여러분들의 답은 가슴에 담고 이야기 한 가지를 더 들어보실까요?

 

미국 남북전쟁 당시 젊고 씩씩한 장교가 링컨 대통령의 비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총을 잡고 싸우지 않고 사무실에서 펜대를 잡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자주 불만을 표 했습니다

 

‘내가 군인이 된 것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려고 되었지, 사무실에서 이런 일을 하려고 군인이 되었는가?’

 

어느 날 또다시 그 장교가 불평을 터뜨리는 것을 바라보던 링컨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자네가 조국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는 용기 있는 사람이란 나는 알고 있네. 하지만, 조국을 위해 살려는 의연한 자세는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쉽습니까? 조국을 위해 사는 것이 쉽습니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번 마음 다잡고 한 목숨 내던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매일 조국을 위해서 사는 일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것은 매일 죽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보고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는 것보다 매일 주님을 따르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위를 걷는 것은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한 번 죽으면 되지만, 매일 주님을 따르는 것은 매일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교회를 섬기는 일도 한 순간 어려운 일을, 내 능력에 벅찬 헌신이라도 ‘한 번 해 보자’하는 심정이라면 쉽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아주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께서 잘 알고 계신 것처럼 고린도교회는 성도들 간에 갈등이 심했던 교회입니다.

 

고리도전서 1장 12절에 보면, 적어도 네 당파가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뉘어 서로 분쟁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바울은 스데바나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스데바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18절에 보면, 스데바나와 같은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합니다.

서로 파를 나누어 분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잘한 일이 있어도 특정 사람의 이름을 들어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파당 짓는 일에 더 큰 불을 붙일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렇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는 사도 바울의 개인적 성격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성격은 반대자들과 시샘하는 사람들을 더 만들어내기 마련인데 사도 바울이 그것을 모를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스데바나가 계파 상관없이 정말 존경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15절을 한 번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한국말 번역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여기에 쓰인 ‘작정했다’는 동사는 한 번 작정한 것이 아니고 계속 작정했으며 계속 헌신해왔다는 것입니다.

 

스데바나는 성도들의 종이 되기를 날마다 작정하고 날마다 변함없이 섬기는 일에 자기를 헌신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계파 상관없이 존경할만한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모두에게 존경받을만한 인물을 들어 칭찬하면서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를 가르친 것입니다. 섬김에 성실함이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섬김이 됩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섬김은 아직 미성숙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진정한 섬김은 성실한 섬김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는 섬김이 성숙한 섬김입니다. 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섬기셨습니다.

 

오늘 두 분의 장로님께서 은퇴하시고 또 두 분의 장로님께서 임직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은퇴하시는 장로님들과 임직하시는 장로님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데바나처럼 매일 섬김을 작정하시고 변함없이 교회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비유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섬김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아주 중요한 비밀이 보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몸이 참으로 신비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우리들 콧구멍이 두 개인데 이것이 항상 숨을 쉬고 있지만 사실은 3~4시간마다 그 기능을 교대합니다. 한 개 구멍으로 냄새를 맡으면 또 다른 구멍으로는 숨을 쉽니다.

또한 우리 뼈의 조직은 끊임없이 죽고 다른 조직으로 바뀌어 7년마다 한 번씩 몸 전체의 모든 뼈가 완전히 새로 바뀝니다. 한 마디로 뼈의 조직이 7년에 한 번씩 교체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몸은 그 임무를 다했다고 그 기능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군대 사격장을 가보면 총을 쏘는 군인을 ‘사수’라고 부르고 옆에서 사수의 사격을 안전하게 지켜봐주고 보조하는 군인을 ‘부사수’라고 합니다. 이렇게 각각의 임무를 부여받고 사격을 합니다. 사수가 사격을 무사히 마치면 사격장 책임 장교가 큰 소리로 “임무교대”라고 외치면 사수와 부사수가 그 자리를 바꾸고 역할을 바꿔서 사격을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 교회에서의 헌신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수’였던 은퇴 장로님께서 이제는 헌신을 다 했다고 쉬는 것이 아닙니다. ‘부사수’였던 신임 장로들이 사격을 잘 할 수 있도록 돌봐주고 보조하는 ‘부사수’의 역할을 임무교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요즘도 기분 좋으면 이런 노래 부르시죠?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은퇴 장로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70세가 되기까지 성실한 섬김을 교회에 바친 사람만이 은퇴 장로님이 되는 것입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진정한 섬김은 부족함을 채우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곳곳에 부족함을 채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소리 없이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몰라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다 알아보십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요즘 우리는 대림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목적을 복음서 기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은 섬김을 받는 자로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섬김의 내용은 부족함을 채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영생을 얻기에 턱도 없이 부족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으로 대신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섬김의 본입니다.

 

섬김을 작정하시고 신임 장로님이 되시는 장로님, 오늘 말씀을 평생토록 기억하며 주님 닮은 ‘섬기는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섬김은 성실한 섬김입니다. 진정한 섬김은 부족함을 채우는 섬김입니다.

 

‘스데바나’라는 이름의 뜻은 왕관입니다. 이제 은퇴 장로님 되시는 두 분 장로님, 신임 장로님 되시는 두 분 장로님, 부족함을 채우는 일에 성실다해 섬김으로써 주님이 주시는 왕관 같은 존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퇴하시는 장로님들 ‘스데바나’의 임무를 성실히 완수하였으니 이제는 임직하시는 장로님들과 임무교대 하셔서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스데바나’(왕관)가 될 수 있도록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병산교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거룩한 임무교대를 통하여 새롭게 섬김을 작정하는 모든 교우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48:18 총회장 칼럼에서 이동 됨]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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