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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10-18 (월) 22:44 13년전 13797  
 

2001 년 9 월 16 일(주일) 오후 7 시 반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밤 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6 장 33 절 

제       목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 교회 성경 외우기 제 일번입니다. 마육삼삼 마음과 육체가 삼삼해지는 말씀입니다. 왜 마음과 육체 우리 인생이 행복해지는 비결이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먼저 구해야 할 것을 딱 두 가지로 요약해 줍니다. 뭐죠?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그의 나라에서 그는 하나님입니다. 그라고 하기보다는 그분의 나라라고 공손히 말해야 하겠지요. 그 분의 나라 곧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기 저 우주 공간에 따로 있을까요? 현대인들은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우주 공간 어느 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지만 오늘날 신학자들은 하늘나라가 우주 공간 어느 쪽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늘에 있는 어떤 초월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고 통치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하늘나라입니다.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 부르지 않습니까? 만일 내 안에 주님 모시고 주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산다면 그 나라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옛날 어떤 분은 하늘나라를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리는 나라이다. 하늘 뜻은 무엇보다도 사랑이다. 만일 어떤 사람 둘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는데 바다에서 난파되어 딱 한 사람 밖에 살 수 없는 보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당신은 아내와 자식이 있으니 꼭 살아야 한다고 보트를 밀어주면 다른 사람이 그 보트를 밀어주면서 난 결혼도 해보고 자식도 낳아보고 했지만 당신은 아직 이 땅에 태어나 결혼도 못 해보고 자식도 못 낳았으니 꼭 살아서 아내도 만나시고 애도 낳아보시라고 서로가 보트를 상대방이 살라고 밀어주는 그곳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사랑의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냐고 말합니다. 어쨌든 하늘나라는 어떤 특정한 장소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면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곳이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장소에만 제한되는 특정한 공간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아버지의 나라는 하늘나라이며 그 나라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짐을 구하라 좀더 쉽게 표현하자면 하늘아버지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무슨 뜻입니까? 그의 의는 헬라어로는 디카이오순네입니다. 즉 의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은 뜻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여기시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의란 세상의 정의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정의는 이 사람에 따라 다르고 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미국의 한 주에 있어서 낙태는 합법이지만 다른 주에서는 용서못할 죄입니다. 세상의 정의는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이렇게 해석되고 저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란 딱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여기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행복이며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둘을 종합해 봅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단히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로마서 12 장 2 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기뻐하는 뜻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먼저 구하라는 말씀이신데 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먼저 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내가 왜 만들어졌는가? 하는 질문과 상통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만들었습니까? 이 시간 한번 가만히 하나님의 마음으로 들어가 봅시다. 여러분 렘브란트를 아십니까? 렘브란트는 빛과 어두움을 이용하여 명암처리를 하여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말년에 아내와 젊은 아들을 보내고 불행하고 쓸쓸한 노년에 자기 자신을 바라다보면서 수없이 많은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평생에 걸쳐 렘브란트는 자신의 얼굴에 골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초상화와 자신의 자화상을 합한 작품이 무려 70 여점이 됩니다. 이렇게 많은 초상화를 그린 작가는 미술사에 전례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자신을 그리는 일에 집착하였을까? 이 질문을 가지고 다시금 창세기로 들어가 봅시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닮은 사람을 만드시는 일에 몰두하셨을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내가 왜 사람을 만들었다고 직접 그 현장에서 말하지는 않으셨지만 창세기 1 장에 보면 그 단서가 숨겨져 있습니다. 온 우주와 사람을 창조하신 현장이 창세기 1 장입니다만 1 장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만드셨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씩하나씩 무엇을 만드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보기에 매끄러웠고 뭐 작품이 괜찮았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단지 눈의 끌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기에 좋으면 마음이 좋습니다. 한마디로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단지 자화자찬이 아닙니다. 이는 보시기에 좋도록 하기 위하여 만드신 것입니다. 굉장한 어떤 우주적인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장로교 신앙고백은 이를 한 마디로 말하기를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이뇨? 이 질문에 한 마디로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이다“고 한 마디로 말씀하는데 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기쁨과 같은 뜻입니다.


이를 우리 인생에 대입해 보면 보다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만드셨을까? 어찌 보면 굉장히 심오한 뜻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무척 단순합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존재케 하시고 모태에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내 태를 지으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로 하여금 즐거워하시려고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내가 인간의 눈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한 과정을 통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내가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에게 물어봐도 베드로에게 물어봐도 천사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은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창세기를 무척 많이 읽으셨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전에서 율법사들과 회동을 하면서 성경에 대해서 토론을 하셨다하니까 보통으로 성경을 많이 읽으신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창세기를 읽으시다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그 본질적인 핵심을 콱 뚫으셨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올림픽을 개최할 때도 거의 한국선수들 간에 대결입니다. 외국사람들은 경이적으로 양궁을 봅니다. 그 멀리서 쏘는 데도 정확하게 그 10 Cm 안되는 표적 안에 화살이 쏙 들어갑니다. 그래서 골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의 핵심 그 골드 자리를 꽉 쏘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라 그리하면 니 기쁨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느냐? 하나님께 즐거움을 안겨 드려라 그리하면 니가 얻을 즐거움이야 따 논 당상이다 그 말입니다. 마육삼삼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도 마육삼삼해지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육체가 삼삼해 지십니다. 하나님도 기쁨으로 넘치십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슨 해석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기쁨을 위해 만들었는데 그 자식이 이모저모로 자신을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면 하나님이 무엇인들 아깝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목적대로 이모저모로 알뜰살뜰하게 살고 있으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그에게 기쁨을 더해 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구하는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3 장 4 절 - 13 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3장 4절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3장 5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3장 6절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3장 7절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3장 8절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3장 9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3장 10절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3장 11절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3장 12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3장 13절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5절에서 18 절을 읽어봅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22장 16절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22장 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22장 18절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오직 자신의 뜻만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 장 5 절에서 11 절을 보면 2 장 5 절에서 8 절을 읽어보면 먼저 하늘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예수님의 삶을 말씀하고 있고 빌립보서 2 장 9 절에서 11 절은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더해주시는 것인가를 여실히 나타내 줍니다.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2장 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장 10절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하시고 2장 11절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항상 하늘 아버지의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항상 먼저 구하여야 합니다. 어떤 때는 하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지만 어떤 때는 모를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는 기도를 통해 물어보면 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많은 논과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 집에서 종으로 일한 사람에게 논을 일부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논은 바로 자기 논 옆에 있는 논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뭄이 왔습니다. 그러자 종은 일찍 물통을 지고 나갔습니다. 주인은 언덕 위에서 논이 타들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은 물지게를 지고 자기 논에다 먼저 물을 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부었습니다. 약간 멀리 떨어져 있는 언덕에 있었기에 아마도 종은 자기가 그곳에 있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종은 계속 물을 퍼서 자기 논에는 붇지 않고 주인인 자기 논에만 부었습니다. 그 장면을 말없이 지켜 본 주인은 나중에 종이 돌아오자 물었습니다. 아니, 너는 왜 니 논에도 물이 급할텐데 내 논에만 물을 부었느냐? 그러자 종은 멋쩍은 듯이 말했습니다. 항상 저에게는 주인님이 먼저이고 저 같은 것은 나중인뎁쇼. 그 주인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 종을 자신의 자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그 종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지극히 적은 일 자신의 논에 물을 먼저 대는 것을 보고 주인은 감명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과 신앙생활을 낱낱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무엇을 구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때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물어봐야 할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택시를 타고 가던 50 대 아주머니가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택시기사에게 묻습니다. “아저씨, 내가 어디로 가자고 했어요? 그러자 택시기사가 더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뒤를 돌아봅니다. ”아니, 아주머니, 언제 타셨어요?“ 우리는 정말 정신없이 하루를 삽니다. 오늘이 몇요일인지 오늘이 몇 일인지도 모르게 그저 정신없이 세월 흘러가는데로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우리는 하늘의 뜻을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습관적으로 그저 어제 그렇게 해왔듯이 그저 그렇게 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내 경험, 내 생각, 내 지식, 내 학식에 의존하여 나의 불타는 뜻을 이루려고는 하지만 내가 어떤 뜻을 이루려고 하는 순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내가 하려는 이 일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일까? 묻지 않고 정신없이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물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옛날 초등학교 때 병아리라는 동시가 있었습니다. 아동문학가인 강소천이 지은 시입니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우리는 자주 하늘을 쳐다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늘의 뜻과 일치할까? 만일 내가 이 일을 하게 되면 하늘이 얼굴을 찌뿌릴까? 아니면 하늘이 밝은 미소를 지을까? 우리는 시시각각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가 이렇게 결정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이 세대를 그저 본받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성경 로마서 12 장 2 절에 있는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찬송가 작시자로서 화니 크로스비는 무려 8000 여곡 이상의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작사했습니다. 불과 생후 6 주만에 시각장애자가 되었지만 크로스비는 한번도 그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사를 당신에게 주셨으면서도 시력을 주시지 않은 것이 섭섭합니다.” 한 목사가 크로스비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재빠르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한 가지 청원을 할 수 있었다면 시각장애자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지요” 왜 그런가요? 놀란 목사가 물었습니다. 크로스비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눈으로 처음 보고 기뻐하게 될 것이 천국에서 뵐 주님의 얼굴일테니까요.” 아마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대화에 끼어 들어 화니 크로스비의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기쁨을 구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내가 이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일본의 유명한 작가 삼포능자 여사는 원래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손님들을 위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가게에 물건을 준비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차츰 이 가게에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가게를 더 크게 확장하면서 손님들을 맞기에 분주하였다. 삼포능자 여사는 신바람이 나는 삶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분주하고 신나는 삶을 살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여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보 우리 장사가 매우 잘 돼서 참 좋은데 걱정거리가 있소, 우리 때문에 이웃의 가게들이 장사가 안되니 걱정이오, 그들도 함께 잘 되어야 할텐데….ꡓ남편의 이 한마디에 삼포능자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써 과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믿는 자로서 살아가야 할까? 깊이 생각하던 끝에 그녀는 그 날부터 일부러 일부물건을 받지 않고 이웃가게에 가도록 했습니다. 가게의 규모를 줄이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유 있는 시간에 글을 쓰게 되었고 그가 틈틈이 쓴 작품이 바로 빙점이라는 불후의 명작이다. 삼포능자 여사는 구멍가게를 하는 수입보다 더 많은 인세수입을 가지게 되었고 더 아름답게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셋째, 먼저 구할 것을 먼저 구하고 있을까? “먼저” 라는 말이 나옵니다. 먼저! 란 말은 가장 나중에 나오는 구하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문장의 구조상 “먼저 구할 것을 먼저 구하라” First things first. 먼저 할 것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 중에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엄청나게 잘 팔리고 많이 팔렸습니다. 그 책은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우리나라에도 그 분이 와서 기업체에서 많은 강연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얘기의 요지는 성공하는 사람은 습관이 있는데 꼭 먼저 할 것을 먼저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나중에 할 것을 먼저 하고 먼저 할 것을 나중에 하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이것은 시험해 보아도 좋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행복을 구해 보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구해 보십시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말라기 3 장 10 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를 바치고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부어주시는지 부어 주시지 않은지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록펠러가 그 사람입니다. 그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라기 3 장 10 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버는 것의 일달러라면 10 센트까지 쪼개어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사업에 하늘의 문을 열고 엄청나게 채워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그의 십일조를 계산하는 직원만 40 여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십일조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번 시험해 보실 일이 또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 보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행복과 기쁨을 구해 보십시오. 먼저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는 것을 구해 보십시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지 그렇지 않는지 한번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하나의 큰 원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그 보다 더 적은 원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한 걸음 한 걸음 날마다 걷는 발걸음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원 안을 향해 들어가는 발걸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이 있는 그곳을 향하여 가시어 마침내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너른 품에 안기시는 축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가 하늘의 뜻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구하는 이가 되도록 은총 베풀어주시옵소서. 내 뜻을 먼저 구하고 내 생각을 먼저 실천에 옮기기보다는 하늘의 뜻을 우선순위로 삼고 하나님의 즐거움을 먼저 구하는 영적 슬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뜻과 그의 의를 먼저 구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복을 다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나의 조그마한 이익을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익과 만족을 먼저 생각하는 대국적인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가나안 교회 모든 성도들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이 모든 것도 덤으로 받는 은총을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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