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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하는데로 내버려 두지 말라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11-26 (금) 15:22 13년전 7848  

1999 년 10 월 31 일 오후 1 시 반 한인제일감리교회

성서본문 : 창세기 3 장 1 - 6 절, 계시록 12 장 7 - 12 절

제 목 : 뱀이 하는데로 내버려 두지 말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고 오늘 밤은 누가 노래를 부른 것처럼 시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오늘 밤은 그냥 일찍 주무시지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향긋한 커피를 앞에 두고 밤을 새워 얘기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밤은 꼬마귀신들이 찾아와 “trick or treat" 할테니까 사탕을 밖에 나두고 위에다는 셀프 서비스라고 써 놓고서라도 시월의 마지막 밤은 얘기를 나누는 밤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저하고 Missionary Home에 함께 사는 어떤 목사님은 과연 미국의 호박귀신 할로윈 행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로윈 귀신과 진짜 귀신과 차이를 이렇게 얘기하였습니다. “할로윈 때 귀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그런 귀신들은 귀여운데가 있고 재미도 있지만 진짜 귀신은 귀엽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다. 진짜 귀신들은 1 년 365 일동안 가만히 어디에 쳐 박혀 있다가 할로윈 때만 나타나지 않는다. 진짜 귀신들은 절대 자신의 모습을 흉악하게 하거나 무슨 해골바가지를 쓰고 나타나지 않는다. 할로윈 귀신은 눈에 보이지만 귀신은 보이지 않은 실체로서 작용을 한다. 한가지 이렇게 할로윈 귀신들이 많이 돌아 다니는 것과 같이 진짜 귀신은 일년 365 일 미국 사회 전반을 돌아다니면서 활동하고 잇다는 것이 달르 뿐이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오늘 우리 현실 속에 할로윈 때 해골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귀신들이 어떻게 우리 시대를 움켜쥐고 설치고 있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게 되었는지를 말씀 속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계시록의 말씀을 다시 들어봅시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가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7 절 - 9 절) 이 본문을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에 나타난 사탄의 정체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구약 성서에서 나타난 사탄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욥기 1 장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구약성경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저 위 하늘의 화려한 세계에 홀로 계신 분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늘에 계시는 최고의 존재로서 하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무수한 천적인 존재들에 의해서 옹위되어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의 존재들이란 그룹들, 스랍들, 천사들이 있는데 보통 천사들이 있는가하면 가브리엘 미가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장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에 나타난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종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사탄은 어떤 이름이 아니라 하늘의 직함으로써 하나님의 충직한 종이요 천상의회의 한 회원이요, 하나님의 피조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열면 극적인 반대의 사실이 나타납니다. 사탄이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중심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 나타납니다. 왜 이런 변화가 있었을까? 신약성서학자 James Kallas 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변화는 신구약중간시대에 되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즉 구약성경이 쓰여졌고 아직 신약성경이 쓰여지기 전이 역사적으로는 약 450 년간의 공백이 있는데 바로 그 중간시대에 이 변화가 되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기원전 약 330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 위대한 사람이 우뚝 서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 보통 사람들 같으면 겨우 면도하는 방법이나 배우고 있을 연령에 장검을 차고 세계를 정복한 싸나이 중에 사나이입니다. 부하들은 마치 그를 신중에 하나라고 존경해 마지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알렉산더가 동방과 서방을 영토를 점령한 것은 땅을 차지하고자 함이 아니라 어떤 꿈, 환상, 고상한 목표를 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복음을 전파하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인간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아시다시피 알렉산더의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알렉산더가 어렸을 때 아르스토텔레스가 동굴 속에서 그를 가르쳤습니다. 스승은 자그마하게 피어 놓은 불에 물 한 그릇을 올려놓고 차가 그 안에서 대려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일어서며 알렉산더야! 나는 이제 알았다. 물그릇을 놓고 불을 때면 수증기가 올라가서 동굴 벽 위에 응결되어 무거워지면서 떨어진다. 이 넓은 자연세계에서도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이다. 이것이 뭘 의미하느냐? 사람이 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이 비를 나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비를 나리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예지와 지능을 개발하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스승에게서 하나의 꿈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의 거인이며 그의 두뇌 속에는 우주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환상입니다. 인간은 그래서 우주를 통솔하고 세계를 변형시키며 자기자신의 운명을 조성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꿈이었습니다. 그것이 알렉산더의 꿈이었고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복음이었으며 이 기가 막힌 놀라운 복음을 전 세계와 함께 나누어 가지고 싶었습니다. 스물 한 살에 세계를 정복하고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한탄하였던 알렉산더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 33 세였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자 그의 세계적 제국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결국 그 네 부분은 하나씩 독립된 제국이 되고 그의 부하 장성들이 각각 하나의 왕조를 이룩하였습니다. 유대인의 고향인 바로 오늘의 시리아 지역에서 권좌를 베풀었던 왕이 바로 안티오커스였고 안티오커스 4 세가 신구약 중간시대에 유대나라를 식민통치하였습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사람이 하나의 위대한 존재이며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죄우한다는 알렉산더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을 특히 자신이 식민통치하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그 인간의 복음을 심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멧세지를 듣고 완강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사람이 찬양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시오 그가 온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중심의 인간을 숭앙하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철학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배척하였습니다. 그러자 충돌이 왔습니다. 문명사로 말하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충돌입니다. 안티오커스는 “요것들! 있지도 않은 신을 믿고 의지하는 노예정신을 가진 이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겠다고 맘을 먹었습니다. 안티오커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납작하게 부숴 버렸습니다. 율법 읽기를 금지하고 율법책을 읽다가 발각이 되면 바로 창으로 찔러 죽여 버렸습니다. 또 안티오커스는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돼지피를 성전제단에 줄줄 흐르게 함으로 성소를 모독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의 눈알은 불로 지져버렸고 유대인으로 태어난 남자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데 할례받은 아기는 다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제사를 집전한 제사장은 곧 바로 목을 쳐서 죽이도록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공포의 밤을 겪는 동안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던 모든 것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자녀들인 우리가 무참하고 처참하게 당하게 내버려 두실까?” 고통과 고통 속에서 고민에 고민을 계속하였습니다. 안티오커스의 압도적이고 잔인무도한 폭행을 당하면서 도처에 정의가 빛을 보지 못한 채 짓밟히는 것을 볼 때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송두리채 흔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에게 보상하시고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렇게 믿었는데 그 반대가 진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끔직한 시대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배하시는 방도에 대한 개념을 하나씩 하나씩 재평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에는 사탄이 하느님의 뜻을 집행하는 종으로서 하느님을 대신하여 악한 자를 벌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해명할 길 없는 박해와 공명정대를 찾아볼 수 없는 악의 난무를 앞에 두고 유대인들은 하늘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고 확신을 가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즉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전에는 하나님의 종이었던 사탄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대의 유대인의 문학을 묵시문학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천상의회의 쿠테타, 사탄이 타락하는 모습이 중요기사로 나와 있습니다. 오늘의 계시록 본문은 바로 묵시문학의 유형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탄의 타락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 계시록 12 장 7 절에서 12 절입니다.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요컨데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은 것은 사탄이 타락하여 사람들 가운데 떨어져서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와 인간중심적 철학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도저히 설명할 길 없었던 유대인들의 고통을 그런 방식으로 해명하였습니다. 그래서 12 절에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 사는 자들아 즐거워하여라 그러나 너 땅과 바다야 네가 화를 입을 것이다 제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악마가 크게 노하여 너희에게 내려갔으니 말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당한 무시무시한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역사이고 그의 악한 대행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통해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악마의 가공할만한 실재를 받아들이고 무서운 침투력을 강조합니다. 신약성서는 사탄이 이 세상의 어두운 영으로 군림하며 현재의 이 어둠의 세계를 통치하는 자요, 현세를 지배하고 현세를 악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만들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에 떨어져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사탄과 그의 부하들을 멸하려 오셨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설교하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사탄의 통치가 이제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누가복음 11 장 20 절은 이를 잘 나타내 줍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주기도문도 그렇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말씀들을 계시록 12 장의 말씀과 연관시켜 보면 금방 그 뜻이 이해됩니다. 하늘에서 사탄이 쫓겨나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으니 이제 사탄이 쫓겨나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악의 패잔병들을 부수고 이 땅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온전한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몇몇의 패잔병들이 옛 사탄의 왕국의 복원을 꿈꾸고 부단히 잠 안자고 일하고 있는데 이를 사탄의 선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탄도 일합니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자신을 영역을 확장하고자 인간의 영혼 속에서 어떤 조직과 관념속에 스며들어 자신의 미션을 이루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오늘과 같은 개명천지에 무슨 사탄은 사탄!! 인간세상에 갈등과 모순이 확대되고 첨예화되니까 원인과 결과로서 그런 부조리가 나타나는 것이고 인간심리가 단지 그렇게 없는 것을 관념화시켜서 마치 사탄이란 인격적 실체가 있는 것으로 해명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영적 생활이나 정신적 삶 속에서 사회와 국제적 현실 속, 모든 부문에서 어떤 악한 인격체의 활동을 경험합니다. 오늘의 악마는 이렇게 인간을 타락시키는 일도 하지만 좀 더 굵직한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 옛날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속에 들어가듯이 히틀러나 뭇솔리니 속에 들어가서 어떤 나찌즘이나 파시즘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명을 죽인다든지 각 인종 속에 들어가 인종적 증오나 차별(racism)을 한다든지 청소년의 흔들리는 의식 중에 들어가 될대로 되라는 식의 사고를 만들어 총기난사를 한다든지 인간의 이기심으로 돈만 벌려는 공해산업 기업주의 마음 속에 들어가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한다든지 무기 만들어 내는 군수산업 속에 들어가 핵무기를 비롯한 한꺼번에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는 신종무기를 엄청나게 만들어 낸다든지 오늘도 사탄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보이지 않게 은밀히 역사하면서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타락시키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넘어뜨리고자 오늘도 잠을 자지 않고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탄은 큰 것에만 손을 대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인간 특히 하나님을 믿는 인간들에게 다가가 그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여러분 역시 잎새에 이는 바람과 같이 우리 마음을 흔들고 있는 악한 영의 실재를 모두가 한 두 번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악한 영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사탄의 모습의 가면을 쓰고?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가수가 부르는 노래 중에 “내일이면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사탄도 흉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1 장 14 절에는 사탄이 화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탄은 오늘날 교묘하게 인간의 정신 속에 파고들어 여러 가지 합리적이고 “make-sense"한 논리로 무장하고 화려한 언어의 옷을 입고 나타나 인간을 파멸시키되 철저히 박살냅니다. 사탄은 무엇보다 인간 속으로 들어와 인간의 영혼을 짓부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communication을 하는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켜 결국에는 사탄의 졸개로 만들고 사탄중심적인 인간을 만들어 결국 자신의 왕국을 만들고자 하는 심모원려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동화가 있습니다. “악마들의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악마들의 임무는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루지 못하게 훼방놓는 일이다. 이 마을의 무수한 악마 중에서 뻔질나게 인간세계를 드나드는 단골악마는 다음과 같다. 나태의 악마이다. 그는 처음부터 작은 것부터 사람을 유혹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게 하는 그리하여 천년만년 살게 될 것처럼 늘 몸이 편하자는 대로 따르게 만든다. 다음은 관습의 악마다. 대담하지 못하게 깨우침이 없이 어제하듯 오늘을 살게 한다. 그리고 일상에 젖어서 디스코나 고스톱이나 약이나 게임블링에 중독되게 만든다. 다음은 선심의 악마다. 한 일보다 나타냄이 약간만 높은 것, 간혹 재수좋다고 하게끔 공부보다는 시험점수가 약간 높고 복권도 500 원짜리가 5000 원짜리로 맞게 한다. 결국에는 행운만 쫓게 한다. 다음은 애욕의 악마이다, 욕정에 불붙게 만들어서 모든 예지를 눈멀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그쪽에 빼앗기게 만들어 버린다. 오늘도 이 악마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인간세계를 향해 들락거리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악마를 맞이해 있는지!!” 이것이 어느 작가의 동화얘기이지만 그러나 오늘의 우리의 리얼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탄의 최대 역점사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에 이르도록 하는 일입니다. 초월적인 것, 영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 무관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에도 무관심하게 하고 동료인간에도 무관심하게 하고 자연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위기가 초래되어도 무관심하게 합니다. 대신에 비본질적인 것, 세속적인 것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게 합니다. 요컨데 월급이 얼마나 오르느냐, 옷을 무슨 색으로 입어야 하느냐, 주식을 살 것이냐 팔 것이냐, 자동차를 camry로 할 것이냐 BMW 로 할 것이냐, 이번 주일에는 교회 가는 대신 큰 맘 먹고 라스베가스로 갈 것이냐 겸손하게 리노로 갈 것이냐 이런데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게 합니다. 사탄의 프로젝트는 결국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합니다. 악마들은 부단히 모여서 회의를 하여 저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거액을 들여 장학기금을 만들어 자신의 똘만이들을 가르치고 인재로 양성하며 이런 귀신들 저런 귀신들을 훈련시켜 악마에 의한 악마를 위한 악마의 왕국을 만드려고 졸지도 자지도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화가 있습니다. “악마들의 대학이 있다. 신설학과로 근래에 취업이 가장 잘되는 학과는 음란비디오과이고 개교이래로 인기가 변하지 않은 과는 술주정과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과는 마약과이다. 이 대학의 교양과목은 유혹이다. 유혹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간을 유혹할 때 다음 세 종류의 말을 쓴다. 1. 누구나 다 하는 일이쟎아 2. 대수롭지 않은 건데 뭘 3. 이번 한번만이야 가장 학점이 많은 과목은 미룸이다. 이 교과서의 표지에는 이런 부제목이 붙어 있다. - 네 낚시에 미룸의 미끼를 끼어라 그리하면 네 광주리는 차고 넘치리라” 학생들로부터 가장 인기가 좋은 교수는 천사중에서 최근에 전향해온 젊은 이론 교수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누누이 이른다. 첫째, 안개비에 젖는 줄 모르게 악도 서서히 젖어들게 하고 둘째, 쥐꼬리만한 명예를 주어 지극히 교만하게 할 것이며 셋째,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누릴 것처럼 생각게 하라 이 악마대학은 당신 마음 속에서 지금도 맹렬히 수업중이다. 눈을 감고 한번 참관해 보시도록“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Harvey Cox는 오늘 본문 창세기 3 장을 기초로 하여 “On not leaving it to the Snake" 란 책을 썼습니다. 번역을 하자면 ”뱀이 하는데로 내버려 두지 말라“입니다. 여기서 콕스는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받들어온 원죄교리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미래를 향한 인간의 책임성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하와가 에덴동산 숲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왜 저 선악과를 먹었느냐 추궁을 받자 저 뱀이 시켜서 따 먹었다고 뱀에게 책임을 떠 넘깁니다. 뱀이 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아담과 이브에게 공히 책임이 있습니다. 콕스에 의하면 이브의 근원적인 범죄행위는 신의 지고한 계명에 거역하며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그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이브가 그 열매 앞에 다가가기 전에 이미 뱀으로 하여금 먼저 인간 자신에게 무엇을 행하도록 한데 모든 죄가 시발된다고 하엿습니다. 그는 뱀이 활동하도록 내 버려 두었던 것이 인간 속에 악을 확대시키게 된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도 뱀은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뱀은 사람들이 유리 용기에 뱀을 집어 넣고 거기에 소주를 부어 한 1 - 2 년 있으면 마시는 생사탕의 원료가 되는 그런 뱀이 아닙니다. 태초 창세기에 나와서 요한 계시록에 까지 활동하고 있는 그 뱀입니다. 그 뱀은 신구약 시대만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 가운데서도 내밀하게 활동하여 사탄을 위한 사탄에 의한 사탄의 왕국을 만들기 위하여 부단히 선악과를 가지고 다니며 인간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뱀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속에 기어 들어와서 각종 유혹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못살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인간을 떼어놓는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뱀은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갈라놓습니다. 사탄이 인간과 자연사의의 관계를 갈라놓아 빚어진 것은 오늘날 생태학적 위기를 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질서를 인간으로 하여금 깨뜨리게 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결국 인간이 사는 생활환경을 망치게 합니다. 사탄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지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사탄은 제일 처음부터 사탄중심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중심적인 인간을 살살 옮기게 합니다. “너희는 인간이니까 인간중심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그 다음에 자기 중심적으로 옮기고 자기중심적에서 지극한 에고이스트를 만들고 그 다음그 다음에 사탄중심적으로 옮기게 합니다” 이슬비에 젖는지 모르게 인간의 삶을 옮기게 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전술이요 계략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영적 sense, sensibility 도 있어야 하겠지만 뱀이 이 땅에서 부단히 자기 왕국을 회복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악의 활동, 사탄의 역사, 귀신의 행동을 내 주변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뱀은 절대 흉칙한 모습으로 무슨 해골바가지를 쓰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뱀은 결코 어리석지 않습니다. 뱀은 그런 모습으로 다가가면 인간들이 멀리멀리 달아나 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잇습니다. 그래서 뱀은 립스틱 짙게 바르고 상당히 요즘 국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앙드레 김이 만든 듯한 고급 철학과 논리의 옷을 입고 나타나 인간을 근원적으로 타락시키고 하나님 곁에 다가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 옛날 창세기의 선악과 보다도 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하로윈 때 나눠주는 사탕보다도 더 맛있는 “뉴 선악과”를 가지고 여러분을 유혹합니다.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이 들어오기를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colorful 한 뱀들이 선악과로 사과잼을 만들고 선악과로 사과파이를 만들고 선악과 사과쥬스를 만들어가지고 와서 현대인 크리스천을 매너있게 무드있게 살짝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뱀은 인간에게 이기심과 이기주의를 자극하여 싸우게 하고 어떤 관념을 형성하여 사람을 죽이게 합니다. 사탄은 인간의 문명 속에 역사하여 인간의 문명으로 하여금 바벨탑을 쌓게 하고 인간의 문명을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인간중심적 르네쌍스를 이루려고 합니다. 인간 속에 역사하여 하나님 없이도 편안히 행복하게 쾌락을 누리며 잘 살 수 있다고 설교합니다. 사탄의 전도대상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사탄은 제일처음부터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제일 처음은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게 하고 신앙생활이 생활의 지극히 적은 일부분이 되게 하고 나중에는 신앙생활을 끊게 합니다. 어떤 때는 사탄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기독교인? o.k 예수님의 제자? no way!! 깨우침이 없는 예배? ok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Never, ever!! 그리고 부단히 우리를 유혹하여 결국은 하나님과 farewell party를 하게 합니다. 이선희가 부르는 10 월의 마지막 밤 가사에도 “눈물로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런 가사가 있지만 뱀은 우리를 하나님을 과거의 추억과 눈물의 회상 속에 남긴 채 하나님과 헤어지게 만듭니다. 우리 주변에 현실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 유혹자는 다른 뱀이 아니라 창세기 에덴동산에 나타났던 그 뱀이요 계시록에 나타난 그 뱀입니다. 그 유혹은 황홀하고 때로는 달콤하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그 유혹에 따라가면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로 가게 합니다. 뱀은 크게는 우리의 문명과 역사 속에 작게는 한 개인의 마음 속에 미묘한 흔들림으로 작용합니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려와 아름다운 여인, 어렸을 때예수님 주변에 가장 이쁜 처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으로 하여금 당장 십자가에 뛰어 내려와 살림 차리고 아이도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유혹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이미 십자가에 내려가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최후의 유혹을 이기고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결국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이렇게 끝까지 죽는 순간까지 이런 강한 유혹이 있었다는 것을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문학적 필치로 그려냈습니다. 우리에게도 뱀은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부단히 선악과를 들이밀며 먹어 보라고 합니다. 얘! 너는 너니까 너중심으로 살아라 니가 뭐가 부족하여 신에게 구걸하듯이 매달리냐 넌 인간으로서 자존심도 없냐? 하면서 인간중심이라는 선악과를 먹어보라고 합니다. 그 유혹의 충동은 너무도 강합니다. 하루에도 천사와 악마 사이를 스무 번도 더 오고가는 것이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뱀이 왜 저와 여러분에게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나타나 부단히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것처럼 매혹적이고 매력적이며 때로는 환상적인 suggestion을 하며 자신의 의사를 따라줄 것을 제안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부드럽게 유도하지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런 뱀들이 우리 주변에 우리 마음에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뱀이 원하는데로 하도록, 뱀이 하는 데로 내버려두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뱀이 하도록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도입니다. 기도는 곧바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뱀이 하도록 강요하는데 그것을 물리치는 힘을 얻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 수 있는 강한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어떤 일본인 지식인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인”이라는 책을 써서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일본이 경제적인 힘이 있으니까 이제는 미국에 대해서도 하이 하이하면서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노우!!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주시는 힘이 있으면 어떤 유혹이 와도 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실생활 속에서 사탄이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여러분을 유혹하면서 어떤 너른 길, 편한 길로 인도하려 할 때 단호히 NO!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제일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리 내 입맛과 취향에 비록 안맞는다고 해도 언제나 Yes!! 아멘!! 할렐루야!1이지만 사탄이 아무리 입맛에 당기는 제안을 한다고 해도 분명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저희 삶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뱀이 하는데로 내버려 두지 않도록 저희에게 뱀의 지혜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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