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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설교)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12-14 (화) 10:55 13년전 8738  

2002 년 1 월 20 일(주일) 오후 7:00 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4 장 1 절 - 2 절

제 목 :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은 고린도전서 4 장 1 절에서 2 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오늘 성경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 중에 일부분입니다. 고린도는 당시 로마제국의 중심 도시였으며 항구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이스와 로마문명이 발달한 지역이었습니다. 발달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온갖 인간중심적인 철학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헬라철학이 그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이든 하고자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린도 도시에는 각종 신을 섬기는 신전이 열두 개 이상 있었으며 거기에서 신전 창기들이 몸을 팔았습니다. 이방 신을 예배드리면서 그 예배의식 속에 신전을 섬기는 이들과 함께 하는 성행위가 신전 안에서 이루어졌고 고린도 전역은 극심한 성적 타락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인들은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헬라철학을 즐겼으며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난잡한 성행위를 즐겼습니다. 항구도시이므로 수시로 이방의 문화들이 들어오고 수시로 이방의 여러 신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혼합종교가 극심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고린도는 죄악이 편만한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가 이 도시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운 후 다시 에베소로 가서 3 년간 머물면서 거기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첫 번째 서신을 쓰게 되는데 바로 이 편지가 고린도전서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4 장 1 절에서부터 보십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이 말을 1 차적으로 해석하면 우선은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를 말합니다. 여기서 게바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말합니다. 아볼로는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 역할을 하였던 분이었으므로 생각하기를 목사나 사도를 말하는 것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그리스도께서 일을 주시는 자이므로 목사와 사도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일을 하는 모든 일꾼을 말합니다. 초대교회가 형성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형성이 되자마자 생긴 직분이 집사입니다. 초대교회의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신실한 일곱 집사를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과 함께 장로직분이 생겼고 장로는 목회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로 그 역할이 나누어졌습니다. 즉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일꾼 그룹이 생겼는데 이들이 교역자,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직분이 생긴 것입니다. 장로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일꾼들을 통칭하여 諸職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일꾼은 그리스도께서 시키신 일을 위해 목사로 장로로 집사로 권사로 부름받은 일꾼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왜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 했을까? 한 회사나 기업에서도 충성하는 자들은 승진을 시킵니다. 그런데 회사의 부장이 되고 이사가 되면 회사의 고급스런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맡은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의 사람인데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하나님의 계획도 모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그 깊고 깊은 뜻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구속의 비밀과 부활의 신비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속에 하나님의 큰 은혜와 경륜의 비밀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자에게 일을 맡기시고 자신의 비밀을 일꾼에게 일러주십니다.  

오늘 본문 2 절에 보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맡은 자란 누구입니까? 보통 교회 안에서 직분 맡은 자란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시어 목사로, 장로로, 집사와 권사로 교회 안에서 직분을 주시고 또한 교사로, 찬양인도자로 맡겨 주시어 맡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 직분은 엄밀하게는 자기가 임의로 맡은 자가 아닙니다. 내가 일을 맡겠다고 나서서 맡은 것이 아닙니다.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입니다. 주께서 일을 맡겨주시어 맡은 자입니다. 교회의 직분이란 내가 자발적으로 맡은 일이 아닙니다. 잠언 16 장 33 절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요나가 니느웨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가 가게 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좋고, 싫고" 제비를 뽑지만, 결국 작정하여 이루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일을 왜 맡게 되었습니까? 내가 일을 무척 잘하기 때문에 맡았습니까? 아니면 일을 잘할 수 있는 어떤 특기가 있어서 맡았습니까? 아닙니다. 에베소서 3 장 7 절에 보면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내가 일꾼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렇습니다. 전혀 예상을 하지 않았는데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교역을 하게 된 것은 전혀 제가 맡은 일이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 일을 맡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그저 일을 맡기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교역의 길이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고백은 없습니다만 언젠가 저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이 뜻이 무엇인가? 이는 맡은 자가 기도해야함을 말합니다. 구한다는 것은 기도한다 그 말입니다. 맡은 자는 그 맡은 일을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구하면서 해야 합니다. 맡은 자가 지 맘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맡은 자는 自行自之해서는 안됩니다. 맡은 자는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내 습관대로 내가 늘 하던 대로 내 철학대로 내 경험의 법칙에 따라 내 두뇌가 시키는 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항상 여쭤보고 하나님께 지혜를 얻어 하나님께 구하면서 해야 함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항상 주인의 뜻을 물어서 기도하면서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100 개를 하는 것보다는 기도하면서 한 개 하는 것을 주님은 더 칭찬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으로부터 일을 맡았을 때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 수시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기가 주인으로부터 맡은 사명을 100 % 완수해 냅니다. 맡은 자는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구하지 않으면 맡은 일을 잘 해 낼 수 없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저를 가르친 정태기 교수님이 쓴 책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정태기 목사님이 주일학교를 맡았는데 아이들이 계속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미국의 한 교회를 배우고자 찾아갔습니다. 잠시 정태기 목사님이 적어놓으신 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나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태워 나르는 예의 그 미국교회의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에서 천안만큼이나 먼 곳이었다. 나는 그 교회의 목회자를 찾아가 물었다. <한국에서 주일학교의 성공비결을 배우러 왔습니다>, <허, 죄송하지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군요. 저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제니라는 여자 선생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러나 주일 학교가 가장 바쁜 주일인지라 그녀를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쪽지를 보내면서 기다렸다. 저녁 6 시가 되어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노오란 전등빛 아래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고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그녀가 드럼통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뚱뚱했던 것이다. 그녀가 가까이 왔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너무나 못생긴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고이장히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린 순간이었다. 무엇이 저 여인에게 8 명의 아이들을 3 만 3 천명으로 늘려 놓게 했을까? 순간 의심이 생겼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녀에게 아이들 교육에 대한 비법을 물었다. 대답 대신 그녀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미스터 정, 나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못생겨서 놀랐지요?”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에 나는 별로 대답을 안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번번히 살아나긴 했지만... 한번은 약을 먹고 누워 있는데 잠들어 있는 줄 알고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소곤거리시는 거예요, 여보 제니가 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실력이 없어서 지역 야간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우연히 성경공부 모임에 들게 되었다. 성경공부 회원들이 영육이 다 병들어 버린 그녀를 끌어들여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6개월동안 12 명의 기도그룹이 제니 하나를 두고 최선을 다하여 기도해 주었다. 그때 제니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 잡았다. 신바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마침내 새 세계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녀는 교회에서 교사로서 직분을 맡아 8명의 유치부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치부 아이들은 자신의 선생이 얼마나 예쁘고 미운가를 따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가르치는 제니에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따랐다. 제니는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니는 너무나 사랑스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다. 간단한 기도였다. <하나님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어떠헥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이들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아침에 눈을 떠서도 똑같이 기도했다. 3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문득문득 번개처럼 기발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주일학교를 잘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없어요. 기도한 지 4 년째 되면서부터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대로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요> 제니 선생은 직분을 받아 꾸준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 직분을 잘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서 충성이란 한 마디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의 뜻을 지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는 그 일을 내 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면서 그 일을 함이 바로 충성입니다. 성경에 보면 충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남보다도 훨씬 뛰어난 충성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7 장 2 절에 보면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게 뛰어난 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충성을 하되 남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충성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 뉴스메이커라는 주간잡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있는 남성을 뽑았는데 첫 번째가 정몽준이었고 두 번째가 장세동이었습니다. 선정한 이유를 보면 비록 장세동이 살인마 전두환에게 충성했지만 전두환을 따랐던 사람들이 전두환을 버리고 떠났지만 장세동만은 끝까지 전두환을 옹호하고 옥에 가서도 그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 선정한 이유였습니다. 권세가 있을 때 충성하기란 쉽습니다만 권세를 상실했을 때 그의 충성은 마치 군계일학과 같이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선한 일에 충성하라고 합니다. 디도서 2 장 10 절에 "떼어 먹지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충성을 해도 악한 자들에게 충성을 해서는 안됩니다. 누구에게 충성을 하느냐?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직 선한 일에 충성을 하고 선하신 주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성경 느헤미야에 나오는 하나냐는 하나님을 경외함과 충성함에 있어 마치 많은 닭들 가운데 학과 같이 뛰어난 이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다르게 충성을 할 때 그를 알아보시고 그를 칭찬하십니다. 두 번째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 장 21 절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우리는 큰 일을 하는데는 서로 나서서 일하기를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곳에서 자원하여 일하나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이나 일을 해도 별로 표도 나지 않은 일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적은 일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라면 마치 주께 하듯 충성하는 자를 하나님은 유심히 지켜보시고 그를 들어 더 큰 일을 맡기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충성에 대한 또 하나의 교훈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2 장 10 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죽도록 충성하고 있는지 제 자신을 생각해 볼 때 죽도록 충성하고 있지 못합니다. 

성경에 충성하는 자에게 약속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충성하는 자를 보고 너의 나에 대한 충성은 당연한 것이니 의무를 잘 이행해야할 것이라고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충성한 자에게 응분의 보상을 받을 것임을 말씀합니다. 충성한 자에게 주시는 첫 번째 상은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합니다. 시편 101 편 6 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두루 살피시며 자신을 위해 충성하는 자를 살피시고 그를 하나님 자신과 함께 거하게 하는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임마누엘하시면 그는 그 순간에서부터 복을 쌓을 곳이 없게 됩니다. 잠언 28 장 20 절은 다시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리라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두 번째의 복은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에 참예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5 장 23 절을 봅시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잔치라고 했습니다만 그 잔치는 세상의 잔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충성된 자에게는 그 즐거움의 잔치에 초대장을 주시겠다는 복된 말씀입니다. 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세 번째의 복은 좋은 직분을 맡겨주심입니다. 디모데전서 1 장 12 절에 보십시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제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충성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고 더큰 직분을 맡겨주십니다. 지미 카터씨는 거의 한번도 빼먹지 않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그러자 그 명성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카터 대통령이 주일학교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육현장을 지켜보고 끝나면 대통령이었을 때는 카터 대통령과 함께 지금은 전직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함께 찍는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 초반,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작은 삼류호텔에 자정이 지난 시간에 늙은 부부가 찾아와 "유숙할 곳을 찾으려고 시내를 헤매다 보니 밤도 깊었고 몸도 지쳤으니 쉬어 갈 곳을 좀 마련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지배인은 그 노부부를 한참 바라보다가 빈방은 없지만 자신이 야근하는 동안에 비어 있는 자신의 방을 내드렸습니다. "복 받으세요, 젊은이"하면서 그 부부는 그 방에서 쉬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지배인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누추한 방에나마 편히 쉬셨기를 바라면서 찾아와 인사하는 지배인에게 늙은 부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여관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오, 뉴욕에 내가 아름답고 호화로운 큰 호텔을 짓고 당신을 그 총지배인으로 삼고 싶은데 어떻소?" 지배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 주려는 농담으로 알고 어물어물하며 좋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노인은 "자신은 뉴욕에 47층 건물에 1,900 객실이 있는 호텔을 짓는 '존 아스토르라'이다"라고 소개했다. 그 지배인은 얼마 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왈돌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총지배인이 되었습니다. 그 지배인은 작은 삼류호텔에서 자기 직분에 충성스럽게 하는 자였는데 그는 세계적인 호텔의 총지배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직분을 주실 때 처음부터 큰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적은 일부터 맡겨 보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하는가를 조용히 지켜보십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기도하면서 직분을 정하고 드렸습니다만 어떤 분은 직분을 줄 때 아멘하고 감사합니다!! 바로 받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는 아이고!! 아직도 저는 믿음의 분량이 못됩니다 하고 점잖게 사양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점잖게 사양하는 분은 모르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멘 제게 직분 주시니 감사합니다” 바로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의 은총과 복이 바로 그 사람의 자세에서부터 시작하여 쏟아지게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앞으로 볼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맡은 자가 충성되이 일을 감당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일, 구속사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더욱 큰 일을 맡겨주신다든지 아니면 나중에 하늘나라의 천군천사의 직분을 주시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하늘의 사자로 쓰기도 할 것이며 어떤 이는 천군으로 쓰시기도 할 것이며 어떤 이는 하늘의 문지기로 쓰시기도 할 것이며 어떤 이는 하나님의 기록책을 쓰는 직분을 맡을 것이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상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그 상의 내용을 우리는 이루 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자 세 사람을 보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불러 세상에 보내주시는 사자로도 간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주시는 복은 무궁무진합니다. 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네 번째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꼭 저 하늘나라에서만 받는 상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받습니다. 충성하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습니다. 이는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천금같이 소중히 하면 하나님의 상과 복은 그 직분을 통해서 굴러 들어오고 흘러 들어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계시록 2 장 10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2002 년 한 해 하나님께서 가나안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형식상으로는 교역자가 준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교역자가 준 것이 아닙니다. 교역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직분을 소중히 여기고 명예롭게 여기며 영광스럽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2002 년 월드컵으로 인해 들려오는 소식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들은 “거스 히딩크”라는 네델란드 사람인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선 실력이 뛰어 나야 합니다. 실력이 뒤쳐지면 어느 새인가 베스트 일레븐의 명단에서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휴가를 주었을 때도 선수들은 그저 쉬지 아니하고 자신의 몸을 가다듬고 개인훈련을 많이 하는데 사용하여 언제든지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도록 자신을 연마해 놓습니다. 우리 인생 하나님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직분을 주시고 우리 삶을 눈여겨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총으로 직분을 맡기시고 내가 그 직분을 잘 감당하는가 맡긴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충성하면서 감당하는가 아니면 그저 그렇게 대충 적당히 하고 있는가를 지금도 눈여겨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불꽃같아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가 아니면 교회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서 그저 땜질하듯이 간신히 턱걸이하듯이 하는가를 눈여겨보고 계십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세상의 어떤 직책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고 영광스럽게 여기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여 주신 일이니 그것이 세상적으로는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미하게 보인다하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으로 주께 하듯이 맡은 일에 충성하시어 이미 하나님께서 일을 맡길 때 직분 속에 예비해 놓으시고 감추어 놓았던 복과 은혜를 남김없이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시어 저희에게 귀한 일을 맡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통해서 맡은 자들이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사오니 저희가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맡겨진 일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기도의 영을 내려 주시어 늘 주님과 교제하면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늘 주님으로부터 힘과 지혜를 얻어 주님 일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일꾼으로 삼아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더욱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옵고 저희가 주님의 일을 하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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