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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첫 결실을 좋아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12-14 (화) 11:11 13년전 2494  

2002 년 7 월 7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출애급기 23 장 14 절 - 19 절

제 목 : 첫 결실을 좋아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 성도 여러분 위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왜 지킵니까? 성경에서 지키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킵니다. 성경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출애급기 23 장 16 절 상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오늘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새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들도 이 맥추절을 지켜야 하겠는데 맥추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지킬 것 아닙니까? 이 시간 맥추절에 대한 집중분석을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성도들은 “맥추절이란 일년 중에 한번 있는데 그때 맥추감사주일 헌금을 바치는 날이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추수감사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데 맥추감사절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맥추감사절에 대해서 다섯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면서 맥추감사절의 의미와 뜻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 23 장 14 절에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3 대 절기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3 대 절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설날, 추석, 광복절입니다. 설날과 추석은 그저 가족을 만나서 노는 날로 인식하고 광복절은 역사적인 의미는 이제 퇴색하여 그저 쉬는 날로 보낼 때가 많습니다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히 그 절기가 지닌 뜻을 오늘에 되살려 자녀들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날로 삼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우리의 8.15 광복절과 그 의미가 같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면서 지킨 절기입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칠일간 누룩 없는 빵을 먹과 쓴나물을 먹으면서 지냅니다. 오늘 본문 23 장 15 절에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고 합니다만 바로 그것이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유월절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 영국에 있었을 때 이스라엘 친구가 주어서 무교병을 먹어보았는데 맛이 없어서 그 친구한테 별로 맛이 없다고 했더니 원래 무교병은 맛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의 축제에 왜 그런 맛이 없는 것을 먹었을까요? 과거에 자신들의 조상이 출애급할 때 언제 발효시킬 여유가 없이 급히 이것을 먹고 나온 것이어서 매년 한차례씩 그것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기념일이 되면 반공단체에서 주관하여 6.25 당시에 먹었던 “주먹밥 먹기운동”을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상기하자 6.25” 즉 그 당시를 상기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누룩없는 빵과 쓴나물을 먹되 급히 먹으면서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자녀들아, 우리 조상들이 이런 빵을 먹으면서 애굽의 억압에서 벗어났단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가르치면서 절기를 지킵니다. 두 번째는 초막절입니다. 이는 수장절, 장막절이라고 합니다. 이 절기 역시 1 주일 동안 지키는데 가족들과 함께 나가서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지냅니다. 그런데 그저 텐트를 치고 노는 것이 아니라 그 텐트 안에서 자녀들을 가르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광야에서 40 년 동안 텐트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지냈단다고 하면서 현장실물교육이면서 생생한 현장교육인 셈입니다. 첫째 아이가 미국에서 윌라드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실제 어린아이 크기의 인형을 가져왔습니다. 그 아이인형은 특수장치가 되어 있어서 만일 1 시간마다 우유를 주지 않으면 무척 서럽게 그리고 시끄럽게 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유통과 같이 생긴 것을 물려주면 그제야 멈춥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안아주지 않으면 아이가 또 시끄럽게 울게 되어 있습니다.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큰 소리로 웁니다. 바로 그 전자장치가 되어 있는 아이를 일주일 동안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인데 만일 청소년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를 니가 책임지고 보아야 한다는 어떤 간접실물교육인 셈입니다. 아이는 일주일 동안 전자인형 애기를 보면서 아이고! 일순간의 쾌락이 평생 고통으로 가겠구나!하는 어떤 뼈저린 경험을 하면서 책임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육적인 의도입니다. 이스라엘의 교육도 현장실물교육입니다. 광야에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는데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도 없었는데, 그리고 외적이 쳐들어와서 어찌할 줄을 몰랐는데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움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를 하나하나 가르쳐 줍니다. 먹을 것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주셨단다 하면서 그 날은 메추라기를 잡아서 탕을 해먹고 마실 것이 없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셨단다 하면서 생수를 자녀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교육시킵니다. 초막절은 우리로 말하면 감사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어떻게 풍성하게 은혜를 나리어 주셨는가를 알게 하고 감사케 하는 감사절기인 셈입니다.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는 전혀 추수할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만나를 추수하게 해주시고 메추라기를 추수하게 해주신 추수감사절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세 번째 절기가 바로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첫 보리를 수확하여 얻은 결실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이 바로 감사절이듯이 이 맥추절도 일종의 감사절입니다. 이 시간에는 맥추절에 대하여 좀더 집중 분석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둘째, 그런데 오늘 본문엣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는 때가 조금 이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급기인데 어떻게 광야에서 맥추감사절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라!, 초막절을 지키라!는 것은 이해가 되겠는데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은 출애급기입니다. 출애급기는 이스라엘이 억압을 받던 애급에서 빠져나와 광야에서 텐트생활을 하고 있을 때인데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데로 이리저리 이동하고 다니는데 언제 한가롭게 씨를 뿌려 언제 기다려 보리를 수확하여 하나님께 보리추수 감사를 드리겠습니까? 그리고 물도 없는 광야에서 보리씨앗을 뿌린 들 보리가 자라나겠습니까? 그에 대한 해결의 열쇠가 바로 뒤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 23 장 20 절에 봅시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신데 여기서 내가 예비한 곳이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풀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곧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르게 하리니 거기서 너희가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게 되면 그 결실을 허락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그 첫 열매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바치라는 그 뜻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을 때는 그저 종으로서 노예와 같이 일을 하면 애급의 주인들이 주는 것을 먹으면서 살아왔고 광야로 나왔을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식물을 얻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면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 토지도 무척 비옥할 것인즉 바로 거기에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게 되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그것을 바로 맥추감사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셋째, 맥추절에는 여러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들의 유래는 무엇입니까? 맥추감사절은 여러 이름으로도 불리어 집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성경에는 언급되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맥추감사절”로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을 初實節이라고도 합니다. 초실이란 처음 初 자에 열매 實 자 해서 처음 익은 열매를 감사하여 드리는 절기라 그 말입니다. 오늘 본문 16 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또 19 절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그리고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오늘이 우연히도 칠월 칠일입니다만 칠칠절이란 이는 보리를 수확하여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첫 날부터 칠주간 즉 칠칠 사십구일 동안의 시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첫 열매가 맺혀지는 때가 어느 밭이나 일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밭은 상당히 일찍 열매가 맺혀지고 어떤 밭은 상당히 나중에 결실이 맺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매가 맺혀지는 기간 칠 곱하기 칠은 49 일입니다. 이 기간 중에 자유롭게 자원하여 첫 열매가 맺혀지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치라 그 말입니다. 또한 무교절이 끝난 뒤로부터 칠칠 사십구일이 지난 후인 50 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라고 하여 칠칠절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습니다. 넷째, 맥추절은 초실절이라는 이름을 지녔습니다만 왜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라 하였을까요?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는 처음 것을 애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유난히도 유독히도 처음 난 것을 좋아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 난 것을 좋아하실까요? 이것은 인간의 경우에 비추어 보아도 맞는 말씀 같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려고 하는데 큼직한 무화과 한 개가 접시에 담겨 있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우리 교회 무화과나무에 열린 첫 열매라고 하여 목사님께 드린다고 가져온 것입니다. 어렸을 때 원주에 살 때 형광등이 있었는데 어느 부분을 만지면 전기가 통하여 깜짝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손을 그 부분에 가져다 대면 온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한번 시껍한 경험을 했으면 그만 만져봐야 하는데 조금 있다가 또 만져보고 온 몸 전체가 부르르 떨리는 경험을 했는데 그 떨리는 경험이 좋아 그 이후에도 몇 번 더해 보았습니다. 새벽기도를 인도하려고 하는데 무화과 한 개가 접시에 담겨 있고 그것이 첫 번째 맺어지는 열매이고 바로 그것을 부족한 목사도 주의 종이라고 가져다 놓았을 때 어렸을 때 형광등의 전기를 만졌을 때보다도 더 강하게 제 가슴을 부르르 떨리게 했습니다. 감동의 파도가 몰려 온 것이죠! 저는 그것을 바로 먹을 수 없어서 매일 새벽제단에 반주하러 멀리서 나오신 이정자 권사님께 드렸습니다만 극구 사양하면서 목사님이 드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것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첫 열매이니까 우리 주님께 드려야지!! 해서 무화과가 담긴 접시를 제단 한 가운데 놓아두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께서 복내려 주신 이 교회 가나안 동산 가운데 열린 무화과 첫 결실이 맺었었습니다. 이 시간 주께 바치오니 주께서 흠향하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였고 주일 예배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 성가대는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라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고 제 마음 속에 깊은 감격의 파도가 몰려 왔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 찬양을 통해 영광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께서 열납하셨을 첫 결실을 하나님께 감동을 드린 찬양대에 지휘자인 김채수 집사님께 드린 것입니다. 제가 무화과 나무의 첫 결실을 받았을 때 감동이 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첫 결실을 받으셨을 때 분명 그 맘속에 감동의 전류가 파동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 번 째 것을 무척 좋아하십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장자를 좋아하시고 장자축복권을 주시고 짐승도 첫 번째 낳은 것을 기쁘게 받으시며 시간도 아침에 첫 부분을 성별하여 드리는 새벽제단에서 드리는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곡식도 그렇습니다. 곡식 중에서도 첫 번째 결실한 것을 즐겨하시고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하여 광야에 있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씨를 뿌려 거두게 도리 것을 미리 상정하여 첫 열매를 나에게 달라고 하신 것이니 그 얼마나 첫 번째 것을 좋아하시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맥추감사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는 예전에 농사를 짓는 이들이 함께 부르는 “농가월령가”가 있습니다. 한 해 동안 힘써야 할 농사일과 철마다 알아두어야 할 풍속 및 예의 범절 등을 월령체로 기록한 작품입니다. 그 중에서 보리베기를 하고 난 다음에 6 월 중에 부르는 노래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5월이라 중하(仲夏)되니(여기서 오월은 음력 오월입니다) / 망종(芒種) 하지(夏至) 절기로다/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 빛이/ 밤 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打麥場) 하오리다/ 드는 낫 베어다가/ 단단히 헤쳐놓고/ 도리깨 마주서서/ 짓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 하던 집안/ 졸연히 흥성하다/ 담석(石)에 남은 곡식/ 하마 거의 진(盡)하리니/ 중간에 이 곡식이/ 신구생계(新舊生計)하겠구나/ 이 곡식 아니러면/ 여름농사 어찌할꼬/ 천심을 생각하니/ 은혜도 망극하다 ('농가월령가의 5월조에서). 이 월령가 마지막 부분에 보면 보리농사를 거둔 것을 다른 무엇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천심 즉 하늘의 마음에서 찾으면서 은혜도 망극하다고 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맥추감사의 노래입니다. 성도들에 따라 맥추감사절을 지내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 이는 추수감사절 한번 헌금내면 되었지 또 무슨 맥추감사절이란 것이 있어서 또 헌금을 내야한다는 말인가!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이나 그것이 그것인데 둘을 통합하여 한번에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맥추감사절의 의미는 모른 채 그저 관례적으로 감사헌금 봉투에 헌금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육이오 때 보리밥 먹은 것이 신물이 나서 보리쌀 석은 밥은 아예 먹지를 않는데 그리고 내가 무슨 보리를 추수한 것도 아니고 도시에 있다보니 보리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맥추감사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맥추감사주일이 칠월 첫째주일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일년을 반으로 쪼개어 지나온 절반 육개월 동안 쏟아지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앞으로 남은 육개월 동안 쏟아지게 베풀어주실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로 삼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기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맥추감사주일이 초실절이라 듣고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 첫 결실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는 자신의 아들이 취직을 하여 첫 월급을 받아온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동안 자식을 은혜로 사랑으로 키워주신 것을 생각하며 그 월급봉투채로 제단에 바친 어머니도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을 똑같이 여기실까요? 성경의 대답은 “오! 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베풀어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들을 감사하는 사람들과 결코 똑같이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도 그저 물에 새기어 금방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시편 50 편 22 절과 23 절을 봅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다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마저도 잊어버리고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십니다. 괘씸하게 여기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찢어버리십니다. 은혜만 낼름낼름 받아먹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은 그 가정을 찢으시고 그 사업을 찢으시고 그 마음과 영혼을 찢으시고 그 인생과 그 미래를 찢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이 찢으시는데 누가 말길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에는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단 한 순간에 돌 하나에 돌 하나가 남기지 않을 만큼 찢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23 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즉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이 똑같이 취급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여 첫 열매를 바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그 인생을 가만 두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첫 결실을 바치는 자를 “응, 쟤가 첫 열매를 바치는 갑다“ 단지 그렇게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소산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자를 무심코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그럼 어떻게 하십니까? 성경을 봅시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언 3 장 8 절에서 9 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실을 맺어주심을 감사하면서 첫 결실이 맺어지자 마자 하나님께 바치는 자를 하나님은 그 사람의 창고를 하늘의 은총으로 가득히 채워주시고 그 인생의 잔을 포도즙으로 넘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맥추절, 초실절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내려주시는가가 출애급기 34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급기 34 장 22 절에 보면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엔 수장절을 지키라“ 명령하고 그렇게 지키는 사람이 받을 복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그 다음 다음절인 24 절상반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어떤 복입니까?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내가 넓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넓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는 이에게 인생의 대적들을 쫓아내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인생의 지경을 넓혀주시겠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확장케 해주시고 부흥케 하시고 발전케 하시고 창대케 하시고 흥왕케 해주시겠다는 은혜로운 약속입니다.  

맥추감사는 하나님께서 내 지경을 넓혀주시고 내 창고가 가득 넘치고 포도즙으로 가득 넘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 뿐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조용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과연 그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첫 결실이 무엇인지 조용히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바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명하신대로 오늘 맥추감사절기로 지켰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나리어 주신 것을 어찌 저희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 저희에게 거두게 하신 첫 결실을 감사드리며 주님께 예물을 바치옵니다. 저희의 인생이 감사드리는 삶이 되게 하시고 저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쳐지는 봉헌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도 풍성하게 내리시옵고 감사도 풍성하게 드리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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