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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7-20 (화) 22:35 13년전 25963  
 

2005 년 1 월 1 일(주일) 오전 8 시, 11 시 주일낮 신년감사예배 강진읍교회


성경본문 : 창세기 28 장 16 절 - 22 절   

제       목 : 야곱의 축복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신년감사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나아온 성도 여러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주인 야곱의 일대기는 창세기 25 장에서 49 장에 이르기까지 25 장에 이르러 나옵니다. 창세기가 50 장이라면 성경은 한 개인의 이야기, 야곱의 일대기를 창세기의 절반에 이르는 장에 배려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상하게도 야곱은 그 성격이나 그 하는 행동에 비해서는 약간 고개가 기웃거릴 정도로 하늘의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선 그가 받았던 은총과 복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의 첫째 축복은 아내의 축복입니다. 야곱은 아내가 넷이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가 레아요 두 번 째 아내가 라헬이며 세 번 째와 네 번 째가 빌하와 실바였습니다. 오늘날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입니다만 고대에는 아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부와 축복의 상징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의 둘째 축복은 자식들의 축복입니다. 야곱은 네 아내에게서 열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한마디로 多産의 축복입니다. 고대사회에는 자식들은 노동력과 전투력과 비례되었고 노동력이야말로 부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자식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축복이었습니다. 열두 아들들은 나중에 이스라엘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열두 지파가 됩니다.


야곱의 셋째 축복은 소유와 재산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30 장 42 절에서 43 절을 보겠습니다.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리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여기서 보면 야곱은 매우 번창하여 양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허벌나게 많았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는 어린양 새끼 한 마리도 없었는데 14 년이 지난 다음에는 이제 거부가 된 것입니다.


야곱의 넷째 축복은 장자권의 축복입니다. 야곱은 둘째 아들로 태어낫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른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지만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아 원래로 하면 아브라함-이삭-에서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져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큽니까? 가문의 영광이 아닙니까? 나중에 성경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문에서 다윗도 나고 솔로몬과 열왕들이 나고 또한 그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도 나시지 않습니까?


야곱의 다섯째 축복은 위험에서 면케 되는 축복입니다. 야곱은 광야와 타향살이를 전전하면서 수많은 위험에 연약하게 노출되어 있었으나 한 번도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장자권을 빼앗은 댓가로 형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위험에서 벗어나 오히려 형이 아우를 껴안아주고 지켜 주었습니다.


야곱의 여섯째 축복은 자식들 중에 하나가 대제국의 총리대신이 되는 축복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도 없었고 애굽은 대제국이었는데 그 제국의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야곱의 일곱 번 째 축복은 하나님과 천사들을 수시로 뵈옵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8 장에서 야곱은 꿈에 하늘의 사닥다리를 보았고 그 사닥다리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2 장에서도 야곱은 천사와 만나 씨름을 하고 하나님을 만나 뵈옵니다.

야곱의 여덟 번 째 축복은 이름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 이름은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국호가 됩니다.


야곱은 이와 같이 팔복을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은 한두 가지를 한꺼번에 누리는 것도 힘든데 야곱은 그 인생여정 동안에 동시에 여덟 가지 복을 다 받은 것입니다. 팔방미인이 아닌 팔방복인이 된 것입니다. 한번 묻고 가겠습니다. 야곱의 축복이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야곱을 팔복을 주어 축복하신 것입니다. 무엇인가 결과가 있다면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어떤 요인이 있어 야곱에게 축복이 쏟아지게 부어주셨을까요? 물론 은총의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어 복을 내려 주시기로 하신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습니다. 굳이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삭이 아들 야곱에게 축복한 것이 있습니다만 아버지 이삭이 늙고 병들어 야곱을 에서로 잘못 알고 축복한 것이기에 그것이 큰 이유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축복을 받은 야곱 자신에게서의 이유는 없었을까요?


성경 창세기 25 장에서 49 장에 나와 있는 야곱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야곱이 축복받을 이유보다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야단을 맞을 요소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야곱이 야단을 맞을 요소들을 볼까요? 야곱은 형을 속였습니다. 형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왔을 때 붉은 팥죽을 끓여서 형이 가지고 있는 장자권과 슬쩍 바꾸어 버렸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얼마나 하겠습니까? 가장 맛있는 팥죽 한 그릇이 3000 원에서 4000 원 정도 할 것입니다. 자! 만일 과거의 것을 오늘날 팔 수 있다고 합시다. 만약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소더비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의 가문의 장자권을 경매에 부쳤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할 것 같습니까? 에서는 그 가치를 모르고 3000 원 정도에 팔아 넘겼지만 아마 3000 억원 주고도 그것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에서가 만일 지혜롭게 대처하여 팔지 않았다면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아닌 아브라함 이삭 에서로 되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가치를 수천억원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팥죽과 장자권은 같은 가격으로 도무지 교환될 수 없는 것을 야곱은 사기쳐서 어떻게 보면 장자권을 횡령하여 자기의 것으로 한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은 에서로 분장하여 아버지가 장자에게 축복하는 그 축복을 스리슬쩍 가로챘습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삼촌의 가축들 중 튼튼하고 강한 것만을 자기의 것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의 집에서 모든 재산과 재물을 모아가지고 야반에 도주하다가 결국 외삼촌에게 잡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일체라고 야곱의 부인인 라헬은 아버지의 우상인 드라빔을 슬쩍하였습니다. 참으로 인간적으로 보면 야곱은 무척 문제가 많았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못된 놈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오히려 에서가 더 양반이고 에서가 동생 야곱을 용서했으니 더 복을 받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에서는 성경에서 그 이름이 나중에 없어지는데 반해 야곱은 성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다윗에 이르는 영광의 가문과 예수님에 이르는 족보에도 나와 있습니다.


글쎄 무엇이 야곱이 축복을 받는 요인이 되었을까요? 성경 창세기를 유심히 뜯어보면 야곱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생활은 유랑생활이었고 방랑생활이었습니다만 야곱은 어디를 가든지 가는 데마다 단을 잘 쌓았습니다. 단을 쌓았다함은 구약성경으로서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렸다함이요 신약성경으로 말하자면 예배를 잘 드렸다함입니다. 정말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 네 번 단을 쌓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꼭 야곱이 네 번만 단을 쌓았다기 보다는 옮겨가는 대표적인 지역에서 단을 쌓았으므로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 수도 없이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야곱이 쌓았던 첫 번째 단은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다가 단을 쌓앗습니다. 창세기 28 장 18 절에서 19 절입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은 자신이 하란으로 가는 길 첫 야영지에서 새벽제단을 쌓았습니다.


야곱이 쌓았던 두 번 째 단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 세겜에 이르러서 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33 장 18 절과 20 절입니다. 먼저 18 절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20 절입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야곱은 자신이 가는 중요한 지점마다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은 갈르렛 미스바에서도 제단을 쌓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쌓았던 세 번 째 단
은 다시금 베델로 돌아가 쌓은 단입니다.  창세기 35 장 3 절과 7 절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7 절입니다.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베델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라”. 이 때가 언제입니까? 야곱이 자신의 딸 디나에게 어려운 일이 있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우리가 야곱이 쌓았던 세 번째 단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야곱이 딸이 환난을 당했을 때 먼저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야곱은 먼저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베델로 올라가자! 3 절 말씀은 어려운 일을 당해서 다른 무엇보다도 이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어려움으로 보고 하나님과 화목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려 한 것입니다. 세상적인 어려움을 세상적으로 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면서 풀려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형과 만나기 전에 형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것을 두려워하면서 그것 역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얍복강가에서 기도함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야곱은 세상적인 지혜도 많았지만 참으로 영적인 지혜가 더 앞서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였거나 앞으로 어려움을 당할 것을 예상할 때 하늘을 바라다보고 하늘을 감동시키는 제단을 쌓았고 하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고비고비의 길목에서 야곱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잔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이 당하는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시원한 해결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야곱의 이 영적인 지혜는 어디서 났을까? 아마도 분명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배운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지 이삭도 참으로 단을 잘 쌓았습니다. 창세기 26 장에 보면 이삭이 받은 축복이 쭈욱 나열됩니다. 창세기 26 장 12 절에서 14절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음으로”. 그런데 이 축복들이 열거되고 난 다음 바로 직후에 성경을 살펴보면 아니나 다를까 이삭에게도 단을 쌓은 습관이 있음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26 장 25 절을 보겠습니다.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무엇입니까? 이삭의 일대기를 보면 이삭 역시 단을 쌓았더라 단을 쌓았더라 단을 쌓았더라 한두번이 아니라 실로 여러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삭은 하나님께 제단을 잘 쌓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단을 쌓은 것을 누구에게 배웠을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배웠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도 가는데 마다 단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알고 있기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쳐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가지 하늘의 별과 같이 쏟아지는 복을 받은 것은 이삭을 바치기 전에 대부분 받았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복을 받은 것은 제단을 잘 쌓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한 군데만 보겠습니다. 창세기 12 장 7 절 하반절에서부터 9 절까지를 보겠습니다.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베델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무엇입니까? 남방이란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곳, 주님의 은총의 햇살이 비추이는 곳으로 인간으로서는 더 좋은 웰빙과 행복의 터전을 말합니다. 우리는 12 장 7 절과 9 절의 문맥의 구조를 잘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이 말씀의 뜻은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는데 하나님께 제단을 잘 쌓고 즉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삶의 터전을 남방으로 즉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넘치는 터전으로 옮겨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뭡니까? 아브라함도 제단을 잘 쌓아 복을 받았고 남방으로 가나안 땅으로 옮겨 갔습니다. 이삭도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배워 제단을 잘 쌓아 참으로 알토란과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도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보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삶으로부터 교훈을 받아 제단을 잘 쌓아 팔복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복을 받은 것은 그런데로 이해가 되는데 왜 야곱과 같이 인간적으로는 약간 야비하고 자신의 잇속을 철저히 챙기고 재산을 가지고 야반도주를 한 야곱에게 왜 복을 가득 주셨을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간적인 약점과 허점과 결점과 하자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쌓은 돌단의 제단을 받으시고 야곱이 형에게 사기를 치고 인간적인 하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허물들을 다 덮어주시고 기억하지 아니하시며 야곱을 한껏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 속에 담긴 무한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선 보겠습니다. 1) 제단을 쌓았을 때 경제적인 부도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2) 제단을 쌓았을 때 장자권도 주시어 영광의 가문, 가문의 영광을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3) 제단을 쌓았을 때 환난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야곱이 한 때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환난을 당하여 다시금 베델로 돌아와서 제단을 쌓았을 때 더 이상 환난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제단을 쌓았을 때 어려움도 피해가게 해 주셨습니다. 4) 제단을 쌓았을 때 인간관계도 회복시켜 주셨고 문제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제단을 쌓았을 때 외삼촌과도 화해하게 해 주셨고 형 에서와도 화해를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5) 제단을 쌓았을 때 자식들도 잘되고 형통하게 해주셨고 자식들 중에는 입신양명을 이루고 대제국의 국무총리도 하게 해주셨습니다. 6) 제단을 쌓았을 때 하늘로 이르게 되는 사닥다리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며 주님의 그 밝은 얼굴도 뵈옵게 되었습니다. 7) 제단을 쌓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복과 은혜를 내리시고 이삭에게도 복과 은혜를 내리셨으면 야곱에게도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내리셨으면 제단을 쌓았을 때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 되어 주셨고 이삭에게도 하나님이 되어 주셨으며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되어주시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늘 아버지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 가장 기분이 울적해 지시고 화를 내시느냐 하면 다른 신에게 절을 하고 바알과 아스다롯에게 제사를 드릴 때입니다. 굉장히 기분 나빠 하시고 분노하실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반면에 언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을 때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내리시고 남방으로 가나안으로 삶의 환경도 옮겨주시는 복도 내리시고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이삭과 같이 농사를 지으면 100 배의 수확을 얻게 하시는 복도 내리시고 파는 샘마다 콸콸 샘물이 쏟아지는 복도 내리시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는 복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야곱이 온갖 약삭빠르고 야곱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모든 허물을 덮어주시고 약점을 간과하시고 단점을 지나치시며 허점을 감춰주시면서 단을 쌓은 야곱에게 축복하시고 축복하시고 맘껏 축복하시어 나중에 이스라엘이란 이름까지도 내리신 것입니다.


제단을 쌓음 속에 말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축복과 신비가 압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예배를 종교적인 행사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야 정치경제문화사회와 같이 삶의 한 파트를 이루는 그 중 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결코 아닙니다. 이 예배 속에 우리 인생의 신비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예배 속에 저와 여러분의 우리 인생의 승패가 담겨 있습니다. 이 예배 속에 우리 인생이 작품이 되느냐 졸작이 되느냐 성패가 담겨 있습니다. 이 예배 속에 우리 인생의 신비가 영원으로 연결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예배를 성공하는 자는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예배를 실패하는 자는 인생에서도 실패합니다. 예배를 그저 그렇게 여기는 자는 그 인생도 그저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에 목숨을 거는 자를 하나님께서 그 생명과 목숨도 책임지시고 그 생명을 주시고 또 주시어 풍성하게 해 주십니다. 존귀하고 영화롭게 해 주십니다. 비록 그 인생이 허물과 약점이 많고 인간적인 실패가 있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세우시고 그를 도우시고 그를 붙잡으시고 높이 들어 세우시고 그를 들어 쓰십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예배를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실패하는 자는 아무리 그가 인간적으로 깨끗하고 그가 양심적이고 청결한 삶을 살았다하더라도 아무리 그가 인간관계를 잘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인생을 돌아보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성패와 흥망과 인생의 귀추와 존망이 바로 예배에 달려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깨우쳐야 합니다. 저는 2002 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나오는 경기를 모두 지켜보고 마지막으로 결승전을 지켜보았습니다. 결승전 경기 마지막에서 저는 우리나라가 승리하는 것 이상의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결승에서 브라질이 우승하자 루시우, 카카, 에디우손 등 세계적인 스타들인 저들 선수들이 운동장 한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유니폼을 벗자 그들이 입은 하얀 셔츠가 들러났는데 그들 셔츠에는 ”JESUS LOVES YOU!“ 예수님을 당신을 사랑하십니다가 새겨져 있었고 다른 셔츠에는 I BELONG TO JESUS!! 나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가 새겨져 있었는데 자신보다는 자신의 셔츠를 카메라에 비추며 기뻐하였습니다. 곧 이어 브라질의 스콜라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테프와 선수 전원이 관중들의 열광하는 환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장 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감사의 제단을 쌓았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사무엘상에 있는 말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들을 내가 멸시하리라" (사무엘상 2 장 30 절)


성도 여러분들은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은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그 인생은 바로 그때부터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야곱이 만약 그저 약삭빠르고 그저 형에게 사기만 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그 인생이 누구인지 그 인생의 이름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인생을 잘나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게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어 브니엘의 햇살로 비추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일대기와 그 이름을 거룩한 성경에 기록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2006 년의 강진읍교회 주제를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교회”로 삼았습니다. 올 2006 년 성도 여러분들은 그 무엇보다도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제단을 잘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품질과 등급이 거기 달려 있습니다. 올 한 해 예배 잘 드려서 은총의 하나님께로부터 야곱이 받았던 팔복을 다 받아 삶의 기쁜 샘이 되고 복된 안식이 넘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새해 제단 앞으로 나아오게 하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처럼 저희도 야곱이 정성껏 돌단을 쌓았던 것같이 저희 역시 야곱과 같이 단을 잘 쌓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나아오기를 기뻐하며 주님의 전에 출입하기를 기뻐하고 주님께 예배드리기를 더욱 기뻐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06 년 한 해에 야곱에게 주셨던 은총과 복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19:3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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