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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란 무엇인가?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9-24 (금) 19:54 12년전 20530  
 

2005 년 3 월 11 일(금) 오후 9 시 / 강진읍교회 지하기도실  


성경말씀 : 디모데전서 2 장 1 절 - 8 절

제       목 : 중보기도란 무엇인가?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5 년 우리 교회에 “여호와닛시중보기도단”이 창단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이며 깃발은 승리를 의미함으로 여호와는 나를 승리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여호와 닛시 중보기도단>은 1)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2) 교회의 선교와 강진읍교회를 위하여 3) 성도들과 고통 당하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4) 민족의 통일과 우리의 또 한쪽의 조국을 위하여 5) 강진군의 발전과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대신 기도할 수 있는 <여호와닛시중보기도단>이 있음은 얼마나 우리에게 귀중하고 값진 일이며 영적인 유익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기도>에 대해서는 아는데 <중보기도>하면 무엇인지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 오늘 이 시간부터 앞으로 금요일 오후 9 시에는 이 자리에서 모여서 “중보기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몇주에 걸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보기도”에 대하여 자세히 알기 위하여 몇가지 질문을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중보란 무슨 뜻입니까? 중보란 한자어로는 사람 人변에 가운데 中자가 있는 仲자와 보호 할 때 保자 해서 仲保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사람 사이의 중간에서 그를 위하여 보호가 된다” 그런 뜻입니다. 영어로는 intercession입니다. 이 말의 뜻은 중재, 조정, 알선의 뜻일 뿐 아니라 “중보기도”라는 뜻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의 intercession은 라틴어의 “inter cedere”인데 이 뜻은 “갈라진 틈 사이에 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동산을 사고자 할 때는 중개인이 필요합니다. 중개인은 팔려고 하는 사람과 살려고 하는 사람 사이를 알선하고 중매해 주어 적당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수수료를 받아 챙깁니다. 이를 중개라고 합니다. 중매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중매는 결혼하려고 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매를 잘하면 술 석잔, 못하면 뺨 석대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웃는 소리입니다만 중매를 세 건 성사시키면 하늘나라에 공짜로 간다는 말이 있어 중매를 정확하게 세 건 이상 성사시켰습니다만 아직 뺨 석대는 맞지 않았습니다. 중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두 사람 사이에서 두 나라 사이에서 서로 이해득실의 차를 좁힐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함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중개, 중매, 중재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중보라는 뜻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재는 주로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요 중보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중재와 중보의 뜻은 약간 다릅니다. 중재란 나라와 나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정하고 알선할 때는 중재라는 말을 쓰지만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서서 중재할 때는 <중보>라는 말을 씁니다. inter cedere는 보통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있을 경우에는 ”중보하다“는 말을 씁니다. 


둘째, 우리를 중보해 주시는 중보자는 누구십니까? 디모데전서 2 장 5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하나님께 사람을 중보하고 사람에게 하나님을 중보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에 보면 예수님이 인간과 하나님을 중재하십니다. 에베소서 2 장 12 절에서 14 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즉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 장 34 절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셋째, 중보기도는 어떤 종류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떤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기도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감사의 기도가 있습니다. 나에게 여러 가지로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도입니다. 가만히 믿음의 눈으로 세어보면 감사할 것 천지입니다. 두 번째로 또한 고백과 용서를 요청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와 잘못들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아뢰며 용서를 바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들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세 번째는 간구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건강 그리고 굳센 믿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간구하면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의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네 번째는 찬양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과 그의 존귀하심을 찬양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찬미하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기도가 되고 찬미의 제사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보의 기도가 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일하는 이들,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는 이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란 한마디로 나 자신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웃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넷째, 성경에는 중보기도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인간이 최초로 하나님께 한 말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3 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질책하실 때에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초의 말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지 않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인간이 하나님께 한 최초의 말이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꾸지람에 핑계를 대는 것으로 시작하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께 드린 최초의 기도와 같은 기도는 창세기 4 장 13 절에 있습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짐을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즉 가인은 죄짐으로 인하여 신음하고 있는 자신을 긍휼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이는 기도의 형태에서 사죄와 용서를 비는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나 가인이 하는 말은 다 자신을 위해 핑계를 대고 자신의 문제를 위해 드리는 기도이지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 아뢰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인간이 이웃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알아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두 도시가 너무나 그 죄악이 심하여 멸망시키려 하시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사는 조카 롯과 그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하는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그 성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으면 용서하시겠다고 하였는데 아브라함은 이 숫자를 다섯 번에 걸쳐서 깍아 내려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명이 없어 멸망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가 중보기도를 하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하여 광야에서 황금으로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자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급기 32 장 9 절에서 10 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는 기도를 시작합니다. 출애급기 32 장 11 절에서 13 절입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급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것이야말로 중보기도의 전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32 장 14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사무엘도 중재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12 장 23 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그렇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간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은 중보를 하는 이스라엘을 마치 자신보다 더 중하게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다섯째, 성경에 중보기도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직접적으로 “중보기도“라는 말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2 장에 도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이 禱告가 중보기도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도고“는 한자어로는 禱告인데 기도할 때 禱자와 고하다고 할 때 告자가 합성어입니다. 그러면 고하면서 기도한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웃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고하면서 기도한다는 뜻으로 이는 중보기도를 말합니다. 옛날 성경을 번역한 분들이 고심을 하여 중보기도의 뜻을 도고라는 두 자에 함축하여 담은 것 같습니다. 또한 도고는 영어로는 intercession이니 쉽게 중보기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중보기도란 말은 없지만 여러 가지로 중보기도에 대해서는 풍부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 장 9 절에 보면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너희를 위하여“란 말입니다. 즉 중보기도는 자신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여섯째, 언제부터 교회에서는 중보기도를 하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예배시간에 언제부터 중보기도 시간이 들어왔을까? 중보기도가 교회의 예배 속에 들어온 것은 9 세기 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일예배에서 사제는 설교를 한 후에 모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알아서 그를 대신하여 그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제가 영국에 가 있었을 때 예배순서에 보면 <Intercessory Prayer>라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 뜻을 몰라서 옆에 있는 영국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한번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 시간에는 여기저기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순서를 맡은 일정한 사람들이 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누구든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옆에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우간다에서 굶주린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저희가 먹을 것을 주게 해주십시오!“ 기도하면 또 저기 뒤에서 ”금번에 아버지를 잃은 스티브와 샤론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기도하고 그런 뒤 약간 침묵이 흘렀다가 어떤 이가 ”저희 교회가 보낸 르완다에 보낸 선교사님과 그 가족을 지켜 돌보아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누군가 위해서 짤막한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목사가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이웃을 위해 드린 기도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면 모든 회중이 아멘으로 마칩니다.


일곱째, 중보기도는 왜 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은 왜 중보기도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 하나는 중보기도는 성경이 권하기 때문에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이렇게 출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 장 1 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경이 권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기쁨으로 준행해야 합니다. 만일 성경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라 남을 위해서 대신 기도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고 말씀했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그 말씀 속에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며 드리는 중보기도를 기쁘게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 강진읍교회가 <여호와 닛시 중보기도단>을 창단한 것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로 하되” 디모데전서 2 장 1 절 말씀의 권면에 의하여 창단한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중보기도를 기쁘게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기도내용을 말하면서 “기도해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 성도들은 중보기도의 내용의 위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저는 성도 여러분들이 기도를 요청해 오면 특별히 함께 기도해야 할 제목이라면 여호와닛시 중보기도단에 맡겨 기도하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보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는 이기적인 기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웃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여 드리는 기도를 기뻐 들어주시고 받아주시기에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보다 하나님께서 기뻐 응답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맛을 본 자 만이 맛을 압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은 중보기도를 해본 자만이 압니다. 특별히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 응답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드리는 중보기도는 응답되는 사례가 너무도 많습니다. 어거스틴이라는 초대 기독교 유명한 교부가 있기까지 그 어머니 모니카의 지치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모니카는 사랑하는 아들을 주께 맡기며 드리면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니카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어거스틴을 회심케 하시어 그로 하여금 기독교사에 불후의 사역을 하게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의 무릎으로 자식을 일으켜 세운 너무나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찬송가 몇 장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나 집에 돌아갑니다. 어머님 기도 못 잊어” 가사가 있습니다. 방탕한 자식이 어머니의 기도의 위력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간 예가 너무도 많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운보 김기창 화백은 몇 년 전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는 평생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그림을 그려 많은 은혜를 끼쳤습니다. 김기창 화백은 그의 어머니 한 윤명 씨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내 평생 기복이 심한 가싯 길에서도 실망치 않고 꾸준히 한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복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복과 어머니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연결시켰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더라면 한 귀먹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앉아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기도하셨고 입으로가 아니라 손으로 기도하셨다” 뿐만 아닙니다. 어떤 아버지가 중보기도의 능력을 알아 딸을 위하여 기도한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저는 얼마전 오병이어라는 선교지에서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나 읽었습니다. “전날 집에서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고 새벽에 잠이 든지라 아침부터 나는 졸리고 짜증이 났습니다. 친구네 집에 가는 지하철에 올랐을 때 그날따라 사람들은 그리도 많은지 손잡이를 잡고 서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혼잡함에 익숙하게 되자 드디어 00 역에 다달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운 좋게도 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의자에 앉자 마자 졸음 때문에 고개는 자꾸 바닥을 향했습니다. 얼마후면 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생리적 현상으로 입가에 물기를 묻히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잠을 참을까도 했지만 어느새 나는 모든 의지를 져버리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꾸벅꾸벅 조는 채로 세 정거장 정도가 지났을까? 어찌나 큰 목소리였던지 내 잠을 단숨에 빼앗아간 아저씨의 외침 ”여러분 잠깐만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세수를 며칠간 못했는지 단정치 못한 외양의 어느 아저씨가 통로 중앙에 서서 외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같이 잠에서 깨어난 짜증난 얼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 등 각색의 시선이 모아졌습니다. 아저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저에게는 세 살짜리 딸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치병을 앓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승객들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로군, 얼마나 돈이 아쉬었으면 딸까지 팔면서 저럴까?”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겠다 생각한 나는 고개를 숙여 잠을 청했고 대부분의 승객들도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전에 어느 책에선가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해주면 어려운 일도 이루어진다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니는 중입니다. 지하철에 타 계신 여러분들도 부디 제 딸이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딸의 이름은 이효리입니다. 그러더니 그는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다음 칸으로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보았습니다. 하나 둘 효리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는 승객들을....”


오늘 여호와닛시 중보기도단이 첫 모임을 갖습니다. 앞으로 성도 여러분들이 기도를 요청하면 저는 그것을 받아 중보기도단원인 여러분에게 기도의 제목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여러 성도들의 기도요청에 의해 열심히 기도하겠고 중보기도단원인 여러분 역시 그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중보기도제목을 큰 제목으로 다섯가지로 분류하여 그 안에서 넣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보기도단원들이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요청한 사람은 사랑의 울타리 가운데 둘러 쌓여 있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보기도단원들은 서로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중보기도단에 의해서 성령의 불길에 휩쌓이게 될 것이며 중보기도단의 기도로 인하여 더욱 영적인 성장을 거듭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호와닛시중보기도단>과 또한 중보기도단을 위해 기도하시는 여러분 모두를 위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19:3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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