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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9-24 (금) 19:56 12년전 1587  
 

2005 년 3 월 30 일(수) 오후 7 시 30 분 강진읍교회 수요예배


성경본문 : 사사기 3 장 7 절 - 10 절    

제       목 : 성경과 역사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오늘 성전에 나아온 성도 여러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말씀론 즉 성경론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성경과 역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은 우리 성도들이 환갑잔치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날 환갑을 맞이할 때 어른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환갑잔치상이 있고 그 앞에 두 분이 앉아 계시는데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고 허리는 구부러져 있어서 팔순이 넘은 노인으로 보였는데 요즘 환갑을 맞이하신 분들을 보면 쌩쌩하게 날아다니시고 환갑잔치를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환갑뿐만 아니라 칠순도 자녀들을 불러다 성대하게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식사 한번 같이 하고 여행한번 다녀오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그래도 잔치를 할려면 팔순 정도는 되어야 잔치한다고 할 수 있고 우리 강용심 집사님과 같이 구순잔치를 해야 축하의 의가 각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칠순이나 팔순잔치를 할 때 무슨 찬송을 부를까요? 하면 대부분이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이 찬송을 좋아합니다. 이 찬송이 몇장이죠? 460 장입니다. 우리 함께 1 절만 불러 봅시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려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이 찬송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찬송의 작시자는 자신이 지내온 지나온 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노래합니까? 자신이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라! 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고백합니까? 보통 사람들이 한평생을 지내 오지만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을 자신의 땀흘려 이룩한 것으로 자랑을 하는 사람도 많은 데 왜 460 장 작시자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고백한 것입니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자기가 지내온 길에 대해서 말하기를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모든 것이 한이 없는 주의 사랑이었습니다. 내 인생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항상 살펴 주셨습니다.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작시자는 자신이 지내온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백하고 찬송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나온 삶을 회고록으로 정리할 생각을 혹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꼭 회고록은 아니다할지라도 의자에 앉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순간순간을 주마등처럼 스쳐온 과거를 회상해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저와 여러분이 회갑을 맞이하여 지나온 일생들을 믿음으로 회고하는 글을 60 자 글자 이내로 쓰라고 여러분이 요청 받았다면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오늘 성경과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지내온 과거를 현재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보았을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듯이 한민족이 자신의 나라가 지내온 역사를 고백할 때도 어떤 일정한 눈이 있습니다. 성경도 역사를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성경은 역사를 하나님이 이룩하신 구원사로 봅니다. 칸트라는 철학자는 이신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신론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 속에 법칙을 두시어 모든 것들이 자동적으로 그 법칙에 따라 운행하도록 만들어 놓으셨다는 주장이 바로 이신론입니다. 이신론에 있어서 하나님은 더 이상 역사에 개입하시거나 인간의 활동에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만들어 놓은 법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역사 따위에 들어오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는 이신론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고 이 역사에 개입하시어 이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이끄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계시하시어 역사를 구원의 거룩한 역사로 만들어 가신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택하시어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드라마가 펼쳐져 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가 사는 온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이끄시기 위하여 이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에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시어 이 역사와 인생을 구원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 본문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구원하시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사기 3 장 7 절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자 이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억압 가운데 구원하셔서 알뜰살뜰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어 잘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무엇을 한 것입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하였습니까? 바알과 아세라들을 섬긴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들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들어간 지역에는 원주민들이 섬기고 있는 풍요의 신이고 아세라는 여신입니다. 가나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풍요를 준다고 믿고 아세라 여신이 지켜준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백성들에게 동화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 땅의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토록 이스라엘에게 잘해 주었는데 그토록 사랑하여 이끌어 주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어떻게 느꼈겠습니까?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신다면 시내산에서 십계명를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나 외에 다른 신(우상)을 섬기지 말지니라 하고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다른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께서 배신감을 느끼시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을 것입니다.


자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냥 그래 잘했다! 하십니까? 아니면 침묵만 하십니까? 아닙니다. 오늘 성경 사사기 3 장 8 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았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의 손길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을 메소포타미아의 속국이 되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독립국이 되어 살 때와 속국이 되어 살 때와 형편이 어떻게 다릅니까? 자유인이 되어 살 때는 무척 좋았을 것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속국이 되었을 때는 형편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를 통치한 나라에 대해 세금을 바쳐야 하지요!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하지요! 자기네 나라 여자들을 메소포타미아 남자들에게 바쳐야 하지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되었습니다. 삶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고 배신한 이들에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어떤 형식으로 징계를 하시기 시작합니다. 개인에게는 질병을 내리기도 하고 모든 문제가 헝클어지게도 하고 만사가 불통이게도 하고 모든 것을 안되게 하기도 합니다.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의 우상을 섬겼을 때 역사를 섭리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 송두리째 다른 나라로 넘기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악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매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년동안 메소포타미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말이 팔년이지 얼마나 그 동안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이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합니까? 그저 그 고통을 참기만 합니까? 아닙니다.


사사기 3 장 9 절 상반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이는 무엇입니까? 왜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잘못을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듭된 고통과 압제 속에서 느끼게 됩니다. 무엇을 느낍니까? 아하!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모양 이꼴이 된 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이방신을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이같이 벌을 내리신 거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해 주셨는데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해도 해도 너무해 드렸어! 하면서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 부르짖어 간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부르짖는다는 것은 단지 큰 소리로 부른다는 것이 아니라 울부짖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부르짖는다의 체아카는 회개의 의미와 간구의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팔년 동안 그저 고통을 당하다가 드디어 이스라엘은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 우리가 잘못했어! 우리가 잘못하여 이렇게 되었어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하나님 우리 이스라엘을 메소포타미아의 압박과 학정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하면서 하나님의 소매를 부여잡고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매정하게 모른 채 하십니까? 아니면 침묵으로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고 아예 뒤돌아서서 듣지도 않으십니까?


사사기 3 장 9 절 후반절에서부터 11 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자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음에 무척 약하십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의 울음에 약하듯이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르짖어 회개하면서 간구할 때 무척 약하셔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활동을 개시하시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어떻게 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한 사람을 군사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이를 사사기에서는 사사라고 하고 판관이라고도 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옷니엘이라는 사람을 사사로 세우시어 옷니엘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 어떤 마른 막대기와도 못한 사람도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 주시면 그는 모세와도 같고 여호수아와도 같은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옷니엘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이스라엘 사람들로 민병대를 조직하여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군대와 싸워 승리하게 됩니다. 당연히 어떻게 됩니까? 식민지 속국에서부터 자유독립국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뒤따라 옵니까? 사사기 3 장 11 절입니다.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이스라엘에게 다시금 평온이 찾아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사기에서 보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가만히 살펴보면 사사기 3 장은 배신 - 징계 - 회개 - 구원의 도식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배신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악행을 행하여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둘째 징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아니하시고 역사섭리의 손길을 드시고 매를 들어 때리십니다. 셋째, 회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고 구원을 용청합니다. 넷째 구원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내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사사기 그 어디를 보더라도 이스라엘 역사는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어디 그런가 안그런가 보겠습니다. 사사기 3 장 12 절에서 15 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 여기까지가 무엇입니까? 배신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여기까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기까지는 회개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여기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사사기 그 어디를 보더라도 배신-징계-회개-구원의 도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신학에서는 신명기사관이라고 합니다. 신명기를 쓴 집필자가 사사기를 신명기의 사관에서 본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두 차례만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수를 헤아릴 수 없이 하나님을 끊임없이 배신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를 묵과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십니다.그려면 이스라엘 백성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주 배신하고 돌아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용납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재임시에 "Three Strikes Out"이라는 법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Three Strikes Out 이란 야구 경기에 나온 것인데 스트라익이 세 개면 타자가 더 이상 타석에 서 있지 못하고 아웃된다는 법칙인데 이를 법에 적용을 시킨 것입니다. 이는 무엇이냐 하면 미국법을 시행할 때 첫 번째 죄를 범하면 법이 한도 내에서 최대한 관용을 베풉니다. 두 번째까지는 정상을 참작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범죄를 하면 이제는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최대한 무거운 벌을 내려 사회에서 매장시켜 아예 감옥에서 썩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도합 350 년 형을 받아 감옥에서 일생을 썩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겨도 30 번 60 번 100 번 어길지라도 다시금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신 은총을 베푸시어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슨 교훈을 얻습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집 성전에 두시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애지중지하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자나깨나 주의 손으로 돌보아 주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받고 선택받은 백성들이 배신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일에 개입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면 그것은 하나님의 관심권 밖에 있고 나중에 심판날 꺼지지 않은 불길 속에 넣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기에 그대로 두지만 하나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만일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긋나게 살게 되면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개입하시어 뭔가 그 사람에게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시절에 한얼산 기도원에 갔을 때 총신대학교를 다닌 한 전도사님이 해 준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서원을 하고 아이가 셋이 있는데 신학공부를 하려고 하였는데 너무도 힘들어서 그 길을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자고 장사를 시작하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자신의 아이들이 원인도 없이 아프기 시작하는데 병원에 가도 진단을 해도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깨우치고 회개기도를 올리기만 하면 정말 감쪽같이 아이의 열이 내리고 낮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신학을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고 무슨 장사나 해볼까 하여 옛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무엇인가 시자하려고 하면 또 이번에는 둘째아이가 이유도 없이 드러누워 밤새 끙끙 앓는다는 거였습니다. 자신이 딴 길로 가려고만 하면 정확하게 첫째 아이가 아프고 둘째 아이가 아프고 셋째 아이가 아프고 순서대로 아프기 때문에 다시는 찬송가 가사대로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노래를 부르고 맘을 단단히 잡기 위해서 기도원에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일들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남편이 딴 길로 가게 되면 사랑하는 아내가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다시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시금 정상으로 돌려주시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왜 택한 사람에게 고통이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과 시련을 주어 미리 피할 길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 장 33 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아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택한 백성이 잘못 나가게 되면 시련도 주시고 고통도 주십니다. 바로 이때 영적인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사건을 보아야 합니다. 아하!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길로 가지 않으니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로 가게 하려고 미리 내게 주시는 붉은 신호등이구나! 하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붉은 신호등이 켜졌을 때 얼른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갑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찬송 부르면서 주께 가까이 나아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금 구원의 은총을 나려 주시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에게 시련이 있을 때 그 시련을 단지 우연으로만 보지 마시고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시련과 고통이 내게 있을 떼 내 주변 내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있을 때 먼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아하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날 깨우치시려고 이 시련을 주셨구나 하면서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이 사건을 통해 이 질병과 시련을 통해 뭔가 깨우치시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일은 없었는가 내 가족들 중에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일은 없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지은 허물과 잘못을 아뢰고 부르짖어 회개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부르짖어 회개하여 아뢸 때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통하여서든지 구원해 주시고 다시금 정상을 되찾아 주시고 다시금 관계를 회복하여 주시고 다시금 평온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을 때 평온을 되찾게 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는 믿음으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사기를 통해서 귀한 영적 원리를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더욱 믿음의 눈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 딴 길로 가지 않게 해 주옵시고 항상 주님의 기뻐하시는 길로만 행할 수 있도록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로 시련이 있고 고통이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하옵시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어 내게 주신 시련이 있음을 깨우치게 하시고 항상 하나님 앞에 저희의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가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마다 저희를 구원하여 주옵시고 저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시금 새롭게 세워 주시옵소서! 저희로 결코 주님을 배반하거나 배신하는 자리에 서있지 않게 하시고 저희가 결코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는 자리에 가담하지 않도록 성령의 불꽃검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19:3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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