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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하고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12-20 (월) 11:23 13년전 8326  

2004 년 6 월 9 일(수) 오후 8 시 강진읍교회 수요예배 / 당회헌신예배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마태복음 5 장 38 절 - 42 절

제 목 :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하고!!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오늘 헌신을 다짐하는 당회 모든 회원들과 함께 동참한 모든 이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 장 1 절에서 시작되어 7 장 27 절까지 계속된 이 말씀을 산상수훈이라고도 하며 산상보훈이라고도 합니다. 산상에서 주신 보배같은 가르치심이란 뜻입니다. 왜 보훈이라고 합니까? 이 말씀을 지켜 행하면 내 인생에 보배와 같은 가치가 나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참으로 보배 같은 말씀들 중에서 특별히 마태복음 5 장 41 절 말씀을 주의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을 아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와서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리는 얼마큼 입니까? 약 2 km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강진스포츠 센타 만큼 정도될까요? 오늘날에는 차가 있으니 오리라고 해도 약 2-3 분도 안되는 거리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걸어가야 하는 거리이니 그냥 쉽지 않은 거리였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있어 오리를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한다고 할 때 사람들마다 각각 반응이 다를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내가 엄청나게 지금 바쁜데 너 하구 어떻게 오리를 같이 가니? 내가 오늘 소도 사야 하고 논과 밭에 나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스케쥴이 너무 빡빡하나니 미안하지만 너와 오리를 못가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 여기지 말아라!고 합니다. 2) 어떤 사람은 오히려 역으로 제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때! 내가 지금 너하고 오리를 가줄 터이니 너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십리를 가줄 수 있니?“ 그렇게 제의하여 가준다고 약속하면 그제서야 오리를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3) 어떤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그래 너하구 지금까지 정분을 생각해서 딱 오리만 가는 거야! 더 이상은 1 리도 더 안돼!” 하면서 딱 오리만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4) 또 어떤 사람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얘,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너하고 오리를 못 가겠니 오십리도 같이 갈께!” 하면서 막상 오리를 가자고 하는 시각에 그 장소에 얼굴 코빼기도 비치지 않으며 안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5) 또 어떤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형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주어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사시던 때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군인들은 식민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식민지에서 폭동이나 봉기가 일어났을 경우 신속하게 폭동의 현장이나 전선으로 가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때 로마병정들은 칼과 창과 방패를 포함하여 30-40 kg의 완전군장을 하고 폭동이 일어난 현장으로 가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쉽게 하기 위해 로마제국의 법은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시켜 군장과 배낭을 지고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이에 반항하거나 불응하면 반역에 해당하여 처형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법에 의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골고다언덕을 올라갈 때 구레네 시몬이 이 법에 의해 십자가 짐을 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대신 짐을 지게 하는 경우 반드시 오리로 그 거리를 제한시켰습니다. 로마의 모든 도로에는 오리마다 그것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만일 군인들이 이 법을 어기고 민간인에게 짐을 메고 가게 하기를 오리를 더 이상 넘어가면 백부장은 군법을 어기는 군인들에게 처벌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안가면 바로 즉결처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만 만일 오리를 넘어 십리를 간다고 하면 그 군인이 처벌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로마법을 알고 계시면서 거기에 빗대어 제자들에게 산위에 올라온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리를 가자고 하면 오리를 넘어서 십리까지라도 같이 가주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십리를 가면 누가 피해를 입게 됩니까? 로마군인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간인이 십리를 가자고 하면 오히려 로마군인이 안된다고 말하면서 오리만 같이 가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로마군법에 있는 오리법을 말씀하였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여러 가지 뜻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군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리를 가자고 하면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안가겠다고 버티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라도 같이 가주어 죽음을 피하라고 생명을 아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그런 단순한 데 산상보훈의 중심 뜻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더 깊은데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마태복음 7 장 12 절을 빛으로 삼아 오늘 성경 마태복음 5 장 41 절을 비추어 보면 보다 분명하게 그 뜻이 들어납니다. 마태복음 7 장 12 절입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대로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예수님은 이웃이 나에게 바라는대로 해주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니 예수님! 우리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준다면 우리는 손해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런상황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래 너희가 손해를 보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습니다. 누군가 달라고 하면 주지 않고 자기 꺼만 챙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손톱만치도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꺼는 결코 빼앗기지 않으려 하면서 남의 것는 자기꺼로 하기에 애를 쓰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이런 사람을 볼 때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에게 향기가 납니까? 아닙니다. 향기가 아닌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서로 차지하려고 하지 주려고 하지 않을 때 그 사이에서 쌈이 일어납니다. 지옥에는 아귀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귀들이 서로 먹겠다고 자기가 차지하겠다고 하여 아귀다툼이 일어납니다. 자기 꺼는 물론 자기껏이고 상대방의 껏도 자기 껏으로 하기 위해 쌈을 하고 서로를 해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그곳은 더 이상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지옥이며 아수라장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 약간 바보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남이 달라고 하면 선선히 내어 주면서 기뻐하고 오른뺨을 때렸는데도 웃으면서 왼뺨을 돌려대고, 누군가 달라고 하면 달라고 한 것보다도 두 배나 더 주면서 좋아하고 상대방이 바라는 대로 해주면서 자기는 객관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증ㄹ거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보면 뭔가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어쩐지 그 사람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 사람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고 그 사람 곁에 살고 싶습니다. 천국에 가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l다. 왼뺨을 때렸는데도 오른뺨을 대주는 사람, 박해를 했는데도 박해한 그 사람을 위해 오히려 잘되기를 기도한 사람, 사람들이 바라는대로 해주면서 자기는 기꺼이 손해보았던 사람들이 천국에 지금 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자기 잇속을 철저히 챙기려 하는 사람은 지금 지옥에 있고 손해만 보고 사는 바보 같지만 나누면서 베풀면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주는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너끈히 같이 가줄 수 있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는 말씀 중심에는 천국에 걸 맞는 넉넉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남이 바라는 대로 해주는 사람이 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좀 가슴이 펼쳐져서 넉넉한 사람, 좀 가슴이 터져서 시원한 너그러운 사람, 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바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손해를 보면서 까지 십리를 같이 가주는 그런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라 그 말입니다.  

제가 가나안 교회를 섬길 때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 년 전 일입니다. 가나안 교회에 임집사님이라고 계시는디 어느 날 그 집사님이 오리 두 마리를 뜨겁디 뜨건 물에 데쳐서 털을 뽑아내고 난 다음에 아직 더운 김이 식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사는 아파트로 가져 왔습니다. 오리탕을 만들어 냄비에 담아 온 것이 아니라 금방 잡은 오리를 그것도 두 마리를 보냈습니다. 그 집사님이 누구냐면 제가 언젠가 제가 새벽기도때 소개한 사람입니다. 제가 가나안교회에서 새벽에 기도회를 인도하고 강단의자에 꿇어 앉아 기도할 때 그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아부지 저 지금 돈이 한 100 만원 필요한데요! 100 만원만 주십시오!” 누구나 다 듣게 말씀드린 것도 아니고 속삭이듯이 기도한 것도 아니고 마음 속으로만 그렇게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속으로만 기도했는데 이틀이 지난 그 날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제단의자앞에 꿇어 앉아 기도하고 있었을 때인데 임집사님이 신문지에 싼 것 하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신문지를 풀어보니 돈뭉치 100 만원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가 하나님 앞에 침묵으로 기도했을 뿐인데 집사람이나 그 누구에도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이틀 후 1 원도 틀리지 않는 100 만원을 신문지에 싸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래 물어보았습니다. 왜 돈을 가져왔느냐고 했더니 하나님한테 물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가져다주라고 해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 임집사님이 어느 날 오리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가져다 주고 서둘러 갔습니다. 저는 오리 두 마리를 방 앞에 두고 묵상을 하였습니다. 왜 임 집사가 갑자기 오리 두 마리를 가져왔을까?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으니까 오리고기를 먹고 오리와 같이 꽥꽥거리면서 말씀을 힘있게 잘하라고 보냈을까? 그래도 한 마리만 먹어도 되지 왜 두 마리일까? 그런데 생각이 나기를 오리 두 마리니까 오리 보태기 오리는 십리라는 괴상한 산수셈이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오늘 본문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태복음 5 장 41 절). 이 말씀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그 집사님이 오리 두 마리를 가지고 온 뜻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그 집사님에게 금요철야기도회를 해 달라고 맡겼는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 머뭇머뭇거리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 가운데 오리 두 마리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저는 순간 그렇게 읽었습니다. “목사님! 앞으로 목사님이 오리를 가자고 하시면 십리라도 동행할께요!! “목사님! 저는 목사님께서 오리를 가자고 하시면 어찌 오리뿐입니까? 십리라 할지라도 기꺼이 따라가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그런 뜻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어쨌든 그 집사님은 나중엔가 머뭇거렸던 철야기도팀장을 맡아 현재까지도 계속 찬송인도와 철야기도팀을 이끌고 있습니다만!! 오리 두 마리를 앞에 두고 다시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글쎄 그런 뜻일까? 만일 저번과 같이 하나님께서 돈을 가져다 주라고 해서 돈을 가져왔는데 이번에도 하나님이 오리 두 마리를 가져다주라고 해서 가져왔다면 그 속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다시금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저에게 어떤 울림과 떨림을 주셨습니다. 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얘야! 내 종아 너는 너에게 오리를 가자고 하였을 때 네가 기꺼이 나와 십리를 동행한 적이 있었느냐? 나는 네가 달라고 한 것을 주었는데 너는 내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언제 한번 십리를 같이 가준적이 있느냐? 그렇게 질책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오리 두 마리 십리를 푹 고아서 먹고 힘내어 주님이 오리를 가자고 하시면 갑절로 충성하라고 하신 것 같았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러 부분에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말씀하시는데 그 집사님을 통해 오리 두 마리를 보내시면서 먹고 힘내서 목회 좀 잘해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당회가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당회원들은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사는 목회장로요 장로는 치리장로입니다. 장로는 하나님께서 안수하여 기름을 부으시고 교회의 중책을 맡겨 주신 귀한 직분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하늘나라에서도 다른 직분은 없고 성도들과 장로직분에 대하여는 24 장로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장로의 직분은 중요합니다. 장로의 직분은 권한만 있고 책임과 의무가 전혀 없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장로의 직분은 맡은 바 책임과 사명도 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할 때 받는 은혜와 축복도 훨씬 더 큽니다. 그러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야단과 꾸중도 더 심하게 듣고 매도 더 많이 맞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말씀하신 바가 있으십니다. 누가복음 12 장 48 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장로는 많이 받은 자입니다. 많이 받은 자이기에 우리 주님께서 많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입니다. 권한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당회원들에게 일반 성도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갑절의 헌신을 요구하시고 갑절의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당회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안수한 이들로서 더 많은 은혜와 은사를 나누어 준 이들로써 주님의 모든 일에 갑절 이상의 충성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났습니다만 이 사건으로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은 당시 닉슨의 보좌관으로 도청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다가 14 년간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유명한 책 "born again"(거듭남)을 쓴 사람입니다. 나중에 감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거듭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교도소에서 쓴 책에 미국의회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대해서 얘기하였습니다. 그 순간은 테레사 수녀가 미국의회를 방문하여 연설하였을 때라고 합니다. 미 의회 의원들은 대부분 연설자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는 법인데 이상하게도 테레사 수녀가 연설을 마치자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깊은 침묵과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테레사 수녀로부터 받은 감동과 전율 때문에 박수를 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테레사 수녀가 던진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저를 포함해서 모든 당회원들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그 누구에도 뒤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된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목사인 저를 포함한 장로님들은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안수받은 주의 종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종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저와 장로님들은 바로 주님의 종들입니다. 주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잘 섬겨야 합니다. 이상한 논리 같지만 성경에 보면 종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 장 23 절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마음을 다하여 하고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당회원들을 향하여 성도들을 섬기되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섬겨야 합니다. 우리 당회원들은 주께서 주신 권한과 힘으로 다른 일에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발을 씻는 일에 써야 할 줄 믿습니다. 당회원들은 주님께서 부르셔서 오리를 함께 가자고 할 때 ”주님! 오리뿐이겠습니까? 주님이 주님과 함께 라면 오리 아니라 십리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라도 세상 끝까지라도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고백하시는 저와 당회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셔서 기름부으시고 안수하여 세우신 저희 당회원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옵소서! 주님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 뿐만 아니라 세상끝날까지 주님을 따른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시간 헌신을 다짐하는 당회원들에게 은총 베푸시어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과 성도들의 발을 잘 씻어주고 섬기는 이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성도들에게도 은총 베푸시어 주의 종들을 본받아 세상을 섬기며 세상의 빛이 되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축도> 이제는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섬김의 본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하시어 주님의 일을 맡겨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인애로우심과 오늘도 성령으로 감화감동시켜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여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오늘 귀한 주의 말씀을 듣고 충성된 일꾼이 되어 헌신하기로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하는 당회원들과 주님께서 오리를 가자하시면 갑절로 충성하며 십리 아니라 세상 끝까지라도 주님을 따르려는 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예화 1> <전라도의 한 두메산골에 'ㄱ'(기역)자 교회의 전형인 조그만 교회가 하나 있다. 이 교회가 세워진 때는 1905년으로, 교회를 기역자로 건축한 이유는 남녀 7세 부동석의 구습 탓에 남녀가 서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한 쪽 날개는 남자석, 다른 한쪽 날개는 여자석이었고 설교대인 강대상은 그 모서리에 위치하여 남녀석을 번갈아 보며 설교하는 구조였다. 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으로 조덕삼이라는 양반신분이었던 큰 부자와 그 부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이자익이라 하는 마부가 있었다. 이들은 한 날 한 시에 최의덕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교회에서 한 명의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조덕삼이 장로로 선출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자익이라는 마부가 장로로 선출되었다. 그러자 조덕삼은 자신의 집 머슴인 이자익 장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그가 평양에 있는 장로회신학교에 진학하여 목사수업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던 것이다. 조덕삼 또한 후에 장로가 되었으나 이러한 일은 양반과 천민의 신분이 철저히 구별되던 당시의 사회로서는 있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반상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조덕삼 장로의 신앙에 의한 섬김의 힘이었다. 이러한 결과가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던 이자익 목사로 하여금 당시 최대 기독교 단체인 장로교의 수장을 역임할 수 있게 한 배경이다.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였다. 이 교회가 바로 전북의 중심사찰인 금산사(金山寺)가 있고, 증산교가 시작된 곳이며 각종 신흥종교가 웅성대며 창궐한 고장에 세워졌음에도 오늘까지 건재한 금산교회이다. 조덕삼 장로에게는 영호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또한 장로가 되었고, 유광학교를 세워 민족의 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유영호 장로에게도 아들이 있어 후에 장로로 피택되었는데 그가 바로 국회의원인 조세형 장로이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하나님의 법칙이 섬김의 본을 보인 한 가문에 적용된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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