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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말고 기도하라!!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7-27 (화) 19:59 13년전 3211  
 

2007 년 7 월 1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 장 16 절 - 18 절

제       목 :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성도 여러분들 모두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입니다. 18 절 후반절에 보면 17 절에 뒤이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로 끝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겠는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인간이 살면서 쉬기도 해야 하는데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면 언제 쉬라는 말입니까? 그저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세상에서의 일이 태산과 같은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 장 17 절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긍휼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대단히 소중하고 귀한 진리의 말씀이지만 저희들은 저희들대로 일상생활이 있어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없음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장 17 절에 대한 성도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성경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였을 때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없는 이유를 찾으려 하기 보다는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뭔가 명령을 내리셨다면 분명 우리에게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지 도무지 하지 못할 것이라 미리 생각하시면서 그런 명령을 내리셨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이미 그 방법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 실천하기만 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이 이 구절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드리느냐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데도 무조건 명령만 하셨다면 은총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만약 기도가 성전에 와서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으고 기도한다! 정의하였을 때 그런 방식의 기도로는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 일정한 장소인 성전에 나와서 아니면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서 드리는 기도라면 그런 전통적인 기도의 개념으로는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기도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기도하라 하였을 때 눈여겨 성경을 보면 함께 쓰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이냐? “깨어 있다”는 말과 함께 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 장 36 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며” 말씀하셨고 동시에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항상 기도하며”는 데살로니가전서 5 장 17 절의 “쉬지 말고 기도하며”와 정확하게 같은 뜻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그리고 “깨어 있는 것”과는 무엇인가 깊은 함수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골로새서 4 장 2 절을 보겠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계속하라!”는 말씀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기도를 계속하라고 하고 바로 그 다음에 “깨어 있으라!”가 뒤따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슨 열쇠냐?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열쇠가 이 “깨어 있음”이 무슨 뜻인지를 알 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음”이 무엇입니까? 금번 노무현 대통령은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자기가 전날 밤 잠을 자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졸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재미있게 긴장하면서 깨어 있으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 말입니다. 깨어 있다는 말이 잠을 자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까? 물론 세상에서는 그런 뜻으로 쓰이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깨어 있음”은 “그저 졸거나 자지 않는 수면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생생하게 의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여 왔을 때 요셉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창세기 39 장 9 절입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죄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과 늘 동행하는 하나님께서 바로 자기 옆에 계시는 것으로 믿고 있는데 만일 자신이 보디발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할 때 얼씨구나 좋다! 하고 동침하면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시는데 어찌 그런 악을 행할 수 있느냐 말한 것입니다. 이때 요셉에게는 깨어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깨어 있다 함”은 하나님이 바로 자신과 임마누엘 하고 계심을 인식하면서 혹은 하나님이 자신을 실시간으로 보고 계심을 순간순간 느끼면서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늘 깨어 있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시편 16 편 8 절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때로는 자신의 바로 앞에 때론 자신의 오른쪽에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다윗은 그 영혼이 늘 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1 장 2 절에서 4 절을 보겠습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와 .....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렇다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서 동침할 때는 어떤 때였습니까? 그때는 다윗이 깨어 있지 않았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영혼이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그런 불륜의 악을 아무렇게나 행한 것입니다.


성경의 깨어있음과 잠자고 있음의 차이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깨어 기도한다 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곁에 계심을 믿고 늘 대화와 소통이 오고감을 말합니다. 미국 밀피타스란 지역에서 개척교회를 했을 때 교회의 총무의 일을 맡아본 서 집사님이라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권사님이 되셨는데 이 분이 교회 창립멤버로서 한 해 동안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교회에 집중하여 열심히 봉사하였는데 창립 1 주년 기념예배를 드린 뒤에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어느 눈이 오는 주일날 휫바람을 불면서 레저차에 스키장비를 싣고 스키장에 놀러 갔습니다. 갈 때까지는 좋았는데 스키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차량 접촉사고가 나서 그 차량이 크게 파손되었지만 가족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집사님의 어린 딸 애니가 갑자기 없었던 당뇨가 생겨서 당뇨 수치가 8-900 사망에 가까운 수치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갔는데 첫마디가 “목사님 하나님 정말 계십디다! 만일 앞에서 고속으로 주행하여 오는 차량과 약 1 인치만 더 안쪽으로 붙어서 갔다면 우리 가족 장례예배일자가 똑같았을 것입니다. 제 아이에게 갑자기 당뇨가 생긴 것도 차량사고로 죽음을 당할 뻔한 것도 제가 가족들을 데리고 주일날 예배드리지 않고 스키장에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날 야단치시려고 그렇게 죽이지는 않고 경고 싸인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확실히 계십디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같은 하찮은 것이 예배 안 드리는 것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셔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경고를 주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무엇입니까? 깨어 있는 믿음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주님과 사이에 열려 있다 주님과 가까이 있어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말입니다. 주님을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느낄 때 주님과 끊임없는 대화가 오고가게 됩니다. 내가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할 때 그가 비록 내 곁에서 멀리 있다 하여도 나와 그 사랑 사이에는 끊임없는 대화가 오고 갑니다. 그가 바로 옆에 있어 무슨 얘기를 나누지 않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그와 나는 무언의 교감이 오고가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는 그 한 가지 만으로라도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의 조그마한 눈짓 하나로도 그의 맘과 심정을 읽어냅니다. 사랑할 때 나와 그 사이에는 어떤 대로가 만들어져 부단히 오고가게 되며 늘 의식이 그를 생각하며 그에게 관심과 생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일 때는 바로 그것이 쉬지 않고 드리는 “깨어있는 기도”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24 시간 열려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깨어 있습니까? 하루하루 시간시간 하나님을 생생하게 의식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땡 종치고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월화수목금토 6 일간은 전혀 하나님에 대한 의식없이 세속에 휩쓸려 하나님 아버지! 단지 한 번도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그저 그냥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항상 내 곁에 역사하시어 내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내 생각까지도 감찰하고 계심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내 곁에 생생하게 계심을 확실히 의식하면서 내가 말하는 한 마디도 조심하고 행동하는 것을 단정히 하고 내가 세상의 유혹이 있을 때에도 안돼!!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하면서 유혹을 물리친다면 나는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내 의식과 내 영혼이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살 때 순간순간 하나님과 대화하고 살 때 쉬지 않고 소통이 일어나게 됩니다.


카톨릭 교회에는 “화살기도”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화살기도란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으로든 화살을 쏘듯이 짧고 강하게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순간순간 느끼는 그 무엇을 기도로 하늘로 쏘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가 골을 넣은 직후에 무릎을 꿇고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기도할 때 그 기도는 화살기도가 됩니다. 갑자기 아이가 뜨거운 물에 손가락을 데었습니다. 그러면 화살기도를 쏘아 올립니다. 아이에게 얼음찜질을 해주면서 “하나님 아이가 화상을 입었습니다. 도와주세요!!” 화살기도를 올립니다. 화살기도는 아니지만 주님을 의식하면서 살 때 짧지만 간단한 대화가 계속 오고가게 됩니다. 길가에 핀 꽃을 봅니다. “주님 꽃이 참 아름답네요!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같이 하나님이 절 보실 때도 아름답게 느끼게 되기를 원합니다!” 한 마디 드리면 쉬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됩니다. 더운 여름입니다. 어디에선가 시원한 바람 한 자락 불어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은 “야! 시원한데! 선풍기 바람보다도 훨씬 낫네!” 그저 그렇게 느끼고 말 뿐이지만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시원한 바람 한 자락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소재로 하여 대화가 오고가게 됩니다. “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 인생도 누구에겐가 시원한 산들바람이 되게 해 주세요~!” 길을 갈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닫혀 있는 사람은 그저 무심코 걸어가거나 오만 잡생각을 하면서 갈 뿐입니다. 주식을 어디다 투자할 것인가! 새로 사는 차의 색깔을 자주색으로 할 것인가 그저 흰색으로 할 것인가! 생각하지만 하나님과 항상 온라인이 되어 있는 사람은 걸어가면서도 하나님과 즉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주님! 제가 쓰는 다리를 튼튼하고 짱짱하게 해 주옵소서! 이 다리로 성전을 잘 출입하고 이 다리로 전도하러 잘 다니고 이 다리를 가지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잘 쓰게 하옵소서!” 그렇게 길을 걸을 때 깨어있는 순간이 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순간이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면 순간순간 어느 때에든지 기도가 나옵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 걸어갈 때도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만나는 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하시고 저로 인하여 그 사람이 예수 믿고 싶은 심정이 들게 하여 주옵소서!“ 혹은 무슨 담판을 지으려 가려 할 때에도 기도하면서 갑니다. ”하나님 제가 그 사람에게 말할 때 감정이 앞서지 않게 하시고 제 입술을 주장하여 주셔서 악한 말, 욕하는 말,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게 하시고 저로 향기가 나는 말, 은혜를 끼치는 말, 덕을 세우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 남에 대해서 나쁜 말이 나오려 할 때는 그 순간 제 혀와 입술을 꼭꼭 묶어 주옵소서!” 하면서 기도하며 가는 것입니다. 남이 나에게 심한 말을 하여 내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바로 그때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이 주는 상처가 그토록 내 가슴에 아픈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 제 혀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하옵소서!”


엘리베이터를 올라 탈 때에 “하나님 제 남편 올라가게 하옵시고 승진하게 해 주옵소서! 혹은 하나님 아버지! 제 믿음도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게 해 주옵소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도 “하나님 아버지! 저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갈지언정 이 제 신앙이 점점 내려가지 않게 해 주옵소서! 간단하게 기도하는 일입니다. 많이 걷다가 호흡이 가빠지면 “하나님 저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였사오니 살아 있는 동안 부단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찬양하면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씻으면서는 ”하나님 아버지! 저의 허물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케 하여 주옵소서!“ 사우나와 찜질방에 들어가면서도 하나님 아버지! 한번 들어가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뜨거운 불지옥에 들어가는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위기가 몰려왔습니다. 그때 역시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심을 믿고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불쌍히 여기사 이 어려움에서 빠져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난 현장을 보게 되면 ”다친 사람이 없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 가정과 교회의 안전을 지켜 주옵소서!“ 아이들이 범죄하여 문제를 일으킨 장면에서는 ”하나님 우리 자녀들을 이 시대의 풍조에 물들지 않게 순결하게 지켜 주옵소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이 타락한 문화에서부터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남의 차가 내 차에 어떤 실수를 하였을 때 “하나님 아버지! 나도 남에게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알게 하시어 남이 나에게 실수를 하더라도 그에 대하여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잠을 잡니다. 누워서 두 손을 가슴에다 올려놓고 기도해도 좋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평안한 안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악몽을 꾸지 않게 하시고 꿈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뵈옵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어떤 부정한 일이 내게 다가와 큰돈과 이권을 주거나 쾌락을 만족시켜 준다고 할 때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 “주여 성령의 불꽃검으로 지켜 주옵소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참 미웁고 꼬집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원수도 용서하여 주시고 내 죄도 용서하여 주셨는데 아직도 저는 미움의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보혈의 피로 미워하는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용서하는 큰마음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은행에 가면 번호표를 뽑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때는 2-3 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10 분을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은행에 마련되어 있는 소파에 앉아서 가정경제를 위하여 잠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정에 필요한 물질로 채워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제가 가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게 해주옵소서!” 짧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집에 있다가 학교를 가거나 자기 집에 갈 떼에도 아이 머리에 손을 얹으며 아이 손을 잡고 요셉의 축복을 빕니다. “하나님 이 아이가 샘 곁에 심겨진 가지가 되어 그 가지가 담을 넘는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루 사업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그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은혜 베풀어주옵소서! 문을 닫으면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베풀어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 때 짧지만 기쁨의 대화가 오갈 수 있습니다. 올해 많은 성도들이 차를 새로 샀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고 권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언젠가 여름휴가 때 미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놀러갔습니다. 국립공원 안내판에는 곰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하였는데 그곳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였습니다. 둘째 날인가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짐승이 킁킁거리며 신음하는 큰 소리와 함께 텐트를 북북 긋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제가 제일 텐트 바깥쪽에서 잤으니까 바로 그 옆에서 불곰이 발톱으로 그으면서 야수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때와 같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대로 엎드려 얼어붙었지만 누운 자세로 기도하였습니다. 한참 뒤에 곰은 텐트를 떠났고 밖에 놓아두었던 플라스틱 설탕그릇은 곰의 이빨에 의해 구멍이 이곳저곳 뚫려 있었습니다. 그 그릇을 귀국할 때 기념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눈으로는 보지 못하였지만 곰의 그 으스스한 야수소리를 들었고 텐트를 북북 그어대는 소리를 들었으며 곰의 이빨 자국을 통해 곰이 실제로 지나간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후에 곰이 지나쳐 가는 그때 그 무시무시한 생생한 경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만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 생활 속에다 남겨 놓으신 생생한 자취를 분명히 봅니다. 어떤 사건을 통해서 아하!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알려주셨구나! 서 집사님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셨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경고하셨구나!를 생생하게 느끼게 됩니다. 플라스틱 그릇의 곰 이빨자국이 선명한 것처럼 때로는 선명하게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신 흔적을 생생하게 느끼곤 합니다.


한 집사님이 새벽제단을 쌓고 집에 가다가 교회 앞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머리에 큰 남붕이 났습니다. 교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바셀린을 발라 주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눈이 오는데도 새벽제단을 쌓는 우리 집사님을 눈길에 자빨새 버리셨을까? 하고 서로 웃었습니다. 이틀 뒤에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왜 하나님께서 자빨샜는지 알았어요! 머리에 남붕이 나서 혹시나 하고 시티를 찍어 보았더니 뇌에 큰 종양이 있는 것이 발견되어서 빨리 수술해야 한 대요! 하나님께서 자빨새가지고 알켜 주신 것이예요! 손과 발이 저려서 물리치료만 했는데 의사가 뇌에 그런 것이 있으니까 그렇대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뻔 했대요! 그 집사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완쾌되시고 나중에 권사로 임직을 받았습니다. 권사님은 자신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을 자빨새 가지고 가르쳐 주시는 사랑을 체험했다 간증하였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이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여러분 가까이에 계십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하나님께서는 내 범사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내가 나에게 관심하는 것보다도 훨씬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면서 나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임마누엘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내 곁에 계십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나를 뜨겁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나의 하나님과 순간순간 대화하시면서 여러분의 느낌도 나누시면서 여러분의 희망과 좌절을 함께 나누면서 여러분의 바램을 말씀드리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시면서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가 말씀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로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저희의 느낌도 전해 드리고 저희의 바램과 소원도 아뢰면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깊은 교제로 즐거움도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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