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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믿으라!!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7-27 (화) 20:25 13년전 2824  
 

2007 년 2 월 18 일(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사도행전 16 장 31 절

제       목 : 주 예수를 믿으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전통 명절을 맞이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어버이에게 예배드리러 나아온 성도들과 가족 여러분들에게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설날 아침입니다. 인사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많이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복받아 나눠줍시다!! 설날에는 보통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세배를 하고 자리에 앉으면 부모님들은 꼭 축복의 말이나 덕담 하나씩 해 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올해는 꼭 시집장가를 가거라!” 아니면 평범하게 “새해 복 많이 받거라!”, “우짜든지 건강해야 한다!” 등등 한마디씩 해줍니다. 그러면 부모님도 건강하십시오!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명절이라 자녀들이 전국 각처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와서 세배를 드릴 때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무슨 축복과 덕담을 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부모님을 만나 무슨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저는 설날 아침 부모님이나 자녀인 여러분들이 세배를 받고 세배를 하면서 해야 할 가장 좋은 말씀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 중에서 딱 한 구절의 말씀만 보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16 장 31 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성도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 아는 이 한 말씀만 살펴보겠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이 말씀을 번호를 붙여 1 번이라고 하고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를 2 번이라고 합시다. 문장의 구조상 1 번 그리하면 2 번 순서입니다. 1 번을 하면 2 번의 결과가 주어진다 그 말입니다. 2 번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에는 두 가지 차원, 현세적 차원이 있고 미래적 차원이 있습니다. 현세적인 차원이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인데 첫째 질병에서부터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예레미야 17 장 14 절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수님께서도 병을 고쳐주시면서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또한 삶을 짓누르는 고통이나 소외에서 해방입니다. 소외를 당했던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하였을 때 그 구원은 소외에서부터 관계의 회복의 차원으로의 해방 즉 구원입니다.


또한 억압과 압제에서부터 해방을 말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애굽의 억압에서 탈출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 하고 구원의 노래를 부릅니다. 질병에서부터 소외로부터 억압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이 바로 구원인데 바로 이 구원은 땅의 차원에 속하는 구원입니다. 또 다른 차원이 있는데 이는 내세적인 차원과 종말론적 차원에서의 구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 이루어지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차원과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 구원의 내세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즉 죽게 되면 바로 존재가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 존재를 입혀 주시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부활과 영생을 누리는 구원의 차원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을 때 여기서 구원은 삶의 차원에서의 구원과 삶 이후의 삶의 차원에서의 구원, 두 가지 차원을 다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현세적 차원에서 구원은 구원되었을 때 그저 “산다”가 아니라 결국 질병에서 해방되고 억압에서 해방되고 소외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 사는 것이요” 미래적 차원에서의 구원은 삶 이후의 삶 (LIFE AFTER LIFE), 죽음 이후의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보통 기독교계에서 구원이라 하였을 때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만 인식되고 있는데 주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차원은 하늘의 차원과 땅의 차원이 함께 있습니다.


만약 이 구원의 가치를 세상적 가치로 환전을 해본다면 얼마 정도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영국 어는 곳에서는 좋은 집을 지어 분양을 하는데 1 채가 1553 억원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그 내부를 보았는데 꼭 천국 옆집에 있는 환상적인 집이었습니다. 천국에서의 집은 영국에서의 제일 좋은 집보다도 수천배 수만배 더 좋을 것입니다. 영국에서 집은 고작 몇 십년 사는데 비해 천국에서 집은 영원히 살기 때문에 어디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천국의 천사가 천국에서 집 한 채를 영국의 소더비경매장에 내놓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부자들이 침을 흘리고 그 천국의 집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경매를 한다고 하였을 때 값은 천정부지로 높아가서 수백억달러를 내놓겠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1553 억원짜리 집은 째비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값어치는 세상의 값어치를 넘어가지만 세상의 가치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값없이 주어지는 이 구원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가치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돼지가 진주나 금고리를 보고 짓밟듯이 가치로 여기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천하와 바꿀 수 없는 구원을 어떻게 얻게 됩니까? 어떤 굉장한 조건들이 달려 있습니까? 무슨 돈을 보따리로 싸들고 와야 합니까? 무슨 천국에서 요구하는 수십 혹은 수백 가지 복잡한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까? 무슨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준수사항들을 충족시켜야 합니까?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 simple 합니다. 그저 주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이 거기에 부가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딱 하나 단 하나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도대체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이 무엇이길래 인생에 있어서 이생과 내생에서 동시에 최대의 선물을 받는 것일까요? 그것 역시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주 예수님을 내게 보내주시고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내 죄를 대신 속죄하여 주시어 날 살리시고 구원해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셔서 구원하신다 하였는데 날 사랑하심이 어느 정도입니까?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고백하기를 로또 1 등 당첨과 당신이 날 사랑하여 주는 말 한마디와 바꾸지 않겠다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온 우주가 중요하겠습니까? 독생자가 더 중요하겠습니까? 온 우주가 우주의 별만큼 더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독생자가 더 중요합니다. 그 어느 누군들 세상 온 재물을 다 줄 터이니 당신 자식을 달라고 하면 그 자식을 온 세상의 재물 때문에 눈이 멀어서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삼라만상보다도 더 중요한 독생자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속의 제물로 주셨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였는데 “이처럼”이 “그만큼”인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하시는 것이 얼마나 날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주 예수를 믿음은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에게 무릎꿇는 것이고 그에게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를 기초 놓았고 “고백록”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던 어거스틴은 방황과 타락의 세월을 보내다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내가 예수를 믿고 나니 엄마의 품에 안긴 것 같이 평안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고 모든 방황을 끝내고 그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얻은 것입니다. 그 가치를 세상의 가치와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 믿지 않으면 죽어 지옥갑니다. 지옥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십니까? 그러면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면서 종교공해라고 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저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고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꼭 옹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만 온갖 창피를 무릎쓰고서 그렇게 지하철에서 외치는 사람의 심정 속에 혹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마음속에 강렬함이 있었으면 지하철에서나 거리에서 그렇게 외치겠습니까?


제가 배웠던 한신대 구약신학 교수님이신 김이곤 박사님은 구약학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신데 신학교 시절에 버스를 탈 때에 “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이 구원을 받습니다” 전도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것이 종교공해입니까?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다가 잡혀서 죽었습니다. 세상을 현혹시킨다고 잡아서 처형하였습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 동안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다가 죽은 사람들은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1884년 개신교가 처음 들어오면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하다가 많은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죽었습니다. 그것이 종교공해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은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주 예수님을 보다 더 잘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서 이 말씀이 가장 중요한 말씀인데도 다른 여타의 것들이 본질적인 중요한 자리에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여타의 것들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땅에서 복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물질이나 관계에서 형통을 누리게 하는 적극적 사고방식을 중요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은 주 예수님을 잘 믿는 일인데 이 일은 훨씬 뒷자리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잘 믿는 일과 예수님을 믿으라 전도하는 차원이 빠진다면 그저 찐빵에 앙꼬가 빠진 정도가 아니라 자동차에 엔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세상에서 잘되고 형통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사명 주 예수를 믿게 하고 잘 믿는 차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미국에 아들 4 형제를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세 아들은 전도해서 다 예수님을 믿었지만 막내아들만은 고집을 부리고 믿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을 때가 되자 4 형제가 침상에 둘러섰는데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유언을 하고 한명 한명에게 “잘자라!”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막내아들 차례에 와서는 “잘자라” 대신에 '안녕!'하고 슬픈 얼굴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막내아들은 의아해서 '어머니, 왜 형들한테는 '잘자라!'고 하면서 나한테만은 '안녕!'이라고 합니까?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마지막 있는 기운을 다 내서 나는 이제 오늘밤을 지내다가 하늘나라에 갈지 모르는데 '네 형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았으니까 잠자고 나면 다시 만나는 것과 같이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지만 너는 끝끝내 예수 믿기를 거부했으니까 지금 헤어지면 영원히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란다'라고 말하자 그 아들은 무릎 꿇고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어머니, 저도 이제부터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엄마를 꼭 만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기쁜 얼굴로 '잘자라. 내 아들아!'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머니는 숨지기 전에 아들 넷을 다 구원한 것입니다.>


2000 년 12 월쯤 엄청나게 추웠을 때 광주에서 찜질방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여자들이 대여섯 명이 모여  수다를 떠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런 얘기였습니다. 한 여자가 자기가 사람 죽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보약을 많이 먹은 사람들은 죽을 때도 금방 죽지 아니하고 고생고생하고 죽더라! 그런데 우리 옆집 누구네는 예수 믿는 할머닌데 죽을 때 보니까 얼굴이 환하고 솩신이 그렇게 부드러웠다더라! 수의를 입힐 때도 솩신이 부드러워야 잘 넣을 수 있는데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은 죽을 때 오만상 찌뿌리면서 죽고 죽을 때도 솩신이 뻣뻣하더라! 그러자 다른 여자가 맞아맞아! 나도 봤어! 장단을 맞춥니다. 언젠가 여자들이 하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에 섬기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성도가 자신의 시아버지가 이제 죽는 날이 멀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갔으면 좋겠다고 목사님이 한번만 얘기를 해주시면 안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왜 안되겠느냐 지금 당장 가자고 하여 그 집에 갔습니다. 그 시아버지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금방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나라에서 지정한 고싸움 인간문화재였습니다. 평생을 고싸움을 위해 헌신해왔고 아울러 평생을 술로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자식들 중에는 믿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예수님을 믿자고 하면 나는 너희들이 예수 믿는 것은 반대하지 않을 터이니 예수가 그렇게 좋으면 느그들이나 믿을 일이지 나한테 강요하지는 말아라! 자식들과 신사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자식들은 더 이상 아버지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간암에 걸렸습니다. 바로 그때 며느리가 우리 시아버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신사협정을 깬 것입니다. 가서 보니 그 분은 온 몸이 시커멓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사람의 강퍅한 마음을 주 성령으로 녹여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났더니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교회 목사라 하고 제가 볼 때 이제 얼마 살날이 멀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가시기 전에 인심 한 번 쓰시고 가세요! “하나님 아버지!” 하고 한번 불러 보라고 하였습니다. 전혀 따라할 것 같지 않았는데 불러보라고 하자마자 “하나님 아버지!” 하였습니다. 이왕 하나님 아버지 부르셨으니까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한 번 해보라고 하였더니 이 분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더니 바로 고개를 뒤로 하고 돌아누우셔서 계속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였습니다. 자신이 우는 모습이 부끄러워서 돌아서서 계속하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계속하면서 눈물을 철철 흘렸습니다. 그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는 약속하신대로 하나님 아버지 이 어린양에게 구원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10 일 후에 그 분이 가셨는데 그 성도가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우리 시아버지 돌아가셨는데요 마지막으로 가실 때 아주 얼굴이 평온한 모습으로 가셨구요! 염하는 사람이 그러는데 시신도 그렇게 부드러웠다고 해요! 시아버님 예수님 믿고 가시니 제 맘이 너무 좋아요!” 그 전화를 받고서 그때 찜질방에서 여자들이 떠들면서 나누었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을 때 얼굴도 환하고 솩신도 부드럽다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영적 비타민”이라는 컬럼에 막판에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비슷한 얘기를 읽었습니다. 오남매의 아버지가 6.25 남북전쟁 직후에 아내를 떠나보냈는데 그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고 5남매를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오직 자식을 위해서만 헌신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유일한 재미는 시골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돈과 쌀을 자식들이 있는 곳에 와서 나눠주고 자식들이 흐뭇한 모습을 보고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식들은 예수를 믿는 이들이어서 아버지에게 만날 때마다 예수님을 믿고 권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얘들아, 너무 그러지들 마라. 내가 예수 믿는다. 너희들이 믿는데 내가 왜 믿지 않겠느냐? 그런데 올 가을부터 믿지.” 하셨습니다. 가을에 친구 회갑이 있는데, 예수 믿어 술을 못 먹으면 그 친구한테 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와서 자식들은 다시금 찾아가서 “아버지, 이제는 예수님 믿으십시오.” “내가 내년 봄부턴 꼭 믿는다. 내년 봄에 친구가 며느리를 보는데 내가 술 한 잔 안 할 수 있나? 친구가 며느리를 보고 나면 믿지.” 그런 핑계 이런 핑계로 미루다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아버지는 홀로 계시면서 술을 많이 드셨고 위궤양도 심해지고 변에 피가 섞여 나왔습니다. 담당의사는 수술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여 아버지가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안 자식들은 “아버지,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아, 내가 믿는다. 걱정하지 마라. 꼭 믿어.” 그날은 자식들은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함께 기도하고 나서 “아버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은 너무 허무하고…” 그러자 아버지는 전에 없던 노여움을 표시하였습니다. “너, 은숙이 애비 너, 애비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그게 아니라…” “시끄럽다, 그만 나가라.” 앰블런스를 불러서 고향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경의 변화가 왔습니다. 자식들을 불러 찬송을 불러 달라고 하더니 그 다음에는 기도해 달라고 하고 뭔가 바꿔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임종 직전 자신의 친구들을 전부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친구분들이 오셔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을 때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나는 은숙이 애비가 믿는 예수님 믿고 하늘나라 가네. 내가 먼저 가서 좋은 자리 맡아 놓을 테니까, 자네들도 은숙이 애비가 믿는 예수를 믿고 거기 다 오게.” 그렇게 자신도 믿고 자신의 친구들에게 전도까지 하고 가신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드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제 할머니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96 세 일기로 소천하셨습니다. 가시기 전 이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심을 직감했는지 가족 모두를 불러 모았습니다. 앉으셔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보통 어떤 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유언을 남길 때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한다고 합니다만 할머니는 자식들을 모아놓고 딱 한마디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수님 잘 믿고 살아라!” 한 마디 남기시고 가신 것입니다. 그때 할머니는 이미 증손주를 보셨는데 자녀손과 증손들에게 예수 잘 믿으라! 짧은 한마디 남시기고 가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손들과 증손들이 예수를 믿지 않느냐 하면 자녀손들이 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교회학교 교사들인데 이들을 앞에 놓고 가장 중요한 말인 유언을 남기시면서 예수 잘 믿고 살아라! 나는 간다! 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초등학교도 못 나오시고 글씨도 못 알아보셨지만 96 세가 되시어 100 이 가까운 평생을 믿음으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자녀손들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예수 잘 믿어라!”는 말씀 하나 남기신 것입니다. 도대체 할머니에게 기왕에 예수를 믿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된 자식들에게 왜 할머니는 다른 할 중요한 말씀도 많으셨을텐데 다른 말씀을 안 하시고 예수 잘 믿고 살거라!는 딱 한마디 하시고 가셨을까? 할머니는 예수 잘 믿고 살거라 속에는 분명 예수 잘 믿고 잘 살거라!는 뜻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가 말하는 차원은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오라는 뜻도 있었겠지만 예수님을 잘 믿고 이 땅에서 잘 살거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할머니의 경험은 예수님을 잘 믿어야 이 땅에서도 잘 살게 된다는 뜻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잘산다는 것이 꼭 경제적으로 잘 산다함이 아니라 잘 산다함은 이 땅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맛을 느끼면서 영적으로 품질이 있는 행복한 삶을 산다 그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은 다른 일들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고 맘껏 누리면서 사는 일도 아닙니다. 무슨 사회적 높은 지위에 올라 명예롭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이 출중하여 근력이 넘쳐 이쁜 여자 근육질의 남자와 쾌락을 즐기면서 살고 이런 운동 저런 운동을 하면서 생을 즐기는 일도 아닙니다. 온갖 후원을 다하여 자식을 입신양명케 하고 출세시키는 일도 아닙니다. 나의 존재를 맘껏 발산하면서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믿는 일이고 예수님을 잘 믿고 사는 일입니다. 그 이상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금번 명절에 각처에 흩어져서 사는 자녀들과 강진에 함께 사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세배하러 올 것입니다. 와서 세배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님으로서 한 마디 하실텐데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새해 복많이 받아서 나한테도 많이 보내거라! 그런 덕담도 좋겠습니다만 금번 명절에는 예수님을 아직 안 믿는 자녀들에게는 세배를 받고 난 다음에 “얘야! 꼭 예수님 믿고 살아라! 이 애미에비 소원이다!” 하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얘야 예수님 잘 믿고 살아야 된다!” 아니면 “예수님 잘 믿고 잘 살거라!” 해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다시금 떠날 때는 두 손을 잡고 축복하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안 믿는 자식에게는 두 손을 잡고 “하나님 아버지 내 자식 예수님 꼭 믿고 살게 해주세요!” 기도하시고 예수님 믿는 자식에게는 역시 두 손을 잡고 “하나님 아버지 내 자식 예수님 잘 믿고 잘 살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오늘 예배를 마치고 부모님을 만나러 가시는데 아직도 예수님 믿지 않고 사신다면 선물도 많이 사가지고 가시고 아버지 어머니 꼭 안아 드리면서 “어머님 아버님 예수님 꼭 믿고 사세요!”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그렇게 바로 가서 권면하는 것보다는 먼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 안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제가 예수님을 전할 때 열매가 맺혀지게 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고 들어가서 꼭 부모님에게 예수님 믿고 사시라고 전도의 씨앗을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내가 오늘 예배를 드리고 부모님을 찾아가는데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이시라면 찾아가 뵈옵고 올 때에는 축복하는 기도를 해 달라고 하고 기도를 받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명절은 기쁜 날입니다. 명절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해와 달과 별들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금번 명절은 그전의 명절보다도 더 기쁘게 좀 차원이 있는 명절로 지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명절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천국은 재미가 없는 곳이 아닙니다. 잔치가 있고 노래가 있고 기쁨이 어우러 지는 곳입니다. 천국에 사는 것 자체가 명절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 잘 믿고 인생을 춤추고 노래하고 주 안에서 새롭게 기쁘게 잘 살아갈 뿐 아니라 예수님 잘 믿어 천국의 영생복락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함께 옆 사람과 새해 인사 나누면서 “2007 년 우리 예수님 잘 믿고 잘 삽시다!” 서로 인사하십시다!! 예수 잘 믿고 잘 사시는 그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안이 다 구원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 잘 믿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을 믿어 저희와 저희의 온 가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받아 살게 해 주시옵소서! 가족 중에 아직도 믿지 않은 가족이 있다면 저희로 담대하게 주 예수님을 전하게 하시고 함께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해 주시옵소서! 기쁜 명절이 되게 하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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