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가서 먼저 화해하라!!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8-04 (수) 17:21 13년전 10416  
 

2008 년 6 월 22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말씀 : 마태복음 5 장 23 절 - 24 절     

제       목 : 가서 먼저 화해하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성도 여러분들 모두 위에 흘러넘치게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6 월 넷째 주일6.25 전쟁기념일에 예수님의 말씀을 놓고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마태복음 5 장 23 절 - 24 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한 대목 한 대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5 장 23 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는 일은 바로 제사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는 예배입니다. 원래 예배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보면 구약의 제사가 그 뿌리입니다. 구약의 제사도 그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 보면 카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볼 수 있듯이 바로 제물이 핵심입니다. 창세기 4 장 3 절에서 4 절 전반절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인류 최초의 제사입니다만 제사의 근원과 본질이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제물로 삼아 바치는 일입니다. 가인은 곡식을 예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사에 있어서 제물이 가장 중요합니다.


두 번째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5 장 23 절 후반절입니다.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뭔가 퀭기는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뭐가 퀭깁니까? 예배드리러 가는데 형제와 자매를 억울하게 했거나 형제와 자매와 불화하고 싸웠거나 부모와 무척 불편한 관계가 되었거나 이웃의 가슴을 아프게 했거나 그렇게 한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토록 공력을 들여 남편을 전도했는데 그 남편이 술 담배 안 먹겠다고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했는데 남편이 술을 무진장 쳐 먹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들어왔을 때 어젯밤 토요일 남편과 맞장을 뜨고 대판 싸운 것이 생각났을 때 뭐 그런 뜻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가는데 친구가 딸 등록금이 없어서 어렵다고 돈 좀 빌려달라고 했는데 일전 한 푼 안 빌려 주어 원망어린 눈초리가 생각났을 때 그런 뜻일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5 장 24 절입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무엇입니까? 제단에 예물을 드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형제와 화목하고 나서 예물을 드리라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다가 형제와 자매와 부모와 자식과 이웃과 불화하고 싸웠던 것이 생각났을 때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예물을 드리라 하였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둔다는 것은 아직 제단에 바치지 않는 상태입니다. 예물이 소가 되었건 양이 되었건 그 양과 소를 불살라 바치기 전에는 아직 제사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이는 한 마디로 “제사를 드리기 전에”,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 뜻입니다. 형제와 화해하고 나서 그 다음에 맡겨둔 제물을 찾아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라! 그 말입니다.


마태복음 5 장 23 절과 24 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의 중심 뜻은 무엇입니까? 형제와 화목 하는 일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 중에 형제와 화목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까? 결코 그것은 아닙니다. 형제와 화목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보다 더 1 순위다 그런 뜻입니까? 그것 역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1 순위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형제와 화목 하는 일을 먼저 하라 하셨을까요?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는 먼저고 나중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심정을 고려하신 것입니다. 큰 딸과 둘째 딸이 엄마가 보는 앞에서 대판 싸웠습니다. 죽느니 사느니 하고 머끄댕이 잡아채면서 서로 싸웠습니다. 엄마는 무척 가슴이 아파서 드러누웠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큰 딸은 엄마가 평소에 설기떡과 식혜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서 가져갔습니다. 엄마는 떡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떡과 식혜를 드시고 원기를 회복하라고 권해도 돌아누워 버렸습니다. 딸이 눈물을 흘리며 드시라고 하자 엄마는 간신히 몸을 추수려 일어났습니다. “얘야! 네가 동생하고 싸운 뒤로 네 마음이 편치 않고 아무 것도 먹기가 싫구나! 만일 네가 지금 당장 동생에게 가서 화해하면 내가 그 때 떡을 먹으마!” 하였습니다. 그 즉시 첫째 딸은 동생에게로 가서 동생과 화해하고 동생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로 왔습니다. 엄마는 그때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앞으로는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화목하면서 살거라! 하고 떡과 식혜를 먹었습니다. 만일 큰 딸이 끝까지 나는 동생하고 화해할 수 없어요! 하면서 고집한다면 엄마 역시 아무리 떡과 식혜가 맛있다고 한다고 해도 안 먹었을 것입니다. 이 엄마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 쎄쎄쎄!! 하면서 오순도손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정을 읽으셨습니다. 읽으셨기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법,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사가 열납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수직은 수평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과의 관계가 수직관계라고 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수평관계입니다. 이 수직과 수평은 “수직 따로 수평 따로”가 아니라 수직과 수평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변수입니다. 그 연관관계가 무엇입니까? 그 하나가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중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6 장 12 절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 기도 속에는 수직과 수평이 깊게 얽혀 있습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할 때 무조건 그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웃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고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용서도 잘 해주고 내가 상대방의 허물을 잘 덮어줄 때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내 죄를 덮어주시는 은총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올리면서 나는 용서도 안 해 주고 나는 덮어주지도 않으면서 내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이 따로 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연대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매 주일 예배 시간에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하고 인사합니다만 이 인사의 정신대로 집에 가서 며느리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이웃에게도 용서하면서 사랑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때에야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보면 하늘과 땅은 여러 가지로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 장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지극히 적은 가난한 사람에게 이 땅에서 어려운 사람에게 한 것이 바로 하늘 아버지께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참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과 연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자신에게 선대해 주는 것으로 삼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매 주에 나아와 예배를 드립니다. 만일 100 명이 똑같은 시간 8 시 혹은 11 시에 똑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시다! 그러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드리니까 100 명이면 100 명이 드리는 예배의 품질이 똑같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00 명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시험을 본다고 해서 시험점수가 똑같이 나옵니까? 아닙니다. 어떤 학생은 20 점을 맞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100 점 맞기도 합니다. 카인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낙제점수를 받았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에이플러스를 받았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는 예배드리는 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드리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애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예배 시간에 자신이 투자해 놓은 주식이 얼마나 불었을까? 내가 투자해 놓은 땅이 얼마나 뛰어 올랐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장로님이 기도하는 시간에 기도에 집중하지 아니하고 예배 후에 낚시를 하러 가는데 오늘은 꼭 월척을 낚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설교하는 시간에 객지에 보낸 아들생각 시집보낸 딸자식 생각, 시집 장가보낼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설교하는 시간에 어떻게 하면 주신 말씀에 따라 살까 하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씀을 나름대로 평가하면서 점수를 매기는 성도가 있습니다. “저 말씀은 지난 번 기독교텔레비전에 나오는 강사 목사님 보다는 훨씬 떨어지는구나!” 하고 설교를 나름대로 점수를 매기면서 듣는 성도가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성도가 부르는 찬송이 하늘을 향해 똑바로 올라가겠습니까? 언젠가 면도하면서 딴 생각하였을 때 턱을 벤 적이 있습니다. 면도는 칼날인데 칼날을 사용하면서 딴 생각을 하면 베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는 가사에다가 자신의 신앙고백과 주님 향한 사랑을 올려 보내야지 그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 딴 생각을 한다면 예배의 품질이 엉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성도는 남편과 아내와 대판 싸운 다음에 예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부모님과 불화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드리는 예배의 품질도 결코 훌륭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관습적으로 그저 통과의례로 예배를 드리고 카인과 같이 어쩔 수 없으니까 그저 의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후딱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의 품질도 低品質, 下品質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형제와 화목하면서 이웃의 어려움을 잘 돌보아 주는 삶을 살면서 드리는 예배의 품질은 상당히 높아져갈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려 애쓰면서 내가 이 풍진 세상에 살면서 거룩하게 살면서 이웃에게 진실하게 살려 하면서 드리는 예배의 품질은 고품질이 될 것입니다.


광주에 심방을 가는데 동아병원 엘리베이터에 보면 그 병원이 벌이는 운동 중에는 <6 시그마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고 하면 원래 모토로라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일종의 품질향상경영기법입니다. 품질불량의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하고자 하는 체계적인 방법론입니다. 시그마는 원래 정규분포를 나타내며 6 표준편차인 100 만개중에 3 개 내지는 4 개의 불량률(Defects per million opportunities, DPMO)을 추구한다는데서 나온 말입니다. 100 만개 중에서 불량률이 3 개 내지 4 개이면 거의 불량이 제로인 것입니다. 6 시그마 운동은 대부분의 제품에서 거의 제로 불량률을 실현하여 제품과 품질면에서 고객에서 만족함을 주고자 하는 방법입니다. 금번에 청와대 대통령 민정수석에 내정된 사람이 정동기 전 대검차장입니다. 정동기 수석은 대구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04 년 기업경영 혁신기업인 6 시그마 운동을 검찰에 도입해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으로 검찰 혁신을 주도하였습니다. 병원에서나 기업에서 그리고 검찰에서 6 시그마 운동으로 결점을 거의 제로로 하는 일에 쏟아 붇고 전심전력하고 있어 혁신을 주도해 가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불량률을 줄이고 예배의 품질을 영적으로 좀 더 향상시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구약성경을 볼 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과 은혜를 내리시는데 복과 은혜를 내리시지 않는 처소와 시간이 없으시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집중적으로 복과 은혜를 내리시는 곳이 있는데 바로 성전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자에게 소나기와 같은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집, 자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집에 복을 집중적으로 나리십니다. 시편 122 편 6 절에서 7 절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통함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과 은혜를 성전에 집중적으로 나리시는데 특별히 성전에 나아온 자들 중에서도 예배드리는 자에게 퍼부어 주십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시편 5 편 7 절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예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사랑을 내리십니다. 예배드리는 자 중에서도 그 예배의 품질을 보시고 복과 은혜를 쏟아지게 내리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에게 은총의 하나님께서 집중적인 은혜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첫 번째는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사시고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을 인생의 제일 되는 일로 여기시기를 바라고 특별히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드리는 각자의 예배의 품질을 1 mm 라도 더 높여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품질은 여기 모인 여러분들 마다 각각 다를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예배의 품질을 높이려면 예배하는 그 순간이 중요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딴 생각을 하지 말고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집중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믿음의 주시오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한데 묶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뻐 열납하실 것입니다.


예배의 품질을 높여 나가는 방법 중에 하나는 평소생활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을 아름답게 할 때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도 더욱 고품질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세상과 똑같이 뒤섞여 살고 세상 사람과 하나도 다름과 차별이 없이 살다가 겨우 예배 시간이 되어 나와 예배를 드리는 그 예배의 품질과 이 세상에서 살 때에 빛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려 애를 쓰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과 할 수 있는 한 평화롭게 살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베풀고 살 때 내가 예배드리는 품질이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고 살 때 하나님께서 내가 드리는 예배의 품질과 내가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묻혀 살고 어둠을 뿌리고 살고 형제와 불화하고 살고 제 멋대로 내 중심대로 살면서 주일날 내가 드리는 예배의 품질과는 그 품질이 달라도 한참 다른 것입니다. 내가 한 가정에서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살고 며느리를 미워하면서 살고 내가 남편을 증오하면서 살고 아내에게 무관심하고 살고 그저 이웃과 원수를 맺고 살면서 주일날이라 하여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내 예배를 열납하시는 정도와 내가 참으로 예수님 사랑하면서 살고 형제와 자매를 도와주면서 살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 때 내가 드리는 예배의 품질의 가치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저는 특별히 성도 여러분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면서 살 때 여러분의 예배의 품질을 점점 높여 나가는 일이라 믿습니다.


오늘날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을 증오하면서 화해하지 않으면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노래 부르면서 북한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면서 여전히 화해하지 않으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하나님께서 남한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굶어 죽어가는 북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서 “저 아말렉과 같은 김일성 도당들의 씨를 말려 주옵소서! 성령의 불로 저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무리들을 다 태워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작년에 강진읍교회를 비롯하여 강진군청 그리고 강진군사회단체협의회가 합하여 약 1 억원치에 해당하는 쌀을 북한 고성군의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한 바 있습니다. 그때 강진읍 교회는 적극 참여하여 수천만원이 넘는 쌀을 북한으로 보낸 바 있습니다. 강진군과 강진읍교회가 사랑의 쌀을 보내자 두 세 개의 군에서도 강진군을 따라서 북한에 사랑의 쌀을 보내는 연쇄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북한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번 평양이 물에 잠기는 대 홍수와 거듭되는 흉년으로 인해 농사는 매해 흉작을 이루어 북한의 주민들은 계속해서 굶어 죽어가는 데 특별히 어린아이들로부터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종결시키고 육자회담이 타결되면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면 그때야 양식을 줄 것으로 말하였습니다. 북한이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그렇게 북한의 자존심을 잔뜩 건드려 놓고 최근에는 옥수수 5 만톤을 주겠다고 하였지만 자존심강한 북한이 이를 받을 리 없습니다. 남한정부의 설익은 정책과 북한정부의 자존심으로 인해 샌드위치가 된 북한주민들은 점점 죽어가고 극심한 영양실조를 나타나는 어린이가 점점 더 속출해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누기 본부”에서 일하는 윤유선 부장과 통화를 하는 가운데 금번에는 강진군과 기독교연합회에서는 사랑의 연탄을 싣고 가겠다 하였는데 윤유선 부장은 즉시 “목사님! 연탄보다도 쌀을 보내주세요! 지금 북한은 이제 양식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목사님 저도 한 달에도 수차례 북한에 들어가지만 그들의 퀭한 눈을 보면 눈물이 막 나와요! 지난번에 강진읍교회와 기독교연합회와 강진군청이 사랑의 쌀을 보내주셔서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이번에도 꼭 강진군에서 지난번과 같이 사랑의 쌀을 꼭 보내주세요!!” 그 말을 듣고 짠한 생각이 들어 강진읍교회 당회와 협의하고 강진군청과 협의하고 강진군사회단체협의회 회장인 김정권 장로님과 협의하여 강진군의 다섯 종교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유고 다섯 종교단체와 함께 협력하여 강진의 사랑의 쌀을 북녘동포와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강진군의 목민관 황주홍 군수님의 적극적인 협력과 좋은 제안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7 월 15 일에 강진군의 모든 종교단체와 모든 사회단체들이 합하여 강진의 사랑을 쌀로 모아서 북한 동포에게 보내려 합니다. 이 일에 적극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였는데 이 모든 일은 사실상 강진읍교회 따밥국선교회(회장 김승복 집사)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매 달 천 원 씩 내 놓은 것들이 기초가 되어서 그동안 북한에 여러 번 밀가루와 쌀을 보냈고 작년에는 쌀 1 억원어치를 보내고 올해 역시 많은 쌀을 보낼 수 있게 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게 될 만큼 된 것입니다. 따밥국선교회와 김승복 집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들에게 주보를 통해 나눠드린 “북녘 동포 사랑의 쌀 보내기전단지”에 성도 여러분들의 이름과 소속구역을 적으시고 봉헌할 양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1 구좌는 1 만원인데 10 kg 이고 이는 북한 어린이들이 한 달 이상 먹을 수 있는 양이고 2 구좌는 2 만원인데 북한 주민 한 사람이 한 달 이상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꼭 1 구좌 이상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 구좌 5000 원도 좋고 5 분의 1 구좌인 2000 원을 해도 좋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북한의 어린이들과 주민들에게 사랑의 쌀을 보내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2 장 15 절에서 17 절에 있는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하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만일 우리 강진읍교회가 강진읍교회 성도들이 지금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동포를 위하여 우리가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는 일을 잘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예배의 품질은 높아지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기뻐 흠향하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강진읍교회 성도들의 가슴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더욱 따뜻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열어 북한에 사는 동포에게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주는 가슴 따뜻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예배를 드릴 때 형제와 화해하면서 형제를 사랑하면서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가 열납되는 예배인 것을 예수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금번에 저희가 북한의 동포들과 어린이들을 사랑의 쌀로 돕고자 합니다. 이 일에 저희의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어 주님의 사랑을 저들에게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로 이 땅에 살면서 열납되는 예배를 드리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0:07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