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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산자교회 장로권사임직예배 설교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1-05-06 (금) 16:11 12년전 4263  

2011 년 5 월 1 일(주일) 오후 3 시 성남산자교회 장로권사임직예배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3 장 1 절 - 3 절

제 목 :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은총과 평강을 성남산자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귀한 찬양을 올린 성가대원, 오늘 임직을 받으시는 유수룡 피택장로님과 김현옥, 윤미자 권사님 위에 그리고 값주고 피로 사신 이 교회를 세우신 존경하는 김해성 목사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시어 목회하시는 김현의 담임목사님, 오늘 이 예전에 귀한 순서를 맡으신 존경하는 박태식 직전노회장님과 이해학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귀하신 분들과 축하하러 오신 한 분 한 분위에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성남산자교회에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김해성 목사님께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 가게 되었을 때 주일낮예배에 와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씀을 전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20 여 년 전 쯤 됩니다. 그때는 김현의 목사님께서 사모님이시기만 했는데 이제는 담임목사님이 되셨는데 그때 설교를 쫌 잘했다고 생각하셨는지 기억하시고 이렇게 또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성남산자교회 여러분의 전임 목사이신 우리 김해성 목사님께서 이 땅의 이주민들과 중국동포들을 위해서 귀한 헌신을 해 주신데 대해서 교단을 대표하여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리며 목사님보다도 더 나은 반쪽이신 김현의 목사님께서 성남산자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가득한 교회로 섬겨가고 계심에 대하여 역시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두 분이 일함으로 인해 이 땅은 점점 환해지고 살만해 지고 아름다워져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두 분을 이 땅에 내려 보내주신 은총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고린도후서 3 장 3 절입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였습니다. 역사 드라마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서 오게 이 사람아!”,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그건 그렇고 대감께서 보내신 서찰 내놓게!” “서찰이라니요 제가 서찰입니다요”, “그래 대감께서 뭐라고 하시더냐? 그러면 ”잠깐 귀를!“ 하면서 뭔가 속닥거립니다. 옛날 역적모의를 할 때면 믿을 수 있는 하인을 보내 직접 전달하지 증거를 남기는 편지 따위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하인은 주인이 보낸 편지, 즉 메신저가 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였을 때 그 핵심은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멧세지가 나타날 때 그렇습니다. 누군가 내 존재와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멧세지를 읽었을 때 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이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메신저라 그 말입니다. 한마디로 내 영혼과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각인이 되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삶으로 화육의 옷을 입고 나타날 때, 내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고 내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 속 한 중심에 간직하고 살 때, 내 영혼이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 때 내 속에 있는 것들은 내 속에만 잠잠히 있지 아니하고 내 영혼과 내 마음에서 내 말과 내 행동으로 내 생활과 내 삶으로 연결되고 전달되어지고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그때 내 말 속에 예수님의 뜻이 나타나고 내 행동거지 하나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배어나오면 어느 새인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메신저)가 되는 것입니다.

현대 신학계의 거장인 <에밀 브루너(Emil Brunner)가 친구 신학자와 신학상 의견의 차이로 서로 말다툼을 하고 그 다음에 사이가 벌어져서 그렇게 하다가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1 년 이상을 말을 않고 왕래도 없이 지내던 중, 가서 먼저 화해하라는 설교말씀에 깊은 은혜를 받고 친구에게 화해의 편지를 썼습니다. 다섯 통을 보내면서, 이제나 저제나 친구로부터 소식을 기다렸지만 그 친구로부터는 종종 무소식이었습니다. 브루너는 큰 결단을 하고 친구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 어느 추운 겨울 날 집을 나섰습니다. 에밀 부르너의 친구는 부르너가 눈보라 속에서 자기 집 문 앞에 서있는 것을 본 순간 얼음장 같았던 그 마음이 눈 녹듯 녹아지고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브루너 그 자신이 편지가 되어 친구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편지를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멧세지“를 보내는 데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였을 때 나를 보면 ”그리스도의 멧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보고 주변사람들이 내 부모를 말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거지를 보고 내가 형편없이 게딱지 같이 살면 저런 애비에미도 없는 후레자식같으니!“ 합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욕 얻어먹는 것입니다. 신언서판이라 하였습니다. 나를 보고 내 부모를 평가하든지 나를 보고 내가 속한 교단과 내 나라를 평가하기도 합니다. 큰 나무교회 임종수 목사님이 쓴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버스여행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한 관광회사에 4 명의 운전기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지만 4 명의 운전기사는 모두 과테말라 사람입니다. 그들은 동료들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땀흘리며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맨이란 사람이 맨 처음에 입사했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그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특히 시커멓고 짧게 깎은 머리가 주는 강한 인상은 인사 담당자를 무척 망설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근무 태도는 매우 좋았고 비록 한국어는 못했지만 언제나 상냥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후 회사는 운전기사가 필요할 때마다 과테말라 사람인 그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성실한 친구 로베르토와 조지, 에드거가 차례로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성실성이 세 친구들을 일터로 이끌었고 그들은 너무도 일을 잘하여 좋은 인상을 주어서 나아가 과테말라의 사람들은 참으로 국민성이 좋은 사람이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임종수 목사님은 컬럼 마지막에서 이렇게 글을 맺습니다. ”나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로 인해 내가 속한 교회를 평가 받게도 하고 한 나라의 국민성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3 장 말씀을 대하면서 특별히 오늘 임직을 받으시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읽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개독교”라 불림을 받고 있습니다. 개같은 종교 독을 품어 내는 종교라 그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사람들 속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면서 은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털끝만큼도 양보하지도 않고 손톱만큼도 손해보려 하지 않고 눈꼽만큼도 지지 않으려 합니다.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란 노래가사가 있습니다. 이 땅의 기독교인들이 한편으로는 영생복락이라는 떡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땅에서 잘되고 축복을 누리는 떡을 들고 그런 욕심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 하지 아니하니 그런 기독교인들을 보고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치도 눈꼽만큼도 털끝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가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갈 때 이 사회 속에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놀랄만큼 감소해 가고 부정적인 영향력만 증대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서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은 것입니다. 인도의 델리에는 마하트마 간디의 묘가 있는데 그의 비석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의 삶이 나의 메시지다.(My life is my message).” 마하트마 간디는 생전에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입술에는 그리스도가 있지만 그들의 삶에는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그럼 나의 삶을 보십시요! 내 삶이 말해줄 것입니다.” 내 삶이 나의 메시지입니다 그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살기도 하고 내가 사는 삶에 따라 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기도 하고 내 삶으로 인해 기독교 전도가 철저히 봉쇄되고 가로 막히는 결과를 이루기도 합니다.

저는 성남산자교회 성도들과 오늘 임직받으시는 장로님 권사님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실 때 예수님의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택시가 광고를 하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택시 차문에다가 택시 꼭대기에다가 여러 가지 광고 문안을 써서 도처를 다닙니다. 아파트 광고를 하면서 “푸르지오”는 “푸르지오”를 느낀다! 하고 택시가 광고를 달고 종일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움직이는 광고판을 보면서 “야 푸르지오라는 아파트는 살기가 허벌나게 좋은갑다 그런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푸르름의 향기를 뿌리고 다니는 그리스도의 광고판입니다. “예수님의 움직이는 광고판”, “하나님의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해도 똑같은 뜻이겠습니다. 광고한다고 할 때 자신의 의를 드러내 놓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수이트파 수도사들은 선교지에서 일할 때 오직 침묵을 명령받습니다. 선교지에서 요청되는 일을 하면서 결코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일을 금지토록 합니다. 오직 그들의 필요에 소용되는 일만 하도록 합니다. 만일 현지인들이 왜 당신들은 희생을 하면서 일을 하느냐 물었을 때 단 한마디 하도록 허락받습니다. “because of Jesus".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고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닌다면 여러분들이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척하면서도 여러분들을 예의주시합니다. “저것이 장로가 되었다는디! 저것이 권사가 되었다는디! 그래서 저것 때문에 교회서 큰 행사를 했다는디! 어디 한번 보자! 안 보는 것 같지만 안 지켜보는 것 같지만 아주 예민하게 지켜 봅니다. 그러면 뭘 보느냐? 여러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잘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는지 성수주일 꼭꼭하며 예배는 빠뜨리지 않고 드리는지, 십일조를 빼먹지 않고 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아닙니다. 집 안에서 아내가 믿고 남편이 믿지 않을 경우 남편이 그저 내 아내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 평소 생활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말을 어떻게 하는지? 예수 믿는 사람이 말 하는 것을 뽄 때없이 매정하게 하는지 한 마디를 하더라도 따뜻하고 감싸주고 애정어린 말을 하는지! 하나님 믿는 것들이 사석에서 얘기를 할 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험담을 나누고 예수 말대로 자기는 눈에 대들보가 들어있으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떠들고 다닌다든지 아니면 누군가 상대방의 허물을 누군가 들췄을 때 그 사람 편에서 옹호하고 변호를 해주고 덮어주는 말을 하는지 조용히 지켜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들이 행동거지는 어떻게 하는지! 알토란 같이 지 이익을 철저히 챙기면서 있는 탐욕 없는 욕심 꿀돼지같이 다 챙기면서 남의 사정이나 눈물에는 아랑곳 없이 하는지! 아니면 남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일처럼 걱정을 해주는지! 세상 사람들은 때로는 예수 믿는 이들을 망원렌즈로 보고 때로는 현미경으로 보면서 무척 예민한 센서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마음 속으로 평가합니다. 뭐! 예수 믿는 것들도 별 볼 일 없네! 예수 믿는 것들이 더 독하고 징하네! 뭐! 교회 다니는 것들이 우리들보다도 한 술 더 뜬다니까!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마음 속으로 평가절하고 그 사람이 믿는 예수 까지도 별 볼 일없는 위인으로 하향평가를 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인 때문에 영영 전도의 문이 막혀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건 안 믿는 사람들이 예의주시하는 하나의 광고판인 것입니다.

먹구름 속에서도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보이듯이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가 누군지 모르는데 기독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는데 저 사람 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진실해! 무릇 종교를 믿는 사람은 저 사람 같아야 해!”, “저 사람만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같아!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받아 줄 것 같아!”, “저 사람이 말하면 꼭 호주머니 속에 담아둘 것이 있어!”,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믿어볼 만 하겠어!“ ”역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 무엇이든지 어려운 일은 솔선해서 하려고 하고 희생할 줄도 알고 손해볼 줄 알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하다니까 !! 정이 많다니까!“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전도의 문도 쉽게 열려지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일체 의식이 있습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과 자신을 동일화하려는 의식이 있으니 언젠가는 착한 그리스도인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려 하여 어렵지 않게 그리스도의 품으로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같이 느낀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가고 하나님의 광고판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해성 목사님과 김현의 목사님은 은총의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내려 보내사 하나님의 메신저요, 하나님의 홍보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70-80년대는 독재와 탄압속에서 보내신 예언자요, 90년대-2000년대, 이주민, 새터민, 중국동포들이 인권과 생존권을 위해 보내신 messenger라 믿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는데 여러분 역시 그렇게 믿으리라 믿습니다.

산자라고 했을 때 무슨 뜻으로 산자라 하였을까? 김해성 목사님이 무슨 뜻으로 무슨 계시를 받아서 산자라 하였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산 자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게 될 때 나는 내가 무슨 특별한 노력을 하려 하지 않아도 나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니다. 특별히 오늘 임직하시는 장로님 권사님들이 그리스도를 안에 모시고 사시기를 바라고 이 땅에서 살 때 예수님의 홍보 에이젼트가 되고 하나님의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셔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세상이 1mm라도 밝아지고 1 럭스라도 환해지고 아름다워지고 평화로워지며 여름에는 1 도씨라도 시원해지고 겨울에는 1 도씨라도 따뜻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말할 때마다 행동할 때마다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게 되는 거룩한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남산자교회 성도들과 임직받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사심으로 말미암아 성남산자교회 이미지도 밝게 채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남긴 한 마디를 나누려 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 사랑을 전파하세요 / 먼저 당신의 집에서 / 그 일을 실천하세요 / 당신의 자녀를 /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세요 / 그리고 그 다음엔 / 옆집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 어떤 사람이든지 당신을 만나고 나면 / 더 나아지고 / 더 행복해지게 하세요 / 하나님의 사랑이 / 당신을 통해 표현되도록 하세요 / 당신의 얼굴에, 당신의 눈에 / 당신의 미소 속에 /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 /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세요“

기도> 은총의 주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하나님의 광고판이 되어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저희 모두가 그리스도의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편지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 판에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말씀을 새겨 주시옵시고 저희들이 주님을 보여드리는 현존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남산자교회와 오늘 임직받을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더욱 그리스도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그리스도의 누룩이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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