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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2-11-21 (수) 21:14 11년전 12658  
2012년 11월 4일(주일) 오전 9, 11시 주일낮예배 대전장로교회 (박용래 목사 시무)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15 장 8 절 ~ 10 절
제 목 :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주님 값주고 피로 사신 대전장로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깊고 깊은 은혜의 찬양을 주께 올린 대전장로교회 성가대 위에,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몸된 교회를 헌신하시며 섬기시는 박용래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1 월은 추수감사절이 있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먼저 후배를 늘 사랑해 주시고 금번 제가 교단 총무로 봉사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신 목사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강단에도 적지 않게 초청해 주셔서 말씀과 축사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말씀을 은혜롭게 잘 전하는 강사는 아닙니다. 말씀을 통한 깊은 은혜는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을 통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이 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와 “나 자신”과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15 장 10 절 말씀 그 중에서도 상반절을 중심으로 묵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0 절 상반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마디로 정리한 부분입니다. “내가 나된 것”이라 할 때 “”가 할 때 “”와 “나된 것” 할 때 “”는 같은 “”가 아닙니다. 앞에 나와 있는 “”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하고 잡으러 다녔던 “사울의 나”요, 뒤에 나와 있는 “”는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 곳곳에 이르기까지 전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바울의 나“입니다. ”나“는 내가 주체가 되어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던 ”“요 뒤의 ”“는 은총의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고백하는 은혜의 품 안에 있는 ”“입니다. 전반의 ”“는 죽이려는 ”“지만 후반의 ”“는 한 영혼이라도 살리고 구원하려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온 산과 들을 헤메는 ”“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어제의 자신”이 “오늘의 자신”으로 변화된 것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죄인 중의 괴수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 된 전도자가 된 것은 사도 바울 자신에게 어떤 인간적인 계기가 생겨서 회개하고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하다보니까 복음전도자로서 성경에 기록될 만큼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오늘의 나되게 만들어 주셨다 자신이 바꿔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한다는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하여 죽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돌을 던지는 군중 무리들과 함께 있었던 이가 아니었습니까? 그런 사울이 뭐 갑자기 자기가 주도적으로 뉘우치고 회개를 하였습니까? 사울 편에서 전혀 회개하지 않았고 손톱만큼도 뉘우친 적이 없었습니다. 은총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메섹 도상에 나타나셔서 환한 빛을 비추이시면서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말씀하시고 그를 강권적으로 돌이킬 수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된 데에는 사울 편에서의 노력이 0.1 %도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100 %가 예수님의 은혜로 사도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나의 나된 것은 1~2 % 정도는 내 노력이요 98 % 대부분은 은혜로 된 것이라” 하지 않고 나의 나된 것은 전적으로 100 % 다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한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 속에는 내 노력 내 지식 내 경험 내 생각 내 판단 내 정보 내 의지 내 지혜 내 힘 내 인간관계 내 가치관 그 어느 것 하나도 역할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만 그리 하신 것이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내가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사실 믿음도 내가 주체가 되어 믿는 것이나 내 공적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전도자로 바꾸어진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이 모든 사도들보다도 더 수고하여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전하게 된 것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니요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합니다. 사도들 중에는 사도 베드로도 있고 사도 요한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보면 사도들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이는 바로 사도 바울이고 적어도 사도로서는 그를 능가할 사도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를 비롯하여 성경의 절반 이상 사도 바울이 쓴 편지들이나 전도행적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이 확실합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유럽과 소아시아 곳곳에 복음의 불길을 지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니고서는 복음의 세계화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 역시 자신이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리 가라 해서 갔고 그리로는 가지 말라 해서 가지 않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그리 한 것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변화된 것만이 자신이 복음을 전하게 된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시는 그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보다도 훨씬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 1 장 15 절에서 16 절 중반절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님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는 다메섹 도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모태에서 있을 때 이미 택정하시어 부르셨을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39 편 13 절에서 14 절입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여기서 보면 다윗은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셨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오장 심장(心臟), 간장(肝臟), 비장(脾臟), 폐장(肺臟), 신장(腎臟)을 주께서 지으셨고 육부 위(胃),소장(小腸),대장(大腸),방광(膀胱),담(膽),삼초(三焦)를 다 만드시고 조직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나를 모태에서 지으셨다고 했는데 나의 모태는 내 어머니가 지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어머니의 태도 지으셨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태도 지으셨습니다.
 
 
또 다윗은 내 오장육부를 조직하셨음을 내 영혼이 잘 안다 하였는데 그러면 그 영혼은 내가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내 영혼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니 단 내가 존립해 있고 내가 숨을 쉬고 있고 내가 활동하고 있고 내가 보고 있고 내가 듣고 있고 내가 걸음걸이를 걷고 있고 내가 예수님을 믿고 형편없이 살다가 꽤 괜찮게 살고 있고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 나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내 몸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얹고 조용히 있어보면 뭔가 콩닥콩닥 뛰고 있습니다. 그 심장을 내가 만들었습니까? 내가 심장의 각 부분을 제조하였습니까? 심장이 대단히 복잡합니다. 그 복잡한 그것을 내가 대동맥 폐동맥 상대정맥 하대정맥 반월판 이첨판 삼첨판 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을 내가 만들었습니까?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장이 조직이 될 때 내가 1 분에 6-80번씩 심장을 하여 수축하게 하고 이완하게 하여 피를 온 몸에 보내고 내가 하루에 심장의 펌프질을 10 만번해야 하는데 내가 하루에 10 만번씩 내가 펌프질을 하고 70 평생을 산다면 펌프질을 26 억번 정도 하게 되는데 그걸 내가 해서 내 생명이 영위되는 것입니까? 내가 살아있어 심장이 뛰기 시작하여 죽는 그 순간까지도 심장이 뛰는데 내가 그 심장의 박동을 그렇게 규칙적으로 뛰게 하고 온 몸의 실핏줄을 통해 피를 공급하게 한 것이 내가 주도해서 한 것입니까?
 
 
내 몸 꼭대기 부분에 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고 내가 뭔가 계산하고 추론할 수 있고 내가 이렇게 하면 돈을 벌겠지 하면서 머리를 요리로 굴리고 저리로 판단하는 뇌의 그 기능을 내가 스웨터를 뜨듯이 내가 두개골 대뇌변연계 뇌간척수계 측뇌 등등을 내가 공을 들여 만든 것입니까? 우리 몸에 세포가 66 조개 이상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그 세포들 중에 단 한 개라도 심혈을 기울여 만들거나 공작하여 생산한 적이 있습니까? 세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내가 자고 있을 때라도 부단히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그 세포 하나 하나들이 내 명령을 받고서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해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내 명령을 받았다고 움직이고 내 명령을 받지 않았다고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자식을 낳았다고 합니다. 내 새끼라고 합니다. 내가 내 새끼를 만들었습니까? 내가 남자로서 정자를 만들고 내가 여자로서 난자를 만들어 그것을 수정되게 하고 그것을 내가 주도적으로 착상을 시키고 차츰 아이가 만들어질 수 있는 자궁의 환경과 메카니즘을 내가 수고하여 땀흘리면서 만든 것입니까? 심지어 나는 그 메카니즘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알지도 못합니다. 내 자식이라도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식의 세포하나도 자궁의 1 억분의 1이라도 내가 내 힘으로 내가 수고하여 만든 사실이 없습니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도 내 의지대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거야!”, “이제 내가 무에서 유가 되어야 하겠다!” 해서 내가 이 땅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입니까? 그 누구도 그런 사실 없습니다. 내가 밥을 먹습니다. 그것을 위장에서 흡수하여 소화액이 나오게 하고 그것을 잘게 부수고 영양으로 만들어 온 몸에 영양을 실핏줄을 통해 공급하고 그것으로 내 몸에 열을 내게 하고 에너지로 바꾸어 활동하게 하는 것이 내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물론 내가 밥을 먹습니다만 내 몸속의 오장육부의 내부조직과 체계는 내가 관여하여 만든 바가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볼 때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데 순전히 내가 내 힘으로 내 예지력을 움직여 사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가 2-3 분이라도 호흡을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만 내가 호흡하는 공기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호흡하여 그것을 내 호흡기를 거쳐서 내 생명을 살게 한 것도 아닙니다. 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질서 안에서 그 너른 품 안에서 내가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하지만 내가 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은총 안에서 내가 호흡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존재하게 된 것, 변화되어 소망스럽게 된 것, 사도로 일하게 된 것만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병들게 된 것 역시 하나님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로 받아드렸습니다. 육체에 찌르는 가시와 같은 것들이 있어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몸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하나님께 그 고통이 떠나게 되기를 세 번이나 간구하였을 때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 장 9 절) 말씀하셨습니다. 찌르는 가시와 같은 것도 결국은 사도 바울을 겸손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 년전 제가 강진읍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몇몇 집사님들이 사택에 왔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신 어떤 집사님께서 “목사님! 항상 겸손하시고 계단도 쓸고 쓰레기도 주으시고 그러세요!”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강진읍교회가 세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집사님부터가 세구나! 아이구 강진읍교회 잘못 왔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제가 4 ~ 5 년 목회를 하다가 보니까 그 집사님은 전혀 그렇게 말씀하실 집사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척 순박하고 별로 말이 없고 겸손하신 분인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오히려 나중에서야 깨우침이 왔는데 주님께서 그 집사님의 입을 통하여 이 종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쓰레기도 주으면서 계단도 쓸면서 발을 씻어주면서 섬기면서 봉사하면서 목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집사님을 천사로 삼으셔서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일 처음부터 자고하지 아니하고 목회를 했기 때문에 강진읍교회 성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목회를 하게 된 것은 목회초기에 섬김의 목회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찌르는 가시와 같은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유행가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모두가 사랑이예요 모두가 사랑이예요 콧날이 시큰해 지고 눈이 아파 오네요” 사람들은 남녀간의 사랑에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질 만큼 사랑을 느끼지만 하나님의 값없이 베풀어주신 값비싼 사랑에는 콧날이 시큰해 하고 눈이 아파올 만큼 느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는데 성경에 나와 있는 믿음의 인물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그것들을 하나 하나 세면서 하늘의 은혜로 고백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자신이 변화된 거도 자신이 타어나게 된 것도 자신에게 찌르는 가시와 같은 것이 있을 때에도 자신에게 닥치는 어둠과 고난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고백하고 자신에게 비치운 빛도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였습니다. 푸른 초장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요 험한 골짜기 사마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 때에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고 자신의 존재가 태어나고 활동하고 그저 여상하게 일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였습니다.
 
 
저나 대전장로교회 성도 여러분들이나 한 치도 틀림없이 공통적인 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에 포위되어 살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다는 점이 정확하게 같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주신 은혜를 사도 바울에게 주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 박용래 목사님과 사모님에게도 주셨고 대전장로교회 성도들 모두에게도 주셨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늘 성경본문 8 절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저 역시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7 개월 만에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고 태어날 때 1.9 킬로그램이었다고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인쿠베이터에 들어갈 때 제가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종종 할머니에게서 제가 태어날 때 얘기를 들엇습니다. 대충 두가지인데 제 어머니께서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을 안 때는 아이를 가진 지 한참 뒤였습니다. 의사는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본격적인 치료를 하고자 하였고 어머니는 어떤 신념에서인지 모든 투약과 주사를 거부하셨습니다. 잘 먹히지 않은 밥은 꼭꼭 챙겨 먹으면서 약과 주사는 온 몸으로 거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침상에서 눈물뿌리면서 두 손을 말아가지고 계속 웅엉거렸다고 합니다. 의사와의 긴 싸움에서 어머니는 결국 이겼습니다. 아기야 어떻게 되던 산모를 살려보겠다는 의사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약과 주사를 거부하신 것은 강한 독성의 약이 체내에 들어가면 태내 아기가 죽을까봐 그랬고 밥을 꼭꼭 먹었던 것은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침상에서 눈물 뿌리면서 웅얼거린 것은 “하나님 제발 이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딱 한 제목의 필사적인 기도였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그 악착같은 기도 때문이었는지 저는 세상의 빛을 조금 일찍 보게 되었고 어머니는 젖먹이 어린 것을 떼어놓고 20 일만에 광명한 그 빛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임종하신 직후 어머니의 눈은 할머니가 아무리 감기려고 해도 감겨지지 않았습니다. 눈을 뜬 채로 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얘야 니 새끼 때문에 그러냐? 내가 잘 보마! 걱정말고 편히 가거라!” 그리고 두 눈을 감기우니 그제서야 눈이 감겨졌다고 합니다. 저는 하늘나라에 가면 은총의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어머님을 찾을 것입니다. 미숙아로 태어나서 거의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살아서 지금 사람들의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리저리 제 삶을 살펴보아도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고 대전장로교회 여러분 역시도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의 삶을 조명해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동일하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한국기독교장로회 제 97 회 총회에서 저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금 교단과 한국교회를 위해 4 년간 더 일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총회장님께서 당선된 것을 발표한 후에 저에게는 한 복음성가 가사가 되뇌어졌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후렴>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 은혜 / 나 주저함 없이 이 땅 밟음도 /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은혜!!” 그 노래가 떠오르는 순간 “그렇지 다 하나님의 은혜지!” 하면서 나 주저함없이 그 땅을 밟게 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였습니까? 제가 맡은 직무 때문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세계교회지도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 2_3 년전에는 로마바티칸을 방문하고 교황과도 만났습니다. 바로 그 이후에 갔던 곳이 바로 사도 바울이 순교한 현장입니다. 순교하신 곳은 이태리 로마시의 남문에 갔습니다. 거기에 갔더니 기록이 있는데 저들은 사도 바울을 죽일 때 사도 바울의 머리를 돌기둥에 얹혀 놓고 칼로 내리쳐 단번에 죽인 것이 아니라 돌로 여러 번 목을 찍어 머리가 잘려져 나가도록 하여 죽였습니다. 바로 그때 머리가 잘려져 나갔는데 머리가 세 번 튀었고 그 튄 곳마다 샘물이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면서 그 갚을 길 없는 은혜를 자신을 제단에 바침으로서 복음을 위해 순교함으로 갚아나갔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지상에서 마지막 은혜를 주시되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순교의 은혜까지 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대전장로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시고 어떻게 갚으실 것입니까? 제가 배웠던 한신대 문동환 교수님은 언젠가 수업시간에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생명이 마쳐지는 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주님이 “너는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자신은 그 대답을 할 준비 하나를 해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저는 제가 낳지 않았던 자식을 제 자식으로 여기고 제 자식 이상 사랑하면서 키웠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의 사모님은 훼이 문이라는 미국 사람인데 자녀들이 셋이 있는데도 홀트 아동복지에서 가장 잘 안데려갈 것 같은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 아이들보다도 더 사랑하며 키우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제 삶속에 퍼 부어주신 갚을 길 없는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피뿌려 순교함으로 갚아나갈 자신이나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 위치에서 한국교회와 기장교회를 좀 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게 하고 기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장교회를 조금이라도 더 부흥시키고 예수님의 정의와 평화 그리고 생명정신을 이 땅에 심어나가는 조그마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서 조금이라도 갚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 아버님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면서 발표하신 설교와 글들을 모아 책을 한 권 만들어 드렸습니다. 출판감사예배를 드릴 때 배야섭 목사님은 인사말에서 간단하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리라” 저나 대전장로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주님으로부터 만가지 은혜를 받은 몸입니다. 저와 여러분 남은 여생동안 우리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종으로 하여금 이 시간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대전장로교회에 더욱 더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케 해 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들이 주님 주신 특별한 은혜 여상한 은혜 시련 중에서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사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6:2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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