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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4-12-19 (금) 19:42 9년전 9490  
2014 년 12 월 7 일(주일) 오전 11 시 주일낮예배 성삼교회 (황용대 총회장 시무)
 
 
성경본문 : 로마서 8 장 28 절
제 목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피로 사신 교회 성삼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모든 제직의 일꾼들과 당회 장로님들, 오늘 은혜의 찬양을 주께 올린 성가대 위에, 금번 제 99 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추대되신 황용대 목사님과 내조하신 사모님 위에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강을 가득 충만하게 내려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부족한 사람을 사랑해 주셔서 단 위에 세워주신 총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시기까지 집중적으로 기도하셨고 위해 계속 기도하시는 성삼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은 총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교단총무로 있기에 총회장님께서 배려하신 차원이니 저에게 말씀의 은혜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말씀을 통한 깊은 은혜는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 오늘 말씀은 딱 한 절 말씀, 로마서 8 장 28 절 저는 외우기 쉽게 이것을 <롬팔이팔>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한 소절씩 분류하여 주시는 은혜를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소절은 “우리가 알거니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라고 하면 <나와 너> 혹은 <나와 너희들>을 말하는데 로마서에서 우리라 하였을 때 우리는 누구입니까? 물론 나는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면 우리라 할 수 있는 <나와 너희>는 누구이겠습니까? 정확한 답이 로마서 1 장 5 절에서 7 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우리는 그로부터 사도로 직분을 받은 바울과 그로부터 은혜를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누구입니까? 문맥상으로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의 직분을 받은 바울 (+) 로마에 이방인으로 있다가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것이 된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에 이르게 된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통칭하여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라 하였을 때 단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전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들을 포함합니다. 성경은 오늘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넓은 의미로는 오늘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자녀가 된 다시 말하자면 성삼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소절의 후반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는 우리가 그것을 명백하게 자명하게 확실하게 알고 있음을 전제한 것입니다. 우리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통해서 빠삭하게 알고 자명하게 체험한 바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로 알고 있는 바가 아니라 수없이 체험하고 느끼고 경험하고 해서 결국 자명한 진리로 받아 드리고 있는 바를 말합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이후에 나오는 로마서 8 장 28 절 전부의 내용입니다. 두 번째 소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저는 아마데우스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이름 중에 하나입니다. 모차르트의 전체 이름은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차르트>입니다. 아마데우스란 라틴어의 두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AMOR> 와 <DEUS>입니다. <AMOR>는 “사랑하는” 그런 뜻도 있고 “사랑받는” 그런 능동과 수동의 이중적인 뜻이 담겨있고 <DEUS>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아마데우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뜻도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런 뜻도 담겨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의 이름대로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특별한 음악적 재능과 달란트를 주셨고 모차르트는 그런 재능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여 평생 하나님을 찬미하는 곡을 작사작곡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 하는 일들을 세어보면 수만 가지 수십만 가지가 될 것입니다. 손이 하는 일들만 해도 십만 가지가 넘을 것입니다. “빨래하는 일, 손톱 깎는 일, 악수하는 일, 숟가락으로 밥 먹는 일, 박수치는 일, 옷을 입고 벗는 일, 몸에 비누질하는 일, 주먹질하는 일, 손가락질하는 일” 손으로만 하는 일도 헤아려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구세군신학대학에 설교하러 갔는데 구세군에서는 할렐루야할 때 손가락을 이렇게 올려서 “할렐루야”를 하였습니다. 인생이 살면서 하는 일들을 다 따져본다면 백만 가지도 넘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2 장 36 절에서 38 절입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사람이 하는 일들 중에 그래도 가장 중요한 일들이 성경에 나와 있는 계명인데 그 계명 중에서 가장 크고 첫째되고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간이 역사이래 만일 수백억가지 일을 해왔다면 가장 첫째되고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보다도 더 큰 것은 더 중요한 것은 더 첫째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의 착한 행위를 하는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만들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은 홀로 계셨습니다. 외로우셨습니다. 그래서 온 우주를 만드시고 그리고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도 하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도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다음 가장 목말라하고 배고파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만드셨는데 그 인간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배신하고 그러지만 그 사람이 다시금 돌아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하나님 자신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 자신에게 더 가까이 나아오고 하나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마침내 하나님 자신을 깊이 사랑해 주기를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 셋째 소절로 가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최고의>, <최상의>, <최적의>, <최선의> 자입니다. 하나님께는 지식이 많거나 물질이 많거나 경험이 많거나 학벌이 많거나 그런 자가 크고 중요하고 첫째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최고로 중요한 사람이요 아끼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팔도 안으로 구브러지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 역시 더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최상급으로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 역시 최상급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이 관점에서 볼 때 그 뜻 해석이 무척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그의 뜻 안에 두시고 자신을 사랑하는 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기쁘신 뜻으로 부르시고 단지 부르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일을 주시고 그 일을 통하여 그가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도록 하십니다. 여기서 <곧>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은 곧바로 불러주신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 네 번째 소절로 가겠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가까이 부르시고 일을 주시고 그가 일할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자동적으로 기계적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원인과 결과의 인과법칙에 의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 부르심을 입은 자들 바로 옆에 계셔서 합력하게 해주시는 것이고 그것이 선의 열매로 맺어지게 해 주시는 분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그 사람 주변의 모든 요소를 마치 강약을 조절하고 전후좌우를 조정하여 마침내 맺을 수 있는 최고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어 그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그가 일할 때 그 이후로는 관심을 끄지 아니하시고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을 임마누엘 함께 하셔서 유심히 지켜 보시고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을 조화롭게 하여 충돌하지 않게 해주시고 그가 하는 일의 성과를 크게 해 주시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그가 일할 때 천사들이 되어 돕게 하시고 그가 일할 때 몸도 지켜 주시고 마음과 생각도 지켜주시고 그 영혼도 지켜 주시고 위협들과 위기들을 미리 막아주시고 그 일을 할 때 보람과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하시고 마침내 선한 열매 좋은 열매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기뻐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론은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를 잘되게 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합력하게 하시고 선을 이루게 하시고 멋진 드라마를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에 대한 무수히 많은 예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가 알거니와>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다윗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시편 18 편 1 절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사랑을 직접 고백하는 인물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께 수많은 시편들을 바쳤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바쳤습니다. 다윗은 죄도 많이 범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책벌을 하셨는데 책벌을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지 아니하고 등을 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며 하나님께 잘못을 고하면서 “여호와여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다윗을 그의 기쁘신 뜻에 따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관여하셔서 그가 전쟁에 나가면 승리하게 하셨고 그가 시련에 처할 때 반석과 피할 바위가 되어 주셨으며 그가 피곤해할 때 푸른 초장 맑은 시냇가로 인도해 주셔서 지쳤던 몸에 생기를 북돋우워 주셨으며 다윗의 영혼에 아름다운 시심과 노랫가락을 얹어주시어 시편 1 편에서 150 편을 그의 이름으로 주께 바치게 해주셨습니다. 그가 다스릴 때 이스라엘의 영토가 역사상 가장 광대하게 해 주셨으며 그의 삶이 시편 사무엘상하 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에 나타나게 해 주셨으며 그가 머리털과 같이 많은 죄를 지었어도 사하여 주셨으며 신약성경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의 족보에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이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에게 부르심의 은총을 주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역사가 아니면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 로마서 8 장 28 절은 비단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인들에게나 다윗에게만 알려지고 체험된 사실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 계시는 성삼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믿음과 삶속에서 충분히 체험되고 경험되고 익히 알고 있는 은혜의 사실과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롬팔이팔>에 나오는 우리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극히 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일을 수없이 체험하였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광주에서 담임목사를 맡아 목회하다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많은 문제에 부딛쳤습니다. 말씀을 해도 교인들이 은혜받는 것 같지도 않고 교인들끼리 서로 싸우지요 장로님들은 오히려 목회를 방해하는 것 같지요! 내가 담임목사로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지요! 이래서 무엇을 하겠나는 생각 때문에 심한 좌절감에 부닥쳤습니다. 목회를 그만둘까 하다가 마지막 한 가지를 해보고 그렇게 하자! 하고 시작한 것이 금식입니다. 집에서 열하루를 하고 금식기도원으로 옮겼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마음 속 어둠의 그림자는 계속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금식은 더 오래 지속되었고 무슨 확신도 없는 가운데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죽을 것 같았습니다. 밤중에 기도원 예배실로 나갔습니다. 예배실에서 홀로 기도를 하기보다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예수님 영원토록 정성다해 사랑합니다.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사랑합니다. 영원토록 정성다해 사랑합니다!” 그 노래를 열 번이고 스무번이고 반복하여 불렀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그냥 좋지만 그러나 저는 주님 사랑합니다! 그 마음으로 계속하여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사랑합니다!‘를 반복하여 불렀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싸우나에 가면 한 십분 정도 있으면 땀을 쭉 빠져나오는데 옷이 흥건히 적습니다. 싸우나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는데 무슨 슬픈 것도 아닌데 눈물이 쏟아져 옷이 물을 짜내도 될 정도로 흥건히 적셨습니다. 제 삶의 분깃점은 거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밑에서 무엇인가 든든히 받쳐주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제 삶에 관여하셔서 때론 옮겨 주시고 때로는 높이 올려 주시고 때론 막아주시고 때로는 깨끗하게 해결해 주시고 때론 시련을 계속주시어 연단시켜 강하게 하시고 때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때론 수없이 일하여도 쌩쌩하게 하시고 때론 모든 복잡한 일들을 조화롭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일들을 수없이 체험케 해 주셨습니다. 교단 총무로 지금 7 년동안 일하게 해 주신 것들도 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신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로마서에서 우리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사도바울입니다만 이 자리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했을 때 우리는 저와 황용대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그리고 성삼교회 성도들입니다. 저는 언젠가 부총회장이 되시기 훨씬 전에 황용대 목사님과 사모님과 만나 여러 가지 간증을 두 분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특별히 사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저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았고 꼭 그 말씀처럼 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단 총무로서 수없이 많은 얘기를 나누고 회의를 하고 토론을 하고 그러지만 그것들이 대부분은 머리 속에 조금 남아있던지 기억에서 사라지던지 그러지만 가슴 속에 남아있고 새겨지는 경우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 황용대 목사님과 사모님과 말씀을 나누고 난 다음 두 분이 저를 대구역까지 나와주셨는데 특별히 사모님이 하셨던 기도에 관한 말씀은 가슴에 깊게 남았고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얼마간 지났습니다. 제가 만나 그동안 많은 말씀을 나누었던 우리 황용대 목사님은 다윗이 믿음의 시를 주께 바쳤던 것처럼 주님께 시편을 바쳐오신 믿음의 시인이십니다. 맑은 마음이 아니면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저는 황 목사님을 만나면서 참으로 맑음과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그것보다도 황 목사님과 대화를 통해서 주님을 참으로 사랑함을 느꼈고 다윗의 시를 통해 다윗이 얼마나 여호와를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듯이 목사님께서 쓰신 시를 통해서도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교단 부총회장으로 출마하셨고 어떻게 된 일인지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교단의 지나온 역사 속에 부총회장 경선에 경쟁자가 없었던 것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습니다. 황용대 목사님은 은혜 가운데 부총회장이 되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총회장직을 잘 수행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제 99 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만장일치로 피선되셨습니다. 아마도 부총회장과 총회장을 지내오면서 단독으로 출마하신 경우는 역사 이래로 몇분 안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1 월 제 63 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에서 황용대 목사님은 NCCK 회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임되셨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NCCK 인선위원장으로 활동하여 영광스럽게도 임원들을 인선하고 황용대 목사님을 NCCK 회장으로 인선됨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한교협 회장은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책임자로서 예장통합 대한기독교감리교 기장 대한성공회 복음교회 루터교회 한국구세군 한국정교회 대한기독교하나님의 성회 9 개 교단이 연합하여 만든 교회협의체로서 70 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회장이 되려면 교단별로 돌아가면서 하게 되니 우리 기장이 순서가 되려면 9 년 만에 오는 자리인데 바로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황용대 목사님의 차례가 된 것입니다. 황용대 목사님을 돕는 부회장으로 예장통합 총회장, 감리교감독회장, 성공회 주교 루터교 총회장 정교회 총대주교 복음교회 총회장 구세군 사령관이 계시니 명실공히 총회장님은 한국교회의 지도자 중의 지도자가 되신 것입니다. 또한 교단 및 장로교 100 주년 총회를 준비하시는 아주 카이로스 시점의 총회장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톨릭과 함께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신앙과 직제협의회 공동대표 역시 맡으셨습니다.
 
 
■ 보통 교단 총회장은 큰 교회의 담임목사이거나 정치를 오래 해 오신 분이 맡게 되는데 그리고 우리 교단은 호남에 기장교회가 많이 때문에 호남에서 주로 많이 총회장을 해오셨는데 영남지역에 그것도 무슨 교단정치도 오래 해 오지도 않으셨는데 역사와 전통이 있는 큰 교회 담임목사도 아니신데 교단 총회장과 NCCK 회장을 동시에 맡게 되신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우연의 연속이거나 단지 이례적인 일들이거나 세속의 사람들이 말하는 목사님 관상이나 관운이 좋아서이거나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저와 성삼교회 성도님들이 아는 바대로 우리가 알거니와 이는 로마서 8 장 28 절 말씀에 정확하게 해당되는 일이라 믿습니다. <롬팔이팔>의 또 하나의 증거자료인 셈입니다. 하나님을 특별히 사랑하는 황용대 목사님과 사모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여 시편을 지어 바치고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사랑을 고백한 다윗처럼 삼위일체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맘으로 시를 지어 바치는 황용대 목사님과 매번 뜨거운 가슴의 기도를 바치는 사모님을 권념하시사 하나님께서도 역시 두 분을 뜨겁게 사랑하시사 그 분의 기쁘신 뜻 가운데 부르시고 대구성시화의 대표를 맡기시더니 더 나아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총회장의 일을 주시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의 일을 주시어 그를 기쁘게 해 주시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크게 일하게 하시고 그 일을 하실 때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고 주시고 계시고 앞으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 앞으로 황용대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은 비단 성삼교회의 담임목사만이 아닙니다. 1700 여개 한국기독교장로회와 25 개 노회 대학과 각 기관들을 섬기시는 목사님이시오 약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하여 세계교회와 한국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앞으로 전례에 따라 세계기독교와 성지를 순례하시게 될 것이고 프란시스 교황 뿐만 아니라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 등등 세계교회 종교지도자들도 만나게 되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남과 북의 지도자와 기독교의 지도자들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몸은 하나이신데 해야 할 일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그리고 이 시대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셔야 할 중차대한 십자가를 짊어지시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를 빌어 부탁드리는 것은 황용대 총회장님을 성삼교회에서 담임목사님으로만 붙들어 매놓으시려고 하지 마시고 총회장님과 회장님이 보다 더 넓은 차원에서 보다 더 큰 목회사역과 선교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총회장님에게 성삼교회에서의 목회의 십자가는 좀 더 줄여주시는 지혜로운 큰 마음을 가져주시라는 것입니다. 황용대 목사님이 여러 가지로 중차대한 일을 하시면 역사는 성삼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하신 일이니 은총의 하나님께서 성삼교회 성도들에게도 큰 상을 내리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일할 것입니다. 비록 기장총무이지만 황용대 목사님을 기장 안에서만 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마음껏 일하시도록 기장 안에서의 일은 줄여드리면서 배려해 드리려 합니다. 저 역시 황용대 목사님께서 일하시도록 시간적이고 경제적 형편을 살펴드리도록 최선을 다할 터이니 성삼교회 당회나 성도님들도 국내외 여러 곳에서 일하시려면 부비도 적지 않게 들어가실 텐데 지갑에 쓰실 것이 마르지 않도록 채워드리는 일도 성삼교회보다도 더 많은 영적인 큰 일을 대외적으로 하실 수 있도록 오른손이 하는 일을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많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황용대 목사님을, 주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종을 통하여 이 시대에 하늘나라를 확장시키는 결코 적지 않는 새 일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주님이 기쁘신 뜻 가운데 부르신 일들을 잘하실 수 있도록 성삼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또 기도해 주시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독수리가 날개치고 올라감과 같은 새 힘을 주신다 했는데 그 힘을 두 분에게 주시라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저는 롬팔이팔은 비단 다윗이나 사도 바울이나 황용대 목사님이나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여기 오늘 예배를 드리시는 우리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일인 것을 특별히 주님을 사랑하는 성삼교회 성도님들에게 해당되는 일인 것을 믿습니다. 성삼교회 성도님들도 이전보다 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성삼위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시고 더 뜨겁게 사랑하시고 이전보다도 사랑하시고 세상에 있는 그 무엇들보다도 더 사랑하시고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 사랑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열정 가운데 이 땅에서 허락하신 인생을 기쁘고 즐겁게 보내시기를 바라고 주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주신 성삼교회 안에서 주어진 일들을 기쁨으로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롬팔이팔의 은혜를 성삼교회 모든 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도 나려 주셔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그 은혜를 더욱 체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성삼교회 성도님들을 사랑하시고 사랑하십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시되 로마서 팔장 이십팔장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로 그 말씀을 알게 하시고 체험케 하시고 특별히 황용대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통해 이 말씀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다시금 체험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은총의 하나님 저희 모두가 이 말씀처럼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이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함을 저희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크고 첫째되는 일로 삼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총의 주님께서 기쁘신 뜻 가운데 부르신 황용대 목사님을 이 시대와 역사를 위해 더욱 보배로운 금그릇과 같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성삼교회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귀히 쓰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9:53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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