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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복음이 이끌어가는 교회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7-02-19 (일) 06:02 7년전 2204  

              복음이 이끌어가는 교회입니다.

6 : 11-14                                     2017.2.19. 박용래 목사

 

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바울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신학의 핵심이며 우리 신앙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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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문과 학벌은 물론이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며 율법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애쓴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뒤집어 놓은 핵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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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살던 시대에 십자가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주받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형은 죄수를 가장 잔인하게 고통과 수치를 느끼면서 죽이는 사형 틀이었습니다.

그럼으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자에게는 십자가 사형틀은 사용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만 사형틀로 사용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십자가만 바라만 보아도 소름끼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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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사건으로 인해 십자가의 의미는 바뀌었습니다.

저주의 십자가가 아니라 영광의 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의 목회에 십자가는 설교 중심 주제였습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십자가를 강조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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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자가는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인간에게 구원의 길은 십자가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강단에서 철학적이고 고상한 도덕적 이야기를 한다고 사람들이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교회가 복지나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을 가지고 봉사해야 하지만, 교회는 십자가 복음의 능력만이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구제를 해도 구제로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는 영원한 길로 인도하는 구원의 진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가 주변에 선한 사업에 힘쓰는 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사명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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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나오면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위해 죽으셨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구원자이고,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분명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만 신앙고백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부부 중에 한 사람의 신앙고백만 있으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신앙고백만 있으면 자녀들은 무사통과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각자 각자의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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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하나님에게는 손자가 없다고 설교했습니다.

아버지가 믿으면 아들이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믿음으로 남편이 구원 받는 길은 없습니다. 각자의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10: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주님은 나의 구주시라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2천 년 전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 내 사건이 될 때 인생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를 다니며 봉사를 많이 한다하여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솔직하고 분명한 자기 신앙고백이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종교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오늘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감격을 가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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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중심 생활

어느 날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지고 가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물동이 속에는 나뭇가지가 담겨 있었는데, 이상하게 생각한 루터는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답변인즉, 나뭇가지 덕분에 물이 출렁거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평범한 이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위태로운 인생길을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생명과 안정을 준다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출렁거리는 인생길에서 우리를 평안하고 안전하게 붙잡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출렁거리는 세상에서 십자가 중심의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고하게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만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견고하게 세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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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아무리 망가지고 깨어진 인생이라도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다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이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이고 복된 소식입니다. 교회에 나왔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확신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이나 고려사항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심하다 할 정도로 십자가를 강조하지 않으면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고 영적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십자가만이 인류에게 참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힘들고 지치고 쓸어 질 때 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십자가 복음에 대한 감격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감격이 식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십자가 복음에 감격하는 믿음이 식어지면 우리의 신앙은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에 빠지기 쉽게 됩니다. 인간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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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구원의 감격이 식을 때 삐걱거립니다. 십자가 복음에 대한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살 때에 신앙생활이 피곤해 지고 지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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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복음에 대한 감격 없이 신앙생활하면 오래 가지 못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도 힘들어 하고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거나 시험에 들어 결국에는 교회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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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감격이 없어 뭔가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이단에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일으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의 감격이 불일 듯 일어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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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언제나 펄펄 나는 힘으로 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구원의 감격을 가질 때 내 몸을 천번 만번이라도 주님께 드리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의 복음에 감격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나라확장에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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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로 인한 승리

A.D.3121028일 밀비오 다리 밑에서 막센티우스와 콘스탄틴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를 바꿔놓는 최고의 전쟁이고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콘스탄틴은 지방 출신입니다. 지방의 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입해 오고 막센티우스는 전 로마를 다 통치하는 최고의 사령관이었습니다.

이것은 게임이 되지 않는 전쟁이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과 같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전날 밤에 잠잘 때 콘스탄틴에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너는 이것으로 이겨라. 이것을 가지고 승리해라.”

헬라어로 엔 투토 니카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이겨라

콘스탄틴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많은 깃발을 버리고 십자가 깃발로 바꿨습니다.

모든 군인들이 사용하는 군복에도 십자가를 달았습니다. 아주 엄청난 일을 한 것입니다. 꿈에 주님의 말씀을 환상으로 본다음에 군사들의 가슴에 모든 깃발을 십자가로 바꾸었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당시에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십자가 사형틀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는 사용하지 아니했고 이방인들에게만 잔인한 사형틀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 사령관은 전쟁에서 십자가를 군인들 가슴에 달고 오직 십자가로 깃발을 만들어 하나만 달았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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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전쟁에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틴 군사가 대 역전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오직 십자가로 승리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김으로 콘스탄틴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로마의 황제가 되자마자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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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박해하고 핍박했던 로마가 하루아침 한순간에 완전히 기독교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콘스탄틴 황제는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높이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황제가 됨으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나라마다 십자가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로마를 통하여 유럽으로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면서 유럽전체가 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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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150

바울에게 십자가의 복음은 교리적으로 지식적으로 설명하는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바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가 구원사건이었다고 과거형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이 현재의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침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주는 능력들을 계속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에도 십자가 앞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구원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의 자리에서 만나고 또 만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인생의 어떤 고난과 아픔이 온다 할지라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해결 받고 치료받고 회복되고 승리하는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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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십자가의 복음의 감격이 식어지기 쉽습니다.

복음의 감격이 식어지면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감사가 아니라 타산적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만드는 그릇된 신앙생활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율법적인 신앙 때문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여 주눅 들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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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적인 신앙의 특징은 자꾸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쪽보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의 행위를 평가하려고 합니다. 복음적인 신앙으로 살면 십자가의 사랑을 고백한다면 이해타산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받은바 그 큰 사랑을 먼저 생각하면 지나치게 타산적이고 계산적이고 인색하여 마귀의 시험에 끌려가지 아니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율법적인 사고로 돌아가게 되면 받은바 큰 은혜와 사랑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타산적이고 따지기만 좋아하다가 시험에 넘어지게 만듭니다.

복음적인 신앙은 먼저 내가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면 계산할 수 없는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럼으로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십자가 복음적인 신앙입니다.

 

그런데 복음적인 신앙이 아니라 율법적인 신앙에 머무르면 받은바 은혜는 기억하지 아니합니다. 받은바 엄청난 은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따지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결국에는 사탄이 틈을 타서 실족하게 만들고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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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복음적인 신앙인들은 먼저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복음적인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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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율법이 강화되면 교회는 망하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복음의 정신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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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젊은이들을 보면 머리를 노란색 파란색 다양합니다. 옷들도 다양합니다.

앞으로는 이상한 모자를 쓰고 교회에 나오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고 젊은 여신도들의 패션이 말이 아닐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적인 사고로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면 교회는 잘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누가 오던 다 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적인 신앙입니다. 어떤 형태의 옷을 입었던 간에 그 사람의 영혼을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도 교회는 다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교회는 이웃과 담을 쌓으면 안 됩니다.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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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거절하고 내어버린 세리와 창기들도 주님은 품으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품는 능력을 가지게 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 열심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면 잘못된 것입니다. 내 열심이 무기가 되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정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인이 신앙이 좋다고 하여 남편을 율법적으로 대함으로 남편은 죄인처럼 주눅 들게 하고 자신은 성자처럼 생각한다면 남편은 교회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내치면 내칠수록 교회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 예배생활이나 봉사생활이나 완벽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자가 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완벽할 정도로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십자가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율법적인 신앙인으로 변질되기 쉬운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가 율법주의에 빠지면 서로 판단하길 좋아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받은바 너무 큰 사랑과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이해타산만 따지고 결국에는 사탄의 시험에 들게 되어 낙심하게 되고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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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아 무리 아무리 내 몸을 드린다고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신앙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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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율법적인 사고로 서로 판단하기 좋아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기 좋아하던 옛모습은 완전히 끊어 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칭찬하고 축복하는 은혜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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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이 되는 우리 교회는 무엇보다 복음이 이끌어 가는 교회, 그럼으로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고 능력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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