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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포스터와 시인촌장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7-04-11 (화) 07:47 7년전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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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에베소서 1장의 신령한 복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 신령한 복을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구체적인 방법들 중

두 가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을 느끼며 살아가는 법

두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 일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측면입니다.

 

 

[2]

 

예배 시간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주님을 느끼며 살아가야하는데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사람치고 우리들은

일상에서 주님을 도외시하며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리처드 포스터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수많은 자아가 뭉쳐 있다.

소심한 자아, 용감한 자아, 사업상의 자아, 부모로서의 자아, 종교적 자아, 문학적 자아, 활동적 자아 등이다. 이 모든 자아는 거칠고 억센 개체다. 그들은 협상과 타협도 모른다. 저마다 자신의 기득권을 확보하려 아우성이다.

                               (윤종석 역, <심플라이프>118)

 

이런 아우성 속에서 하나님의 자리가 끊임없이 증발되어 가는 것이죠.

 

우리의 이런 상태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노랫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시인과 촌장이라는 듀엣의 가시나무인데요,

이 노래는 복음성가에 가깝습니다.

가수들의 이력도 이 점을 방증합니다.

하덕규님은 목사님이 되셨고

팽팽한 기타 줄, 한 줄 한 줄에서 나는 명쾌한 소리를 낸,

한국 기타계의 고수 함춘호님도

한일장신대 나와서 지금은 서울신학대 실용음악과 재직중이시지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하나님 자리가 없다는 가사 음미하면서

우리 신앙생활에 대한 반성을 하겠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사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3]

 

하나님을 느끼며 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리처드 포스터는 소위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권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호흡을 실어하는 기도도 있고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기도도 있습니다만

하나님 임재 연습을 제가 쉽게 제시해드리면 이겁니다.

 

먼저 자신의 일 측면입니다.

 

(1) 하는 일들을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식사하기 전 감사기도하는 것 생각하시면 됩니다.

(2) 좋은 상황이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이나 손길을 감지하십시오.

(3) 나쁜 상황이나 경험 속에서는 선하게 변화시켜주시는(‘여호아 라파’) 주님의 역사를 간구하십시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하나님 임재 연습도 있습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이 연습을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올려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짧지만 진심을 담은

축복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자선 사업같은데요,

그렇게 여기지 마시고

그 축복이 반사되어 나에게 온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이러한 축복기도를 보여주는 노래 역시

시인과 촌장의 노래입니다.

 

사랑 일기인데요,

제가 보기에 사랑 일기

신앙의 맥락에서는 축복 기도입니다.

 

 

노랫말을 음미하시면서

함께 들으신 후

개인 기도에 들어가겠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나르는 새들의 날개죽지 위에

첫 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 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저 지친 어깨 위에

시장 어귀에 엄마 품에서 잠든 아가의 마른 이마 위에

공원 길에서 돌아 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에 홀로 서 있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수없이 밟고 지나는 길에 자라는 민들레 잎사귀에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겨울밤차 유리창에도

끝도 없이 흘러만 가는 저 사람들의 고독한 뒷모습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

오늘 고난주간 새벽기도회의 설교입니다.

고난주간의 새벽이라는 시간대,

반가운 봄비가 예배실 지붕에 후두둑 떨어지면서 나는 자연적 배경음악,

시인과 촌장의 아름다운 음악,

강대상의 기도 촛불,

스크린에 나타난 선명한 가사의 의미로움과

스피커에서 내는 섬세한 소리 등이 잘 어울렸습니다.

모든 요소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것은

흔치 않을 듯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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