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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량교회 설립70주년 기념예배 / 2016년 8월 14일 오전 11시

배태진 (광주남노회,지구촌구호개발연대,목사) 2017-04-11 (화) 14:24 5개월전 271  

2016814(주일) 오전 11시 칠량교회 설립70주년 기념예배

 

성경본문 : 창세기 121~ 9

제 목 :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의 은총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칠량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성가대 위에 이 교회를 위해 썩어지는 밀알과 같이 헌신하시는 김승환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하나님의 부르신 사명에 따라 교회를 개척하신 고 배상우 집사님과 김중엽 권사님 위에 모 교회를 위하여 헌신과 기도를 아끼지 아니해오신 배야섭 증경총회장님과 김복순 사모님 위에 칠량교회 역대 교역자님들과 헌신해 오신 당회 장로님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의 삶의 행적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 하여 떠났는데 떠나서 어떤 일정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유랑생활을 합니다. 특이한 점이 뭐냐? 아브라함이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로 가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25절 후반절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떠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거죠! 7절 후반절입니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제일 처음 도착한 곳에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딱 한 번만 그랬을까요? 8 절 후반절입니다.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이번에는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하였습니다. 제단을 쌓는 일이 오늘날로 하면 예배하는 일이요 이름을 불렀다함은 기도한 일인데 아브라함은 그 일을 12장에서만이 아니라 13장으로 넘어가서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합니다. 1318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아브라함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반복하여 하는 일이 바로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128절과 9절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8절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9절입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8절과 9절은 서로 독립적인 구절이 아닙니다. “뭐뭐했더니 뭐뭐하였더라!”는 구조입니다. 8절이 이유가 되어서 9절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를 해석해 보면 아브라함이 점점 능동적으로 남방으로 옮겨 갔다기 보다는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고 장소를 옮길 때마다 제단을 쌓은 아브라함을 가상히 보시고 아브라함의 처소를 점점 남방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남방>이란 그저 동서남북 방위상의 남쪽이 아니라 우리가 아파트를 구할 때도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을 찾듯이 남쪽나라 하면 고향을 떠올리듯이 남방은 가나안 땅 중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살기가 좋은 wellbeing 복지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9 절은 이렇게 번역해야 제 맛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삶의 지경을 점점 가나안복지로 옮겨주셨더라!”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잘 쌓은 아브람을 보시고 은총의 햇빛을 가득히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이 그의 삶의 지경이 남방으로 점점 옮겨지게 된 것이 독자 이삭을 바친 것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누렸던 대부분의 복은 독자 이삭을 바치기 훨씬 전부터 받았습니다. 꼭 아브라함이 예배생활과 기도생활을 잘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보시고 그의 삶의 지경을 남방으로 옮겨주신 것이 아니라 은총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었을 때부터 이미 복주시기로 작정하셨겠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습관적으로 제단을 쌓고 시시때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과 아브라함의 삶의 처지를 가나안 복지로 옮겨주신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팔이 구원하시지 않겠느냐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팔이 있으신데 그 팔이 안으로 구브러지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을 위하여 제단을 잘 쌓은 아브람을 보시고 가슴이 뿌듯하고 흐뭇하셔서 첫째 아브람의 가족을 이방족속으로 보호해주셨지 방패가 되어주시고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셨지 둘째,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도록 해주셨지 땅도 허벌나게 많이 주셨지 셋째, 자식을 주시고 그이 자손들을 하늘의 뭇별과 같이 셀 수 없게 해 주셨지 넷째,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제사장의 축복을 받게 해주셨지 다섯째, 그로 인해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해 주셨지 여섯째,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의 자손들이 신앙의 계보로 이어지게 하시고 그의 증손주는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지 일곱째, 그의 삶의 이야기가 구약성경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도 나오게 하셨지 여덟째,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땅을 떠나 천국에서 나사로를 위로하는 일을 하게 하셨지 아홉째, 그의 후손 가운데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이 나셨으니 은총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과 은혜를 주시고 그의 삶의 지경을 남방으로 옮겨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천국으로도 옮겨주신 것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완전한 사람이고 모든 면에서 표상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썼으며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여 위기를 당하기도 하였고 신앙적인 실패도 적지 않게 하였지만 은총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약속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신실하셔서 아브라함의 생애 내내 임마누엘 하시고 그의 삶의 지경을 점점 남방으로 옮겨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의 법위를 넓게 하시고 높게 하시고 깊게 하셨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칠량교회가 올해로 칠십주년을 맞이합니다. 해방 이듬해에 설립되었으니 1946년입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서 우리 민족이 극심한 수탈을 당한 후라 비록 해방은 되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물질은 허덕이고 정신은 황폐해져 있었고 영혼은 곤핍할 때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이 땅 한반도를 긍휼히 여기시고 이곳 칠량을 불쌍히 여기셔서 빛으로 소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칠량교회를 설립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칠량지역에 사는 당신을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 배상우 집사를 눈여겨 보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집,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려 하는 맘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는 배상우 집사가 스물 청년이었을 때 하나님의 종이고 당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였던 K. Allen 우리말로 김아열 선교사를 만나게 하시고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당시 청년 배상우는 3.1만세독립운동 당시 본토와 완도 고금도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고 고금도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일제의 장흥지원에서 징역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저는 작년에 고금면역사에서 여러분의 교회 설립자이신 배상우 집사님의 독립운동 기록을 읽었습니다. 칠량교회 설립자가 독립운동을 하는 분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독립의 꿈은 멀어지고 삶의 공점을 잃은 상태에서 고향을 떠나기 위해 무작정 고금도에서 덕동으로 가는 연락선을 탔는데 바로 그곳에서 김아열 선교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주도적으로 만났다기 보다는 우연히 만났다기 보다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청년 배상우와 선교사 김아열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청년은 무슨 비전과 소망이 있소!” 묻는 김아열 선교사의 물음 속에서 배상우 집사의 가슴은 떨렸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를 따라가 목포남장로교선교부에서 심부름도 하고 성경을 배우고 매일매일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가운데 믿음이 자라고 되고 김아열 선교사에게 제 고향 고금도에 복음을 전해 주시라는 간청을 하게 됩니다. 김아열 선교사님은 즉시 응답을 하셔서 배상우 집사님은 함께 고금도에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서 한참동안 제단을 쌓으셨습니다. 그러나 배상우 청년의 부친이 워낙 유교에 얽매여 있어서 갖은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던 도중에 당시 예배당으로 쓰던 방의 문을 쇠스랑으로 찍힘을 당하는 등 너무도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속출하였습니다. 결국 김아열 선교사님은 병이 들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배상우 집사님은 박해를 피해 고금도를 떠나 칠량으로 가게 되셨습니다. 칠량으로 갔을 때 한동안 믿음에 회의가 왔다고 합니다. 짐작컨대 그렇습니다. “아니 고금도에서 그렇게 복음을 전하려 했는데 왜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고 김아열 선교사님은 병들게 하시고 결국은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셨을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변하게 하셔야 옳지 않았을까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먹었습니다. 장로교 창시자 칼빈에 의하면 신앙이 내 공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라 하였는데 은총의 하나님께서 배상우 집사님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신 것이 분명합니다.

 

배상우 집사님은 당시 칠량에는 교회가 없어 강진읍교회를 다니셨습니다. 그때는 교통편이 없어 왕복 40리 길을 걸어다니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때 아들이었던 지금으로 배야섭 목사님이 너무 멀어서 교회를 안가려고 하면 야섭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를 안드리면 되겠느냐? 하면서 살살 얼려서 주일예배 수요예배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베델과 아이 사이에서 제단을 쌓았듯이 강진읍과 칠량 사이에 송산교회가 설립이 되어 배상우 집사님은 거기서 온가족과 함께 제단을 쌓으셨습니다. 송산교회를 다니시다가 배상우 집사님은 문득 송산에도 교회가 세워졌는데 내가 사는 칠량지역에도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져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 기도하기 시작을 하셨고 마침내 아내인 당시 김중엽 집사님과 가지고 있는 전답을 다 팔아 칠량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당을 세우겠다는 그 마음은 분명히 은총의 하나님께서 배상우 집사님의 맘에 불어 넣어주셨고 전 재산을 바치게 한 것도 은총의 하나님께서 넉넉한 맘을 불어 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가 해방된 다음 해인 1946년이었습니다. 이곳 칠량에 은총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 배상우 아들을 통해서 해방의 복음이 잔파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 김중엽 권사님에게서 적지 않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셨다고 합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돌보라는 말씀대로 밤새내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어 보리쌀과 쌀을 섞은 푸대자루를 새벽기도에 가기 전에 과부네 집에 몰래 놓아두기를 하셨고 걸인들을 찾아오면 따뜻한 밥을 먹여 보냈다고 합니다. 6.25 때 좌익들이 할아버지를 잡아 인민재판을 넘기려 하였을 때 주변사람들이 배상우 동무는 공산당보다도 더 잘 나눠주는 우리 프로레타리아 사람이라고 해서 풀려나기도 하셨다 합니다. 당시에 좌우익 싸움에 허다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누구도 무서워서 치우려 하지 않았을 때 배상우 집사님이 그 많은 시신들을 거둬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환갑상도 받지 못하시고 돌아가시게 된 것은 그 일로 인하여 췌장이 좋지 않게 되셨습니다. 배상우 집사님은 성경을 읽으면서 맏배는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맏아들인 배야섭을 바치고자 하였으나 아들이 들으려 하지 않아 겨울에도 둠벙에 들어가 서원을 하면서 기도를 하셨고 결국 그 기도대로 배야섭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 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묘소가 칠량에 있습니다만 그의 무덤 앞에 돌비에는 신망애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은총을 내려주셨고 칠량교회는 해방이후 근현대사의 격동의 회오리 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아니하고 영적인 등불을 밝혀왔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이곳에서 배출이 되었고 수많은 교역자들이 이곳에서 목회를 하면서 칠량과 강진을 루스를 베델로 바꾸어가는 거룩한 땅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이 칠량교회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가슴을 흐뭇하게 한 것과 같이 지나온 70년 동안에 하나님의 가슴은 참으로 뿌듯하셨을 것입니다. 특별히 역대 목사님들을 비롯하여 현 담임이신 김승환 목사님께서 칠량교회의 영적인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칠십주년을 지나 선교 백년을 향하여 나아가는 앞길에 은총의 하나님께서 브니엘의 아침햇살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배상우 집사님의 자녀손들은 모두 합하여 92명이 됩니다만 모두가 장로교인이고 90%가 기장교회 교인이고 교회안에서 교사 집사 권사 교사 장로 목사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배상우 집사님은 아브라함이 누렸던 점점 남방으로 옮겨가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였지만 그의 믿음의 후예인 칠량교회와 배상우 집사님의 후손들이 남방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은 은총의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허물많고 실수도 많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그의 삶의 지경을 남방으로 옮겨 주시고 그로 하여금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고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하신 이는 아니 그 이전에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게 하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도록 영혼을 깨우신 이도 전적으로 은총의 하나님이십니다. 배상우 집사님도 그렇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그에게 김아열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만나게 하시고 성경말씀을 배우게 하시고 가는데 마다 제단을 쌓게 하시고 칠량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칠량교회로 하여금 지나온 역사 동안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옷을 헤어지지 않게 하시고 낮의 해가 상치 않게 하시고 밤의 달이 해치 않게 하시어 여상하게 70여년을 복음의 등불을 밝히게 하신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분은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아실는지 모르지만 제가 태어나자마자 칠량교회에서 새벽제단을 쌓은 사람입니다. 할머니가 저를 포대기에 업고 새벽에 나가 기도하셨는데 기도하실 때는 두 손을 앞에다 짚고 무릎을 꿇고 찬송을 부르셨고 웅얼웅얼거리면서 기도하셨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포대기를 꽉매서 그런지 할머니 등에 제 가슴이 꽉 조여져 있어 기도를 하거나 찬송을 부르시면 그 음파가 그대로 제 가슴에 전해져 왔습니다. 두세살도 안되서 웸만한 찬송가는 다 뗐습니다. 할머니가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이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이었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오늘 70 주년을 맞이한 칠량교회가 배상우 집사님의 믿음 소망 사랑을 면면히 이어가시기를 바라고 할머니가 불렀던 찬송대로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앞길을 예수님께서 늘 인도해 주시고 성도님들 위에 예수님의 긍휼이 언제나 임하시고 하늘의 위로가 함께 하시며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시기를 그리하여 칠량교회가 나아가는 앞길에 은총의 주님께서 브니엘의 태양을 환히 비추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지나온 칠십년 감사합니다. 앞으로 가야할 백년도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을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배상우 집사님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칠량교회를 이루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로 아브라함과 배상우 집사님의 믿음과 사랑을 이어가게 하옵소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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