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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3

신솔문 (전북노회,전주갈릴리교회,목사) 2017-05-10 (수) 10:51 2개월전 155  

5.

 

그러므로 흐르는 강물처럼』소설을

단 하나로 규정하라고 하면

플라이낚시 소설도 아니고

몬태나 주 로키산맥의 자연을 칭송한 소설도 아니고

동생 폴의 디오니소스적 파토스를 권장하는 소설도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가족들의 속을 썩인 그러나 사랑하는 동생 폴에 대한

형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족의 훈훈한 엘러지”(elegy)입니다.

 

 

경찰 반장과 나는 대륙 분수령을 지나 빅 불랙풋 강을 따라서 때로는 밑바닥이 갈색이고 때로는 빙하 백합으로 하얀색인 숲을 통과하여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로 갔다. 내 동생이 연발 엽총의 개머리판에 맞아 피살되었고, 그 시체는 골목길에 내버려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머니는 몸을 돌려 자신의 침실로 갔다. 어머니는 남자들과 낚시대와 엽총들로 가득한 집에 살면서 그 침실에서 홀로 자신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과 대면해 왔다. 어머니는 가장 사랑했으나 제일 아는 것이 없었던 막내아들에 대하여 내게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동생은 어머니를 품에 안고서 이어 몸을 뒤로 젖히고서 크게 웃던 이 세상 유일한 남자였다.

 

(중략)

 

동생이 죽은 이후 아버지는 잘 걷지를 못했다. 일어서려면 아주 힘이 들었고 억지로 일어섰을 때에도 다리의 균형이 잘 맞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아버지에게 폴의 오른손을 되풀이하여 말해주어야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발을 끌면서도 일어서려했다. 아버지는 억지로 일어선 다음에도 똑바로 걷지 못했다. 선배 스코틀랜드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아들이 싸우다가 죽었다는 데에서 위안을 얻어야 했다.

 

한동안 아버지는 좀 더 위안이 되는 정보를 얻어 내려고 애썼다.

 

그 애의 죽음에 대해서 정말로 내게 모든 걸 다 말한 거니?”

모두 다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적지 않니?”

, 많지는 않지요.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 그게 내가 평생 설교해 온 것이지.”

 

(중략)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렸다고 했잖습니까. 아버지께서 더 물어 오신다면, 전 그저 그 애가 훌륭한 낚시꾼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넌 그보다 더 잘 알아야 해. 그 애는 아름다운 낚시꾼이었지.”

그래요. 아름다운 낚시꾼이었지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누가 가르쳤는데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폴의 죽음에 대하여 서로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6.

 

이 소설로 했던 제 설교는

처음 착상대로

영화 속에 나오는 아버지 목사님 마지막 설교를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여기 계신 우리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쯤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직면하게 되고

그 때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되지요.

 

주님,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근데 무엇을 도와야 할까요?

 

우리의 현실은 우리와 매우 가까운 그런 사람들을 좀처럼 돕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어야하는지 알지 못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우리가 주어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을 그들이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ach one of us here today

...will at one time in our lives...

look upon a loved one in need

and ask the same question.

 

"We are willing to help, Lord...

but what, if anything, is needed?"

 

It is true, we can seldom help those closest to us.

Either we don't know what part of ourselves to give...

or, more often than not,

the part we have to give...

is not wanted.

 

And so it is those we live with

and should know...

who elude us.

 

but we can still love them.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모든 가정을 살펴보면

가족 간의 크고 작은 이런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가족의 삶이 기대한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가족끼리 삶이 얽혀 있다 보니 그 실망과 상처는 깊고 오래갑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사랑하려고 노력해야하는 것이 가족들입니다.

 

따스한 시선으로 서로를 용납해야합니다.

가정주일을 맞이하여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온전히 사랑하는 거룩한 가족들 되길 소망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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