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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여정에서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7-07-19 (수) 10:55 6년전 1952  

가나안의 여정에서 출6:1-9절

[가나안]은 l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소원하던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하나님께서 이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땅임에 비해 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생각만 해도 지긋 지긋한 고난과 역경의 노에 생활로 인간으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천대 받으며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 볼까? 하는 염원이 그들의 삶속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한 그들에게 이제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기회가 왓습니다.

여기 가나안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실 천국의 모형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 백성이요 하늘나라 시민들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허락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주시기로 약속 하셨기 때문 입니다.(출6:4)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구원 하시겠다는 아브라함 이후부터 게속 되어온 바로 그 언약을 (창15:13 14) 기억 하셨기 때문이란 는 것입니다. 본문 에서는 여호와란 이름으로 언약을 맹세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스라엘을 속박으로 부터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과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끝가지 지키시는 하나님임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짼는 저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 짖음을 듣고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 의 부르짖음도 들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셋째는 그들의 노에의 멍애를 벗겨 주기 위해서입니다.

6절에 ‘무거운 짐 아래서 데리고 나오며’ 라고 되어 잇습니다.

주의 백성이 절대로 애굽의 노예 생활 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십니다.

복음은 노예의 삶에서 자유의 삶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로 자유케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죄악의 멍에에서 벗어 나기를 벗어나기를 원하시며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뻐하시는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넷째는 우리를 거룩하게 성별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또한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나안 땅 곧 그들이 타국인이 되었던 그들의 조상의 땅을 주기로 하였으며 이 구절에서 ‘여호와란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 가지 언약을 맹세 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하시겠다는 것이고 (6절)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며(7) 이스라엘 백성을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 하시겠다는 (8절 ) 내용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만 섬기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출8:1)

하나님이 인간에게 종교성을 주셨는데 인간들이 하나님을 바로 찾지 못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우상 사신들 악령에 사로잡혀 영도 육도 불행에 빠지고 마는 것입나다.

오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도 주의 백성이요 우리 생명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다스리는 나라의 시민들 입니다.

바로의 백성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5-7절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 분이 다음과 같이 바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래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6상 ) 즉 야곱의 자손 이었습니다.(2)

그들이 이제 애굽 사람의 종(5)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그들은 야곱의 12 아들들로 출생 신분이 별 볼일 없는 신분임을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노예 신분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구속하여 하나님 백성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어 그 고역에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하십니다.

야곱의 자손 바로의 종의 신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뀌게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하나님의 백성”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출애굽의 목적이 있고 구속사 역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6절 ‘무거운 짐 아래서 데리고 나오며’ 이는 마치 대적으로 부터 탈취 물을 빼내듯이 애 굽의 학정과 고역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빼앗아 낸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구속 활동은 곧 우리 영혼을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탈취해 내어 영광과 기쁨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여’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유원 절 양의 피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모든 속박에서 자유케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죄와 사탄의 속박아래 있던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위험에 처해 있는 자에게 종의 대가를 무를 수 있는 가까운 친척이 대가를 치루고 노에의 신분에서 자유케 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혈족이 되어 애굽의 고역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애굽으로부터 해방과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 복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주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 에게도 이러한 복된 소식이 선포되어 지고 있습니다. 낙망한 자에게 희망을 불안에 떠는 자에게 안식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복된 소식 곧 복음의 복된 소식 은 오늘 날에도 죄와 사망의 멍에를 메고 신음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선포 되고 있습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보다 더 복된 소식이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지한 인가들은 이 복된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본문에 그러한 복된 소식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를 봅시다. “:모세를 듣지 아니 하 니라” (9)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를 거부한 것은 단순한 인간 모세의 말이 아니라 모세에게 말씀 하시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거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 했%습니다.

“전에는 선지자 들을 통하여 우리 조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 하셨다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 들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1:1)

모든 우상 종교의 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신 (死神)은 우상이요 죽은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친구와 같이 다정하게 아버지와 같이 자애로우신 분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낙심에 빠졌던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시던 그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며 말씀 하시는 아버지하나님 이십니다. .

그러므로 계19:10절에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대언을 해야 할 대상은

첫째는 백성들이요

둘째는 바로입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니 그들이 마음이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 여 모세를 듣지 아니 했습니다. 오늘날도은 어떻습니까? .

그들은 인간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말씀으로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는커녕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잠 18:1).

그 원인을 본문 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같이 모세의 말을 거역한 이유가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함 이라고 했습니다.

물질문명이 급속도록 발전하여 사람 살기가 편리해진 오늘 날 우리는 조금만 힘들어도 아 우성을 치며 하나님을 쉽게 잊 버리는 어리석음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이나 바로처럼 되지 말고 우리의 육욕을 극복하고 이로 인한 영광된 미래 가나안을 소망 삼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욥2::10)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거역하는 영을 따르지 말고 순종하는 영을 좇아 하 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가나안의 축복의 주인공 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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