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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의 시대를 향한 화해의 영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7-08-03 (목) 16:52 20일전 63  

평화통일의시대를향한화해의영 에스겔37:15-23,에베소서2:14-22 2017-08-06, 13

고통스런 회상

망각은 추방으로 인도하고, 회상은 구원을 촉진한다.’ 예루살렘 야드 바쉠(Yad Vashem)에 있는 학살당한 6백만 명의 유대인을 기억하는 기념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의 역사도 특히 8월에는 과거를 망각하기 보다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회상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남북의 교회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주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주일을 설정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19882월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37회 총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선언을 채택. 발표했습니다. 통일과 평화의 선언은 분단된지 50년이 되는 1995년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삼자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후 북쪽교회는 물론이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세계개혁교회연맹 등도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동시에 매년 815일 직전주일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주일로 삼고자 합의하여 실현해 오고 있습니다. 공동기도문과 같은 성경본문으로 설교하고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평화통일의 시대를 향한 화해의 영입니다.

회상해보면, 194586일 인류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고,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습니다.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14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수만 명의 피폭자가 생겼고, 지금도 원폭피해의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45815;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일본의 항복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군사적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국민에게 해방은 식민지배의 해방인 동시에 지금까지 지속되는 민족분단을 의미했습니다. 분단은 다시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4백만 명 이상의 가족들을 흩어 놓았습니다. 자기 잘못도 없이 분단된 한국은 냉전체제가 지배하는, 지구에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고도로 병력이 밀집된, 분단된 이 나라의 위기는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서로 갈라놓는 무덤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남과 북을 갈라놓는 경계가 무너진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복지를 뒷받침할 포괄적 증세논의가 필요합니다. 증세논의는 국민인식을 새롭게 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베르린 구상에서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자오직 평화라고 강조하였음을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인내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현 국면에서 남북관계가 돌파구를 찾자면 사즉생(死即生)의 의지(意志)와 결단력이 없으면 어려울 것입니다. 개성공단재개, 금강산관광재개, 한미군사훈련중단 중 어느 하나만 실현해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 에스겔의 통일에 대한 신적(神的)인 약속

이스라엘이 가장 비참한 곤궁에 빠졌을 때, 성전이 파괴되고 민족이 포로로 잡혀가 모두 흩어졌을 때, 예언자 에스겔은 두 가지 놀라운 환상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환상은 이스라엘이 역사의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었고(37:1-14), 두 번째 환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메시아적 왕의 통치하에 통일되는 것이었습니다(37;15-23), 우리가 여기서 유의하여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역사와 구약성서에서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희망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의 원형(原形)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는 세계의 민족들에게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스라엘의 특수한 희망은 메시아적 왕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인류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마지막에서 우리 자신을 포기하려고 할 때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위로하고, 예언자적 희망은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이 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약속은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예언자는 두 개의 나무막대기를 들어 하나에는 유다의 이름을, 다른 하나에는 요셉이라는 이름을 써야합니다. 이것은 두 왕국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나무막대기는 두 나라 왕들의 지배를 상징하는 지팡이입니다. 예언자는 이 두 개의 나무막대기가 하나가 되도록 붙여야 합니다. 유다라는 막대기와 요셉이라는 막대기로부터 하나의 막대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적인 행동으로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녀를 옛날에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분단에서부터 다시 끌어내 하나의 민족을 만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나의 땅 이스라엘 산악지대에서 한민족으로 묶고 한 임금을 세워 다스리게 하리니, 다시는 두 민족으로 갈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반으로 갈라져 두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37:22-23, 공동번역).

이스라엘의 통일에 대한 예언자적 비전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 우리는 자유를 주시고 동맹을 맺으시는 하나님과 수직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민족의 분단된 부분의 수평적 통일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수직적 통일에서 시작할 때에만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몰트만 선집 15, ‘자유와 정의 안에서의 통일대한기독교서회, 2017, 19-30 참조)

 

3. 본 회퍼의 평화사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본 회퍼는 20세기 후반 세계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한국 민주화와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무엇인가와 평화위해 어떻게 살고 죽어야하는가 그리고 평화위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올해는 본 회퍼가 나치정권의 처형으로 순교한지 72주년이 되고 한반도 광복과 분단 72주년이 됩니다.

본 회퍼가 그리스도교 평화에 관심을 갖는데 영향을 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프랑스인 쟝 라세르인데 본 회퍼에게 평화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입니다. 본 회퍼가 1930-31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만난 쟝 라세르인데 그 때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본 회퍼는 산상설교에 나타난 평화사상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가르침 중에서 보복금지, 비폭력, 원수 사랑으로부터 그리스도교 평화를 깨닫고 배웁니다. 당시 독일 루터교회는 이런 평화를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본 회퍼는 이 때 평화는 민족적 배경을 초월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인도의 간디인데 본 회퍼는 간디의 비폭력방법을 높이 평가하고,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저항의 형식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본 회퍼는 인도를 방문하고 간디를 만나기로 허락을 받았으나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본 회퍼는 간디가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본 회퍼는 그의 평화설교에서 우리는 동쪽에 있는 이교도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여기서 이교도는 힌두교도인 간디를 지칭한 말인데, 간디가 그리스도인보다 잘 실천했기에 수치스럽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본 회퍼의 평화사상은 1930년대 강연과 설교,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 <윤리학>을 비롯한 그의 저서에 나타나 있습니다.

1) 본 회퍼의 평화사상은 성서에 기초한 것인데, 산상설교와 구약과 복음서 바울서신에 나타난 평화에 관한 말씀을 토대로 말한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론적이며 교회론적입니다. 그리스도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평화위해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마땅한 의무와 책임입니다. 본 회퍼는 전 세계가 연합하여 평화를 만드는 것은 교회의 역할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민족적,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인 모든 경계를 초월합니다. 본 회퍼의 평화는 무기와 군비확장, 안전보장의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비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이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 회퍼는 진리와 정의가 실천되는 곳에 평화가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평화실현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이고, 하나님과이웃앞에서평화를만드는책임을다하는것입니다.

1930년대 초에 평화주의를 주장하였던 본 회퍼가 1940년대 초에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한 것은 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의 계명에 순종한 것을 의미합니다. 본 회퍼는 히틀러는 전쟁을 의미 한다고 말했고, 본 회퍼의 신학과 평화사상은 그의 삶속에서 전기와 후기의 단절이 아니라,’일치 속의 다양한 모습의 결단이었습니다.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본 회퍼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극명히 잘 표현되었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바퀴아래 깔린 희생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바퀴자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본 회퍼는 당시 미친 운전사인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는 폭정에 저항할 의무를 말하고있는데본회퍼는이것을실천한것입니다.

2) 본 회퍼와 한반도 평화통일; 한국과 본 회퍼, 한국교회와 본 회퍼는 어떤 관계입니까? 본 회퍼의 저서에 평화에 관한 가르침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본 회퍼의 평화사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통일신학은 평화신학에 근거해야 합니다.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하는 평화통일이 되어야 하고 통일은 평화를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한 민족의 염원이요 이뤄야 할 역사적 과제입니다. 아니 역사와 시대적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자들”(Peacemakers)이되라고하십니다(5:9).

평화통일을 위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입니까? 먼저 교회는 평화통일을 위해 분단체제 속에서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 남북 간에 대결해 왔던 잘못을 반성하며 역사적 잘못을 바르게 인식하고 참회하여야 합니다. 남북 간은 화해하고 협력하며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신뢰구축을 통하여 통일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라이프치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와 동 베르린의 겟세마네교회가 민주화 변혁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독교회는 동독교회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였습니다. .서독교회는 분단된 사회와 국가를 연결하여 주는 교량역할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분단된 한반도의 남과 북을 화해시키는 교량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적과제이며 미완의 해방을 완성시키는 일인 평화통일을 위한 일에 민족적책임을다하여야할것입니다.

 

4.화해:적개심없는세계

화해는 증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적개심으로 가득 찬 이 세계의 한복판에서 화해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속죄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많은 민족은 제의(祭儀)를 통해서 불의에 대한 속죄(贖罪)를 동물이나 아주 옛날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찾으려 했습니다. 제물은 인간의 불의한 행위에 대한 신들의 진노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사람이 질병이나 자연재해를 통해 신의 진노를 느꼈을 때,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그를 찾았습니다. 폭풍에 시달리는 배안에서 요나는 이것을 체험했습니다.(1:7이하) 요나의 동료들은 요나의 불순종이 초래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요나를 바다 속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르게 보았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민족의 죄를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 제물은 민중이 신들에게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물은 하나님 자신이 그의 민중과 화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찾으셨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속죄양입니다.

이러한 모든 제사행위를 넘어서 예언자 이사야가 처음으로 새로운 비전, 곧 인간적인 비전을 가졌습니다. 이사야 53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종을 보내시는데 그 종이 민중의 죄를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4-5)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이스라엘을 정치적 노예생활에서 해방했던 것처럼, 이 새로운 하나님의 종은 죄의 노예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서에 따르면 속죄를 주는 이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가시며, 죄를 인간으로부터 떨쳐버림으로써 인간을 해방하십니다. 하나님은 속죄하시는 하나님이며, 우리를 화해시키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 있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보낸 사도적 편지의 표제이며 사신(私信)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라는 것은 수직 적이며 수평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맺게 하시려고 거대한 세계의 율법을 페기한 후 스스로 그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인 이유는 그가 적개심을 죽였고평화의 능력으로서 적개심의 폭력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베소서가 말하는 지상의평화가가능한것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집의 식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 새로운 인간들은 영적인 새로운 공동체로, ‘영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2:22). 둘로 나누어진 민족들, 적대적인 집단들, 계급과 신분사회로부터 새로운 인간, 하나님과 화해한 인간,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된 인간, 메시아적 인간성, 미래의 인간성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불안해하는 하나님 자신이 이들 새로운 인간과 함께 안식하며, 이들 새로운 인간의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영안에서 거하는 처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는 적개심이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몰트만선집15,‘화해;적개심없는세계’,대한기독교서회,2017,35-50참조)

 

5.오순절의영과화해.일치의영

1990년대 하비 칵스(H Cox)는 그의 책 <영성, 음악, 여성>에서 20세기후반과 21세기에 교회와 종교가 역동성을 회복하고 성장하면서 오순절적 초월경험을 적극적으로 재평가하고 복음적 영성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함을 강조한바가 있습니다. 오순절적 영성은 기본적으로 성령의 임재체험과 성령의 역사를 겸허히 수용하는 열린 교회의 특징이며, 그리스도교회의 원초적영성경험입니다.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생동감 있게 역사하십니다. 방언과 신유체험, 예언과 성도교제, 열정의 봉사와 기쁨 그리고 능력 있는 말씀증언은 오늘도 그리스도교회를 활성화시키는 핵심적 은사들입니다.

하비 칵스는 오순절의 영성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그러하였듯이 인종과 성별과 종교 국적을 초월하는 자유와 해방의 영이었으며,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의 영이었고, 재산과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함께 떡을 먹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의 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굳어지고 형식적인 예배행위와 기쁨이 없는 봉사활동에도 진취적인 새 영으로 채워야합니다. 나아가 오순절의 영성으로서 음악적 율동성, 여성의 참여성, 자유로운 진보성, 초월체험의 개방성, 예배의 축제성, 코이노니아의 친밀성등과 함께하여야하는 성령인도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21세기 세계개혁교회를 계승한 한국교회는 말씀중심의 영성에다 오순절 성령의 역동성을 접목시켜야 합니다. 장로교회의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의 영성에다, 축제적이고 생동적인 예배의 영성을 접목시켜야 합니다. 본래적인 성서적 영성운동은 진보적이고 해방지향적인 것이지,결코보수적.권력지향적이아니었음을기억하여야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령임재 체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비정상적인 종교현상(방언, 입신, 환상, 넘어짐, 신유 등)의 그 자체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로 변화 되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중심적인 옛사람은 죽고 자유하고 사랑의 섬김을 기쁨으로 준행하는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의 여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오늘의 교회는 영적생동감과 참신성과 영적 창조성과 자기 초월적 감동 및 생태계까지를 포함하는 생명연대감을 공명하는 영적 감수성 회복을 열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동북아시아 평화의 시대를 향한 민족의 통일이 가능한 화해와 일치의 영의 행동의 역사에 응답해야 합니다. 21세기에 한반도는 분단과 상극으로 치닫는 지구상 유일하게 분 단체제로 남북의 대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주여! 어찌하오리까? 탄식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우리민족은 바야흐로 동북아시아 평화의 시대에 돌입하고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북핵과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시기에 이른게 아닐까 싶습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미 본토 코 앞의 소련제 핵 미사일을 제거하기 위해,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터키에 설치했던 미군의 핵 미사일을 철수했습니다. 우리의 주요의제는 사드를 철회하는 게 중국을 끌어들여 북핵 해결에 도움을 주리란 걸 이해시켜야 합니다. 북미협상 외엔 다른 길이 없고, 이것은 코리아 패싱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협상은 굴복이 아닙니다. 북한의 무모함을 용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케네디의 담대한 협상과 양보의 용기, 북핵 문제에서도이런리더십이필요하다고믿어집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과 세계의 사람들은, 남북 화해의 당사자 남북지도자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한 양쪽이 급변하는 사회적 혼란과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민족 대단결’ ‘민족교류’ ‘경제적 상부상조’,‘정치외교’‘군사문제의해결등의순서를밟아가야할것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우선 민간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식량지원, 스포츠문화교류, 경제교류, 군비축소 등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핵무기 실험 중단, 군사훈련감소 내지 중단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정책순차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와 자유안에서의 평화통일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역사섭리와역사를기다리며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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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의시대를향한화해의영 에스겔37:15-23,에베소서2:14-22 2017-08-06, 13

고통스런 회상

망각은 추방으로 인도하고, 회상은 구원을 촉진한다.’ 예루살렘 야드 바쉠(Yad Vashem)에 있는 학살당한 6백만 명의 유대인을 기억하는 기념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의 역사도 특히 8월에는 과거를 망각하기 보다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회상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남북의 교회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주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주일을 설정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19882월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37회 총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선언을 채택. 발표했습니다. 통일과 평화의 선언은 분단된지 50년이 되는 1995년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삼자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후 북쪽교회는 물론이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세계개혁교회연맹 등도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동시에 매년 815일 직전주일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주일로 삼고자 합의하여 실현해 오고 있습니다. 공동기도문과 같은 성경본문으로 설교하고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평화통일의 시대를 향한 화해의 영입니다.

회상해보면, 194586일 인류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고,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습니다.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14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수만 명의 피폭자가 생겼고, 지금도 원폭피해의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45815;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일본의 항복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군사적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국민에게 해방은 식민지배의 해방인 동시에 지금까지 지속되는 민족분단을 의미했습니다. 분단은 다시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4백만 명 이상의 가족들을 흩어 놓았습니다. 자기 잘못도 없이 분단된 한국은 냉전체제가 지배하는, 지구에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고도로 병력이 밀집된, 분단된 이 나라의 위기는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서로 갈라놓는 무덤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남과 북을 갈라놓는 경계가 무너진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복지를 뒷받침할 포괄적 증세논의가 필요합니다. 증세논의는 국민인식을 새롭게 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베르린 구상에서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자오직 평화라고 강조하였음을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인내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현 국면에서 남북관계가 돌파구를 찾자면 사즉생(死即生)의 의지(意志)와 결단력이 없으면 어려울 것입니다. 개성공단재개, 금강산관광재개, 한미군사훈련중단 중 어느 하나만 실현해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 에스겔의 통일에 대한 신적(神的)인 약속

이스라엘이 가장 비참한 곤궁에 빠졌을 때, 성전이 파괴되고 민족이 포로로 잡혀가 모두 흩어졌을 때, 예언자 에스겔은 두 가지 놀라운 환상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환상은 이스라엘이 역사의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었고(37:1-14), 두 번째 환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메시아적 왕의 통치하에 통일되는 것이었습니다(37;15-23), 우리가 여기서 유의하여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역사와 구약성서에서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희망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의 원형(原形)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는 세계의 민족들에게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스라엘의 특수한 희망은 메시아적 왕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인류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마지막에서 우리 자신을 포기하려고 할 때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위로하고, 예언자적 희망은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이 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약속은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예언자는 두 개의 나무막대기를 들어 하나에는 유다의 이름을, 다른 하나에는 요셉이라는 이름을 써야합니다. 이것은 두 왕국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나무막대기는 두 나라 왕들의 지배를 상징하는 지팡이입니다. 예언자는 이 두 개의 나무막대기가 하나가 되도록 붙여야 합니다. 유다라는 막대기와 요셉이라는 막대기로부터 하나의 막대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적인 행동으로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녀를 옛날에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분단에서부터 다시 끌어내 하나의 민족을 만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나의 땅 이스라엘 산악지대에서 한민족으로 묶고 한 임금을 세워 다스리게 하리니, 다시는 두 민족으로 갈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반으로 갈라져 두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37:22-23, 공동번역).

이스라엘의 통일에 대한 예언자적 비전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 우리는 자유를 주시고 동맹을 맺으시는 하나님과 수직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민족의 분단된 부분의 수평적 통일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수직적 통일에서 시작할 때에만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몰트만 선집 15, ‘자유와 정의 안에서의 통일대한기독교서회, 2017, 19-30 참조)

 

3. 본 회퍼의 평화사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본 회퍼는 20세기 후반 세계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한국 민주화와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무엇인가와 평화위해 어떻게 살고 죽어야하는가 그리고 평화위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올해는 본 회퍼가 나치정권의 처형으로 순교한지 72주년이 되고 한반도 광복과 분단 72주년이 됩니다.

본 회퍼가 그리스도교 평화에 관심을 갖는데 영향을 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프랑스인 쟝 라세르인데 본 회퍼에게 평화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입니다. 본 회퍼가 1930-31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만난 쟝 라세르인데 그 때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본 회퍼는 산상설교에 나타난 평화사상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가르침 중에서 보복금지, 비폭력, 원수 사랑으로부터 그리스도교 평화를 깨닫고 배웁니다. 당시 독일 루터교회는 이런 평화를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본 회퍼는 이 때 평화는 민족적 배경을 초월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인도의 간디인데 본 회퍼는 간디의 비폭력방법을 높이 평가하고,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저항의 형식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본 회퍼는 인도를 방문하고 간디를 만나기로 허락을 받았으나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본 회퍼는 간디가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본 회퍼는 그의 평화설교에서 우리는 동쪽에 있는 이교도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여기서 이교도는 힌두교도인 간디를 지칭한 말인데, 간디가 그리스도인보다 잘 실천했기에 수치스럽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본 회퍼의 평화사상은 1930년대 강연과 설교,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 <윤리학>을 비롯한 그의 저서에 나타나 있습니다.

1) 본 회퍼의 평화사상은 성서에 기초한 것인데, 산상설교와 구약과 복음서 바울서신에 나타난 평화에 관한 말씀을 토대로 말한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론적이며 교회론적입니다. 그리스도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평화위해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마땅한 의무와 책임입니다. 본 회퍼는 전 세계가 연합하여 평화를 만드는 것은 교회의 역할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민족적,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인 모든 경계를 초월합니다. 본 회퍼의 평화는 무기와 군비확장, 안전보장의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비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이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 회퍼는 진리와 정의가 실천되는 곳에 평화가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평화실현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이고, 하나님과이웃앞에서평화를만드는책임을다하는것입니다.

1930년대 초에 평화주의를 주장하였던 본 회퍼가 1940년대 초에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한 것은 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의 계명에 순종한 것을 의미합니다. 본 회퍼는 히틀러는 전쟁을 의미 한다고 말했고, 본 회퍼의 신학과 평화사상은 그의 삶속에서 전기와 후기의 단절이 아니라,’일치 속의 다양한 모습의 결단이었습니다.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본 회퍼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극명히 잘 표현되었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바퀴아래 깔린 희생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바퀴자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본 회퍼는 당시 미친 운전사인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는 폭정에 저항할 의무를 말하고있는데본회퍼는이것을실천한것입니다.

2) 본 회퍼와 한반도 평화통일; 한국과 본 회퍼, 한국교회와 본 회퍼는 어떤 관계입니까? 본 회퍼의 저서에 평화에 관한 가르침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본 회퍼의 평화사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통일신학은 평화신학에 근거해야 합니다.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하는 평화통일이 되어야 하고 통일은 평화를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한 민족의 염원이요 이뤄야 할 역사적 과제입니다. 아니 역사와 시대적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자들”(Peacemakers)이되라고하십니다(5:9).

평화통일을 위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입니까? 먼저 교회는 평화통일을 위해 분단체제 속에서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 남북 간에 대결해 왔던 잘못을 반성하며 역사적 잘못을 바르게 인식하고 참회하여야 합니다. 남북 간은 화해하고 협력하며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신뢰구축을 통하여 통일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라이프치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와 동 베르린의 겟세마네교회가 민주화 변혁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독교회는 동독교회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였습니다. .서독교회는 분단된 사회와 국가를 연결하여 주는 교량역할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분단된 한반도의 남과 북을 화해시키는 교량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적과제이며 미완의 해방을 완성시키는 일인 평화통일을 위한 일에 민족적책임을다하여야할것입니다.

 

4.화해:적개심없는세계

화해는 증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적개심으로 가득 찬 이 세계의 한복판에서 화해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속죄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많은 민족은 제의(祭儀)를 통해서 불의에 대한 속죄(贖罪)를 동물이나 아주 옛날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찾으려 했습니다. 제물은 인간의 불의한 행위에 대한 신들의 진노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사람이 질병이나 자연재해를 통해 신의 진노를 느꼈을 때,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그를 찾았습니다. 폭풍에 시달리는 배안에서 요나는 이것을 체험했습니다.(1:7이하) 요나의 동료들은 요나의 불순종이 초래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요나를 바다 속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르게 보았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민족의 죄를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 제물은 민중이 신들에게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물은 하나님 자신이 그의 민중과 화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찾으셨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속죄양입니다.

이러한 모든 제사행위를 넘어서 예언자 이사야가 처음으로 새로운 비전, 곧 인간적인 비전을 가졌습니다. 이사야 53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종을 보내시는데 그 종이 민중의 죄를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4-5)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이스라엘을 정치적 노예생활에서 해방했던 것처럼, 이 새로운 하나님의 종은 죄의 노예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서에 따르면 속죄를 주는 이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가시며, 죄를 인간으로부터 떨쳐버림으로써 인간을 해방하십니다. 하나님은 속죄하시는 하나님이며, 우리를 화해시키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 있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보낸 사도적 편지의 표제이며 사신(私信)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라는 것은 수직 적이며 수평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맺게 하시려고 거대한 세계의 율법을 페기한 후 스스로 그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인 이유는 그가 적개심을 죽였고평화의 능력으로서 적개심의 폭력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베소서가 말하는 지상의평화가가능한것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집의 식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 새로운 인간들은 영적인 새로운 공동체로, ‘영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2:22). 둘로 나누어진 민족들, 적대적인 집단들, 계급과 신분사회로부터 새로운 인간, 하나님과 화해한 인간,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된 인간, 메시아적 인간성, 미래의 인간성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불안해하는 하나님 자신이 이들 새로운 인간과 함께 안식하며, 이들 새로운 인간의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영안에서 거하는 처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는 적개심이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몰트만선집15,‘화해;적개심없는세계’,대한기독교서회,2017,35-50참조)

 

5.오순절의영과화해.일치의영

1990년대 하비 칵스(H Cox)는 그의 책 <영성, 음악, 여성>에서 20세기후반과 21세기에 교회와 종교가 역동성을 회복하고 성장하면서 오순절적 초월경험을 적극적으로 재평가하고 복음적 영성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함을 강조한바가 있습니다. 오순절적 영성은 기본적으로 성령의 임재체험과 성령의 역사를 겸허히 수용하는 열린 교회의 특징이며, 그리스도교회의 원초적영성경험입니다.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생동감 있게 역사하십니다. 방언과 신유체험, 예언과 성도교제, 열정의 봉사와 기쁨 그리고 능력 있는 말씀증언은 오늘도 그리스도교회를 활성화시키는 핵심적 은사들입니다.

하비 칵스는 오순절의 영성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그러하였듯이 인종과 성별과 종교 국적을 초월하는 자유와 해방의 영이었으며,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의 영이었고, 재산과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함께 떡을 먹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의 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굳어지고 형식적인 예배행위와 기쁨이 없는 봉사활동에도 진취적인 새 영으로 채워야합니다. 나아가 오순절의 영성으로서 음악적 율동성, 여성의 참여성, 자유로운 진보성, 초월체험의 개방성, 예배의 축제성, 코이노니아의 친밀성등과 함께하여야하는 성령인도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21세기 세계개혁교회를 계승한 한국교회는 말씀중심의 영성에다 오순절 성령의 역동성을 접목시켜야 합니다. 장로교회의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의 영성에다, 축제적이고 생동적인 예배의 영성을 접목시켜야 합니다. 본래적인 성서적 영성운동은 진보적이고 해방지향적인 것이지,결코보수적.권력지향적이아니었음을기억하여야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령임재 체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비정상적인 종교현상(방언, 입신, 환상, 넘어짐, 신유 등)의 그 자체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로 변화 되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중심적인 옛사람은 죽고 자유하고 사랑의 섬김을 기쁨으로 준행하는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의 여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오늘의 교회는 영적생동감과 참신성과 영적 창조성과 자기 초월적 감동 및 생태계까지를 포함하는 생명연대감을 공명하는 영적 감수성 회복을 열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동북아시아 평화의 시대를 향한 민족의 통일이 가능한 화해와 일치의 영의 행동의 역사에 응답해야 합니다. 21세기에 한반도는 분단과 상극으로 치닫는 지구상 유일하게 분 단체제로 남북의 대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주여! 어찌하오리까? 탄식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우리민족은 바야흐로 동북아시아 평화의 시대에 돌입하고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북핵과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시기에 이른게 아닐까 싶습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미 본토 코 앞의 소련제 핵 미사일을 제거하기 위해,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터키에 설치했던 미군의 핵 미사일을 철수했습니다. 우리의 주요의제는 사드를 철회하는 게 중국을 끌어들여 북핵 해결에 도움을 주리란 걸 이해시켜야 합니다. 북미협상 외엔 다른 길이 없고, 이것은 코리아 패싱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협상은 굴복이 아닙니다. 북한의 무모함을 용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케네디의 담대한 협상과 양보의 용기, 북핵 문제에서도이런리더십이필요하다고믿어집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과 세계의 사람들은, 남북 화해의 당사자 남북지도자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한 양쪽이 급변하는 사회적 혼란과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민족 대단결’ ‘민족교류’ ‘경제적 상부상조’,‘정치외교’‘군사문제의해결등의순서를밟아가야할것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우선 민간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식량지원, 스포츠문화교류, 경제교류, 군비축소 등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핵무기 실험 중단, 군사훈련감소 내지 중단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정책순차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와 자유안에서의 평화통일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역사섭리와역사를기다리며기도드립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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