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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예수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에 대한 역사적 고찰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7-10-20 (금) 15:44 6년전 1749  

예수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에 대한 역사적 고찰

예레미아 7: 1- 7, 마태복음 5: 9

2017-10-22

1. 예수의 평화

평화는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평화만큼 절실한 것은 없고, 평화 없이는 자멸하고 맙니다. 평화란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고, 수평적으로 사람들끼리 자연을 포함하여 바른 관계를 맺는 자리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설화에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천사의 노래로 시작됩니다(1:79, 2:14).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되다(5:9), 원수를 사랑하라(5:44)는 말씀과 같이 적극적입니다.

제자들 중에 누가 크냐? 하고 서로 질투할 때 예수께서는 손수 대야에 물을 떠다 놓고 종처럼 꿇어앉아 제자들의 발을 씻었습니다. 화평을 만드는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열 두 사도와 70인의 제자를 선교여행에 보낼 때에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을 빌라(10:12)고 분부했습니다. 예수자신이 여러 가지 병을 고치신 때에도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하라(7:50, 8:48 ) 했으며,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에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4:36)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당시 유대사람들이 보통 사용하는 인사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품격 속에 간직한 평화를 실제로 나누어주는 선언입니다. 평화를 너희에게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14:27). 평화는 예수 자신의 품격 속에 마치 고요히 잠긴 산중(山中)의 심연(深淵)처럼 언제나 고여 있는 평화며 그것이 넘쳐서 밖으로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항존(恒存)하는, 품격화(品格化)한 평화가 있었기에 질병과 고독과 번민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마음물결이 그의 앞에서 고요함과 화평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11:28)하는 초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평화-이해관계의 조절이나 환경의 적응 등과 같은 일시적이고 조건부인 평화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예수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pax-Romana)에 대한 역사적 고찰입니다.

 

2. 평화의 복음

사도들의 전승에서도 평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평화의 복음(6:15)이라고 했고, 베드로도 화평의 복음(10:36)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기쁜 소식이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죄인 되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속죄사랑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인간끼리 서로 적대, 소외, 배타 등의 막혔던 담을 허물고 먼데 사람과 가까운데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종과 상전, 부자와 빈자, 문명인과 야만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 하나님 안에서 한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평화의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상징(symbol)은 새로 내리 그은 것은 하나님과 인간, 가로 건너 그은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데 그 그어진 선은 서로 통하는 통로(通路)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교차점에 그리스도가 자기 몸을 못 박아 화목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는 평화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평화(平和)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이레네 인데 그것을 우리말 번역에는 문맥에 따라 평화, 평안, 평강, 화목, 화평 등등 각양각색으로 번역했습니다. 신약성서의 아이레네 는 구약성서의 샬롬을 옮긴 것입니다. 히브리 인들의 샬롬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서 인사말로 쓸 만큼 친숙한 용어입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사회적인 복지(福祉) 완전(完全) 축복(祝福)된 상황 등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메시야와 메시야 왕국에 관련된 용어입니다. 메시야는 평화의 나라를 이룩합니다. 그 정사와 평화가 무궁한나라(9:7)라고 했습니다. 백성에게 평화를 주며(72:3) 저희 날에 의인이 흥왕 하여 평화가 풍성하리라(72:7) 하셨고, 메시야 자신이 평화의 왕(9: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 운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개인 적이라기보다 사회적 왕국적인 의미에서의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이 샬롬적인 개념을 전승했지만 다분히 개인적, 인격적인 면이 강조되었습니다. 각 개인의 몸의 건강, 마음의 안식과 생활의 평정감(平靜感) 등등으로 생각한 데가 많습니다(2:29, 19:42, 10:12-13). 그러나 예수에게 있어서 특기할 점은 그의 평화가 덮어놓고 안온(安溫)한 무사주의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고 검을 주려고 왔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10:34-36)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12:49)고 했고, 화평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12:51). 얼마나 강하고 거친 말입니까? 이런 말씀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 받은 평화란 것은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는 성령의 은사, 마음에 기쁨과 화평이 충만하다는 신비경험을 그리스도인 평화라고 하며, 그것만을 추구하고 흠모하고 따르려는 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대체적인 평화에의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평화의 사회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 무관심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구약을 한 성서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할 것은 하고 아니다 할 것은 아니다 했다는 역사적 증언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과 진리를 말씀하며 어둠의 세력, 죽음의 마수가 쉴 새 없이 뒤따르고 있는 줄 알면서도 의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은 부활이었습니다. 그의 평화는 죽기까지 싸우는 투쟁에서 얻어진 평화였습니다. 아니 불의와 죄악에 직면하여 무사주의로 어물어물하지 않고 거기에 직접 공정(公正)과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는 그 자체가 그의 평화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평화를 운위(云爲)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평화를 위해 오셔서 일하신 평화의 주님입니다.

 

3. 예레미야의 공의와 평화

예레미야는 성전 문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대인아!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여 무죄한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서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이니라(7:2-7).

평화 없는 실상에서 평화, 평화하고 자장가를 불러 백성들을 재웁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사람들이 제물만 가져오면 잘했다 네게 평안이 있으라 하고 축복합니다. 그 손에서 살인한 피가 마르기도 전에 그 손을 들어 평화를 선언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죄악만 조장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 백성과 선지자와 제사장과 임금에게 싸움을 선포하고 그 악을 규탄하고 심판을 선고 했습니다. 잘 산다 잘 산다 하고 번영을 자랑하는 그 나라 집권자들을 향하여 나라가 망한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다. 도시가 폐허(廢墟)로 남는다.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 하고 20년이나 외쳤으니 그 나라 집권층이나 지도층에서 그를 얼마나 미워했겠습니까? 그를 당장 죽여 버리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하기는 몇 번 죽이려고 했지만 제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길게 자던 잠자리를 털고 깨어나야 합니다. 안정된 중산층으로 구성된, 이른바 큰 교회에서 사회적 어려운 문제들 노동자 문제나 실업자 문제 부정부패 일소문제 정치권력의 악용 문제 적대적으로 흐르는 남북통일의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취급된다면 깜짝 놀라 논의하기를 피합니다. 그리고 그 대신 개인적 주관적인 평화경험이라는 영적 도취를 권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항해 중에 배가 한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그것은 그만큼 반대편으로 기울어지도록 잡아 당겨 배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파선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면 거기 대한 반대세력도 그만큼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정이 있는 곳에 공의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실을, 압박이 있는 곳에 자유를, 낙심이 있는 곳에 희망을, 난잡한 곳에 질서를 등등 극()은 극()으로 대결하지 않는 한, 평정이 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 평화를 가져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평화를 가져올 줄 아느냐? 도리어 검을 가져 온다고 말씀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그 기초로 삼습니다. 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선량이 뽑히고 국민의 뜻을 따라 권력을 대행할 사람이 선출됩니다. 그러나 일단 권력이 부여된 다음에는 실제에 있어서 주권이 그에게 있는 것 같이 됩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정부의 국민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며 그것이 심하면 독재정치가 영영 굳어집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진정 자유와 민주를 자기 것으로 유지하려면 항상 깨어서 나라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인간을 위한, 특히 개인인격의 존엄을 앞세우는 정신이며 사상이며 제도니만큼 그런 것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투쟁은 비폭력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폭력으로 세상을 이기셨기에 그리스도인들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습니다.

 

4. 평화주의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

초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 전역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로마제국의 통치영역에 정면으로 충돌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현재의 로마시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 도시국가가 되고 점차 이태리반도를 통일 하였습니다. 당시 서부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와 대결하여 포에니 전쟁에서 이기고 동부 지중해지역의 헬레니즘세계를 전부 정복하여 지중해세계의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무슨 힘으로 로마는 이렇게 하였는가를 물을 수 있습니다. 로마는 시종일관(始終一貫) 무력(武力)과 폭력(暴力)에 의하여 로마가 된 것입니다. 그 거대한 군사력(軍事力)에 의하여 대 로마가 건설되고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정신은 폭력주의(暴力主義) 군국주의(軍國主義)였습니다. 소위 로마의 평화(pax-Romana)라는 것도 군사력에 의하여 잠잠하게 조용하게 한 잠정적 평화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국 안에서도 가장 보 잘 것 없는 시리아의 소국(小國) 유대나라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가 폭력에 절대 반대하는 평화주의, 반전주의를 선교할 때 로마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군인이 된 예()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박해와 비 그리스도인들로부터의 학대도 인내로써 참고 견디었을 뿐이고, 어떤 정치적 조직을 만들어서 무력으로 대항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勅令)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公認)313년까지 약 300년간 로마제국 안에서 가장 치열하게 그러나 별로 눈에 띄지 않게 싸워진 싸움은 소위 로마의 평화주의 군국(폭력)주의와 예수의 평화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승패는 너무나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거대한 무기와 군사력을 소유한 세계역사상 최대의 힘의 권력화(勸力化)였는데 반해 그리스도교도는 아무 힘없는 소수일 뿐더러 그 적은 힘마저 행사하려고 하지 않고,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 한다는 주문(呪文)만 외우면서 로마병정의 창 끝 에서 죽어갔습니다. 이렇게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승부의 판결이 4세기 초에 이르러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으니 이 어찌된 영문일까요!

예수의 평화는 그 무서운 로마의 폭력(군국)주의를 굴복시켰습니다. 로마제국은 망하였어도 그 속에서 로마의 폭력의 생활원리를 반대하고 사랑의 원리를 들고 나섰던 그리스도교는 망하지 않는 그 후의 세계사의 주력(主力)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은 냉엄합니다. 그리스도교가 현실적으로 승리한 순간 그것은 승리에 취하여 그 승리의 깊은 원인을 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제 권력의 박해를 받는 자가 아니라 국가의 종교가 되어 권력의 동맹자(同盟者)가 되고 권력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교를 선교하고 이교도를 통치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314년 아르루 종교회의는 그리스도교도의 군대복무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윤허(允許)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위해 싸우는 것은 곧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예수의 가르침과 생활에서 벗어난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는 그 후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든가, 그리스도교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라든가, 비 그리스도인을 개화시키고 개종시키기 위해서라든가, 기타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많은 전쟁을 감행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1세기 말엽부터 2백 년간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異敎)인 회교도(回敎徒)의 수중(手中)에서부터 빼앗기 위하여 십자군 전쟁이라는 대규모의 무모한 전쟁을 의로운 전쟁이니 성전(聖戰)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감행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자체가 평화주의에서 이탈하게 됨으로써 철저한 평화주의를 신봉하는 자는 오히려 소수파 이단으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중세에도 그러한 순수평화주의가 있었는데 남부 불란서에서 일어났던 봘트파(Waldenses)가 그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중세 가톨릭의 비성서적 교의를 반대하고 성서로 돌아가는 운동으로서 일어났지만 어떠한 전쟁도 폭력도 반대하는 예수의 평화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가톨릭의 성전(聖戰)사상의 계통을 그대로 전해 받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시대에 평화를 표방하고 나선 재세례파(Anabaptists)는 가톨릭과 신교(新敎)의 양편으로부터 아주 가혹한 박해를 받고 거의 전멸하였으나 그 일부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침례교를 만들었습니다. 청교도 혁명 때 올리버 크롬웰의 군대 안에는 그들이 많이 끼어 있었습니다. 재세례파 에 유사한 철저한 평화주의 교파로 메노나이트가 생기고 또 17세기 영국에서는 퀘이커교가 일어났습니다. 퀘이커교도는 대체로 19세기 이래 절대적 평화주의가 그 종파의 주요한 특성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 평화운동은 일부 극단적 소수파에 머물지 않고 도덕적 철학적 양심에 근거한 세속적 범위까지 넓혀졌습니다. 1947년의 노벨 평화상이 퀘이커파의 아메리칸 프렌드(American Friends)봉사단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 한 것입니다. 20세기에는 인류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도 폭력이 판을 치는 시기였습니다. 양차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은 인적 물적 정신적 도덕적 파괴에 있어서 사상(史上) 최대의 것임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21세기 역시 세계는 지금 테러와의 전쟁과 세계 곳곳에서 무서운 폭탄과 총탄의 테러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예수의 평화가 대 로마제국의 무력에 대항하여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가정에 불과 하였습니다. 폭력이 폭력을 이길 수 없고 오직 평화만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의 시대나 현대는 매우 유사한 환경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거기에는 평화, 비폭력, 반전의 길, 이외에는 인류와 문명의 구원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5. 평화를 위한 참회- 통일의 신학-

19882월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NCK)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평화적 방법에 의한 민족통일의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한반도의 통일자료로 정치계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 걸쳐 크게 영향력을 발휘했던 뜻 깊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평화의 정신은 그 객관적 기준이 예수의 평화운동에 있고, 그 실천적 기준은 평화운동의 투쟁의 역사에 있습니다. 평화의 참 의미와 깊은 이해와 그 종교적 신념화가 있어야 평화적 방법에 의한 민족통일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남북 상호간은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고백부터 시작하고 남북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증진을 위하여, 민족자주성의 실현을 위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선교 제1순위로 하여 교회와 민족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고 정진하여야 합니다. 해방분단의 72주년을 맞는 때에 한반도의 핵무기배치와 긴장의 슬픔을 상기하며 생각해 본 말씀입니다.

한반도 남북에 살고 있는 수백만 한국인들은 전쟁과 분단의 상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분단으로 인한 전쟁의 흉터와 상혼은 한국인의 한 맺힌 가슴속에 새겨져 집단무의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우리자신들, 그리고 남북관계가 파괴되었음을 인식하며 부름 받은 교회는 먼저 죄책고백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구조악인 한반도분단을 막지 못한 책임과 이 분단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해 왔고, 분단현실 속에 안주한 죄책을 민족 앞에 고백하는 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통일신학을 위하여, 군사주의는 분단신학이 창조해낸 신학적 우상입니다. 분단신학은 가장근본주의적인 군사주의를 정당화합니다. 분단되어 있는 나라의 군사주의는 강대국 군사주의의 하부구조에 불과합니다. 일국적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오늘날의 군사주의는 분열된 세계 속에서 평화의 이름으로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하고, 민족경제발전을 착취하고, 민족독립의 보전을 파괴하며, 평화 정의로 분열을 극복하려 하는 근본적인 인간의 열망을 위태롭게 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지난해 2016727일에 25년 만에 비상시국 대책회의를 발족하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는 파괴되고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기까지 복음의 사회적 책무에 헌신하지 못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를 뼈아프게 뉘우치고 회개한다.고 했습니다.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이 아닌 끝없는 증오와 대결로 치닫게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무사안일의 평화주의에서 해방 받아야 하며 예수님의 평화의 진면목에서 만나고 새롭게 출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현존으로서 십자가의 실재는 성서적 신앙에 따르면 고난입니다. 화해의 십자가는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적대적인 세계 안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에 핵의 힘과 강대국들의 군사적 폭력을 의지함으로써 하나님께 대적하는 죄를 범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핵우산을 신뢰하고 있는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깊은 참회의 마음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면서 우리는 화해의 십자가를 쳐다보아야 합니다.

이제 아토스 성산(聖山)의 한 은둔 수도승의 <예수기도>를 드리므로 본 메시지를 마칠까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에 대한 역사적 고찰

예레미아 7: 1- 7, 마태복음 5: 9

2017-10-22

1. 예수의 평화

평화는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평화만큼 절실한 것은 없고, 평화 없이는 자멸하고 맙니다. 평화란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고, 수평적으로 사람들끼리 자연을 포함하여 바른 관계를 맺는 자리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설화에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천사의 노래로 시작됩니다(1:79, 2:14).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되다(5:9), 원수를 사랑하라(5:44)는 말씀과 같이 적극적입니다.

제자들 중에 누가 크냐? 하고 서로 질투할 때 예수께서는 손수 대야에 물을 떠다 놓고 종처럼 꿇어앉아 제자들의 발을 씻었습니다. 화평을 만드는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열 두 사도와 70인의 제자를 선교여행에 보낼 때에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을 빌라(10:12)고 분부했습니다. 예수자신이 여러 가지 병을 고치신 때에도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하라(7:50, 8:48 ) 했으며,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에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4:36)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당시 유대사람들이 보통 사용하는 인사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품격 속에 간직한 평화를 실제로 나누어주는 선언입니다. 평화를 너희에게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14:27). 평화는 예수 자신의 품격 속에 마치 고요히 잠긴 산중(山中)의 심연(深淵)처럼 언제나 고여 있는 평화며 그것이 넘쳐서 밖으로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항존(恒存)하는, 품격화(品格化)한 평화가 있었기에 질병과 고독과 번민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마음물결이 그의 앞에서 고요함과 화평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11:28)하는 초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평화-이해관계의 조절이나 환경의 적응 등과 같은 일시적이고 조건부인 평화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예수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pax-Romana)에 대한 역사적 고찰입니다.

 

2. 평화의 복음

사도들의 전승에서도 평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평화의 복음(6:15)이라고 했고, 베드로도 화평의 복음(10:36)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기쁜 소식이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죄인 되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속죄사랑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인간끼리 서로 적대, 소외, 배타 등의 막혔던 담을 허물고 먼데 사람과 가까운데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종과 상전, 부자와 빈자, 문명인과 야만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 하나님 안에서 한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평화의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상징(symbol)은 새로 내리 그은 것은 하나님과 인간, 가로 건너 그은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데 그 그어진 선은 서로 통하는 통로(通路)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교차점에 그리스도가 자기 몸을 못 박아 화목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는 평화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평화(平和)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이레네 인데 그것을 우리말 번역에는 문맥에 따라 평화, 평안, 평강, 화목, 화평 등등 각양각색으로 번역했습니다. 신약성서의 아이레네 는 구약성서의 샬롬을 옮긴 것입니다. 히브리 인들의 샬롬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서 인사말로 쓸 만큼 친숙한 용어입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사회적인 복지(福祉) 완전(完全) 축복(祝福)된 상황 등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메시야와 메시야 왕국에 관련된 용어입니다. 메시야는 평화의 나라를 이룩합니다. 그 정사와 평화가 무궁한나라(9:7)라고 했습니다. 백성에게 평화를 주며(72:3) 저희 날에 의인이 흥왕 하여 평화가 풍성하리라(72:7) 하셨고, 메시야 자신이 평화의 왕(9: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 운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개인 적이라기보다 사회적 왕국적인 의미에서의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이 샬롬적인 개념을 전승했지만 다분히 개인적, 인격적인 면이 강조되었습니다. 각 개인의 몸의 건강, 마음의 안식과 생활의 평정감(平靜感) 등등으로 생각한 데가 많습니다(2:29, 19:42, 10:12-13). 그러나 예수에게 있어서 특기할 점은 그의 평화가 덮어놓고 안온(安溫)한 무사주의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고 검을 주려고 왔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10:34-36)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12:49)고 했고, 화평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12:51). 얼마나 강하고 거친 말입니까? 이런 말씀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 받은 평화란 것은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는 성령의 은사, 마음에 기쁨과 화평이 충만하다는 신비경험을 그리스도인 평화라고 하며, 그것만을 추구하고 흠모하고 따르려는 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대체적인 평화에의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평화의 사회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 무관심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구약을 한 성서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할 것은 하고 아니다 할 것은 아니다 했다는 역사적 증언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과 진리를 말씀하며 어둠의 세력, 죽음의 마수가 쉴 새 없이 뒤따르고 있는 줄 알면서도 의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은 부활이었습니다. 그의 평화는 죽기까지 싸우는 투쟁에서 얻어진 평화였습니다. 아니 불의와 죄악에 직면하여 무사주의로 어물어물하지 않고 거기에 직접 공정(公正)과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는 그 자체가 그의 평화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평화를 운위(云爲)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평화를 위해 오셔서 일하신 평화의 주님입니다.

 

3. 예레미야의 공의와 평화

예레미야는 성전 문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대인아!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여 무죄한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서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이니라(7:2-7).

평화 없는 실상에서 평화, 평화하고 자장가를 불러 백성들을 재웁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사람들이 제물만 가져오면 잘했다 네게 평안이 있으라 하고 축복합니다. 그 손에서 살인한 피가 마르기도 전에 그 손을 들어 평화를 선언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죄악만 조장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 백성과 선지자와 제사장과 임금에게 싸움을 선포하고 그 악을 규탄하고 심판을 선고 했습니다. 잘 산다 잘 산다 하고 번영을 자랑하는 그 나라 집권자들을 향하여 나라가 망한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다. 도시가 폐허(廢墟)로 남는다.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 하고 20년이나 외쳤으니 그 나라 집권층이나 지도층에서 그를 얼마나 미워했겠습니까? 그를 당장 죽여 버리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하기는 몇 번 죽이려고 했지만 제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길게 자던 잠자리를 털고 깨어나야 합니다. 안정된 중산층으로 구성된, 이른바 큰 교회에서 사회적 어려운 문제들 노동자 문제나 실업자 문제 부정부패 일소문제 정치권력의 악용 문제 적대적으로 흐르는 남북통일의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취급된다면 깜짝 놀라 논의하기를 피합니다. 그리고 그 대신 개인적 주관적인 평화경험이라는 영적 도취를 권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항해 중에 배가 한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그것은 그만큼 반대편으로 기울어지도록 잡아 당겨 배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파선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면 거기 대한 반대세력도 그만큼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정이 있는 곳에 공의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실을, 압박이 있는 곳에 자유를, 낙심이 있는 곳에 희망을, 난잡한 곳에 질서를 등등 극()은 극()으로 대결하지 않는 한, 평정이 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 평화를 가져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평화를 가져올 줄 아느냐? 도리어 검을 가져 온다고 말씀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그 기초로 삼습니다. 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선량이 뽑히고 국민의 뜻을 따라 권력을 대행할 사람이 선출됩니다. 그러나 일단 권력이 부여된 다음에는 실제에 있어서 주권이 그에게 있는 것 같이 됩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정부의 국민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며 그것이 심하면 독재정치가 영영 굳어집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진정 자유와 민주를 자기 것으로 유지하려면 항상 깨어서 나라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인간을 위한, 특히 개인인격의 존엄을 앞세우는 정신이며 사상이며 제도니만큼 그런 것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투쟁은 비폭력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폭력으로 세상을 이기셨기에 그리스도인들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습니다.

 

4. 평화주의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

초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 전역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로마제국의 통치영역에 정면으로 충돌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현재의 로마시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 도시국가가 되고 점차 이태리반도를 통일 하였습니다. 당시 서부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와 대결하여 포에니 전쟁에서 이기고 동부 지중해지역의 헬레니즘세계를 전부 정복하여 지중해세계의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무슨 힘으로 로마는 이렇게 하였는가를 물을 수 있습니다. 로마는 시종일관(始終一貫) 무력(武力)과 폭력(暴力)에 의하여 로마가 된 것입니다. 그 거대한 군사력(軍事力)에 의하여 대 로마가 건설되고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정신은 폭력주의(暴力主義) 군국주의(軍國主義)였습니다. 소위 로마의 평화(pax-Romana)라는 것도 군사력에 의하여 잠잠하게 조용하게 한 잠정적 평화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국 안에서도 가장 보 잘 것 없는 시리아의 소국(小國) 유대나라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가 폭력에 절대 반대하는 평화주의, 반전주의를 선교할 때 로마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군인이 된 예()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박해와 비 그리스도인들로부터의 학대도 인내로써 참고 견디었을 뿐이고, 어떤 정치적 조직을 만들어서 무력으로 대항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勅令)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公認)313년까지 약 300년간 로마제국 안에서 가장 치열하게 그러나 별로 눈에 띄지 않게 싸워진 싸움은 소위 로마의 평화주의 군국(폭력)주의와 예수의 평화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승패는 너무나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거대한 무기와 군사력을 소유한 세계역사상 최대의 힘의 권력화(勸力化)였는데 반해 그리스도교도는 아무 힘없는 소수일 뿐더러 그 적은 힘마저 행사하려고 하지 않고,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 한다는 주문(呪文)만 외우면서 로마병정의 창 끝 에서 죽어갔습니다. 이렇게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승부의 판결이 4세기 초에 이르러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으니 이 어찌된 영문일까요!

예수의 평화는 그 무서운 로마의 폭력(군국)주의를 굴복시켰습니다. 로마제국은 망하였어도 그 속에서 로마의 폭력의 생활원리를 반대하고 사랑의 원리를 들고 나섰던 그리스도교는 망하지 않는 그 후의 세계사의 주력(主力)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은 냉엄합니다. 그리스도교가 현실적으로 승리한 순간 그것은 승리에 취하여 그 승리의 깊은 원인을 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제 권력의 박해를 받는 자가 아니라 국가의 종교가 되어 권력의 동맹자(同盟者)가 되고 권력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교를 선교하고 이교도를 통치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314년 아르루 종교회의는 그리스도교도의 군대복무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윤허(允許)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위해 싸우는 것은 곧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예수의 가르침과 생활에서 벗어난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는 그 후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든가, 그리스도교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라든가, 비 그리스도인을 개화시키고 개종시키기 위해서라든가, 기타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많은 전쟁을 감행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1세기 말엽부터 2백 년간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異敎)인 회교도(回敎徒)의 수중(手中)에서부터 빼앗기 위하여 십자군 전쟁이라는 대규모의 무모한 전쟁을 의로운 전쟁이니 성전(聖戰)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감행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자체가 평화주의에서 이탈하게 됨으로써 철저한 평화주의를 신봉하는 자는 오히려 소수파 이단으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중세에도 그러한 순수평화주의가 있었는데 남부 불란서에서 일어났던 봘트파(Waldenses)가 그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중세 가톨릭의 비성서적 교의를 반대하고 성서로 돌아가는 운동으로서 일어났지만 어떠한 전쟁도 폭력도 반대하는 예수의 평화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가톨릭의 성전(聖戰)사상의 계통을 그대로 전해 받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시대에 평화를 표방하고 나선 재세례파(Anabaptists)는 가톨릭과 신교(新敎)의 양편으로부터 아주 가혹한 박해를 받고 거의 전멸하였으나 그 일부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침례교를 만들었습니다. 청교도 혁명 때 올리버 크롬웰의 군대 안에는 그들이 많이 끼어 있었습니다. 재세례파 에 유사한 철저한 평화주의 교파로 메노나이트가 생기고 또 17세기 영국에서는 퀘이커교가 일어났습니다. 퀘이커교도는 대체로 19세기 이래 절대적 평화주의가 그 종파의 주요한 특성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 평화운동은 일부 극단적 소수파에 머물지 않고 도덕적 철학적 양심에 근거한 세속적 범위까지 넓혀졌습니다. 1947년의 노벨 평화상이 퀘이커파의 아메리칸 프렌드(American Friends)봉사단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 한 것입니다. 20세기에는 인류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도 폭력이 판을 치는 시기였습니다. 양차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은 인적 물적 정신적 도덕적 파괴에 있어서 사상(史上) 최대의 것임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21세기 역시 세계는 지금 테러와의 전쟁과 세계 곳곳에서 무서운 폭탄과 총탄의 테러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예수의 평화가 대 로마제국의 무력에 대항하여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가정에 불과 하였습니다. 폭력이 폭력을 이길 수 없고 오직 평화만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의 시대나 현대는 매우 유사한 환경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거기에는 평화, 비폭력, 반전의 길, 이외에는 인류와 문명의 구원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5. 평화를 위한 참회- 통일의 신학-

19882월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NCK)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평화적 방법에 의한 민족통일의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한반도의 통일자료로 정치계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 걸쳐 크게 영향력을 발휘했던 뜻 깊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평화의 정신은 그 객관적 기준이 예수의 평화운동에 있고, 그 실천적 기준은 평화운동의 투쟁의 역사에 있습니다. 평화의 참 의미와 깊은 이해와 그 종교적 신념화가 있어야 평화적 방법에 의한 민족통일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남북 상호간은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고백부터 시작하고 남북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증진을 위하여, 민족자주성의 실현을 위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선교 제1순위로 하여 교회와 민족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고 정진하여야 합니다. 해방분단의 72주년을 맞는 때에 한반도의 핵무기배치와 긴장의 슬픔을 상기하며 생각해 본 말씀입니다.

한반도 남북에 살고 있는 수백만 한국인들은 전쟁과 분단의 상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분단으로 인한 전쟁의 흉터와 상혼은 한국인의 한 맺힌 가슴속에 새겨져 집단무의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우리자신들, 그리고 남북관계가 파괴되었음을 인식하며 부름 받은 교회는 먼저 죄책고백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구조악인 한반도분단을 막지 못한 책임과 이 분단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해 왔고, 분단현실 속에 안주한 죄책을 민족 앞에 고백하는 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통일신학을 위하여, 군사주의는 분단신학이 창조해낸 신학적 우상입니다. 분단신학은 가장근본주의적인 군사주의를 정당화합니다. 분단되어 있는 나라의 군사주의는 강대국 군사주의의 하부구조에 불과합니다. 일국적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오늘날의 군사주의는 분열된 세계 속에서 평화의 이름으로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하고, 민족경제발전을 착취하고, 민족독립의 보전을 파괴하며, 평화 정의로 분열을 극복하려 하는 근본적인 인간의 열망을 위태롭게 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지난해 2016727일에 25년 만에 비상시국 대책회의를 발족하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는 파괴되고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기까지 복음의 사회적 책무에 헌신하지 못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를 뼈아프게 뉘우치고 회개한다.고 했습니다.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이 아닌 끝없는 증오와 대결로 치닫게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무사안일의 평화주의에서 해방 받아야 하며 예수님의 평화의 진면목에서 만나고 새롭게 출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현존으로서 십자가의 실재는 성서적 신앙에 따르면 고난입니다. 화해의 십자가는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적대적인 세계 안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에 핵의 힘과 강대국들의 군사적 폭력을 의지함으로써 하나님께 대적하는 죄를 범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핵우산을 신뢰하고 있는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깊은 참회의 마음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면서 우리는 화해의 십자가를 쳐다보아야 합니다.

이제 아토스 성산(聖山)의 한 은둔 수도승의 <예수기도>를 드리므로 본 메시지를 마칠까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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