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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1) 하이델베르크와 보름스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7-11-12 (일) 22:07 7일전 62  
여행 9일째인 8월 28일(월) 본격적인 독일 일정을 시작하였다. 칼수르에에서 약 1시간 가량 이동하여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크('신성한 산'이라는 뜻)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젊은 가이드 공선생이 아주 설명을 잘 한다.

네카 강가에 자리한 하이델베르크는 인구 15만 정도이며 30년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가 1693년 프랑스인의 침략으로 거의 파괴되고 남은 건물은 성령교회(1400~36) · 마르슈탈(1590, 옛날의 왕실 마구간) · 기사회관(1592)뿐이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대학 도시로 유명하다. 1386년 설립된 독일 최초의 대학교인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또한 웅장한 하이델베르크 성,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지, 그림처럼 예쁜 별장들이 늘어선 네카어 강변 등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하이델베르크는 고전 영화인 〈황태자의 첫사랑〉에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칼스버그의 황태자가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가면서 사랑이 시작되는데, 대학 도시의 낭만 넘치는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은 우리 기장으로서는 유명한 대학이다. 경동교회 채수일 목사, 한신대학 김윤규 박사, 강성영 교수, 전철 박사 등 쟁쟁한 분들이 이곳 출신이다. 그리고 1521. 4. 18 루터가 당대의 대 학자들과 하이델베르크 논쟁을 했던 토론광장도 있다.

대학과 고성, 시청과 성령교회 이 삼각구도가 확실한 하이델베르크에 온 것이다. 대학 뒤로 보이는 고성에 오른다. 그런데 산악열차의 원조인 열차를  타고 휘-익 오르니 좋으면서도 싱겁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하이델베르그의 고성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괴태가 다녀갔다는 흔적도 보인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네카강변 하이델베르그 시내가 아름답게 보인다. 산 아래에서는 세속이 시작되었다. 시청과 함께 성령교회가 있는 바로 그 광장 앞에 우리 한국인이 운영하는 큰 가게가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쇼핑을 하지 않았는데 회중이 요청하여 쇼핑을 하였다. 양지는 얼른 칼 하나 사고 나는 성령교회를 찾아갔다. 이 교회는 하이델베르그 신앙요리문답이 발표된 유명한 교회이다. 마침 후배 진봉준 목사를 만나 설명을 들으며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강단, 소원촛불대, 지역 문화를 이끌어가는 교회라는 설명을 들었다.

네카강에 가면 올드브리지(구교)가 있는데 아름다워서 유명하고 그 다리를 건너가면 3.2km의 철학자(칸트, 괴테 등)의 길이 있다는데 쇼핑으로 시간을 날려버린 셈이다.


이번에는 약 40여 분 달려서 보름스로 이동하였다.

인구 81,109(2006년), 라인강(江) 좌안에 면하여 있는 하항이며 만하임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도시로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켈트족(族)의 정착지로서 보르베토마구스(Borbetomagus)라고 하였다. 보름스 자체는 일찍부터 주교의 지배에서 벗어나 1156년 제국 자유도시가 되었다. 특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황제 카를 5세 앞에서 자기의 신념을 표명한 1521년의 제국의회를 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루어와 얀 후스, 위클리프의 종교개혁 기념비가 있는 곳을 찾아 둘러보고 이번에는 프랑크프르트로 이동하였다.




성령교회가 우뚝 서 있고 다리가 보인다.





전형적인 독일마을


양완식.이현주 집사 부부. 뒤 건물은 H대학, 그 뒤가 고성


EU국가 성안의 바닥은 다 이렇대요.


열차를 타고


괴테의 발자취


하이델베르크성


프리드리시 건물


종교전쟁과 낙뢰와 왕의 계승전쟁의 상흔


해시계 보이시나요?





세계 제1의 와인통과 지킴이


세상에나 포도주통이 이렇게 크다니, 약 22만 리터


내려다 본 시내, 옛다리가 보이네요.


기념사진도 찍고





내려오면서 성을 한번 더





창에 십자가?


성령교회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발표


들어가볼까요,.


설교대가 높아요.


강단


촛대


렘프


기도문


소원문


진봉준 이윤재 이상호 유정기 목사


광장에서


헤라클레스?


이 다리가 올드브리지


여기서부터는 보름스돔. 대성당


이 대성전 뒤에


루터가 제국회의에 섰던 자리가 나옵니다.


최후의 증언 : "내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붙잡혀있는 한 나는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되돌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여 구원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


루터가 섰던 자리에


여기는 종교개혁기념비


루터


황제앞에 서 있는 모습


요한 후스(체코)


사반아놀라


발두스


요한 위클리프


필립 용맹한 영주


선제후 작센 프리드리히(현명한)


요한 러히실리 학자 - 멜랑히톤 삼촌, 비텐베르큳 신생대학에 초빙받은 세계언어의 대가로 나이가 들어서 조카를 추천한다.








저항하는 도시

















시청


이곳 교회들의 대문에는 이렇게 역사를 주조하는 게 특징이군요. 문맹시대에 알릴 수 있는 방법


성삼위 루터교회에서


버스인가?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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