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배당과 공원의 경계가 모호해서
예배당 근처의 공원 나무들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반갑지 않은 ‘잡초’처럼
어느새 우거져버리는 ‘잡목 지대’를 지난봄에 대충 전지를 해놓았더니
시청 관리자가 와서 정식으로
가냘픈 두 나무만 덩그러니 남겨 놓았더군요.
무슨 나무이길래...
꽃 피는 것을 보니
그 조경사가 마치 스팸메일함에서 반가운 편지를 건져낸 느낌이 납니다.
2.
그 반가운 ‘편지’가 공교롭게도
백일홍나무와 무궁화이군요.
왁자지껄했던 봄의 꽃 잔치가
“찬란한 슬픔”(김영랑)으로 페이드아웃 된 후에
사람들로 하여금 꽃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가을까지 버텨내는 꽃나무들이기 때문입니다.
무궁화 꽃 하나하나는 새벽에 펴서 저녁에 떨어진다지요.
하나하나가 이어달리기로 가을까지 가는 것입니다.
백일홍나무도 그렇다네요.
도종환 시인의 <백일홍>입니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3.
백일홍나무처럼 무궁화처럼
교회의 역사도 그렇게 이어집니다.
단독 질주가 아니라 이어달리기이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다녔던 교회에는 다 백일홍나무가 있었네요.
피어서 열흘을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 가는 걸 알면서
온 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 도종환, 「목백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