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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8-10-26 (금) 10:40 18일전 91  

종교개혁 500주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 베드로후서 1: 1- 11

2018-10- 28, 11-04

 

1. 종교의 시비

종교(Religion)의 정의는 쉽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초인간,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믿고 그것을 체계화하고 교의나 예전과 제도 등을 복합한 단체나 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종교는 절대적인 위력을 가지며, 종교인이라면 그들의 믿는 계율에 충성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상이나 정치체제나 이념도 절대적인 확신과 추종의 경우 종교성을 띤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양심과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고 인륜과 인간에게 고루 유익한 것인가 등을 검토해야 합니다.

흔히 한 종교 안에서 그 지도자나 책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 직임이 높으면 더 종교적이고 미더우며 권위 있게 보이려 합니다. 종교도 세상 못지않게 더 많고 크고 높을수록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언뜻 보기엔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이런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종교인은 착하고 비 종교인은 나쁘다고 이분(二分)()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나 이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도자들의 오만과 욕망으로 얼마나 많은 과오를 범했는가를 보게 합니다. 가톨릭의 경우 교황과 죄악,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면죄부, 종교재판, 타민족과 타 종교 말살정책 등의 죄악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개신교의 30년 전쟁, 칼빈주의와 청교도들의 공과(功過) 또한 작지 않습니다. 인간의 탐욕이나 죄악이 종교나 신(), ()의 이름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한다면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영어의 완고한 사람(bigot)하나님에 의하여(by God)의 준말이라는 것은 경건한 종교인의 언동이 때로 이 세상에서 오만하고 완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늘 자비하고 관대하던 예수가 유대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꾸중하며 그토록 무섭게 성토한 것도 종교와 하나님의 이름을 팔며 외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자신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위선(僞善)을 그저 볼 수만 없었습니다. 외모로만 거룩하며 잔치의 상석을 탐하며 스승소리는 좋아하나 섬길 줄을 모르는 저들이었습니다. 정말 무섭고 소름 끼칠 만큼 예수는 혹독하게 종교지도자들을 힐난하며 질책했습니다. 저들에게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죄인들이라며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23:35)고 선언합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종교개혁 500주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2. 개혁의 산고(産苦)

종교는 지고(至高) 지선(至善)한 것이요, 특히 유대. 기독교는 야훼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려는 경륜가운데 섭리되었다고 신구약성서는 가르칩니다. 랍비나 서기관, 신부나 사제, 목사나 감독들까지도 지도자로 세워 하나님은 저들을 통해 그의 구원의 뜻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중세기 로마 가톨릭교회로 발전되고 그 세력이 확장되면서, 교회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군림하는 권세로 변하고, 나아가 심히 타락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의 구원의 섭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의로운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를 개혁하고 새로운 형태의 그리스도교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세상의 권세까지 장악한 중세교회 속에서 그 개혁이란 쉬운 일이 아니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희생과 순교까지 초래하는 고통스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세교회의 도를 넘는 타락 속에서 위클립이나 후스, 제롬이나 투터 같은 진실하고 과감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새롭게 이끌어 갈 종교개혁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의 철학교수였던 위클립(John Wycliff, 1320-1384)의 신앙과 행실의 기준은 교황이 만든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며, 이 성경은 누구나 자기나라말로 읽고 해석할 권리가 있다며 라틴어 성경 벌게이트(Vulgates)를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했습니다(1382-1384). 교회의 머리도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요, 교황은 택함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성례전의 떡과 포도주는 사제가 기도하는 순간 예수의 참 살과 피로 된다는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화형 당할 위험을 알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후배들에게 외쳤습니다.

그대들은 순교자의 면류관을 왜 멀리 하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 교만한 주교들에게 전하라. 그리하면 틀림없이 순교 당할 것이다. 살기 위하여 침묵을 지키려는 것인가? 안될 말이다. 탄압이 무서운가? 나는 그것을 기다린다.

결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축출됐으나 이후 교황 권의 부패를 비판하는 글을 쓰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가 죽은 지 44년 후인 1428년에 그가 주장하던 반가톨릭의 주장들을 죄목으로 그의 무덤을 파헤치고 대중들 앞에서 그의 유골의 화형식을 가졌습니다.

위클립의 영향을 받은 존 후스(John Huss, 1369-1415)는 그의 저서를 읽고 감화를 받아 신학적인 그의 제자가 되었고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요, 교회법은 신약성서이며, 교회생활은 그리스도의 삶과 같은 청빈이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보헤미아의 출신으로 프라하대학에서 공부하고 모교에서 가르치며 총장까지 되었습니다. 또한 가톨릭교의 사제로서 프라하의 베들레헴성당에서 목회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미사는 당대의 관행을 벗어나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진행 했습니다. 성서강독도 마찬가지였고, 그는 성서를 체코어로 번역하여 체코어법을 확립했습니다. 후스는 성서만을 권위로 인정하며 교황 무오설을 부정하고 면죄부 판매나 성직매매를 비판했습니다.

후스의 과감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비판은 1414년 콘스탄티노플공회에 후스를 소환하며 참석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시지스문드(Sigismund)황제가 신변보증서를 보내며 교황의 보증까지 첨부했습니다. 그러나 회의 도중 그들은 후스를 체포감금 했습니다.

그때 한 기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후스를 체포한 교황 요한 23세가 회의에서 그의 성직매매.간음.살인 사건들이 문제가 되자 그는 회의 도중에 도망 나왔습니다. 그러나 체포되어 후스가 감금된 같은 감옥에서 상면하게 되었으니 교황의 꼴이 어찌 되었겠습니까? 여하튼 후스에게 화형언도가 내려지고 이제라도 그 주장을 취소하면 화형을 면케 하겠다고 회유했으나 그는 군중들에게 외쳤습니다.

내 주장을 취소하면 내가 무슨 낯으로 하늘을 바라보리오. 또 그 동안 내가 전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을 무슨 낯으로 바라보리오. 나는 그들의 구원을 화형 당하는 내 자신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오.”

그의 모자에는 대 이단자라 쓰였고, 교황청의 재판관 추기경들은 저주를 후스에게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후스는 계속하여 주 예수여, 이 종은 더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당신을 위하여 치욕의 관을 쓰나이다. 나를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주 예수여, 당신이 내 영혼을 구원했으니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하면서 화형 장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찬송을 숨이 그치는 순간까지 외쳤습니다. 그 때 후스의 나이 43세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후스 지지자들과 신성로마제국 군대 사이의 15년에 걸친 후스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프라하의 제롬(Jerom of Prague, 1370-1416) 역시 위클립, 후스의 뒤를 이어 과감하게 순교를 감당했습니다.

이와 같은 개혁의 산고를 거쳐서 시대의 변화와 종교개혁자들의 등장으로 16세기의 종교개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15171031일 정오에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대학 교회정문에 붙이며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하나, 실은 위클립 이후 후스와 그 밖의 르네상스의 영향과 함께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루터의 경우는 그도 후스 같이 화형을 면치 못할 입장이었으나, 잭슨 선제후 현자 프리드리히는 루터를 바르트부르크 성에 8개월 동안 지내며 전례개혁, 성서번역 등을 하였는데 이는 종교개혁을 성사로 이끈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3.루터의, 복음의 자유 영성과 신적 성품에 참여

21세기를 가리켜 성령의 새로운 시대 또는 영성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심오한 영성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사상적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와 초대교회 교부들의 깊은 경건과 영적 통찰, 그리고 어거스틴을 통해 내려오는 하나님과 영혼의 만남을 붕괴되어가는 중세의 말엽에 더 폭넓은 통찰로 읽어내고, 교회의 새로운 운동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데카르트 이후 정통주의나 19세기의 자유주의신학 안에서 지나치게 교리화 되고 합리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한 20세기 초엽의 변증법적 신학의 대변자였던 칼 바르트 역시 자신의 신학과 사상을 종교개혁의 원리에 두고 있었지만, 쉴라이에르마허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초대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내려오는 영적 체험의 전통을 충분히 되살려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82)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영성이 다시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루터의 의인론인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개신교들은 루터의 의인론을 가톨릭의 공적 주의나 아니면 복음을 떠나버린 율법 정도로 파악해 왔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의인론은 초대교회 교부들을 통해 내려오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인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에 대한 종교개혁적인 응답이요, 표현이었음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그의 논문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선행과 영적 노력을 통해 이웃들에게 하나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데 있음을 역설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의 목적은 인간을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접붙임으로써, 그의 신()적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5:31)에 주목하면서 루터는 클라브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의 신비사상인 영적 훈련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루터의 그리스도론의 핵심인 두 가지 속성의 구체적 교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이 고통 받았음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와 피조물인 인간의 연합을 강하게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루터의 유명한 표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의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는 완전한 종입니다.

갈라디아서 주석(1535)에서 루터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과 동시에 신비한 선물로 말하면서(2:20)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안에 실제로 임재 한다고 역설합니다. 루터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그의 성령이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완전히 실제적으로 공유합니다. 루터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에게 자신을 수여하십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임재하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강하게 내포합니다.

 

4.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

교회교부들의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하신 말씀인 아들 안에서 그리고 아들을 통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초대교회 교부들의 주장처럼 루터에게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근거와 원형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다시 영적으로 사건화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사역은 필수적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존재를 비우게 하고(self-emptying) ()로 만들어 버리며 영적 시련을 겪게 합니다. 더는 역사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신비의 그리스도(mystical Christ)가 신자들의 영혼 안에 다시 成肉身(성육신) 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루터가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dt)와 요한 타울러(Johann Tauer)를 통해 전개되었던 독일의 신비주의사상을 그의 의인론의 영적 측면에 심도 있게 수용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신비한 그리스도의 은혜의 왕국은 우주 안에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창조의 영성입니다. 루터에게 신앙이란 신비의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고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영적 훈련, 금식, 봉사 등 다양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책임성으로 매우 소중하게 받아들여집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모임이나 회중들의 도덕적인 클럽이 아니라, 말씀과 성례전적 신비를 통해 종말론적으로, 세상 끝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신비를 말씀과 성만찬의 예배를 통해 재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를 나누는 자들이 따라서 세상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서 보편적인 만인 사제 직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의 사회적 참여와 예언자적 봉사와 구분되지 않습니다.

루터의 영성을 표현하면서 신학자들 간의 오고 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세 때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사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한 걸요. 하나님도 그걸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은사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 하나님의 사람이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나에게 치유의 은사를 주십시오. 나를 통해서 페스트로 죽어가는 많은 병자들이 치유되길 원합니다. 나에게 평화와 위로의 은사를 주십시오. 가난과 질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늘의 위로와 소망을 갖 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잠시 동안 말을 멈추고 있었습니다. , 그 은사를 나의 그림자에게 내려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해 주십시오. 천사는 매우 흡족해서 하나님의 사람의 그림자에 하늘의 신비한 은사를 내려주고 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그림자가 스치는 곳에 많은 병자가 치유를 받았고, 절망가운데 사는 민중들이 하늘의 위로를 얻었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그런 놀라운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평소와 다름없이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나누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이란 무엇일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나를 비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option for the poor) 스스로 가난함과 영적 청빈함을 선택하는 자들(option to be poor)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 아닐까? 여기에 신비의 그리스도가 임재 한다면, 이영성의 심연을 몸으로 체험한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잃은 채 표류하는 한국교회의 어둠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남겨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닐까요?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92-93)

 

5. 루터의 94개 논제 해설

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 종교개혁을 향해 급진적인 질문을 던진 신학자들의 94개 논제가 전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94개 논제를 환영했고,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는 94개 논제를 격찬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94개 논제는 무엇입니까? 논제작성을 위한 5년간의 위크숍 통해 각 분야의 세계적 신학자들이 관여했습니다. 이 운동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협력기구인 세계루터교연맹(LWF)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대회를 발의하면서 WCC가 협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한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유산이 우리시대에 비판적인 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94개 논제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종교개혁의 급진(急進)는 과거인 종교개혁의 뿌리에 내재적 비판을 시도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운동으로 한층 다가 설 것입니다.

이번에 논제를 94개로 정리한 것은, 우선 루터의 95개 논제에 대한 겸손의 표시입니다. 루터의 95개 논제에 숫자를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기독교사상> 201610월호) 94개 논제는 해방과 자유, 하나님과 재물의 관계, 십자가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새것이 되었도다, 평화, 피차 이웃의 짐을 나누어지는 일, 성령의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3:8)등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각 항목에서 새 시대를 전망하게 합니다.

 

6. 교황도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 갔나

원래 유사종교는 미래에 막연한 불안감을 온상으로 삼아 번창합니다. 해방이후 줄곧 안보 불안심리에 편승해 이 땅에서 승승장구해 온 유사종교 세력은 한반도에 평화 물결이 일면서 영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찾은 활로가 바로 대북제재입니다. 대북제재를 주장하며 추종하는 신자들의 눈에는 프라치스코 교황의 방북계획도 못마땅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들은 교황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이나 평화의 사도역할, 미국-큐바의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 경험 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대북제재 추종신자들은 지금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평양방문제안을 혼쾌히 수락한 교황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심정일 것입니다. 교황의 방북이 전 가톨릭신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가능성도 있다고 미리 딴죽을 걸고 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입니다. 교황이 남미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그들에게는 의구심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개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황마저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갔다!’ 이 한국교회 광신도들을 어찌할 것인가 (한겨레, 2018, 10,23).

진정한 개혁과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가난한 이들의 벗평화의 사도로 살았던 그 삶을 본받기 위하여 그의 평화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가 한반도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7. 성경본문의 해설

베드로후서는 신앙적으로 위기에 빠져있는 그리스도인을 구출하는 영적 지식이 담뿍 담겨 있는 알찬 서신입니다. 이 서신에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가득 차 있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려는 자들을 위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공동번역성서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여 라는 말을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되었습니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은 하나님의 성품과 의지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이신 역사적 사건입니다. 또 사도들의 교훈의 중심은 이 예수 그리스도와 내적으로 영적으로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하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나눔이란, 하나님의 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짐입니다. 곧 그의 도덕적 품성, 그의 거룩한 목적, 그의 구원하는 사랑, 그의 새롭게 하는 빛, 그의 공정에 대한 관심, 그의 무한한 연민, 그의 순결한 정의, 그의 승리적이요 우주적인 섭리 속에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본성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상적 모델로 보다 내재적 능력으로 모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2:20). 사도들은 예수님과 사귀는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받고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로 즐거워 하였습니다(벧전4:13). 그리스도의 나타날 영광에 참여 할 자인 것입니다(벧전5: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졌으니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고난당하고, 그와 함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미덕을 더하고, 미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교우끼리의 사랑을, 교우끼리의 사랑에 만민에 대한 사랑을 더 하십시오(벧후1:5-8, 공동번역) 이상의 일곱 개의 덕의 구슬을 하나의 금줄에 꿴 것입니다. 일곱 개의 은사를 인격화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길은 품성의 도야, 우리 인격의 온전한 변화, 거기 신앙의 참된 삶의 가치와 보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옛 그리스도의 위대한 정신과 얼을 닮은 인격자가 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접촉되고 동화되어 예수의 인격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성육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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