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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이 괜찮다는데 왜 니들이... (룻 1:1~5)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8-11-22 (목) 09:13 5년전 1667  

1.

 

어제부터 수요저녁예배에서 룻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부임한 지 만 14년이 되어가니

긴 세월동안

두어 번은 룻기를 본문으로 했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묵상을 우려내어

예배자들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매서운 겨울, 예배자들에게 룻기표털실 목도리 둘러주는 마음으로요.

 

대강의 신앙 교훈을 생각한 후 주보에 적은,

첫 설교 제목은 나오미 가정의 실패였습니다.

실패가 나왔으니 실패의 원인이 규명해야겠고

그 다음 실패의 책임을 물은 후

우리는 그런 일을 피하자가 제가 계획한 설교의 결론이 되겠습니다.

 

 

2.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문에서 예상치 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1:1~5에서 나오미 가정의 풍비박산, 즉 실패를 언급하고 있지만

본문은 이러한 언급조차 매우 절제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룻밤의 일을 3장 전체에서 상세히 다룬 것을 감안하면

1~5절에 해당하는 10년의 세월을

근무일지(日誌) 기록하듯이 간략히 서술하는 것은

무관심에 가깝습니다.

 

저에게는 이 점이

지난 10년 동안 겪은, 나오미 가정의 불행에 대해

나 룻기 본문은 더 이상의 분석을 거부한다!”는 강력한 암시로 보입니다.

마치 욥기의 세 친구가 빠진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이요.

혹은 요한복음 9장의 예수님처럼요.

 

고등학교 때 버스 통학을 했습니다.

승강장 몇 개를 지나면

어떤 여학생이 버스를 탔습니다.

요즘 AI 카메라에 자동 포착되듯

화상 흉터 비슷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얼굴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배려는

역설적으로 무관심한 척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의 무관심은

제가 쏠 수 있는 시선의 폭력을 차단하면서

귀하’(미스터 선샤인 대사)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는 암시의 일종이었지요.

 

살아남은 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자책이

1:19~21의 나오미에게 나타나는데

1:1~5에서 보이는 절제가

이러한 종류의 무관심이며

나오미 가정의 상처를 덮어주고

사람들의 구설수를 차단해주는 강력한 문학적 장치라는 생각입니다.

 

때로는 못 본 척, 지나가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옛날 연예인교회에서 연예인들이 성경공부를 할 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

의견이 구구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지켜보다가 구봉서 장로님이 한 마디 하지요.

 

서방(요셉)이 괜찮다는데 왜 니들이 시비냐?”

 

어떻게든

나오미 가정의 불행의 원인을 찾아

신앙 교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저에게 불현 듯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성경 본문이 괜찮다는데, 왜 나오미 가정에 대해 니들이 시비냐?”


[추신]

우리 교회 예배당을 베이스 캠프로 해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지역주민 모임 "에코맘"이

오늘 오후(23일) 교회 뜰에 있는 나무에

정말 "털실 목도리"를 해놓았네요.

어디 가로수에 한다고 만든 것인데

우리 예배당에서 '마수'했어요.

참...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목도리'가 아니라 '복대'인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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