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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박용래 (대전노회,대전교회,목사) 2018-11-30 (금) 05:34 17일전 106  

인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90:1~10

고속버스에 올라탄 한 청년이 옆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나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할머니, 올해 몇 살이시냐고요?” “, 주름살.”

할머니, 농담도 잘하시네요. 주민등록증은 있으세요?”

주민등록증은 없고 대신 골다공증은 있어. 호호호.”

그럼 건강은 어떠세요?” “, 유통기한이 벌써 지났어.”

미국에 한 댄스 교습소 강사로 춤을 가르치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춤을 가르치다가 잠시 쉬는 틈에 라디오를 듣게 되었는데 라디오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당신은 영원을 어디에서 보내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젊은 댄스 교습소 강사는 충격을 받습니다. “내가 이렇게 춤추고 가르치다가 영원을 어디에서 보내게 될까? 지옥일까 천국일까?”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민하다가 신학교 입학을 결심합니다. 목사가 되어,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큰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전도폭발교재를 만들어서 보급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이십니다. 그가 만든 전도폭발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당신이 오늘 밤에 죽는다면 천국에 가리란 확신이 있습니까?” “당신이 오늘밤에 이 세상을 떠난다면 천국에 가리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옆에 계신 분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다. “당신은 영원을 어디서 보내실 겁니까?”

하루살이가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나비와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해질녘이 되니 하루살이가 피곤해보였습니다. 나비가 말하기를 하루살이야, 너 피곤해 보이니 내일 만나서 놀자.” 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살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일이 뭐야? 내일이란 걸 난 몰라.”하고 대답했습니다.

나비는 설명을 해줬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다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면 깜깜한 밤이 돼. 밤이 지나서 다시 동쪽으로 해가 떠오르면 그게 바로 내일이야.” 라고 열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나비의 설명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날 나비는 하루살이를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루살이의 인생은 거기서 끝나버렸으니 말입니다.

나비가이제 누구하고 노나?” 심심하던 차에 하늘을 나는 제비가 보였습니다. 나비와 제비는 날마다 재미있게 잘 놀았습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었습니다. 추위가 시작될 즈음에 제비가 말합니다. “난 이제 더 이상 놀 수 없어. 나는 가야돼. 우리 내년에 만나서 또 놀자.”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나비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내년이 뭐야?”하고 물었더니 이젠 제비가 설명합니다. “,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오는 거야. 그게 내년이야.”

그런데 한 해만 사는 나비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해에 제비는 약속한 장소에서 나비를 볼 수 없었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삶이 바쁘고 피곤하기에 마치 하루살이가 내일을 모르듯이. 나비가 내년을 모르듯이 영원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이 무지한 가운데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 강의로 유명하셨던 연세대의 황수관 박사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강의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할머니들을 모아 놓고 강의를 하는데 여러분, 건강하게 삽시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해도 우리는 때가 되면 죽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좋은 곳에 가야합니다. 여러분,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도 저와 같이 좋은 곳에 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25년 전에 좋은 곳을 발견하여 잘 준비해 놓았는데,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으면 저처럼 좋은 곳에 갈 수 있습니다.” 라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역시 장로님답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웃음을 주시던 황수관 장로님은 더욱 오래 장수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그가 잘 준비한 영원한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시청자들도 아쉬워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은 영원한 삶에 비교하면 아주 짧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인생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인생이 돼야합니다.

전도서 3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영원을 준비하게 되어 있고, 영원을 사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심령을 더럽혀놓았기 때문에 영원에 대한 관심을 자꾸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먹고 살고 입는 데만 관심이 있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원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인생은 영원을 사모하는 인생이고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 인 것을 믿으

시기 바랍니다. 영원을 사모하고 영원을 잘 준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왜 영원을 사모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인생은 짧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 9,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9~10).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인생이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어린 청소년들의 관심은 언제 크나?’ 하는 것입니다. 미성년자이기에 들어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들어 갈 수 없는 것이 불만입니다. 빨리 커서 극장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중년이 지나면 세월이 너무 빨라서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살면서 느끼는 것은 시간이 참 빠를 뿐만 아니라 인생은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5절과, 6절을 읽겠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시편 90:5~6). 인생은 참 짧기만 합니다. 또 아침에 돋는 풀과 같습니다. 아침에 풀이 돋아서 저녁에 사그라지는 풀과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그처럼 짧습니다.

일장춘몽이란 말이 있습니다. 점심 먹고 졸려서 자기도 모르게 잠깐 잠들었다 깨고 나니 어린아이가 흰 머리 성성한 어른으로 자라있더라는 얘기입니다. 인생은 너무 너무 짧은 것입니다. 영원 앞에서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말도 아껴야 합니다. 영원 앞에서 한 마디의 말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20년 후에는 영국 자산의 60%를 여성들이 다 가지게 된다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기가 쉽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8년에서 15년까지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부인들은 남편이 물려준 유산을 다 물려받고, 연금 받다 죽으면 그 연금도 부인들에게로 다 돌아갑니다. 그래서 부인들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경영도 하고 회사의 사장도 되서 여성들에게 자산의 60%가 넘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짧은데 남자들의 인생은 더 짧습니다. 남신도들은 더 시간을 아끼셔야 합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을 사모하고 잘 준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왜 영원을 사모해야 할까요?

인생은 빠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인생이 얼마나 빠르냐하면 날아갈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기를 소년의 시간은 기어가는 시간이고, 젊은이의 시간은 걸어가는 시간이고, 장년의 시간은 달려가는 시간이고, 노년의 시간은 날아가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빠른데 세월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고민입니다.

유행가 가사에도 괜찮은 것이 있습니다. 서유석씨가 지은 가는 세월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료라고 했습니다. 꼭 찬송가 가사 같아요.

가는 세월을 붙잡을 사람이 없습니다. 인생은 빠르기만 합니다. 빠르고 짧은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을 사모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쓸데없는 것들에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와있는 줄도 모르고 헛되고 부끄러운 일에 사로잡혀 안타깝게 살아갑니다. 영원을, 영원한 천국을 잘 준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왜 영원을 사모해야 할까요?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90:10) 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수고와 슬픔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생을고해라고 부릅니다. “고통의 바다라는 뜻입니다.

479절에 보니, 야곱이 바로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입니다. 내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그러기에 영원을 사모해야 합니다.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이 최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왜 영원을 사모해야 할까요?

 

  티끌로 돌아갈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90:3). 티끌로 돌아갈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인간은 모두가 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인생입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는데 흙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옆의 분들에게 얘기해 주십시오. “당신도 흙으로 돌아갈 인생입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에 종말의 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은 무엇에 소망을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영원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39:6~7) 할렐루야! 헛된 일로 소란하지 말게 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 세 사람의 친구가 오랫동안 돈을 모아 일본 동경에 놀러갔답니다. 동경에 가니 너무 좋아서 이것저것 구경을 했습니다. 호텔 30층에 방을 잡아서 야경을 보려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가동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상 30층에 호텔방을 잡았는데. 큰 일 났습니다. 호텔에서는 로비에 간이침대를 마련해 줄 테니 하룻밤을 지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해외에 나와서 호텔로비에서 잘 수는 없다싶어 걸어서 올라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세 친구는 그냥 올라가면 지루할 테니 각각 10층씩 나누어서 올라가면서 돌아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처음 친구는 10층까지 올라가면서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동원해서 귀신 이야기까지 동원해서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는 11층에서 20층까지 올라가면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즐거웠던 일, 행복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 21층에서 30층을 올라가면서 마지막 친구는 인생의 힘들었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병들었던 일, 사업에 실패했던 일들, 대학입시에 떨어져서 재수했던 일 등을 이야기하며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30층에 도착했습니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몸은 얼마나 피곤한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그런데 호텔방문에 선 친구들은 또 큰일이 났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 열쇠가 없습니다. 프런트에 맡긴 열쇠를 안가지고 올라온 것입니다. 고생 고생하면서 30층까지 올라왔는데 방문을 열 수 없어 비참한 밤을 보냈답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렵게 70, 80세의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자식들을 입히고 먹이기 위해서 고생하며,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셨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질병이 찾아와서 투병 생활도 했습니다. 참 인내하면서 살았습니다. 시부모님들 모시느라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종말의 때에 이르게 되었는데 영원한 문을 열어야할 키가 준비되지 못했다면 열어야 할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겠습니까? 여러분, 영원을 여는 키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키요 복음의 키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영원의 문을 여는 키는 믿음의 키, 복음의 키 밖에 없습니다. 어떤 성도는 믿음의 키는 있는데 녹이 슬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면 키가 녹슬어 영원한 천국의 문도 열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키가 사용할 수 없도록 녹슬어 있는 성도들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믿음으로 영원을 준비해야 합니다. 천국을 사모하며 잘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좋은 집에 살았느냐, 좋은 차를 탔느냐, 좋은 양복을 입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장로냐 권사냐 집사냐 묻지 아니 하십니다. 원로냐 신참이냐 묻지 아니하십니다. 믿음의 키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나라의 왕이 광대들을 좋아해서 광대들을 불러 얘기도 듣고 춤과 노래를 시켰는데 한 광대가 아주 바보행세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그 광대에게 너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바보다.” 라고 말하고서는 자기가 가진 지팡이를 주었습니다.

그리곤 너보다 더 바보를 만나면 이 지팡이를 주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왕이 병들어 죽음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광대가 찾아왔습니다.

왕이시여, 이제 가실 때가 되었군요.” 그래. 이제 내가 병들어 죽게 되었네.

그러면 갈 곳은 준비가 되셨나요?” “아니야. 갈 곳을 준비 못 했어. 어디로 가야할지 나도 모르겠어.”라고 왕이 대답했습니다. 그 때 광대가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군요.”하고는 그에게 지팡이를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원을 어디에서 보내시겠습니까? 정말 인생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영원 문턱에 어디쯤 서있습니까?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겸손하게 영원을 사모하며 잘 준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3.8.4.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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