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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요르단 : 느보산 마케루스 아르논골짜기 페트라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9-03-14 (목) 20:48 2개월전 229  

성지순례 - 요르단


2월 27일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5시 기상, 6시 식사, 6:50 출발이다. 모세가 숨을 거둔 느보산과 세례요한의 순교지로 보는 마케루스를 거쳐서 멀리 요르단의 국립공원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트라까지 다녀오는 500km 일정이다.


한국 가이드 최현진 목사가 요르단 통으로 안내까지 맡았다. 요르단은 요단강· 암몬· 모압 등 구약 및 신약성서에 나오는 장소가 많은 나라다. 수도는 암만이며 화폐는 요르단 디나르이다. 입헌군주국이며, 최고 행정권은 왕에게 있는 왕정국가이며 인구는 약 800만이다.


왕의 길로 한참을 가다가 편도 1차선으로 들어서 조금 더 가니 느보산이 나왔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출애굽한 지 40년 만에 이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본 후 거기서 120세로 죽었다(민 27:12~14, 신 34:1~8). 이 산은 니바(높이 835m)와 무카야트(790m), 세 번째로 710m의 시야가로 모세가 여기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좋은 날에는 사해와 쿰란동굴, 여리고와 요단강, 유대사막과 예루살렘 동부 올리브산 등을 훤히 바라다볼 수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프란체스코회 성서연구소에서는 1933년부터 1976년에 걸쳐 시야가를 발굴, 많은 건축물을 발굴해냈다. 모세의 죽음을 기념하여 4세기에 세운 소성당과 제의방과 세례당, 장례당을 두루 갖춘 대성당이 발굴되었다. 이 대성당은 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제의방에서는 시골 풍경과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가 발굴되었다. 이 모자이크는 531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상 두산백과 참조)


조금 더 가서(암만에서 67km) 높은 지대로 올라가보니 세례 요한의 순교지 마케루스가 나왔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따르면, 이스라엘 고대 하스모니안 왕조 알렉산더 안네우스가 험준하고 높은 천연 지형(해발 700m)에 마케루스 요새를 건설했다(주전 90년경). 그 후 헤롯 대왕(BC 37~AD 4)이 재건하여 그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했다.


헤롯 대왕은 늘 신변 위협을 걱정했다. 그래서 베들레헴의 헤로디움을 비롯한 여러 곳에 왕위 찬탈자들의 음모 등 유사시 피신할 요새이자 별궁을 건축했다. 헤롯 대왕은 마케루스 요새에 성채를 쌓고 망대를 세워 요새화한 다음, 성벽 안 중앙에 화려한 건물과 웅장한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헤롯 대왕이 주전 4년 여리고에서 죽자 그의 아들 헤롯 안디바(주전 3년~주후 39년)가 이 요새를 물려받았다. 마케루스 요새로 올라가는 길에 세례요한이 2년간 갇혀 있었다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헤롯 안디바는 “세례 요한은 헤롯을 찾아와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헤롯을 비판했고, 헤롯왕은 사람을 보내어 세례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막 6:17~18). 이곳에서 세례 요한을 참수했다. 시간관계로 멀리서 전망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암몬산지와 모압산지의 경계인 아르논 골짜기로 이동하였다. 요르단의 그랜드 캐년이라더니 장관이다. 가이드의 아량으로 커피도 한 잔 먹었다. 멀리 사해가 보이고 댐도 보인다. 우기에 물을 저장해야 건기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동중 작은 읍에서 호베스라는 빵과 몇 가지 과일을 사왔다. 우리 얼굴보다도 훨씬 큰 빵 7개가 우리돈 1,500원이라고 한다. 과일값도 싸다. 빵맛도 좋아 여기다 초막 셋을 지어야 할까보다.


조금 더 가니 페트라가 나온다.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한 후 생활하였다.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연 강수량이 10mm에 불과하다니 비가 오지 않음은 당연하다. 물을 받아 저장했던 흔적이 많다.


이곳은 BC 1400~1200년 경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에 자리했으며, 구약에서는 '에돔의 셀라'라고 하였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하고, 셀라도 히브리어로 '바위'를 뜻하니 페트라는 바위의 도시이다. 또한 이곳은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모세와 그 추종자들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BC 7세기 무렵 유목생활을 하던 나바테아인이 페트라를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나바테 문명이 세워졌다. 106년에는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땅을 빼앗겼다가, 하드리아누스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하드리아누스의 페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12년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잊혀진 페트라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가 유럽에 알려졌다.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페트라를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1989)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입구에서 약 4km를 천천히 걸으며 사진도 찍고 불가사의한 경관을 즐겼다. 힘든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만족스러워한다. 이제 걸어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손자 현동이가 발이 아프다고 투정이다. 말과 마차를 타보고 싶어서라는 걸 눈치챘다. 가이드 목사를 통해 2명이 정원인데 어린이가 있다고 일가족 4명을 태우기로 하고 60$에 흥정을 하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내는 안타고 걸어 나간다. 같이 타자 사정을 해도 타지 않아 우리 셋이 즐겼다. 내리니까 팁을 요구한다. 그래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이니 인심을 쓰자. 손자녀를 위해 7만원을 쓰고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우린 아내의 스카프를 사가지고 환영식을 하였다.


이제 다시 먼 길을 돌아서 수도 암만을 향했다.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최목사가 고맙고, 쉬기도 하며 듣기도 하며 암만에 당도하니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느보산 입구에서


박물관


내부


박물관 입구 마당에 있는 모자이크

















놋뱀상, 먹구름이 비를 잔뜩 머금고 있지요.


모세가 선 자리에서 전망


성당에서


장례당





바닥에


모세기념교회


이번에는 마케루스 조망


저 멀리 사해가 보이고


저기 남아있는 기둥이 보이나요?





1500원에 한 보따리 주는 호베스빵


아르논골짜기(요르단의 그랜드 캐년) - 멀리 댐도 보이지요?





모압 평원(고원이랍니다.)


상인들


점심식사 한 휴게소 쇼핑센타





여기서부터 페트라








마차


수로











여기서는 한 장 담아야지요.








우리도 한 장


염소들


전체 조망


공연장


동굴과 상인들





요르단 마트체험 - 싼 것은 엄청 쌉니다.


야식으로 꿀맛을 즐기는 손자


가이드에게서 늦게 와서 첨가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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