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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순교자기념주일)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9-04-01 (월) 09:42 5년전 2090  

* 이 설교문은 총회 순교자기념주일자료집을 근거한 설교문인데 좋아서 나눕니다.

 

피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갈라디아서 2:20                                                                                      19. 3. 31(순교자기념주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제101회 총회는 매년 사순절 넷째주일을 순교자기념 주일로 제정하고 2017년부터 하기로 하였으니 세 번째인데 우리는 처음입니다. 일찍이 세계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1978년 인도 방갈로에서 순교자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자산”임을 천명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그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우리의 신앙성숙을 위한 이상적인 모델을 발견하는 행위로써 기독교의 고유하고 유의미한 전통임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순교자들과 순교신앙의 뿌리는 초대교회부터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사도 교부시대-아우구스티누스) 순교역사는 크게 ‘붉은 순교’와 ‘백색 순교’의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4~60절의 증언에 따르면 스데반 집사가 당시 대제사장과 유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했고 기독교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를 시작으로 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로마 황제와 관료들의 박해로 인해 수많은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거나 고문당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원인은 다양한 배경과 이유로 단순하게 설명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예배드린다는 이유로 많은 기독교인이 고문당하거나 처형되었습니다. 에른스트 다스만(Ernst Dassmann)의 주장에 따르면 초대교회 시기 어림잡아 6000~7000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렇게 신앙을 이유로 물리적으로 육체적 폭력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일을 역사가들은 ‘붉은 순교'(red martyrdom)라 부릅니다.


1. 피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놀랍게도! 성경에서 일관되게 증언하는 하나님은 피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삭 헌제 사건을 보시죠(창 22:1-18).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창 22:1)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창 22:2)을 번제물로 바치라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정말로 이삭의 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황급히 천사가 동원되고, 이삭을 대신해서 숫양이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속이 새까맣게 타버렸는지 어떤지는 무심하시면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 22:12) 하고,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한다.”(창 22:16)하며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흡족히 여긴 것이죠. 피의 제사 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만약’ 숫양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가정법으로 사건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의 피는 대지를 적셨을 겁니다. 모리아 산에서는 숫양이 이삭을 대신하긴 했지만, 피의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이 피의 제사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유월절 절기는 어린양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믿음의 근간(根幹)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 표적이 된 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대대로 지킬지니라.”(출 12:13-14) 어린 양의 희생은 모든 것의 맏이를 대신 한 것이죠.


하나님은 사람의 맏아들만이 아니라, 가축들의 초태생, 처음 익은 열매, 첫 추수를 바치라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 것을 ‘내 것’이라 하실까요? 왜 처음 것 받으시길 기뻐하실까요? 첫 태생의 의미는 생명을 잇는 처음 것입니다. 곧 모든 존재의 전부를 ‘내 것’이라 하시는 것이죠. 존재의 전부를 바치는 상징이 피 속에 담겨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중요한 제사가 있습니다. 속죄제입니다. 레위기에 자세하게 방법이 기록되었는데,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뿌리고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레 4:35) 했습니다. 이 역시 피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임을 증언합니다.


2. 피의 제물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고 뭍에 올랐을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한 것은, 유월절 희생양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사야의 예언인 ‘고난받는 종’으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사 53:47)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왜 십자가의 길을 향하셨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요 17:4)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기뻐한다’고 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피의 제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기 때문에 기뻐하신 것이죠. 이 일을 히브리서는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려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고 했습니다. 피의 제물이 된 예수님은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으로 아사셀 염소가 되어 고난을 받았습니다(히 13:12).


3. 순교의 피로 세워지고 자라는 교회


그리스도교는 기억의 종교입니다. 무엇을 기억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25에서 정말 중요한 말씀을 전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떼어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성만찬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피의 제물이 되신 십자가의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것이죠.


교회는 이 피의 제물이 되어 몸과 피를 나누어주어 죄인들의 생명이 되어 주신 십자가를 기억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나도 그처럼 사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후, 성만찬 공동체가 세상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핍박의 파도는 새싹이 큰 나무로 자라는 것을 시기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사울 앞에서 순교하고, 예루살렘 교회는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순교의 피를 헛되게 하지 않았죠. 흩어진 성도들이 들불처럼 복음을 전하고, 세상 구석구석에 주님의 몸이 섰습니다. 다시 시련의 폭풍우가 불어치고, 순교의 피가 땅 위에 뿌려졌습니다. 폭풍우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은 흩어진 그곳에 십자가의 복음을 마른 땅에 빠지지 않도록 박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피의 제사가 반복하여 드려지는 동안, 땅끝까지 복음은 전파되었습니다. 순교의 피가 뿌려지고 나서 ‘복음에 따라 사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행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부흥, 교회 성장,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꿩 잡는 것이 매”식으로 매진해 왔습니다. 그 열매가 무엇이던가요? 알곡이었나요? 쭉정이였나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이끌지 못하고, “교회 다니면 복 받는다”고 ‘복’에 매달려 살도록 기만했던 일은 얼마나 많습니까?


왜 이런 꼴이 되었습니까?

순교신앙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회개하라”는 복음의 첫 외침 앞에 서야 할 때입니다. 순교신앙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4. 순교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할 교회

 

그러면 순교신앙이란 어떤 것을 말할까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10) 하셨으니, 목숨을 끊어 “죽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 성도는 한 사람도 없게 되겠지요.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 속에서 순교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a).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는 것, 이것이 순교신앙이요,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피의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겠다고 나선 성도들, 성직자라면, 이제부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도록” 해야 합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는 방법대로 사는 신앙, 이것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과 같지 아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교인이 되기 전에, 먼저 바른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흠 없는 존재가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악의 유혹이요 어둠의 속삭임인 거짓과 기만과 속임과 탐욕 등 어둠에 속한 것들과 손잡지 않을 수 있어야합니다. 자신의 속사람이 지르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불평을 많이 합니다. 우리 교단을 볼 때도 걱정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걱정만하고, 화만 낸다고 잘못된 교회가 바뀔까요?


1960년대에 한국을 방문한 펄 벅 여사가 명동에 있는 청동다방에 들렸습니다. 이 다방에는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이 마련해 둔 사인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펄 벅이 남긴 글입니다.

“어둠을 불평하기보다는 단 한 자루의 촛불이라도 밝히는 것이 났다.”

 

어둠을 보고 나의 촛불 하나를 켜는 것,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만사의 성사(成事)에는 희생 없이 되는 일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는데 부모의 희생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학자가 배출되는데 스승의 헌신적인 가르침이 따릅니다. 나라를 국난에서 지키는데 순국의 희생이 있었으며,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하는 데에도 수많은 희생의 붉은 피 흘림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자그마한 가게를 지켜 가족의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일용할 양식을 얻는 데에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의 가장의 발품, 노력이라는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체득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는 길에 순교신앙이 꼭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순교신앙이 주님의 몸인 교회를 자라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피의 제사’를 원할까요?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성도들이 피의 제사를 지냈던 때는, 오히려 교회는 평화롭고 평안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존경도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비록 고난의 태풍 속에 있었지만, 확고부동한 소망과 믿음으로 신앙은 더욱 단단했고, 성결(聖潔)했으며 경건했고 맑았습니다. 분명하게 어두운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련도 없고, 탄압도 없는 오늘에는 타락한 교회, 교인들, 직분자들, 성직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죠. 순교신앙이 상실된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보다, 자기를 만족하게 하는 것으로 멈추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 가짜 믿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한국교회의 회생은 피의 제사 회복에 달려있습니다. 순교신앙이 살아나야 합니다. 오늘 누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닮아가면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단 한 자루의 촛불’이면 됩니다. 큰 불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비춰주기를 바라기 전에 자기를 비추는 등잔이 되어 모이면 큰 불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사는 교회’, 곧 세광교회 성도들입니다. 엄청난 등대가 되려말고 작은 등잔이 되어 자기를 비추면 우리가 되고 빛이 될 줄로 믿습니다. 부디 순교신앙, 내가 죽어 그리스도가 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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