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교회 차 속에서
소중한 농사 이야기, 많이 주어 듣고 있습니다.
오늘 화제는 단연코 냉해입니다.
이곳은 지금 거의 빙점입니다.
교인들 대화 속에서
“비료를 너무 가까이 놓아서 그렇다”는 말씀이 있으셔서
“그러면 왜 안 되나요?” 물어 보았더니
“비료가 짜요” 하십니다.
소금기를 염두에 두시고 ‘짜다’는 말을 쓰시는 것을 듣고
문득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하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비료에 소금기가 있듯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는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 ‘비료로서의 소금’을 염두에 두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소금기를 약하게 함유한 토양으로 만들어진 '소금 비료'를 상정하지 않으면
“소금이 그 맛을 잃는 것”과
“후에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힌다”는 말씀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소금기가 없는 토양을 비료로 사용하지 못하고
길에 버려버린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옛날에 땔감의 기능을 다 한, 연탄재를 길에다 버렸던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안아무개 시인이 무서워서 표현 정정합니다. “땔감의 기능을 비장하게 소진한 연탄재를”).
[신학자들은 이런 주석의 다른 근거로 “세상”의 의미가 “토양(땅)”이라는 점과 누가복음에서 ‘거름’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제시합니다. 마가복음 본문은 거름 이외에 다른 소금의 기능들도 언급하고 있다고 봐야하고요]
이런 해석이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이 글을 쓰고
관련 글 하나 링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