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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요 15:2)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9-09-25 (수) 12:18 4년전 1806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때는 어떤 이단의 속임수와 비슷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을 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는 순간, 진지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조사하기 마련이고 소립자가 관찰에 사용되는 빛에 의해 변화하듯이 이런 조사로 평소의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이러한 심리기제 때문에 신자들이 머뭇거리면 이단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큰일 났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지요. 확신에 이런 특성이 있으니 구원이 우리 감정의 깊이나 신념의 강도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직한 주님의 주도하심(initiative)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면 복음이고, 딴소리하면 이단처럼 됩니다.

 

비슷한 머뭇거림이 포도나무 비유(15: 1~17)를 묵상할 때도 나타납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버리”(2)신다고 하셨는데, 겸손하고 신실한 신자들은 자신의 열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늘 부족하지요. 그리고 이런 마음은 삐끗하면 제거되는 가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최근에 나온 요한복음에서 찰스 스윈돌은 제거해버리시고라고 번역된 아이로라는 헬라어가 들어 올리다로 번역될 수 있으며 오히려 이것이 기본 의미이고 더 적합한 번역인 듯하다고 말합니다. 2절은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의 초기 작업 즉 성장기에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강조한 것인데 전자는 포도나무를 잘라내는 일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번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훨씬 전에 브루스 윌킨슨(포도나무의 비밀) 역시 이러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들어 올리시고라는 말씀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죠. 그는 이 번역이 갖는 어색함은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포도밭을 재배하는 농부의 증언을 통해 풀어냅니다. 하지만 윌킨슨의 근거가 성경시대와 시간과 공간이 다른 것이 맘에 걸리는데 이 단점을 보완한 분이 류모세(열린다 성경-절기)입니다. “그러나 성서시대의 이스라엘의 포도 재배법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 당시에는 철사가 귀했으므로 포도 가지는 뱀처럼 땅을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땅에 닿은 포도 가지는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기에는 땅에 닿은 부분이 습기로 인해 썩고, 건기에는 자체적인 뿌리를 내리다 보니 본 뿌리에서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서시대 농부들은 땅바닥에 닿아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적절하게 처리해 주어야 했다. 이때 방법은 가지를 들어 주어밑에 돌을 괴어 놓음으로써 과실을 잘 맺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반면 과실을 잘 맺는 가지는 잔가지를 쳐주는 전정 작업을 통해 자잘한 포도 열매가 아니라 극상품의 포도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처럼 성서시대 포도 농사에서 농부가 신경 써야 할 두 가지 작업은, 땅바닥에 닿아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밑에 돌을 괴어 들어 주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깨끗하게 잔가지 치기를 해주어 극상품의 포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들어 올리셔서 보살펴주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는 말씀에 이런 재배법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새번역, 밑줄은 필자 수정). 성경학자들은 특히 6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번역을 피하지만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으로 시작하는 6절과 2절이 가리키는 상태는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6절이 머물러 있지 않은 상태에 관한 것이라면, 2절은 머물러 있는 상태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이 번역을 택했을 때 다른 말씀들과의 정합성이 더욱 증대되기 때문에 이 해석은 여러모로 한번 검토해볼만하다 하겠습니다.

 

한 단어를 바꾸었을 뿐인데, 이렇게 이해된 포도나무 비유는 우리에게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하나님이 탕자의 비유(15:11~32)에 나오는 아버지 같으신 분이심을 이 말씀도 확인을 해줍니다. 탕자인 작은 아들을 기다려주고 새로운 삶을 열어주었듯이 그리스도께 붙어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자상히 보살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은 큰 아들에게는 너는 늘 나와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고 격려하셨듯이 그리스도께 붙어있으면서 정상적으로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꾸어주시는 하나님이시죠. 결국 신앙생활의 관건은 포도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독립하는 가지가 되지 않고 그 분께 굳게 붙어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 속이라면 결국 이런 저런 신앙의 열매들이 맺어지기 마련입니다.


* 전북기독신문에 2011년 8월 경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봄에 이웃 교회 목사님께 포도나무를 얻어 예배당 텃밭에 작은 포도밭을 만들었습니다. 땅에다 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교인들이 고랑도 만들어주시고 지주도 세워주셔서 구색은 갖추었습니다만, 성실히 가꾸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 제 게으름이 여실히 드러나 있네요. 급한대로 땅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을 들어 올리면서 오래 전에 쓴 이 글이 떠올라 올립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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