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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맛본 생수

이선규 (서울남노회,금천교회,목사) 2019-11-06 (수) 19:44 1개월전 76  

광야에서 맛보는 생수 요한7:32-44(이선규 목사 대림다문화 센터대표 연합교회 담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최후의 수난의 6개월 앞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자연히 옛날 시내 광야가 연상이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절기는 장막절을 가리킵니다.

장막절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나가안 복지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많은 무리들이 굶주려 있을 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광야는 메마른 곳입니다.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광야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광야 같은 세상에 반석으로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40년간의 생활은 쓰라린 경험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잊을 수 없는 경험중의 하나는 물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목이 말라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듣게 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손에든 지 팡이로 반석을 칠 때 반석에서 생수 솟아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마름을 면하고 사경에서 벗어 나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 놀라운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장막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절기 마지막 날에는 그들이 여리고 성을 일곱번 돌아서 그 성벽이 무너지고 그 성을 점령 하 게 된 것을 기념하여 제단을 일곱 번 돌았습니다.

그 예식이 끝날 다음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목마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옛날 광야시대가 연상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목이 말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과 가축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생수를 주는 반석을 통해서 목 마른 인간에게 지금도 생수를 주시는 만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광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친숙한 낱말은 광야입니다.

외롭고 한산하고 비생산적인 빈들의 개념과는 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은 광야의 소리 (1:23)회개 운동은 전통적 종교인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지 않고 변두리인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광야는 비록 고통과 고독 위험과 소외가 모두 겹친 변두리 였으나 거기에는 거룩한 소명이 있었고 신앙 훈련이 거기서 이루어 졌으며 미래를 위한 소망이 광야에서 출발 하였던 것입니다.

 

 

1, 소명의 땅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소명을 받고 민족 해방의 역사가 출발됩니다.

미디안 광야는 모세에게 고독과 좌절로 덮인 망명지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다. (3:50)고 말씀 하십니다.

변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태동하고 소명이 내려지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돌 베게를 베ᅟᅡᆸ니다. 고 누운 광야는 절망의 땅 같았습니다.

고향에서 쫒겨 나고 황막한 광야에 내던져진 외톨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니은 꿈을 통하여 야곱에게 소명을 주십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새로운 소명을 받게 되어집니다. 그는 외로운 광야에 머물고 있었지만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다. (28:17)하고 자각합니다.

2, 훈련의 땅

성서에 나타난 변두리인 광야는 신앙 훈련의 교실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여호와 신앙은 시내 광야40년에 정립 됩니다.

실상 야훼 신앙은 시내 광야에 40년에 정립이 됩니다.

위기를 위험과 약속의 교차점 이라고 정의 한다면 광야 생활은 위기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홍해의 위험이 있는가 하면 바다 속에 구원의 길을 보이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굶주림의 위험과 만나의 약속 불 뱀의 위험과 구리 뱀의 약속 목마름의 위험과 전쟁의 위험과 승리의 약속 등 위기의 연속 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회의는 확신에 이르고 부름 받은 백성의 자각이 굳어졌으며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이 정립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변두리가 아니라 축복의 땅 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타난 광야입니다.

어쩌다 살게된 우연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복지이기도 합니다.

3, 출발의 땅

광야에서 준비 되고 광야에서 출발 됩니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척결하고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왕상19:)

예수님도 광야에서 출발 합니다 ((마태1:11)유혹과 시련의 광야였으나 그것은 사명을 향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광야였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 나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 (1:17)고 그는 간증 하였습니다. 광야라고 불리 우는 변두리에서 사명의 씨가 움트고 시련을 통과하는 자기 준비가 이루어졌으며 선교가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광야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 주어라. 거기에 포도원을 마련해 주고 아골짜기로 희망의 문으로 만들어 주어라 (2:14,15))

광야는 물이 마른 곳입니다. 광야는 나무도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거친 나무 비가 오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나무들 뿐 입니다. 그저 있다면 바위 들 뿐이고 아주 조잡한 풀들 뿐 입니다. 광야에는 꽃이 없습니다.

광야에 자라나는 초목은 그 잎이 깔깔하고 가시가 많아서 사람의 몸에 닿으면 상처를 내고 피가 나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천재지변, 전쟁과 재난이 계속 일어나기 쉽습니다.

이와같은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4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면 그들의 어려움이 어떠했게겠는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광야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혼의 가나안을 찾지 못한 심령은 아직까지 광야에서 헤매는 가련한 심령일 뿐입니다.

마음이 평안을 찾지 못해서 불안과 초조와 원망과 불평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렇게 육신 적으로나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으니까? 자연히 심령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불안해 집니다.

평화를 구하지만 광야 같은 세상에서 평화를 찾지 못하고 불안해 합니다.

사랑을 구하지만 광야 같은 냉 냉한 이 세상에서 사랑을 찾지 못해 쓸쓸하고 외로워 소외감 마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은 결국 광야에서 헤매는 나그네들입니다.

이리 저리 헤매는 중에 청춘은 사라지고 기력은 쇠퇴해 지고 머리에는 힌 서릿발이 잡히게 되 어 인간의 환멸과 탄식 속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광야에 반석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 반석을 칠 때 반석이 갈라지면서 생수가 솟아 나옵니다. 이 반석이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 마 르려니와... 이 세상의 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름은 더 심화 됩니다.

이 세상의 정욕은 만족이 없습니다. 세상 것으로 만족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은 겉모습은 동물에 불과 하지만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영이 있기 때문에 이 영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진리와 생명 성령이 우리 심령에 생수와 같습니다.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7:37)

리 앳 워터는 미국 정계에 잘 알려진 인물 입니다.

그는 죠지, 부시의 1998년 대통령 선거 운동을 성공 적으로 기획하고 공화당 전국 의원을 역 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창 왕성하게 활동 할 무렵 수술이 불가능한 뇌종양으로 40세 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병상에서 그는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이 인생에서 가장 귀 중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스며드는 깊은 공허감을 인정하며 미국 국민들에게 영적 공허감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촉구 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결핍되어 있는 것이 내 자신에게도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내 병이 나로 하금 깨 닫게 해 주었습니다. 에례미아 선지자도 그의 많은 동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똑 같은 공백 상태를 인식했습니다.

개인과 국가가 위험한 공백 상태에 있음을 경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파고 있는 웅덩이가 썩은 물이 고이는 물웅덩이 (2:13)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이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정말 귀한 것은 값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거저입니다.

공기도 값이 없습니다. 태양빛도 우순풍조 우로지택으로 우리 인간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구원도 값없이 주십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이 여기지 말 아라고 하십니다. 야 왜요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교의 내용을 가나한 자에게 전해지게하고 묶인 자에게 해방을 눈먼 자에게는 광명을 찾게하며 억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복음이며 (4:14)목마른 자에게 생수라고 정의 하셨습니다. 주여! 이생수를 목마른 자들에게 마시게 하소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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