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제목인 ‘◯◯-예슈아’가 무슨 말인지 매우 궁금하실 겁니다.
‘예수’를 히브리어에서 ‘예슈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굳이 ‘예슈아’라는 말을 쓴 이유는
제가 새로운 성(姓)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예수’를 그대로 쓰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a)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죠.
이만저만한 변화가 아닙니다. 큰 변화입니다.
내 안에 살고 계시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만든 새로운 호칭이
‘◯◯-예슈아’입니다.
‘예슈아’는 하나님나라 성(姓)이고
성도 여러분의 이름(名) 뒤에 이 성(姓)을 붙이면 됩니다.
저의 경우, 성도로서 제 새로운 호칭은 ‘솔문-예슈아’가 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각자, 자신의 새로운 호칭(名-姓)을 마음속으로 만들어보시고
한 목소리로 외쳐 보겠습니다.
(시작!)
‘◯◯-예슈아’라는 새로운 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성도 여러분의 인생은
“나”의 인생이 아니라
“나와 그리스도”의 인생입니다.
사업 용어를 쓰자면, 성도 인생의 동업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것도 지분 90%인 동업자이시지요.
오늘 성경말씀은
이러한 큰 변화를 겪은 성도 여러분, ‘◯◯-예슈아’인 성도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첫째]
내 인생 지분 90%를 가지신 예수님을 위해 사셔야 합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주님이 주신 사명(임무)을 수행하는 것입니다(15-19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를 돌보라는 사명을 세 번이나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했던 실책을
하나하나 지워주시기 위해 세 번 묻기도 하셨지만
동시에 성도의 인생에서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 번 복창시켜 강조하셨습니다.
부도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살리시고
90% 지분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첫 번째 명령은
주님이 주신 임무(사명)을 위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명자라는 거창한 직책은
베드로 같은 사람에게나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사명자입니다.
처해진 환경이 달라서
어떤 성도는 자기 몸 하나 추스르는 것이 사명일 수 있습니다.
큰 장애나 병을 가진 분들이지요.
이분들도 사명자입니다.
어떤 성도에게는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사명을 주셨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가정과 교회를 돌보는 사명을 일차적으로 받았고요.
사명의 스케일이 다르지만
성도는 모두가 사명자입니다.
이것 잊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세 번 복창시키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사명의식은 우리 삶의 전체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믿음(cf. 콰인의 ‘믿음[belief]의 거미줄’)입니다.
예수님 당부, 잊지 마시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둘째]
고작 10% 나의 지분을 가지고
‘◯◯-예슈아’의 인생을 남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20-22절).
베드로는 이토록 중요한 사명을 받고 나서 감격할 틈도 없이 눈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가 보이니 저 제자는 어떻게 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 제자의 앞날을 걱정해서 물어보았다는 해석도 있습니다만, 만일 그런 맥락이었다면 예수님의 대답이 “너와 상관 없다(신경 쓰지 말라)”처럼 매몰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10% 지분을 가지고 부질없는 비교를 하니 그 비교의식의 싹을 단호하게 뽑아내신 것이지요.
엄밀히 말해서 일반인이라고 해도 인생을 서로 비교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인생에 포함되어 있는 매우 많은 요소들 중 몇 가지만을 가지고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성도 여러분의 인생은 더 더욱 “비교 불가”입니다.
인생 지분의 90%를 예수님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지분 10% 가지고 어떤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cf. 성도와 일반인의 비교)
사명을 주신 후
예수님은 사명자가 품는 비교 의식을 매몰차게 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신경 꺼라'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다른 사람 끊임없이 비교할 것이 아니라
90% 지분을 가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셋째]
10% 지분을 가진 성도는
자신을 높이지 말고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라는 표현은
사도 요한(또는 요한공동체)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슈아’와 비교하면
이 표현에는 ‘10% 지분’에 대한 흔적조차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드러납니다.
23절에서도 사도 요한의 이러한 모습이 보입니다.
초대 교회 때 베드로 같은 주요 제자들은 거의 순교를 합니다.
반면에 사도 요한은 수십 년 동안 살아남아서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아마 교회 지도자로서 독보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와전되어
사도 요한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났습니다.
우리나라 어떤 대통령을 신처럼 여기듯이
사도 요한을 우상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3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런 소문이 와전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고넬료가 엎드려 절하자
베드로가 “일어나십시오,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라고 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 3:30)는
세례 요한의 마음과도 통합니다.
이것이 지분 10% 가진 자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사도 요한이나 베드로처럼 이런 숭상을 받을 일 없습니다만
주님은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분 10%의 도리이기도 하지만
이런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다른 사람과 비교에서 우리가 한없이 초라해질 때
90% 지분을 가진 주님으로 인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90%가 주님 지분인 성도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첫째, 어떤 처지이든 주님이 주신 임무를 잊지 말고 사셔야 합니다. 그러다가 전사해도 사명자에게는 영광입니다.
둘째, 눈에 보이는 ‘내 지분 10%’를 가지고 남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90%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사십시오.
셋째, 내 삶에서 주님은 더욱 커지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합니다. 그럴수록 ‘나’가 오히려 강해지는 비결을 아셔야 합니다.
[註]
주일오후예배 때
각각 다루었던 꼭지 셋을
삼대지로 묶어 지난 주일아침예배 때 전했습니다.
종합해서 신앙 교훈을 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주일오후예배 원고를 단순히 합쳐 놓은 것은 아닙니다.
삼 대지를 연결하는 ‘◯◯-예슈아’와 ‘지분’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주일아침예배 원고를 정리하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