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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전제로 할 수 없다"의 의미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9-11-15 (금) 11:42 8개월전 628  

수 년 전, 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넘어진 후 생명을 연장시키는 수술까지 받았지만 수개월 후에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시위 중에 사망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썼던, 한 의사가 끝내 사인(死因)을 교통사고와 비슷한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로 판정하였는데요, 그 참신함에 세상이 놀랐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저는 그 분이 원인 판정과 관련된 원리 또는 관행 바꾸는 착상을 하신 것으로 생각되어 기자 회견을 유심히 보았는데요. 또 한 번 놀랬습니다. 무지하거나 아니면 말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을 쓸 기회가 있을 때 흥미로운 자료가 될 것 같아 시험 문제로 만들어 기록해두었는데요, 오늘 간단하게라도 모범 답안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가정을 전제로.PNG 


 

 

1.

 

답변으로 언급된 가정을 전제로 할 수 없다는 주장 속에 여러 문제점들이 들어있어서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난감하나, 일단 문제에 논증이론에 근거하라고 했으니 이 점부터 살펴보자.

 

한마디로 틀린 주장이다. 논증(추론)에서 가정(假定)을 전제(前提)할 수 있다”. 중등 수학을 통해 많이 알려진 귀류법(歸謬法)도 이런 경우이다. “참이라고 가정한 것을 전제로 삼은 후목표하는 바를 도출해내는 증명법이다. 다만 임시()로 참이라고 정()한 전제 p가 해당 논증에 들어있을 경우 “p 그대로는 해당 논증의 결론을 직접 정당화하지 못한다. “가정적이기 때문이다. 가정했던 p가 참임을 증명하는 추가 논증이 있거나, p라는 가정을 통해 “p가 아니다라는 정식 전제를 도출해내는 우회로를 통해야 한다.

 

오래 전, 줄기세포 사건 때 검찰에서 가정을 전제로 하는 추론을 사용하였다.

 

전제 (1): [가정]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가 가짜임을 알았다

전제 (2): 만일 전제 (1)이라면, 그는 줄기세포를 다른 연구소에 분양하지 않았(을 것이).

전제 (3): 그는 줄기세포를 다른 연구소에 분양하였다.

- - - - - -

중간 결론: 전제 (1) 가정이 틀렸다[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조건 하에서].

최종 결론: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가 가짜임을 알지 못했다.

 

 

기자의 질문에 만일 교통사고로 인해 급성경막하출혈을 입은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지 않았다면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이것이 가정을 전제로 쓴 추론이 아니다. 그저 이런 질문이었다. “선생님께서 사용한 판단 기준을 적용하면 교통사고 환자의 경우도 병사로 판정될 수가 있는데, 이 경우와 선생님의 경우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현학적인 말로 얼버무리지 말고 왜 다른지 설명하면 되는 것이다.

 

 

[보충 답안] “가정을 전제로 할 수 없다는 말은 정치인들이 수사적으로 사용하는 가정을 전제로 답변할 수 없다에서 나온 듯하다. 이 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렇게 현학적인 말을 함부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법조인 밖에 없다. 아마도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상대방의 논증을 반박할 때 그 전제는 참(사실)이 아니고 당신네들이 가정(추정)한 것에 불과하니 당신의 논증은 입증되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미를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수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상한 표현이 되기 시작하고 급기야 과학자(의사)까지 오용하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다. 예를 들어, “만일 의원님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와 같은 난처한 질문이 들어오면 가정을 전제로 얘기할 수 없습니다고 피해간다.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질문에 영문법의 가정법 현재(또는 미래)”가 있지만 이 가정이 논증의 전제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그런 상황을 가정했을 때 어떻게 하실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대답하기 곤란하면 거품을 빼고 이렇게 하면 된다. “그런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여기서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2.

 

이 문제는 모범 답안보다는 스케치 정도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최근에 앞에서 말한 의사는 당시에 한 자신의 판정이 여전히 맞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교육자적인 양심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학자의 양심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의학계에서 이 사안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면 논쟁의 한쪽 방향으로는 원인(原因)과 결과개념은 무엇인지(필요조건과 충분조건도 등장하고),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으로 전개되고, 다른 한쪽으로는 그동안 의학계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정을 해왔는지 관행을 살펴볼 것입니다.

 

생산적인 토의는 후자부터 해야 합니다. 일단 관행에 부합하는 판정을 했는지 검토하는 것이지요. 이 검토는 이런 방식으로 해도 됩니다. “앞에서 말한 의사의 기준을 의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과학의 수준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검토를 거친 후에도 논의가 정리되지 않으면 슬슬 쟁점이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철학에서 이 주제는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추신 19. 11.26]


이 사안을 법원에서 다루었군요. 기사 링크합니다.


https://news.v.daum.net/v/20191126143717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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