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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과 종교생활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9-12-03 (화) 20:04 4년전 2030  

신앙생활과 종교생활입니다.

행전 4 : 8~12                                                        박용래 목사

루터와 친구의 죽음 이후

루터가 어렸을 때였습니다. 넉넉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랐고 아버지는 훌륭한 법관을 원해서 루터는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이었는데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폭우가 내리고 천둥이 치더니 소낙비가 쏟아져서 비를 피하기 위해 언덕위에 나무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별안간 벼락이 떨어져 함께 가던 친구가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루터는 너무 놀라고 슬퍼서 죽은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친구의 장례를 치루면서 땅에다 묻고 인생에 대하여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한순간이 아닌가? 육체는 한 조각의 종이 부스러기와 같지 않는가! 영원히 사라져 자취가 없으니 도대체 지상에 있는 명예가 무엇이며!" 성공이란 무슨 의미인가?

그 후에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고 교회의 부패상을 척결하고자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만년에 몸이 허약해져서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루터는 자기가 안식으로 들어갈 것을 알았는지 한참 명상에 잠겼다가 눈을 뜨고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 사망을 면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루터는 깨달았습니다. 인간에게 참된 소망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종교생활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요일5:4, 24:17,)

지난 주일에는 종교생활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교회에 


많은 직분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종교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자들이


었습니다.종교생활은 잘못된 교리 잘못된 지식 잘못된 습관을 고집하


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이기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 중심보다는 자기만족을 채우는 종교놀이


만족을 채우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신앙생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2) 신앙생활의 특징 무엇인가?

(1)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부활입니다. 4대 성인 가운데뿐만 아니라 세상에 어떤 분도 예수님의 부활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생존해 있을 때의 업적을 자랑하기에 무덤이 있습니다. 왕릉에 가보면 크기에 따라 왕의 업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존에 계실 때의 업적보다도 오늘날 인류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나? 그리고 어떻게 부활하셨는가? 주목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도 예수님의 부활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멘.

그런데 문제는 부활 신앙이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오늘 설교에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과거의 부활을 믿고, 다가 올 미래의 부활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무엇인? 바로 '현재의 부활' 믿고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본문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는 "이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은 우연히 아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오늘 이 사람이 낫게 되어 건강하게 되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현재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절망에 빠진 40년 앉은뱅이가 오늘 주님의 부활의 믿음으로


어났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기적은 오늘도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의 고통과 또한 죽음을 체험하


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모르게 웃는 것 같아도 마음속에 낙담이 자


리 잡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고, 조그만 상처


도 슬퍼합니다. 병들을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마음이 아파 울


도 하는 인간입니다. 고달픈 인생길에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


도 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이런 어둠과 고통과 좌절된 


마음속에 현재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나사렛 예


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과거에 역사하셨고, 미래에 우리 몸을 부활시


킬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현재의 삶속에 역사 심으로 


부활을 체험할 수 있다고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들의 병들고 좌절하고 신음하는 삶을 부활시킬 수 있다


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부


활신앙을 체험한 뒤에는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일을 당하


여도 낙담하지 않고,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로마 감


옥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몰매를 맞으면서도 감사했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과거의 예


수님의 부활을 믿었고, 미래에 내가 부활할 것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그의 삶 속에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평생 반복되는 종교생활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종교생활을 청산하고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


원 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병만이 아니라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부관계,


구도 다스릴 수 없는 자녀문제들까지도 하나님은 해결해 주십니다.


른 뼈들로 군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사업도 일으켜 주


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을 체험하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


.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루는 신학 대학교 채플 시간에 간증을 하러 오신 유명한 병원의 원장


이 계십니다. 미국에서 꽤 유명한 병원원장님이 휠체어를 타고 오신 


한 작은 노인이 강대상이 다 치워지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마이크를 잡


고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처음 불구인 것을 알았을 때는 여섯 


살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근육 축소 증이란 병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전에는 엄마가 시


중을 다 들어주어서 몰랐는데,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다른 아이들은 다 


공을 차는데 자기는 찰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큰 상처가 있


었고 큰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자라 열여섯 살이 되


었을 때 자기 병의 심각성을 체험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6


였으니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을 때 어떤 모임에 가도 자기


에게 호감을 가지는 여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내가 살아 무엇 하겠는가?" 좌절에 


빠집니다.


그러던 중 그는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수 그리스


도를 영접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더욱 귀하


게 사용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처럼 이렇게 병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들을 치료해 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


. 그 순간부터 그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의사가 되었습


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산타클라라 밸리 메디컬센터의 병원장이 된 것입


니다. 환자들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주의 복음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그는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


도 그곳의 원목으로 남았습니다. 병원장이 원목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 그러나 그는 원목으로 남아 수많은 사람을 전도하다가 대학교를 돌


면서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었고, 그는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부


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은 단순히 병든 자기의 몸이 치료되고 완치되


는 것만으로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이 불완전한 몸도 하나님께


서 쓰실 때가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에게 부활신앙은 그를 완전


히 새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과거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만 믿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앞으로 부


활할 것만 믿는 것이 아니고, 그 부활하신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에도 


자신을 사용하셔서 깨우시고, 부활시키실 수 있음을 알았던 사람입니


. 오늘날 교회에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생활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살아나야 합니다. 부활해야 합니다.


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가운데서 주님께 부활을 구해야 합니다


낙심과 쾌락만 좇아가는 삶에서 주님의 부활을 구해야 합니다


 

종교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의 중심에는 하나님


이 계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리,


잘못된 지식, 잘못된 습관과 전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기심이 자


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


. 내가 주님 앞에 부활을 믿으며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 


수 없다는 마음 상태에서, 내가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


우리를 부활시켜 주실 줄 믿고 기도함으로 부활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생명력있는 신앙생활을


고 있습니다. 기도가 살아있습니다. 말씀이 살아 있습니다. 순종과 겸


손과 섬김이 살아있습니다. 오늘도 삶속에서 이런 주님의 부활의 기적


을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을 삶의 기초로 삼는 삶입니다.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모든 건축에 중요한 것은 머릿돌입니다. 유대인들의 건축에는 머릿


돌이 무너지면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머릿돌이 튼튼해


야 건축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머릿돌로 주셨다고 말씀하


십니다. 겉으로 보면 이 세상의 왕들이 다스리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


이 다스리고, 한 국가가 다스리고, 기업가가 다스리는 것 같지만, 하나


님은 한 번도 이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그들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스리겠다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모통이 돌을 쓸모없다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를 부활시켜서 다시 이 세상을 세우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빠짐없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무엇을 심판하십니까? 돈을 많이 벌고 못 벌고, 공부 잘했고 못했고, 선한 일을 했고 못했고, 그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기준은 단 한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토대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쌓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다 말씀하시고 이 비유를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집을 짓는 자다. 그런데 두 종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모래 위에 짓고, 한 종류의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 집이 아무리 화려해도 적어도 한번은 폭풍이 올 것입니다그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모두가 무너지되 심하게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다 이와 같으리라" 아멘.

사람들이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구재를 많이 했다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님만을 이 세상의 머릿돌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외에 쌓은 선행, 예수님 외에 쌓은 지식, 예수님 외에 쌓은 그 모든 재물은 이 세상에서는 환영받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심판의 날에 하나도 남을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을 착각합니다.

착하게 산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다른 종교인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종교는 다 같다고 말을 합니다. 선한 일만 하면 종교는 다 옳은 것처럼 말을 합니다. 미국에 가보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종교가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단종교일수록 더 좋은 일들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스님에게 "스님, 제가 성경을 읽어도 될까요?"하고 물어 보십시오. "좋지!"  "스님, 제가 교회에 나가도 될까요?" "좋죠!" 

목사에게 물어 보십시오. "목사님, 제가 절에 가도 될까요?" 목사라면 교회에 나와야할 진리를 가르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배타적이라 하고 독선적이라고 선동을 합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에서는 세상 모든 종교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심으로 모든 종교가 선행을 함으로 나름대로 구원의 길이 열려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같은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그런데 기독교는 왜 예수 아니면 안 된다고 할까요? 왜 그럴까요? 그것이 진리이고 성경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답이기에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몸 버려 피 흘려 죽으시고 속죄의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셔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정답을 선포하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의 중직자이면서 직분자라하면서도 여전히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로 만족하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신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뭔가를 하는데 예수님을 기초로 하여 쌓아올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종교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합니다. 부활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성철 스님은 18년 동안 등을 한 번도 땅에 대지 않으신 분이라 하십니다. 그렇게 수행을 많이 하신 스님이 마지막 죽음 앞에서 남긴 말씀은 "나는 한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 푸른 산에 걸렸 있다." 그렇게 수행을 많이 하신 분이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심판 날에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로 말미암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기초로 해서 살아온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제 여러분, 삶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과연 내 생각과 지식과 상식을 따라 믿는가? 내 유익을 따라 믿는가? 아니면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반석이신 그 분 위에 내 인생을 예수님을 기초로 해서 집을 짓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종교생활은 고정되어 불변하지만, 신앙생활은 언제나 변화하는 것입니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지난달과 이번 달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달라진다고 말씀합니다

 

옛날에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변화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변화되어 가고 계십니까? 예수 믿고 더 좋은 남편으로 변화 되었습니까? 더 좋은 아내가 되었습니까? 더 좋은 아버지 어머니로 변화 되었습니까? 무엇보다도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시고 계십니까그렇다면 종교생활이 아닌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남은 생을 종교생활 하는 자가 아니라, 종교놀이 하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삶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01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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