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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음성예배': 사라의 큰 웃음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0-09-05 (토) 17:55 21일전 163  

 

1.

 

프레드릭 비크너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계의 보배 같은 목사님이지요. 촉망받는 신예 소설가였던 그는 어느 날 회심을 한 후 무작정 목사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극적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 과정을 자세히 보면 사람이 하나님께 이렇게 낚이기도 하는구나 하는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전방(前方)에서 쓰시려고 하나님이 사람 하나를 찍으면 그 사람 인생은 이상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비크너는 일찍이 작가가 되기를 결심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공부합니다. 졸업 후 문학 교사를 하다가 소설을 썼는데 평론가들에게 격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큰 기대를 가지고 내놓은 두 번째 소설은 주목받지 못합니다. 창작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교사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가서 전업 작가의 길을 갑니다. 그런데 한동안 단 하나의 단어도 써지지 않았습니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요. 대신 돈이라도 벌어보려고 삼촌의 지인에게 일자리를 부탁합니다. 그분에게 돈은 많이 벌겠지만 얼굴이 철면피가 되어야 하는 일이다는 소리를 듣고 포기한 후 다음 일자리로 “CIA”를 알아봅니다. 그러나 면접 때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걸린 정보를 받아내기 위해 어떤 사람을 기꺼이 고문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지원을 철회합니다. 이렇게 일자리 알아보는 것과 별개로 그 당시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데 애석하게도 그 여성은 비크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이런 관계를 전문 용어로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내가 여는 문마다 코앞에서 꽝 하고 닫혀버리는처지였다고 비크너는 회고합니다.

 

뭘 하든 그냥 시간을 보내려는 것 말고는 다른 진지한 동기를 가질 수 없었던때 비크너는 어영부영 가까운 예배당에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갔다가 그 교회의 목사님(버트릭)의 설교에 감동을 받습니다. 어떤 설교였을까 궁금한데요, 비크너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첫째, 둘째, 셋째 식의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들어봐도 설교의 요점이 3개인지 6개인지 2개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설교를 아주, 아주 세심하게 준비했습니다”. 재미있네요. 저도 비크너의 설교문을 읽으면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생애 처음으로 꾸준히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던 중에 이윽고 비크너에게 특별했던 주일이 찾아왔습니다. 비크너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 1953,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던 해였고, 목사님도 아마 그 일을 기본 주제로 삼았던 것 같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대관식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탄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것, 저것을 하기만 하면 지상의 모든 나라가 다 네 것이 될 거야.’ 예수님은 이때 사탄에게서 왕관을 제안받은 것이지요.” 설교자는 예수님께서는 엘리자베스와 달리 그 왕관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여느 설교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사탄이 제안하는 왕관을 거절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왕관을 받고 또 받았습니다.” 사실, 설교가 여기 이를 때까지도 의외의 설교라고 여길 만한 부분은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를 이어갔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사람들의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 가운데 그들 마음속에서 거듭 왕관을 받으십니다.” 이 대목에서 큰 웃음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 죄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 가운데 왕위에 오르신다고 했을 때, 내 안에 있던 어떤 벽이 무너져 내렸다. 당혹감에 사로잡힌 마음, 두 눈에서 눈물이 솟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스도의 즉위식에서 웃는 큰 웃음이라니.>

 

 

2.

 

설교자를 통해 비크너에게 던지신, 하나님의 미끼는 큰 웃음이었습니다. 비크너는 이것을 덥석 뭅니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비크너로 하여금 헌신을 주저하게 했던 걸림돌 같은 것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얼마 후 그는 유니온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지요.

 

설교자가 의미했던 큰 웃음은 문맥을 감안할 때 용서받은 기쁨아닌가 싶습니다. “죄의 고백눈물다음에 나오는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비크너는 큰 웃음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을 떠올립니다. 고령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기가 생길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마음속으로 웃습니다. 포기한 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 꿈같은 일을 하나님이 약속하시니 헛웃음이 나온 것이지요(17:17). 하나님께서는 이 꿈같은 일을 사라에게도 말씀하셨는데요, 사라 역시 마음속으로 헛웃음을 짓습니다(18:12). 안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헛웃음을 진짜 웃음, 큰 웃음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사라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삭을 바라보며 큰 기쁨의 웃음을 터뜨리게 되지요(21:6~7). 설교 끝에 던져진 큰 웃음이라는 말에서 비크너는 오늘 말씀의 큰 웃음을 느낍니다. 그런 그에게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은 신앙적 지혜의 압축이었습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을 의심하지 마시오. 주님의 세계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3.

 

꿈 같은 일을 누리는, 사라와 아브라함의 이러한 큰 웃음이 크게 메아리치는 성경 말씀은 어떤 것일까요? 시편 126:1~3입니다(궁켈, 브루거만). 함께 봉독해보실까요?

 

주님께서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

그 때에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찬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때에 다른 나라 백성들도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 일을 하셨다."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어 큰 일을 하셨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사라와 아브라함의 큰 웃음이 종종 메아리치기 바랍니다. 시편 126편의 웃음과 함성과 기쁨이 종종 울려 퍼지기 바랍니다. 설령 그러한 일이 내 삶 속에서 여의치 않을지라도(단 3:18) 주님을 다시 뵐 때 누리는 가장 큰 기쁨(16:22)을 생각하며 지구별 순례길 완주해내시길 소망합니다.

 

 

[]

 

(1) 우리 교회는 가정예배를 카톡음성예배드립니다. 카톡을 '안하시는' 교인들은 주보와 설교문 드리고, 카톡이 가능하신 교인에게는 카톡으로 주보와 설교문 전달합니다. 설교음성파일(여기에는 목회기도 포함)도 예배 직전에 올려드리고요.

 

(2) 내일(96) 설교문입니다. 본문은 창세기 21:6, 제목은 사라의 큰 웃음입니다. 카톡으로 읽거나 들어야 하셔서 길지 않게 작성했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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