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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오

30년전의 그리움의 섬 2011. 9. 16

진창오 (익산노회,꿈너머꿈교회 ,목사) 2020-12-07 (월) 17:09 3년전 728  

내가 한신대학 1학년 때 주소만 들고 막은댐이라는곳에서 배를 타고 50분정도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용운교회를 찾아간 적이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빛바랜 양복, 덥석 머리, 낡은 구두를 신고 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열정 하나로 섬교회 단독목회를 시작하러 간 날이 198252일 주일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 27세였고 지금 우리 집 큰 아이가 27세이니 세월의 흐름이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백명 이상이 살았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이십 여명만 살고 있고 내가 그곳을 떠난 뒤에 교회당은 아무런 목회자 없이 서있기만 할뿐이었습니다. 지난주 30여 년 전에 함께 신앙 생활하셨던 노승옥 집사님이 간경화로 투병중이어서 용운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오면 막은 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배를 태워 교회까지 나를 모셔(?)다준 정금철 성도에게 고마운 인사를 하고 내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손을 잡아줬습니다. 노승옥 집사님은 손수 담았다고 나에게 된장과 고추장을 듬뿍 담아 줬습니다. 아들하나 낳으려고 딸을 6명을 낳고 일곱째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은 군대에 가있습니다. 딸 셋을 낳은 뒤에 앞으로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쓰라고 영빈이라고 내가 지어줬는데 내가 그 교회를 떠난 뒤에 딸 세 명을 더 낳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드디어 아들을 낳아서 막내아들을 영빈이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마을에 어린이가 60여명 있었지만 지금은 어린이가 한명도 없는 삭막한곳으로 변했습니다. 통학선도 없어졌고 분교도 문을 닫았고 마을에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초가집처럼 생긴 교회당이 어서 속히 구원받은 백성이 오라고 지금까지 서 있습니다. 제가 흙으로 지은 네평정도 되는 작은 사택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뚫려서 차로 갈수 있지만 그때는 도로가 없어서 산을 두 시간 넘어가든지 배를 타고 갔습니다. 교회우물에 동네 어린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씻겨주고 손톱발톱 깎아서 사탕하나씩 손에 들려 집에 돌려보내던 옛일이 눈에 선합니다. 총각전도사가 섬교회에서 3년을 그렇게 훈련받았습니다.

그때 산에서 소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서 방에 걸어놓았던 것을 가져와서 지금 우리 거실에 걸어놓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그곳에 있는 영혼들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의 은총을 주시며 저에게 그때의 주님께로 향한 처음사랑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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